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를 담가 먹기 시작한 것은 벌써 어언 7,8년 전부터 였던 것 같은데

김치가 참…담가도 담가도 어렵네요.

7,8년 전이면 제가 밥을 그렇게 열심히 해먹지도 않던 미혼 직장인 시절인데

아이러니하게 ‘집 음식’으로 제가 초짜 시절부터 겁없이 도전한게 저 김치예요.

이유인즉,

나는 식생활 패턴이 김치가 떨어지면 안되는 사람인데,

김치 떨어지지 않게 한국 마켓에서 사 나르는게 직장인 신분으로 어려웠어요.

퇴근 길에 일부러 들리기도 피곤하고

주말에 일부러 지하철 갈아 타면서 가기는 더 피곤하고.

 

다행히 동네 채소 가게에서 한국 배추와 일본 무를 팔아서

한국 마켓보다 두 배 이상의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사다가 담가 먹기 시작했더랬어요.

 

제일 먼저 깍두기가 제일 쉽다길래 깍두기 담가 먹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 배추 김치 (맛김치 버전),

그 다음에 가끔 가다 명동 칼국수식 배추 끝에 꼬다리 떼고 무 큼직하게 썰어서 같이.

그 다음 열무김치.

 

총각김치는 아직 시도를 못 해봤고 (올 가을에 그렇게 벼르고 별렀건만)

파김치는 엄청 쉽다길래 딱 한 번 야심차게 시도했다 엄청나게 짜게 됬고

(아무리 쉬워도 간 못 맞추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고)

포기김치는, 할 때 마다 절이기에서 실패.

아무리 레서피들을 검색해서 읽고 또 읽고 그대로 한다고 해도 감이 안 오고.

두어 번 다 실패를 하고.

일년 반쯤 전에 또 한 번 용기를 내서 했다가, 레서피를 옆에 놓고 하면서도

실수를 해가지고 엄청나게 짜게…무려 네 포기나 용을 쓰면서 했다가

처참한 실패로 끝나는 바람에, 나는 포기김치는 안된다…하고

다시 맛김치로 회귀해서 버티고 있던 차,

 

작년 가을에 배추 한 박스를 사서, 둘째 언니, 그리고 셋째 성네 와 계시던 이모,

그리고 저. 세 집이 나눴어요.

일단 이모가 소금물에 배추 담그시는 걸 보고 집에 와서

저도 바로 비슷한 양의 소금에 소금물 만들어서 담고,

그 다음 날 아침, 이모가 켜켜이 소금 좀 뿌리라고 해서 뿌리고,

그 다음에 헹궈서 물 뺀 다음에 또 전화로 ‘지금 버무릴까요 이모?’ 해가지고

전화로 뭐 뭐 넣는지 지시 받아서 그대로 하고.

배추를 보니 제대로 절여지긴 한 것 같아서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 다음 단계에선 역시나 간 맞추기가 관건이었는데,

이모가 배추를 일단 먹어보고 짠기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한 다음에

적당량의 간을 하라, 는 지시를 해주셔서

정말 등줄기에 식은 땀이 날 정도로 정신 집중해서 양념을 만들었어요.

 

결과는 대성공! 이었고요.

너무 흐뭇해서 익은 다음에 한 포기 담아서,

둘째 언니도 애들 데리고 오고 해서 셋째 성네서 이모 한국 가시기 전에 저녁 먹을 때

제가 들고 갔거던요.

둘째 언니는 연신 그 김치에 밥만 싸서도 먹고,

이모도 ‘아니 웬 고추가루를 이렇게…’ 하시면서 한 입 드시고 나셔서는

 

“아주 곧잘 했네. 내가 한 것 보다 낫네.”

 

하셨어요.

 

이래서 이쁜아짐의 포기 김치 도전기는, 7전 8기의 정신으로 드디어 성공을 했고

그 기쁨에 취해 어찌나 김치를 많이 먹어 댔던지…

김치김밥, 김치볶음밥, 생선 자반에 김치, 라면에 김치, 김치 비빔국수…등등

이제 저의 과제는, 또 한 번 저 맛을 낼 수가 있느냐…이것이 문제인데

별로 자신이 없어서 지난 번에는 또 그냥 맛김치로 두 포기를 했고

오늘 두 포기, 다시 포기김치 했어요.

 

예전에 검색하면서 보니, 무채를 썰어서 양념하는 것은 전라도식이고

무채없이 찹쌀풀에 양념을 해서 버무리는 것은 서울식이라고 하던데,

지난 번에 배추 세 포기에 무 한 개 채썰어 버무렸고

이번엔 무 없이 풀만 쒀서 고추가루 불리고 양념했어요.

 

그러다…김치를 위한 찹쌀풀을 쑤는데,

셋째 성이 고추장 담가 달라고 레서피까지 인터넷에서 프린트 해와서 간청하길래

(인터넷에서 또 뭘 봤는지 이제 절대 시판 고추장은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면서),

알았어 내가 그럼 시도해 보지, 하는 약속을 지난 주에 했더랬는데,

그래 오늘 해치우자. 해가지고 찹쌀풀 와장창.

김치에 넣을거 냄비에 조금 남기고

스탠 볼에 풀 쑨거 주욱 따라서, 메주가루 없이 초간단 버전으로 해봤어요.

메주가루를 넣으면 아무래도 깊은 맛이 난다고 하는데

없이 담근 레서피들도 많고, 술이 들어가는 것도 있고 안 들어가는 것도 있길래,

처음이니 그냥 있는 것들만 가지고 한 번 해보자,

한 번 해서 먹을만 하면 다음번에 메주가루도 술도 넣고 럭셔리 버전으로 또 하자,

해가지고

찹쌀풀, 고추가루, 조청, 소금.

딱 저렇게만 넣고 대충 모양새는 고추장스럽게 담긴 했어요.

 

찹쌀풀 쑤고 난뒤에는 나머지 재료들 넣고 그냥 계속 휘저으면 끝이라

시간은 후딱! 이었는데, 팔이 아파요.

찹쌀풀 쑤는것도 한 30분 계속 불 앞에 서서 저어 대서 팔이 무진장 아팠는데…

다 하고 나니 팔이 정말 떨어져 나갈 것 같네요.

 

그러고 나니 김치를 또 버무려야 하는데…

내친 김에 다 해버리는게 내 속이 편할 것 같아서

남편 채소가게로 심부름 보내 가지고요, 생강이랑 파 사오라고.

남편 얼굴을 아는 주말 캐셔 아주머니가, 무엇 때문에 이걸 사가냐고 물어 보시더래요.

그래서 부인이 김치 담그는 중이라고 하니까

아줌마가 ‘복 받은 줄 아쇼’ 그러셨다나.

유 아 럭키 베리 럭키, 계속 그러셔서 남편이 네 네 하고 공손히 대답하고

자기가 헤이지는 인사말까지 완벽하게 던지고 나왔대요.

돈 내고 거스름돈 받고, 물건든 봉지 받으면서 고개 숙이면서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나왔다고…

 

저 아저씨가 정말…

나랑 산지가 몇 년인데 어쩌자고 망신살 뻗치게 안하느니만 못한 한국말을

저러고 하고 나왔는지..아휴.

 

얼마 전에 친구한테, 우리 동네 배추값 너무 비싸. 두 포기 사니까 10불이 넘었어, 했다가

그 돈 주고 힘들게 뭐하러 김치를 담가 먹냐고 타박 받았는데

친구는 몰라요.

제가 정신 수양 차원에서 김치를 담그는 줄.

 

어제 저녁, 공들여 소금물을 만들고 배추를 잘라 담그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켜켜이 소금 뿌리고,

온 정신을 집중해서 양념을 만들고,

맛있어야 하는데 맛있어야 하는데 하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한 포기 한 포기 버무리고,

어디서 줏어들은 바대로 잘 싸서 밑으로 향하게 담아야 양념이 쓸리지 않는다길래

그 말대로 차곡차곡 엎어서 통에 담고 뚜껑닫고

김치통 쳐다보면서

‘아…잘되야 할텐데…’

 

이렇게 정성 들여 하는 일이 제 인생에 몇 가지 안되거든요.

오늘은 두 개나 했어요.

고추장 담기, 김치 담그기.

 

고추장은 처음 해 본 거라, 맛이 없게 되도 크게 실망은 하지 말자,

미리 자신한테 타이르는 중인데..

검색하며 보니 냉장고에 넣어서 저온 숙성 시켜서 한달 후 쯤이면 먹어도 된다고 해요.

앞으로 한달은 냉장고 문 열 때 마다 설레임의 시간이 될 것 같아요.

김치는 3일이면 판가름 날테고.

 

모든 정성을 쏟는 것이 다 보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사가 그렇지만은 않으니…

고추장에 김치에 나의 남편에 나의 가족들..

내가 쏟는 만큼의 정성 만큼 보답이 오지 않을지라도 나는 내일도 모레도

계속해서 정성을 쏟으리라.

백발백중 포기김치가 맛있게 되는 그 날까지,

시판 고추장 맛 저리가라 예요 라고 남한테 집 고추장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는 그 날까지

나는 정성을 쏟으리라…

 

일단은 남편한테

안녕히 계세요, 를 가르치는 일에 정성을 쏟으리라…

 

잘 모르면 아예 하덜 말던가!!!

부인 망신 시키고 있어.

그 아줌니가 얼마나 속으로 나를 흉 봤을 것이야.

여태 남편 인사말 하나도 제대로 못 가르쳤다고.

그러나,,,

나는 오늘 결심한 대로, 당신이 나를 실망 시켜도 나는 당신한테 정성을 쏟으리라…

우리…이혼하지 말고 잘 살아야 하잖아?

나 정말 힘들어 지려고 하는데...이제는 정말 앞일이 불안하게 느껴지는데...

자꾸 나로 하여금 정신 수양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지 말아줘 남편. 부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