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 시작하고,
아효 됐다, 이제 한시름 놨다, 내가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좋아라~~ 하고 있었더니만..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고,
이 형제 많은 집은 들여다 보면 꼭 하나씩 주기적으로 사고 쳐 주는 사람이 있고
뒷감당 하는 사람 따로 있다고,
저희 집 같은 경우는 5남매 중에
위로 셋이 항상 비슷 비슷한 수준으로 번갈아 가며 사고를 치고 사는데.

저는 비교적 제 앞가림만 하고 살면 됬었어요.

'희생' 같은 개념과는 거리가 먼 성품 탓도 있고
저는 가족 일이라도 내가 형제를 돌보는 것 보다
내 자신의 편안함을 우선 순위로 치고 사는 사람이라
저는 어제나 오늘이나
항상 내가 먼저 행복하고 볼 일이고 나 갖고 싶은 것 부터 갖고
여력으로 형제들  밥 한끼를 사도 샀지
나 하고픈 거 참아 가면서 형제들 다독여 본 적은 없습니다.

셋째 성이
한결같이 제 뒤를 봐주는 것처럼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처리 전담반으로 살았지
저는 집안에 하나도 사실 뭔가를 제대로 한 건 없는데.

노여사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

셋째 성이 맏이 였으면 우리 집이 지금 달라도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고
막내인 이쁜아짐이 딸이 아니라 아들이었으면 집안 벌써 일으켜 놨을 거라고.
니가 아들이었어야 하는데 아들이었어야 하는데..
이러시는데.

제가 듣다 듣다 몇 년 전에는 노여사한테 그랬잖아요.

아니 엄마는...내가 딸이래서 아들 만큼 못한게 뭐가 있수?
내가 웬만한 남자들보다 술도 잘 마시고.
남자들 하는 것 중에 서서 오줌 누는 것만 빼고 못하는게 없는데..
오늘부터 서서 오줌누는 훈련 들어갈까요?


한 때는
왜 우리집 손위 형제들은 야무지게 살지를 못할까,
왜 저럴까.

부터 해서 노여사는 왜 나를 이렇게 정신적으로 괴롭힐까.

이런 얘기들을 셋째 성과 한국의 사촌언니랑 하면서
제가 언젠가 사촌 언니한테 제안을 했어요.

언니, 우리 다음(Daum)에 가족 카페 하나 만들까?
인터넷으로 안부 주고 받으면 좋잖아.


하고 카페 이름은

'가족은 해체되어야 한다'로 제안 했더니
사촌 언니가 그럴싸한 제목이라고 아주 좋아하더군요.


나는 있잖아,
이렇게 성인이 되서 각자 가정을 꾸려서 사는데도
너무 치대고 사는 한국식 가정 문화가 싫다니깐.
이렇게 얽히고 섥혀서
같이 망하자는 것 같아.
너무 피곤하고 너무 힘들어..
가족같은 거 없이 그냥 나 혼자 살았으면 좋겠어.


하고 카페 제목을 저리 정한 배경을 설명했더니
그러면서 가족 카페는 왜 만드냐고 ㅋㅋㅋ 웃더라고요.


셋째 성은,
직장 다니며 죽어라 안쓰고 모든 돈,
뭉텅 뭉텅 목돈으로 사고 처리 몇 번 하더니 언젠가 그랬어요.


나 이제 진짜 지겹다.
식구고 뭐고 인연 다 끊고 저 쪽 서부 끝으로 가서 혼자 살고 싶다.


저게 몇 년 전인데...
지난 몇 년 간 또 집안이 별다른 큰 사고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가 싶더니만
이번엔
정신 머리 없이 그저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일년 365일을, 체계는 없이 부산하게만 사는 둘째 언니가 사고를 쳤는데
이번 사고의 피해는
고스란히 이쁜아짐이 지게 된 상황이라


얼마 전에 한 번 대대적인 정신의 붕괴가 있었더랬죠.


울고 불면서
나더러 어떡하라고 이런 무책임한 짓을 하면 어떡하냐...
나더러 이걸 어떻게 하라고.

며칠 저러다
상황 수습에 올인해야 겠다 하고
정신 차리고 추스리는 모드 들어가서는
셋째 성한테,

언니는 여태 이런 일을 몇 번씩 어떻게 했어.

했더니,

저 구제불능인 사람들 때문에 너가 주저 앉으면 안되지..
그래도 너는 내가 있고
나한테도 너가 있으니까
우리 둘이라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생각해 보니까.
내가 이번 한 번은 뒷감당 해줘야 하긴 할 것 같다.
지난 세월,
나를 키워준 것이 노여사의 고생만이 다가 아니었고
나를 이 세상에 붙잡아 준 것이 둘째 언니였고,

엄마 미국 오고 우리끼리 자취를 할 때도
직장 다니면서 새벽에 일어나 싸준 도시락 가지고
내가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을 다니고 내가 키가 이렇게 컸는데..
자기는 남자 친구 만날 시간도 없이
새벽에 일어나 밥해 주고 직장 가고 퇴근 해서는 저녁 밥 해주고
다 큰 동생들 속옷까지 빨아 주면서 살 때
그 때 둘째 언니가 고작해야 스물 서 너살 이였는데...

겨울에 찬물로 빨래하고 고무장갑 벗으면 그 시뻘겋던 손을 보고도
저녁엔 카레를 해달라, 콩나물국을 끓여달라는 소리나 하고
내 친구 누구는 어제 성신여대 앞 빌리지에서 스웨터 하나 샀는데
나도 그거 입고 싶은데 나만 거지 같이 하고 다닌다고
떼 쓰고 울었더니


사랑하는 막내야, 언니가 저녁 때 떡볶이 해 줄께.
아니면 길음 시장에서 순대국 사다 먹을까?
막내 먹고 싶은 걸로 먹자.
언니 퇴근하고 일찍 들어올께.


메모 남겨 놓고

저녁 때 손에 만 이천원 쥐어 주고, 내일 가서 그 옷 사 입어.

그 때 한참 멋부릴 스물 몇 살 아가씨가 자기 옷 한 벌도 못 사입고
월급은 고스란히 동생들하고 사는 생활비로 들어가고
등록금 낼 때 돌아오면

막내는 등록금 제 때 못내서 학교 가서 망신 당하지 말라고
고민 고민 하다 어떻게라도 돈 먼저 만들어서 손에 쥐어 주고.

내가 스물 몇 살 때는...미국 와서
친구들하고 술이나 마시러 다니고 남자 친구나 만나러 다니고
집에 늦게 들어온다고 엄마한테 야단이나 맞고 살았는데
새벽에 일어나 나랑 셋째 성 밥 해 주고 빨래 해주고
집세 걱정, 등록금 걱정, 월세 올린다니 집주인한테 사정,
그리고는 해결 안되서 산동네로 이사 결정,
언니는 이런 것들을 그 나이에 하고 살았는데...


결혼해서 편하게 사는 모습 보고 싶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번 일도 별거 아니다.
언니의 결혼 생활은 내 힘으로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니
그 부분 일단 패쓰하고
이번 일의 뒷감당은, 내 힘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지 뭐 어쩌겠어.


셋째 성이,
너네 신랑도 아니?
하고 걱정스럽게 묻길래

알지. 다 알지. 내가 뭐 하나 저 사람한테 의논 안하고 내 마음대로 하는게 없는데.

그래서 뭐래니 니네 신랑은?

돈 벌면 해결 되는거니까 .
자기가 이러고 있어서 힘이 못 되줘서 미안하다고
자기도 최선을 다 할 테니까 기운 내라고 하지 뭐.


아휴..니네는 무슨 착한 척 퍼레이드 하냐?


이 상황에서
착한 척 이라도 안하면,
그럼 가서 둘째 언니 머리 잡고 싸우리?
셋째 성이, 자기는 너무 화가 난다고 어쩌고 저쩌고 무책임 어쩌고 저쩌고.
아주 정신 못 차리는 인간들은 쓴 맛을 봐야 된다고 자기가 난리를 치고
둘째 언니 손 봐준다고 하더니만


어제 자기 퇴근하고 둘째 언니 만나서
올드네이비 30% 세일 시작했다고 거기 가서
백 투 스쿨 기념으로 애들 옷 한 보따리 사주고
맛 있는거 먹고 들어가라고 했는데 시간이 안되서 저녁은 못 먹었다고.


오늘은 저한테 아침부터 전화해서
너를 기쁘게 하는 건 오로지 갈비 밖에 없는 듯 하니
갈비 먹고 싶으면 사준다고 일 안 하는 날 둘이 먹으러 가자고 하더군요.


덴장,
가족이 뭔지
이 눔의 식구들 답이 안 나옵니다.


이 가족의 일원으로 어느 덧 40년 가까이나 살았네..


둘째 언니씨,
내가 진짜 이 번 한 번만 봐준다.
다음부터는 국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