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대대적인 가족 여행 하나 예약했어요!

 

흐흐흐...

 

물론 비용의 원천은 셋째 성.

 

이야기의 시작은,

작년 파리로의 자매 여행 이후로, 우리 일년에 한 번씩은 이렇게 같이 놀러 다니자, 이렇게 되서

저는 제 상황도 이제는 더 이상 셋째 성이 저를 부르던 '유한 마담'의 상황이 아니고 해서

뭘 해외 여행 씩이나.

저기 연휴 언제 잡아서 관광 버스 타고 가는 2박 3일 단풍 귀경 뭐 이런거 다녀 오자고 얘기는 시작 했다가

 

올해 여름은 일 하느라고 바빠서 수영복 한 번을 못 입어 봤네,

동네 공짜 수영장도 쉬는 날은 기운이 없어서 못 갔네,

어쩌고 하다가

바닷가 얘기가 나오고,

둘째 언니 아동들 물놀이 좋아하는 얘기 하다가,

둘째 언니는 가족이랑 그런 좋은데 한 번을 못 가네 안됬다 이런 얘기 하다가,

세월 좋을 때 신랑이랑 좋은데 다 찾아 다니면서 엄마는 한 번도 같이 여행을 못했네,

난 진짜 못되 쳐먹은 딸이네,

이렇게 얘기가 자꾸 진전이 되서,

 

결국은 3대가 함께 하는 바닷가로의 해외 여행으로 '낙찰'이 되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떻게 가냐고 제가 걱정을 하고

내년 쯤에나 내 상황 풀리면 나도 일조를 할테니 가족 여행은 그 때나 생각해 보자고 해도

셋째 성이

비용 걱정은 말고

놀러 다녀본 네가 좋은 딜이나 한 번 찾아 봐라,

단언을 해서

 

제가 울며 겨자 먹기로...

푸하하 이건 아니고,

어쨌든 며칠 인터넷 서치를 열심히 하고, 셋째 성한테 실시간 보고 하면서

결국 '예약' 했습니다.

 

두어 달 후에 추수감사절 쯤으로 해서

이쁜아짐, 노여사, 셋째 성, 둘째 언니, 그리고 그녀의 아동들 둘.

이렇게 어른 넷 애들 둘

여섯 명이 바닷가로 놀러 갑니다.

 

저 일행이 일주일 비행기 타고 가서 놀고 먹고 마시고 하는 비용으로는 괜찮은 딜이라고는 생각되지만

전적으로 일인이 부담하기엔 정말 큰 돈이라

제가 예약하면서도 마음이 사실 많이 찜찜해 했더니

셋째 성이

가서 재밌게 놀다 오면 그게 자기 돈 값 해주는 거라고 잘 놀다 오면 되는 거라고

돈 신경 쓰지 말라고.

 

작년에 저랑 한국 다녀 오고

출근 안하는 생활이 이런 거구나...해서 너무 좋았다 하고

저랑 제주도도 갔다 오고

그리고는 뉴욕 와서 좀 있다 바로

자매들끼리 파리 여행도 했고.

 

셋째 성이, 사람들이 '휴가'를 왜 가는지 그걸 마침내 알았다고

자기도 이제는 일년에 한 번씩은 꼭 어디 다니겠다고 다짐 했었거든요.

회사 안에서 얼마 전에 부고가 이 메일로 돌았는데

 

어떤 아저씨가

52세의 젊은 나이로 심장 마비사.

부고를 읽어 보니 남겨진 가족으로 '부라더' 한 명 '조카' 해서 한 명 하나 있고.

싱글인건 알고 있었지만,

그걸 보니까 인생 무상, 그런거 느꼈다고.

 

자기도 이렇게 일만 하다 죽으면

부고에 이름 올릴 사람이, 시스터나 조카일텐데

사는 동안 가족들이랑 여행이라도 좀 다녀야 하지 않겠냐고.

돈 하나도 안 아깝다고 그러네요.

 

자기라도 이렇게 벌어서 비용이라도 댈 수 있으니 됬다고.

돈 걱정 말라고.

 

그래서,,,

우리는 이 찌질한 대가족 구성원들이 죄다 셋째 성한테 붙어서

올 추수감사절에 해외 여행이라는 호사를 누리게 됬습니다.

 

둘째 언니랑 셋째 성은 수영복도 없어서 발등에 불 떨어졌고요,

저더러, 넌 걱정 없어서 좋겠다, 하길래

저도 걱정을 좀 했죠.

 

비키기가 보니깐....일곱개가 있는데...

그 중에 입을 만한 건 다섯 개 밖에 없네...

두 개는 너무 후져져 가지고...

언니들은 빤쓰랑 난닝구 입고 따로 놀아.

난 쪽 팔리니깐 애들하고 놀래.

 

셋째 성이,

예약 전까지는 그래도 비위 맞추면서 기더니만

예약 끝나자 마자  다시 재수 없게 논다고 둘째 언니한테 제 흉을 봤다고 합니다.

 

어제는 제가 일하는 날이었는데

셋째 성이 야근하고 둘째 언니 아들 내미 운동화 한 켤레 사줘야 한다고 쇼핑하러 나온다고

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일하는 데로 왔더라고요.

 

저녁 안 먹었으면 저녁도 먹고 가자고 해서

근처에 조금 유명한 베트남 식당이 있거든요. 거기 가서 저녁 먹고 들어 왔어요.

폭찹이랑 월남 국수랑 만두랑 해서 실컷 먹고,

음식 시켜 놓고는

놀러 갈 때 입으려고 샀다고

원피스 하나를 꺼내서 보여 주는데

 

우와 이쁘다. 진짜 이쁘다.

 

했더니,

 

사실은 제 꺼래요.

흐흐흐.

 

올드 네이비에서 세일하는 거라고.

자기나 둘째 언니는 너무 길어서 못 입겠다고.

원래 질질 끌면서 입는 스타일이라고 그래도

끌려도 정도지, 너나 입어라, 그러네요.

 

그래서 세일해서 최종 가격 얼마냐고 물어 봐도 값은 물어 보지 말라고 하고

스몰이 맞으려나 미디움이 맞으려나 잘 모르겠어서 일단 두 개 다 샀으니

집에 가서 입어 보고 잘 맞는걸로 입고 하나는 도로 가져 오라고 하대요. 리턴하게.

 

집에 와서 입어 보니깐....

으하하 너무 마음에 드는 것이,

왜 뉴욕은 벌써 여름이 다 가버려서 지금 입지도 못하겠고, 아우 몸이 이렇게 근질 거릴 수가!!!

 

셋째 성이 얼굴에 걱정이 한 가득으로,

날 추운데 주책떨지 말고 놀러가서 입어라, 놀러가서 입으라고 사준 거니깐.

 

우에다 가디건 걸치면 집 앞에 장보러 갈 때 잠깐 입어도 될 거 같은데...

아우 진짜 몸 근질거려 죽갔네.

여행은 두 달이나 남았는데...

 

인터넷으로 예약한 날 아침에..

저는 여행 가방에 짐 다 싸 놨거든요.

비키니 한 차례씩 입어보고 바닷가에서 입을 옷들, 데이 원, 데이 투, 데이 뜨리 해서

코디 싹 마쳐서 이미 여행 가방에.

셋째 성이 웃겨서 죽을라 함.

 

저희 친정 식구는, 모였다 하면 싸우는게 일이라

여행가서 무사히 일주일 잘 지내려나, 아니면 돈 쓰고 시간쓰고

정말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저렇게 식구들이 가족 여행이라 이름 붙일 만한 여행 처음 가는 건데

지겹게 싸우다 오려나

마음이 불안불안은 해요.

 

낮 동안 놀면서 싸우더라도

밤에는 화해하고 자야 하니깐.

 

저게 저의 인생 철학이기도 해요.

잠자리는 편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남편하고 싸워도 잠자리에 들 때는 한 이불 덮고 손 잡고 얼굴 맞대고 자자...

오늘 하루, 그래도 소중한 내 인생의 가치있는 하루 였다고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은 속 상했어도 잠은 좋은 마음으로 자자...

 

저녁 나절,

가족 화합용으로 화투 한 벌 가져 갈까 하는데...

호텔 방 안에서 고스돕 치는 건

해외에서 어글리 코리안 짓 하는거 아니죠?

 

제가 항상 주장하는데

네 명이 고스돕에는 가장 환상적인 머릿수라고.

셋은 미니멈이고, 광 파는 사람이 없어서 조금 심심하고요,

다섯은 좀 많아요. 정신 없고. 누구 누구가 죽을 건지 결정하는 시간도 조금 오래 걸려서.

딱 넷이

패 돌리고 나서 자기 패 점검하고 광 팔건지 죽을 건지 결정하고,

사사삭 한 판 돌리고.

요게 딱 좋은거 같음.

 

올해는, 그저 내가 일 잡았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이렇게 조용히 올해는 가면 되겠구나...했는데

생각지도 않던 가족 여행을 가게 됬으니,

어쨌든 해외 여행 한 번은 가는 팔자, 내 팔자가 상팔자로구나.

 

언니들과 엄마와 조카들과

뉴욕의 겨울에 바닷가 여행이라....

 

죽어도 잊지 못할 만큼의

행복한 여행으로 만들리라...

아프고 피곤하고 지쳤던 마음들, 서로가 다독여 주고

서로가 서로가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을 보내야지.

그러려면 내가 기분이 좋아야 하고 내가 기분이 좋으려면

밤마다 고스돕은 내가 따야 한다!!!

동네마다 다른 룰은 내가 불리해 질 때 마다 그 때 그 때 우기면 된다!!!

 

책꽃이에 놓여 있는 사연 있는

카드들과 화투짝들을 애정어린 손길로 다 꺼내서 하나 하나 만져 보고

그래도 제일 옛날에 구입한 화투로 가져 가기로 결심.

이런 저런 축하니 뭐니 쌍피로 쳐주는 서프라이즈 카드가 몇 개 들어 있는

최신 화투도 한 벌 있긴 하지만,

화투는 뭐니 뭐니 해도 송월 브랜드가 최고인 것 같아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 집엔 책꽃이 상단을 카드와 화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와 10여 년 넘은 세월을 함께 한

나의 추억어린 송월 화투로

오늘 남은 하루 내 일진이 어떨런지 재수나 한 번 떼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