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잘 받고 이모네로 퇴원,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음식 솜씨 좋으신 이모가 정성스레 차려주시는 밥 낼름 낼름 받아 먹고

설거지는 매번 셋째 성이 하고,

저는 그저 첫째도 몸조리, 둘째도 몸조리, 셋째는 홈쇼핑

이렇게 몸조리와 홈쇼핑에 집중해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 수술 전날 신경안정제인지 수면제인지

수술 걱정으로 잠 못 잘까봐 병원에서 그런거 준다던데

제가 간 병원은 그런거 안주대요.

그래도 잠 쿨쿨 잘 자고 있는데 아침 8시, 첫 수술이라 새벽 다섯 시 반에 깨우더라고요.

관장 한 번 더 한다고.

수술복 갈아입고 있으라길래 시키는 대로 했더니 와서 주사 바늘, 이따만한거 푹 찔러 넣고

간호사가 그거 찔러넣기 전에 수술용 바늘이라 많이 아플거라고 했는데

제가 찍소리를 안하니깐 울상을 하고 지켜보던 셋째 성이

'안 아파?'

'이런건 장난이라니깐'

전 날 항생제 주사 알러지 반응 본다고, 그건 포를 뜨듯이 바로 피부 밑에다 살살 밀어 넣던데

그 주사도 간호사가 많이 아프다고 했었거든요.

제가 찍소리도 안하니깐,

'어머나...잘 참으시네요. 막 비명 지르는 분들도 있는데...'

간호사가 나가고 나서 셋째 성이 걱정스럽게 쳐다보면서

'안 아팠어?'

'이런거야 장난이지 뭐'

수술 끝나고 병실로 옮겨진 후에 기운이 남아서 아직 또랑또랑 하지가 못해

침대 위에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셋째 성, 이모, 사촌 언니가

다들, 딱해서 어쩌나...하는 표정.

이모가 걱정 한 가득한 목소리로 '괜찮니....?' 하시는데

제가 여유있게 웃으면서 대답했네요.

'이건 장난이예요.

배 아팠던 거에 비하면요'

나는 배가 많이 아팠었고 안 아프려고 수술을 했고 그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합니다.

수술한 날 오후 회진 때 선생님이 확신에 가득찬 힘있는 목소리로 그러시더라고요.

'아주 깨에끗하게 자알 되었'다고.

그 말을 저는 믿거든요.

아 내 수술 잘 됬구나. 아주 깨끗하게 잘됬구나...안심.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릴거라던 수술이

세 시간 걸리는 바람에 식구들이 좀 초조해.....할 뻔 했는데,

회진 때는 환자랑 인사말하는 시간도 아까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선생님이,

배를 열면 수술이 훨씬 쉬웠을텐데

수술 시간 저 만큼 더 걸리는 와중에도 끝까지 칼로 제 배를 열지 않고 복강경으로 해주셨더군요.

수술 직전에 살짝 젊은 여의사 땜에 빈정 상했었고요.

수술 전날이나 수술 직전이나 입원 기간 내내 제가 우울한 얼굴 안 했거든요.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저는 이미 혼자 우울할 거 흠뻑 우울해 하다가, 그걸 또 극복을 해서리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하던 시점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있던 상태였잖아요.

그래서

'안타깝게도 방법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라는 말을 의사한테 들었을 때도 바로, 수술 날짜 잡아주세요, 할만큼 의연했던 건데.

저게 좀 특이했나 봐요.

수술 전 날,

무슨 검사다 바늘을 찌른다 관장이다 초음파 또 찍읍시다, 어쩌고 저쩌고 수도 없이

간호사들이 병실로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중에 우울증 여부를 물으러 온 간호사도 있었어요.

울고 싶은지, 수녀님을 불러 드릴지,

아주 조심스럽게 제 기분을 묻고 얼굴 표정을 살피고.

제가 명랑하게 '안 우울하다. 종교없다' 했더니 그러냐고 하고 가고.

아무튼, 저 여자 좀 이상하다, 뭐 이렇게 생각하는 분위기는 저도 느끼고 있었지만

수술실 방문 앞에서 젊은 여의사가

이름이 뭔가요.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나요.

결혼 하셨나요.

아이는 있으신가요.

지금 무슨 수술하는 건지 알고 계시나요.

하는 질문에 씩씩하게 또박또박 대답 했더니 이 의사...

차트 한 손에 들고 고개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며 피식, 하고 웃으면서 수술실 들어갑디다.

이거 뭡니까.

이 여자 또라인갑다...

뭐 이런 반응인건가요?

기분 쫌 많이 나빴음.

내가 지금이야 이리 씩씩한거지,

내가 한국오는 비행기 타기까지 어떤 심정이었는지 알기나 하냐고!

에혀 저 젊은 여의사가 알리가 없지.

하긴, 내가 좀 이상해 보이기도 하겠지.

아 몰라. 수술이나 잘 되라.....

보호자가 동행할 수 있는 수술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저는 그 바로 안이 '수술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그 문 안으로 또 하나의 병원이 존재하고 있었어요.

꼭 영화 속에서 한 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그간 모르던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그런 것처럼

다들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쪽 저 쪽으로

많은 간호사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분주히 오가는 의사들,

수술실이 하나, 둘, 셋, 넷...아 많구나.

제가 누워있는 침대가 바쁘게 옮겨지는데

뒤에서 다급하게 간호사들을 불러 세우는 소리가. 수녀님이시더라고요.

'아직 그 환자분 기도 못 해드렸습니다'

병실 떠날 때, 병실 담당 간호사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 손 꼭잡고 기도를 해주더니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 귀하다고 이렇게 기도를 해주네...

하는 생각을 짧게 하는 동안 기도가 그새 다 끝나부러서

'아멘'을 힘차게 수녀님과 외치고 수술실 들어갔더니..

옴마...방이 크기도 크고 사람이 열 명쯤은 되네요.

천장에 매달릴 열개쯤 되는 그 수술실 등이 왜그리 무섭던지...갑자기 잠깐 쫄았다가.

'아니 환자 한 명 수술하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다 필요한가....?'

하는데 팔 다리 묶고 (낙상 방지한다고) 머리에 모자 씌우고

마취과 간호사가 마지막 확인을 시작합니다.

이름이 뭐죠?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숫자 기억하세요?

지금 무슨 수술 받으시는건지 아세요?

하다가, 심각하게 묻네요.

목소리가 원래 그러세요?

(감기 기운이나 열이 있으면 안되는가 보더라고요.

목이 완전히 쇳덩이처럼 가라 앉아서 말하기가 힘들 정도였더니)

아뇨. 감기 아니예요.

지금 갑자기 이러네요.

원래도 예쁜 목소리는 아니지만 이렇지까지는 않거든요.

했더니, 저게 무슨 그렇게 우스운 말이라고 십여명의 스태프들이 일제히

하하하~ 하고 웃대요.

사람 웃기기가 이렇게 쉬운거면 나도 개그우먼이나 할까 보닷.

이제 다 준비가 된 듯,

마취과 간호사가 숨 크게 쉬라고 하더라고요.

직방 졸음이....

'지금부터 환자 번호 192xxxx, 아무개님의 어쩌고 저쩌고 수술을 시작하겠습니다'

하는 마취과 간호사 말에 마침내 참고 참았던 마지막 눈물 두 방울이 또르륵.

이렇게 잠들었다 깨어나면, 그 때는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겠지만

그건 이제 더 이상 안 아파도 된다는 얘기니까

슬퍼할 필요는 없는 일이야..

지금 이건 정말 정말 마지막 눈물인거야...

라는 멋진 생각을 해볼 겨를도 없이 그냥 팍 잠이, 깊은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회복실에서 마취에서 깨어나자 마자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저 밖에 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 여기 혼자 있는거 아니다, 고마운 셋째 성....

이었어요.

수술실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에도 아팠는데

깨어나니 안 아프네요.

묵직하게 몇 년을 괴롭히던 허리 통증도 그 자리에 없어서 너무 신기했어요.

산책도 운동도 직장 생활도 하기 힘들게 했던 허리 통증이

정말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안 느껴지니 어찌나 신기하던지...

심한 날엔 그냥 팍 죽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끔찍했던 배 통증.

아...이젠 없다...

나 살았다.

수술 전에 설명하기로는 마취 풀리면 횡경막이랑 어께에 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던데,

전 하나도 안 아팠고요.

수술 한 날은 간호사들이 집중적으로 통증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더라고요.

그 때 마다 아프지 않다고, 견딜만 해요, 했더니

다들 제게 대견하다는 표정을 보내더군요.

피가 좀 나올 수도 있다고 생리대를 하라길래 했는데 그것도 그냥 깨끗하고.

셋째 성이

'야., 넌 (수술이) 체질인가 봐' 하더라고요.

어제 저녁에도 누워서

'몸이 잘 아물고 있는거 같애. 안에서 꼬맨거 있잖아.

그게 느껴져.'

했더니 셋째 성이, 넌 수술받을 자격이 있다고.

나 같으면 이게 제대로 잘 됬을까 잘 안됬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 걱정 걱정만 하고 있을 텐데

너는 어쩌면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냐고.

수술한 보람이 있다나요ㅎㅎㅎ

수술한지 딱 일주일인데

몸이 어제 보다는 오늘 더 좀 힘이 나고, 하루가 틀리네요.

많이 걷는게 좋다고 해서 언니랑 동네 시장에 살살 나가서

빵도 사오고 야쿠르트 열개씩 사들고 오기도 하고요.

17년 만에 마시는 야쿠르트는 정말 '맛있는 인생'의 정의와도 같네요.

오늘은 칠성 사이다 마셨고

커피우유는 하루에 한 개씩 꼬박 마시고 있고요.

한국에 와서 사가고 싶었던 것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해 어찌 할까...좀 걱정 했더랬는데...

어쩌지..어디 돌아 다니지도 못하는데..하는 수 없지, 이 참에 이 덤비는 시간

책이나 좀 읽으면서 교양이나 쌓아 볼까...하고

책펴고 딱 세 줄 읽으니까 기똥찬 생각이 제 머리를 스치더군요.

아 맞다~ 홈쇼핑~!!!

그래서 책은 일단 집어 던지고

물건 주문하고 택배 기다리는 재미로 하루 하루를 소일하고 있습니다.

이틀 후에 병원 가는데

언제 뉴욕으로 돌아갈지는 그 때 선생님 보고 나서 결정 하려고요.

집에 돌아가면 열심히 살려고요.

우선 집부터 치우고 살기로 결심했어요.

'나는 청소를 싫어해'가 내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제가 항상 그렇게 집을 돼지 우리처럼 해놓고 살지는 않았더라고요.

저도 집을 깨끗이 하고 살던 때가 분명 있었고.

특히 제가 처녀 신분이던 시절, 집에서 독립하면서 그 집 처음 얻어 이사 갔을 때,

친구들이 놀러와서

'신혼집처럼 이쁘게 해 놨네. 신랑만 얻으면 되겠네'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그랬던 집이 지금은 돼지 우리예요.

언제부터 나는 집을 치우기 않고 살기 시작한 걸까... 

몸조리 차 티비를 벗 삼아 이것 저것 보다가 문득 혼자 깨달은게

서로 연관성이 없는 다른 프로그램들을 보다가 주제와는 상관없이

그 안에서 제가 공통점을 발견했는데요,

우울증 있는 사람들이 집청소를 전혀 안 한다는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산다는 것에, 인생에, 오늘 또 주어진 하루에 대해 아무 의욕이 없는데

유리창 반짝반짝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니까 집이 더러운 상태가 그닥 중요하지가 않은 마음 상태.

거실보다 더 어지러운게 내 마음이다...뭐 이런 맥락 아닌가 싶은 것이..

그래서, 뉴욕에 돌아가서 '열심히 살기'의 첫 걸음은 '대청소'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고 살리라 결심 했습니다.

아....빨랑 청소 하고 싶다.

당장 청소 하고 싶다.

진짜로 청소하고 싶다.

무지하게 청소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아직 환자이므로

일단 처음 대청소는 신랑 시키고 난 두 달 후부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