음악을 사랑하는 기타리스트이자 쏭 롸이터인 남편이
무슨 페스티벌 그런걸 저게 어데 시골에서 8월에 하는데
거기 친구들하고 나간다고 들떠 있어요.

제가 일을 시작하고 부터 돈 얘기도 본격적으로 많이 하고
앞으로 남편이 일을 하는 문제도 또 얘기하고.

남편이 전 직장 나오고 나서는 제가 결심한 것은
다시는 그런 생활로 돌아가지 말자.
남편은 주에 50-60시간씩 뺑뺑이 돌듯 기계처럼 일하고
주말에도 발 뻗고 편히 쉬지도 못하고 일 걱정에 치여 사람이 찌들고
스트레스는 오로지 술로 풀고.

저런 생활을 할 때는,
그냥 사는게 다 이런가 보다..싶었는데
그걸 그만두고 나니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가가 보이더라고요.

나는 일을 안해도 남편이 돈 벌어다 주니 좋고,
그 돈으로 옷도 사 입고 신발도 사 신고 먹고픈거 나다니며 다 사 먹고
휴가라고 챙겨서 바닷가로 놀러도 가고

그 돈을 벌기 위해 남편이 뺑뺑이 친 7년여의 시간이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고됬을까,
왜 저 사람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나한테 불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걸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생각했을까,
그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패배자처럼 보일까봐 걱정이 됬을까,
부인인 내가 이해해 주지 않을까봐 겁이 났을까.


우리는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는 부부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서로가 감춰둔 채로
그저 밖으로 보이기에 다정한 대화들이었다는 걸 깨달았고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부터 꾸준히 서로의 깊은 마음 나누기 위한 노력을 해서
작년 10월의 부부 위기를 극복하고 부터는
정말로 남편이 걱정하는 문제들을 자기 스스로 꺼내 놓기 시작했고
저는 그것에 대한 저의 생각을 정말로 진지한 태도로 전달했고요.


이제는 제가 직장이 생겼으니
그간 제가 해왔던 말들에 책임을 지게 됬고요,
남편한테,  봐봐, 이렇게 살면 된다니까, 걱정할 것 없다니까~
할 수 있게 됬어요.


남편의 밴드는,
단촐한 3인조.
남편이 리드 기타를 치고,
지난 번 저희 집 침대 매트리스 사 준 그 인품좋은 돈 잘 버는 친구가 베이스 기타,
그리고 드러머로 한 캐릭터하는 재미난 사람 있어요.
우리 수다쟁이 남편이, 재는 너무 말이 많아서 피곤하다고 하는,
두 번 정도는 전화를 피하다가 세 번째 쯤 받는,
집 전화로 걸었을 때 제가 받아서, 지금 집에 없는데요, 이 말을 했는데도
나를 붙잡고 30분을 얘기하는.


이 세 사람이 밴드 맴버로 음악을 같이 오래 하다,
이제부터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스토리인데,
베이스 기타 양반은 직업도 성공적인 것, 돈도 잘 벌고, 그래도 음악은 포기할 수 없어서
꾸준히 취미 생활 정도로 연주를 하고 살고 있었고
남편은 먹고 사는데 올인을 하느라 집에서나 가끔 기타를 잡았지 현역 생활은 아예 은퇴를 했었고
드러머 씨는 돈이 있거나 없거나 벌거나 못 벌거나 내 인생의 목적은 오로지 음악 뿐이다, 하고 부인의 수입으로 자기는 자기 하고픈 것만 실컷 하고 살고 있고,

이래 가지고
밴드가 해체된 지난 10여 년간도 꾸준히 이 사람 저 사람하고 밴드 만들었다가
또 말발이 쎄니 다른 밴드 매니저도 하고
그렇게 살고 있거든요.

베이스기타 씨는 독신이고,
드러머 씨는 저희 보다 결혼을 일년 정도 먼저 해서 지금 애도 둘인데,
부인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있어서 그걸로 생활이 된대요.


그저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나는 그 드러머 씨 부인 만큼은 돈을 못 버니까
그렇게 전면적으로 당신을 음악이나 하고 살라고 밀어 주진 못하겠는데
그렇다고 예전처럼 당신이 벌어다 주는 것만 바라보고 살지도 않을 작정이니
내가 지금 요만큼 버니까, 거기다 당신이 요만큼만 해결해 주면
우리 생활도 하고
당신도 남는 시간에 하고픈 거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저렇게 방향을 잡으면 또 지금 현재의 계획에서 수정이 불가피 하거든요.
남편은 어떻게든 했던 일 써 먹는 방법으로 모색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깨끗하게 접자고 했어요.


우리 당신 예전 하던 일은 잊어 버리기로 하자.
사람이 정신이 행복하게 살아야지,
우리가 집 살 것도 아니고 차 살 것도 아니고 애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하다 못해 더 넓고 좋은 월세로 이사를 갈 것도 아니고
그냥 이 집  싼 월세에 천년 만년 살기로 하고
사람 초대 못하고 살면 어때, 그냥 내가 좋은데 사는 남의 집 놀러 다니면 되지.
당신이 한 달 요 만큼, 요 액수를 목표로 주에 20-30시간 일하는 걸로 하고
나머지 시간 나랑 보내고 당신 기타도 마음껏 치고
우리 그렇게 살자.


그랬더니 남편이 눈이 땡그래~ 지면서 진심이냐고, 정말로 그래도 되냐고.


언제 내가 이런 걸로 농담하는 것 봤나...
옛날 기억 떠올려 보니  다시 그렇게는 살기 싫다고 했어요.
돈은 아쉬운 줄 몰랐지만,
아침에 나간 사람 매일 아홉시 열시 되서야 피곤에 쪄들어서 들어오고
속이 부글대도 따지는 것도 못해서 혼자 끙끙대며 술이나 마시고
나는 나대로 당신 그런 모습 모른척 하면서 하루 하루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살고.
우리가 그 때도 우리는 사이 좋은 부부고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봐봐, 우리는 그 때 지금처럼 이렇게 많이 웃고 살지 못했어.


내가 진작에 이렇게 고통 분담을 했어야 했는데
그 동안 너무 당신한테 큰 짐을 던져 주고 당연한 듯이 살았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과 한다고.


연애를 할 때는,
혹시 이 사람이 공부를 하고도 음악을 한다고 직장을 안 잡고 그렇게 살면 어떡하지?
그런 싹수가 혹시라도 보이면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지.
무슨 잘난 예술 한다고 처자식 고생이나 시키는 그런 인간하고는 절대 결혼하면 안되지.
내가 누군데 껄렁한 음악이나 한답시고 주접떠는 남자 수발을 해주고 살아.
안되지. 어디 두고 볼테다.

요런 마음이었고.

학교 졸업하고는 사실 직장을 후딱! 못 잡았더랬어요.
그래서 몇 달 지켜보는 저도 속이 탔는데,

어머나, 내가 걱정했던 대로 이런 쪽으로 영 찌질한 거 아냐?
아니 왜 공부할거 다 해 놓고도 직장을 못 잡지?

그러다 직장이 잡아져서
돈 얼마 번다고 한 다음 부터는,


오마나, 이제 결혼하자고 하면 해야겠다.
나 이제 진짜 이 결혼하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노여사 이하 나의 수많은 형제 자매와 일가 친척들이 얼마나 좋아할 것이냐.
어여 결혼을 해야 저 돈이 다 내 돈이 되는건데.
아우 다이아반지 따위는 없어도 좋으니, 앞으로 평생 그 월급 내가 착취할 건데
반지 따위야 착취한 월급으로 내가 나중에 차차 사면 되는 거고,
반지 살 돈 모으느라 청혼을 안 하나?
그렇게 반지가 중요하면 카드 하나 만들어서 긁으면 되지, 어째 사람이 저래 융통성이 없어!!!


마음이 급해져 가지고요.


제가 어느 날 다이아 반지 광고 텔레비젼으로 보다가 그랬잖아요.


아니 결혼을 할거면 하는 거지 다이아는 왜 꼭 사야 하는데?
다이아 반지 없으면 결혼을 못 하나???


했더니 남편이 옆에서 정색을 하고, 그게 진심이냐고 정말 그렇게 생각 하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랬더니, 오호....
이 남자는 제가 근사한 다이아 반지를 기대하는 '속물'이 아니라고 받아 들인거예요.


어므나,
그래서 제가 상황 수습하기를,
난 앞으로의 내 인생을 생각할 때 내 옆에 당신이 없는게 이제는 상상이 안 돼.
결혼을 하던 안하던 그냥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쭉 함께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저런 말을 대충 지껄인 것 같은데,
남편이 다시 한 번 묻더라고요.
정말 당신은 어떤 남자가 정말 당신을 사랑하는데 다이아반지 살 돈이 아직 없어서
청혼을 못 하는데, 그런데 당신이랑 결혼이 너무 하고 싶어서
반지가 없이 청혼을 한다고 하면 당신은 예스 해줄 수 있나요?


저 장황한 질문이 너무나 유치해서 저는 속으로 웃음이 났는데,
그래도 때가 왔구나, 걸려 들었어, 싶어서 진지한 표정으로

물론이지.

하고 대답했더니
저는 꼭 티비를 볼 때 침대에 널브러져서 보거든요.
제가 널브러져 누워 있는 침대 밑 바닥으로 내려 가더니 무릎을 꿇더라고요.


나는 당신한테 끼워줄 다이아 반지는 없지만
내 심장을 소유한 여자와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다음 달에 하자고 했어요.
오래 기다릴 거 뭐 있냐. 그냥 다음 달에 바로 시청에 가서 혼인 신고 해 버리자.
은행가서 조인트 어카운트 만들라면 혼인 신고라도 해 놓은 상태라야지 암만.

결혼 소식을 양가에 알린 것은 많은 축하를 받았지만
당장 다음 달에 시청엘 간다니 시아버님이 놀라서 시골에서 바로 뛰어 내려 오셔가지고
아버지 대 아들의 대화를 하신다고 남편 회사 앞에 가셔서 점심 먹자고 하셨대요.
첫 마디가,

그 아이 임신했니?

저는 노인네 놀라서 뛰어 오신 이유가 저거라니 듣고 깔깔 웃어 넘겼는데
이 일화를 두고 셋째 성은 정말 두고 두고 불쾌해 했어요.
내 귀한 동생을 임신해서 남자 발목잡은 여자 취급했다고요.
시아버님의 그 당시 심정은, 정말로 결혼 날짜를 너무 급하게 잡은 것에 대한 놀라움으로
혹시 그래서 일을 이렇게 서두르나 싶으셨던 것 뿐이고,
남편은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껄껄껄 웃으면서


임신 아닙니다. 이쁜이를 사랑합니다.
Nope. I love her.

그랬더니 아버님이,

그래? 됐다 그럼. 이제 맥주 마시자.

그래서 맥주 두 잔씩 마시고 수다 떨다가 남편은 일터로 아버님은 시골 집으로.

당장 다음 달을 결혼하는 날로 하자고 한 이유는,
그 때 우리 두 사람 만난 기념일이 있었거든요.
처음 만난 날 부터 딱 5년 되는.
그래서 제가 기왕이면 결혼기념일도 그 날로 맞추면 좋겠다고 해서 (기념일 여러가지 기억하기 싫어서)
평일이었는데 남편도 딱 그 날 그 다음 날 휴가 내고
시골서 급하게 둘째 시누도 하루 휴가 내고, 막내 시누랑 시부모님도 오시고,
셋째 성 휴가 내고, 둘째 언니가 다섯 살 먹은 현경이랑 유모차에 현영 군 태우고
그렇게 시청 앞에서 집합해서 후다닥 식 올리고

끝내고는 한국 식당가서 푸짐하게 갈비 뜯어 먹고
시댁 식구들은 다시 시골로.

저희는 제 식구들 다 달고 남편 회사에서 결혼 선물로 예약해준 호텔로.

다들 따라와서 방 구경이나 하고 가.
오늘 아니면 내가 언제 이런 호텔에서 자 보겠어.

그랬더니 언니들이, 그래 그래 좋은 생각이다.
우리도 이 참에 일류 호텔 구경이나 해 보자.

남편은 저기서 조금 나중에 삐졌었어요.
결혼 첫 날은
신부랑 신랑이랑 오붓하게 키 따고 들어 가야지, 로맨틱한 모멘트를 놓쳐 버렸다고.
식구들 주루룩 달고 들어가니 현경양은 바로 침대로 납싹 올라가서는, 다섯 살 먹은 것이,


아이구 방 좋네. 나도 빨리 남자 친구 사귀어서 이런데 와서 자야겠다~


해가지고, 저희가 다 깜짝 놀라서 너무 웃었잖아요.
둘째 언니가 화급하게

이모 오늘 결혼한 거야. 이제 이모부야. 남자친구랑 와서 자면 안돼. 남편이랑 오는거야 이런데는!!!

저는 속으로
연애할 때 이런 호텔 데려오는 수준의 남자라면, 그래 사귀려므나 이현경.
저기 어데 퀸즈 블러바드 후진 모텔 보다야 이게 훨씬 낫지. 그럼.


그러고 있자니 어데서 구린내가 진동을 해서 보니
유모차에 있던 현영군 기저귀에서 나는 거라...
그래서 우리 잘 침대 위에서 현영군 기저귀 갈고
둘째 언니가 방 쓰레기통에 자기 아들 똥기저귀 던져 놓고
식구들이 호텔 방 구경 잘 했다고 인사 남기고 돌아 가고,
남편은 우리 결혼 첫 날 밤에 밤새도록 애 똥 냄새 맡아야 하는 거냐고 삐져 있고,
그래서 제가 저녁에 우리 술 마시러 나갈 때 들고 나가서 길거리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고 달래주고,
나중에 이 얘길 노여사한테 하니, 굿럭이라고 복똥이라고, 너희들 앞으로 잘 살 징조라고.


넘의 신혼 첫 날 밤 보낼 호텔방에 싸 놓은 애 똥이 그냥 똥이지 복똥은 또 뭐래요.


결혼식은 저 때 부터 둘이 월급 쪼개서 돈 모아서 8개월 후에 하객들 초청해서 했고요,
저게 저희 공식 결혼 첫 날 밤이었어요.
남편 쪽이나 저희 집이나 결혼식 하려거든 우리 돈으로 해야지
결혼식 비용 지원 받을 형편이 아니었고 그래도 난 웨딩드레스는 꼭 입었어야 했기에
돈 모아서 하기로.
신혼 여행도 그 때 가기로.
몇 달 열심히 모아서 파티도 하고 여행도 가고 그러자고.
돈을 몇 달 만에 모아봐야 얼마를 모았겠어요. 저 같은 인간이.
서 너 달 하다 안되가지고 그냥 돈도 없이 식장 예약해 버렸어요.
하객들이 빈 손으로 오나, 부주금 나오잖아. 그거 받아서 내지 뭐. 하고.
설마 식장비 못내서 웨딩드레스 입은 채로 머리채야 잡히겠어?
어떻게 되겠지.


거짓말 같이 부주금이, 계약금 500불 빼고 나머지 식장비,
에누리 없이 단 돈 100불도 안 틀리고 딱 떨어지게 들어 왔어요.
정말 신기했어요.


나는 저 때 얼만큼 행복한 신부였나,
저 결혼 할 때만 해도 나는 이제는 가난하게는 살기 싫다고 결심한 대로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이 남자 앞으로 돈을 더 많이 더 더 더 많이 벌어다 주겠지? 아우 신나라~ 하면서.


남편은 나를 속물이 아닌 여자라고 굳게 믿었고 계속 그렇게 믿어 왔는데
나는 내 안의 허영과 허세,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남편 통해서 이뤄 보겠다는 도둑놈 심보,
이런 것들 겉으로는 꼭 꼭 감추고
굉장히 소탈하고 담백하며 인간미를 중시하는 척 하는 그런 위선의 세월을 살았는데..


7년 동안 나 그렇게 살게 해줬어서 고맙다고
고생만 하고 산 엄마한테 막내 딸은 좋은 남자한테 시집갔다고 남들한테 자랑할 수 있게 해줬어서 고마웠고
남들이 남편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때 마다 겸손을 가장한 잘난척 할 수 있게 해줬어서 고마웠고
내가 내 능력으로는 벌 수 없었던 돈 고스란히 가져다 주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 줬어서 고마웠고
너무 끔찍해서 아침마다 샤워 하면서 울고 다니던 직장, 그만 둘 수 있게 해줬어서 고마웠고



나는 당신한테 이런 것들 하나도 해준게 없는데..
그리고 앞으로도 해 줄 수가 없는데 정말 미안하다.
내가 진심으로 내 안의 허영과 허세를 다 내놓을 테니
이제는 당신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아. 음악 다시 해.
그래도 돈은 딱 고만큼은 벌어다 줘야 해. 응?


남편이 정말 음악 다시 해도 되겠냐고,
정말 자기 일 그만큼만 해도 되냐고.


이제 내가 일 하잖아.
여기 착실히 잘 다녀 볼께.
우리 옛날로 되돌아 가지 말자고.
나는 이제 당신 그렇게 밤낮없이 일만 하는거 못 보겠다니까.
나를 보고 웃어 줄 힘 남아 있고
내 손 붙잡고 같이 동네 한 바퀴 돌아줄 시간과 힘은 남아 있게 하는
그런 시간 만큼만 일 하라고.
그리고 음악 해. 그거 해야 당신이 행복하잖아.


저렇게 진지한 대화를 마치고 났더니
남편 핸드폰이 울리는데 그 말많은 드러머씨.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남편이 전화를 받았더니
그 드러머씨가 전화한 용건은, 거짓말처럼


우리 음악 다시 하자.
이번에 그 페스티벌 참가하자고.
밴드는 내가 아무리 해도 우리 셋이 최고야.


그래서, 10여 년 만에 옛날의 그 밴드 멤버와 다시 모여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한다고.


기타를 오래 치던 사람이니 기타가 여러 개 있지만
다 시골 집이나 친구 집에 놓고 지금 저희 사는 집에는 어쿠스틱 하나랑 전자 기타 두 개.
제가 좁아 터진 집에 구질 구질한 물건 많다고 궁시렁 댈 때도
절대 남편 기타나 앰프는 구박 안하고 함부로 굴리거나 치우거나 이러지 않거든요.
집에 가구 재배치 할 때도 저것들 공간 만큼은
어디다 두면 좋을지 제가 남편한테 먼저 물어보고
저것들 공간부터 남편이 원하는 곳에 확보해 놓고 다른 물건들 배치해요.
남편이 냉장고 비좁은데 맥주 넣을 데도 없이 웬 김치들이 이렇게
냉장고를 다 차지하고 있냐고 타박하지 않는 것처럼,
남편한테 기타는 나에게 김치같은 존재기 때문에 제가 최대한 예의를 갖춰 주거든요.

냉장고 비좁아도 다 쑤셔 넣으면 맥주 넣을 수 있고
집 비좁아도 기타랑 앰프 놓고도 다른 물건 또 구석에 쌓아 놓으면 그만이고.


집에 있는 전자 기타 중에 하나는 결혼하고 산 거예요.
처음 결혼 기념일에 남편은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보석인 진주 목걸이를 준비했다 제 목에 걸어 줬는데
저는 날짜 기억을 정말 못하는 인간이라, 처음 결혼기념일, 까묵었습니다...
첫 해 이후로는 선물 주고 받기 이런 거 하지 말자고
(제가 미리 챙길 주제가 못되서 저거 스트레스 받더라고요)
제가 제안한 것을 남편이 받아 들여서 더 이상은 아무 선물이 안 오고 가는데,
날짜 지켜서 뭐 하기를 재밌어 하는 남편은 당연히 저 날 선물을 준비했었고

남편 선물 미리 준비 못한 게 너무나 미안했던 이쁜아짐은,
그 당시 저희 구좌에 바로 쓸 수 있는 돈을 계산해 보니 천 오백불 정도 있더라고요.
주말에 제가 데이트 하자고 끌고 나가서 큰 기타 매장 갔어요. 가서는 딱 한 마디.


골라 봐.


그 날 매장 안에서 이것 저것 들고 쳐보던 남편의 모습이,
저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그 행복해 하던 표정.
내가 씨푸드 부페 가면 짓는 그런 표정.


그리고 거긴 음악 한다는 사람들이 오는 가게니까
남편이 잡고 좀 치고 있으면 삼삼 오오 모여서 좀 듣고도 가고
게중에는 잘 친다고 칭찬해 주고 가는 사람도 있고
이것도 쳐 봤다가 저것도 쳐 봤다가 하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모습,
너무나 해맑고 행복해 보이던 모습.


그 모습을 저 때 이후로 제가 제 머리에서 지우고 살았더랬죠.


앰프도 하나 골라 봐.


헉!!! 진짜요???


앰프도 없이 기타만 사면 뭐 해.
젓가락 없이 짜장면 먹으라는 것도 아니고.
사줄 때 사. 내년부턴 이런거 일체 없어. 나 돈 모아서 집 살 거거든.


저 때만 해도 신혼이니 저 한테도 평범한 새댁의 야망이란게 있었더랬죠.
알뜰하게 저축해서 집 한 채 사고야 말테다. 하는.
집 모시고 사느라 내 남은 인생 중에 30년을 정신적인 압박에 쪼달리며 살기 싫다.
저렇게 생각을 고쳐 먹기에는 많은 시간은 안 흘렀지만 저 때는 일단 그랬어요.


저 날 쓸 수 있었던 1500불 중에 1400불 쓰고.
무거운 엠프를 들고도 힘든줄 모르겠다는 표정의 남편과 택시 잡아타고 집에 왔어요.

셋째 성이,


이야...너 통 크다.
나 같으면 절대 그런거 남편 못 사줄 텐데.


그게...어차피 저 사람은 돈 나보다 더 벌잖아.
사람이 돈도 다 쓰려고 버는건데,
나는 수시로 사고 싶은 옷이니 신발이니 다 사들여야 하니까
한 번 자기 꺼 사라고 할 때 크게 써야 앞으로 내가 두고 두고 편하지.
이게 다 작전이라구~~ㅋㅋㅋ


사실 저 돈이 마냥 내 돈도 아니고 남편이랑 나랑 월급 합쳐 쓰고 남은 돈인데
부부 사이에 네 돈 내 돈 자체가 의미가 없기도 하고..
그래도 저렇게 생색은 있는대로 내고.


지금 남편은 친구들하고 연습 하자고 약속 잡느라 전화 통 붙들고 바쁘네요.
페스티벌도 시골이고 친구들도 둘 다 그 쪽에 사니
자기가 저를 혼자두고 집 비우게 됬다고 걱정하길래
염려 말고 다녀 오시라고 했네요.
슈가마마 열심히 돈 벌고 있을 동안 가서 열심히 연습 하라고.
직장이 당장 구해져도 그것도 문제니
맘 편하게 8월 까지는 기타 연습이나 하라고.
내가 딱 8월 까지만 나도 드러머씨 부인처럼 전적으로 밀어줄께.


정말요? 정말요? 하면서 환하게 웃는 남편.


이렇게 생기가 넘치는 남편의 표정이란.
저렇게 들뜬 목소리로, 그럼 다음 주말로 당장 할까? 하고 전화를 열심히 하는 남편.
그 때, 6년 전 기타 매장에서 봤던 그 표정이
그리고는 다시는 못 봤던 그 표정이
다시 저 사람 얼굴에 있다!


당신...행복한 거지?
내가 지금 당신 행복하게 해주고 있는거...맞지?


7년 전 나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달뜬 기분에 웨딩드레스 곱게 입고
화사한 미소로 조니 워커 병나발을 불던 정말 행복한 신부였는데...


7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얼마나 행복한 한 남자의 아내인 걸까.
이제는 행복 끝 고생 시작의 구도가 된 건가?
저 날나리가 그렇게 놀고도 시집은 또 잘 가네, 하며 나를 부러워 하는 사람도 없을 테고
저 아짐은 한 달에 저 돈 벌어서 어떻게 뉴욕에서 두 식구가 산다고
남편 먹여 살리느라 욕 본다, 참 불쌍타....하고 남들이 측은하게 보려나...?


남편이 오래 전에 접어 버린 날개 밑에서
다시 한 번 날아 보라고 불어주는 바람같은 아내 노릇을 한 건 했더니,
하,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고나~


8월 까지만이라고 못 박았으니
고거 지나면 채찍을 휘둘러서라도 뭐라도 해서 돈 벌어 오라고 내보낼 참이어요.
딱 고 때 까지만 좀 띄워 줄라고요.

그 다음 부터는, 내가 음악 다시 하라고 했지,
밥 굶어 가면서 음악만 하라고 했냐?
밥부터 먹고 살아야 음악도 할 거 아냐!!!

하고 바가지 박박 긁어 버릴 테여요.


제가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짧은 기간 동안 정말로 많은 것들이 좋아 졌어요.
이렇게 마음 편해 본 지가 얼마만인가 싶고
이렇게 명확하게 앞 일을 걱정 안하고 잘 될 거라고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 아닐까 싶고.


당신 웃는 모습 보는게 나의 제일 큰 행복이어요.


라고 항상 말하던 남편한테 세뇌가 됬나...
저 사람 생기있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참 행복하다...이 생각이 마음을 꽉 채우네요.


남편씨, 연습 열심히 해서 8월에 연주 잘 하시압~!
내가 마음 같아선 쫒아가서 함께 무대에 올라 옆에서 탬버린이라도 정열적으로 쳐주고 싶으나 
이 몸은 직장에 묶인 몸이니 시내에 남아 조용히 돈 긁어 모으고 있겠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