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집에만 있던 사람이 바깥 일 시작하니
정말 시간이 후딱~ 가네요.

처음 한 달은 긴장 상태에서 어찌 갔는지도 모르게 갔고
그 다음 부터는 일도 적응이 되고 사람들도 적응이 되고
몸도 외려 더 건강하게 잘 적응을 해주고 있는 것 같고.

그러면서 이 달에 어김없이 제 생일이 또 있었고.

선물같은 건, 이 나이에 친구들과도 안한지 오래,
가족들과도 안한지 오래인데
동생은 동생이라고
셋째 성은 혼자 저한테 아직도 꼬박 '선물' 이란 걸 챙겨 주네요.

제가 일 다시 시작해서 이쁜 옷 입고 다녀야 한다고 했더니
동네서 봐 두었다던 그 원피스 선물로 사줄테니 사 입으라고 해서 냉큼 사 입었더니,
아마존에서 또 소포가 왔어요.

뜯어 보니,

잇몸 청소하는...워러픽? 이라던가? 물로 잇몸 쏴아~~ 해주는 그 기계랑
책 한 권이 들어 있더라고요.

Kim Sunee 라는 사람이 저자고
제목은 'Trail of Crumbs'

제가 저 책을 읽고 싶다고 작년에 그랬더니,
생일 선물로 사주마 했는데, 하드 커버 밖에 없다고 페이퍼백 나오면 사주마 했었는데
일  년이 지나 잊지 않고 페이퍼백으로 저 책을 주문해 줬네요.

멀리 중부에 사는 지인이 추천해준 책이거던요.
이쁜아짐이 읽으면 좋아할 만한 책이라고 기회 되거든 한 번 읽어 보라고.

저자인 김순이 라는 사람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데,
세 살 때 한국의 시골, 한 저자 거리에서 엄마 손 잡고 나왔다가 버림받고
고아원으로, 그리고 미국의 미시시피로 입양이 된 사람이래요.

73년 생이라니 저와는 또래.

지금 아직 80페이지 정도 밖에 못 읽어서
총체적인 독후감은 없는데, 지금까지는 글이 좋더군요.

입양된 가정에서도 학대라고 할 것 까진 없었어도
그렇다고 사랑을 많이 주지도 않던 양부모 밑에서 크면서
요리에 조예가 깊었던 양할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 부엌에서 느꼈던 행복,
그렇게 요리에 관심이 시작되서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하게 된 계기로 아예 나중엔 프랑스로 학교를 옮겨서 공부를 마치고
유럽에서 살게 되면서 프랑스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론은 이 남자도 그녀의 궁극적 행복은 아니었다, 지금 이 시점에 그런 뉘앙스를 받고 있지만)

유럽에서 십여년 살다
다시 미국으로 와서 현재 직업은 푸드 칼럼니스트 인가 보더라고요.
뉴욕 타임즈에도 글을 쓰고
그렇다고 하는군요.

평소에 요리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전문직 중에서도 예술가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제가 가만 보니까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글도 잘 쓰고
요리 잘하는 사람도 글을 잘 쓰고
예술 쪽 한 방면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은 두루 잘 하는 것 같다, 이런 인상을 받았거든요?

저처럼 집에서, 간만 대충 맞으면 된다, 하고 해먹는 사람 말고
직업으로써 하는 요리를 사람들은
정말 예술가적인 기질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푸드 칼럼니스트라는 직업도
음식이 맛이 있네 없네, 이런 소리 하는게 다가 아니라
자신도 요리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요리에 대한 재능 더하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하는 직업이다, 라고 제가 생각해 왔었는데
이 사람도 역시 요리 자체를 수준급으로 하는 사람이고
시인의 감성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더라고요.

짧은 챕터마다 끝에는
비록 제가 따라할 엄두는 안나지만 레서피도 한 두개씩 들어있고.
책 자체는 많이 흥미롭고 재미있는데
지금 책 하나 붙잡고 끝장을 볼 환경이 안되는 지라
하루 하루 찔끔 찔끔 조금씩 밖에 못 읽고 있어요.

책 표지에 제목 밑으로
Hunger, Love,
and the
Search for Home

이렇게 써 있는데,
그 어렵던 시절 한국의 한 시장 바닥에서 세 살 나이에 친 엄마로 부터 버림 받고
자신의 정확한 생년월일을 모르고 평생을 산다는 것
입양이 되어 배는 곯지 않고 자랐지만 진정한 사랑이 없어
home 이라는 것이 없던 성장기,
성인이 되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지만
왜 이 남자와의 사랑도 궁극적 행복이 아니었는지
이 남자가 당신에게 home이 되었으면 한다고 하며
함께 들어가 산 집에서도 그 곳이 진정한 home이 아니었는지는
아직 안 나와서 더 읽어 봐야 하고요.


남편은 골치 아픈 일이 있으면 텔레비젼을 보는게 최고라고 하던데
저는 책을 읽는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잡생각 없애는 방법으로요.

사람 사는게 항상 지지고 볶는 것의 연속이라고
이제는 그렇다고 받아 들이자고
마음 가짐을 그렇게 하고는 있는데

이거 하나 해결 했다 싶으면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터지고.
정말 그렇네요.

그래서 이번 달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이 지나가긴 했는데
저는 또 비교적
좌절의 시간을 빨리 끝내는 편이라
지금은 저에게 닥친 일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대충 구체적인 계획 다 세워 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이렇게 마음 먹었습니다.


천둥번개가 치는 이 날씨에
온전히 비바람 피할 수 있는
집 안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만으로도
감사할 것이 많은 오늘이었습니다.

세상엔
친 엄마 손에 시장 바닥에 버림을 받고도
자기 정확한 생년월일을 모르고도 살아도
귀한 존재만큼 응당 받아야 할 사랑을 못 받고 자랐어도
자기 재능을 키우고
그 재능을 세상과 나누며
자신의 귀한 존재를 누리고 사는 삶을
현재로 만들고 사는 씩씩한 사람도 있는데.

나야 지금 이 상황과 환경은 양반이로구나~
하면서 용기를 얻습니다.

어쨌든 너도
씩씩하게 나가 일하고
일 하면서 돈 벌고
그 돈으로 생활하고
너도 이만하면 잘 하고 있는거야,
라고 제 자신한테 칭찬도 한 번 해주고.


지금 이 순간 나를 속상하게 하는 일들은
내 인생에
정말 하찮은 일들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역시,

칼럼쓰면서
다운됬던 기분이 정리가 되는군요.
칼럼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