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정 (가명 혹은 실명 ㅎㅎㅎ)

 

졸업을 축하한다.

네 옆에 많은 시간 있어준 이모가 아니었어서

미안한 마음, 아쉬운 마음부터 앞서지만

알토란 같이 네 할일 야물딱지게 해 온 한소정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모 얼굴만 들이대면 악악 울어대던 것이 대학생이 된다고라???

 

네 손으로 돈 벌어 보니 많이 힘들지?

더구나 그렇게 번 돈, 네 친구들처럼

예쁜 옷 사 입고 갖고 싶은 물건 사는데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등록금으로 내려니 억울하고 울고 싶지?

이모도 학교 있을 때 부모가 등록금 내줘서

아무 돈 걱정 없이 학교 다니는 애들이 제일 부러웠어.

부모 돈으로 한국에서 유학까지 온 애들하고는

부럽다 못해 화까지 날 지경이어서 어울려 놀지도 못했다.

 

‘니네가 인생 고단한 걸 알아?’ 하면서.

 

그런 팔자좋은 애들하고 나를 비교하는건 너무나 아픈 일이었기에

아예 외면했던 거지.

세상에 더 어려운 집들이 많다는 건

너에게 아무 위안이 안되는 것도 알아.

지금 네 마음이 어떨지는 이모는 정말 너무 잘 알 것 같아.

‘원래 다 그래. 불평하지 마’ 라고는 하지 않을게.

 

너도 이제 다 컸고, 눈치가 빤해서 알겠지만

어른들의 문제.

엄마와 나와 희야 이모와의 좋지 못한 관계.

어른들의 문제로 아이들 불편하게는 하지 말자는게 항상 이모가 갖고 있는 생각이었는데

그 생각만큼 이모가 부지런히 너희들 챙겨주지 못해서

결과적으로는 너랑 상우, 많이 속상했을 걸로 알아.

그 점 이모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세상 어떤 인간 관계도 거저되는게 없거든.

가족간의 사랑도 가족이라 피붙이라 거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노력하는게 많이 필요한데 엄마랑 이모들이 그걸 잘 못하고 있는거야.

그래도 이모가 믿는 건

얼어붙은 마음이 녹기까지 더 많이 필요하겠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

이모도 엄마한테 잘못한 부분이 있고, 아직까지 많이 화가 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래.

너도 엄마한테 미안한 것 있고, 화나는 것 있고 그렇지?

엄마라서 무엇보다 소중하지만

엄마가 이러 이러하지 못해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든다고 그런 생각도 하지?

관계의 힘듬이 바로 그런 거란다.

저 마음 깊이는 사랑하지만 갈등 앞에서 그걸 제대로 풀지 못하는 무력감,

그게 막 실타래처럼 엉키고 섥혀서

도저히 고칠 수 없이 망가진 가전 제품처럼 그렇게 골치 아픈 게 관계야.

 

이런 힘든 관계를 겪고 풀어가고자 노력하고 제대로 안되서 좌절도 하고.

그러면사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던 너는 어른이 되었고

할머니는 이미 많이 늙으셨고

엄마랑 이모들은 늙어가는 과정에 있고.

조급해 하지 않고 조금씩만 노력하면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기대.

이모는 해 본다.

 

스무살의 너는

지금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은 이미 많이 경험했겠지?

이제 대학생이 되면 그간 아무 낌새가 없던 ‘이성 관계’도 생기지 않을까?

남자 친구들 만나서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고 마구 들뜬 날들이 오고

함께 패키지로 딸려 오는 말싸움, 밀고 당기기의 마음 싸움 등으로

친구 관계와는 또다른 관계의 어려움을 경험할 테고.

그렇게 어른이 되는거야.

이모가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보니 세상에 실패한 관계는 없다고 하더라.

좋지 않게 끝나는 친구도 이성도, 그것으로 인해 다음 관계를 더 잘 할 수 있는

자양분으로 만들면 그러면 된다는데?

당연한 얘기같지만 이모는 나름 느낀게 많았어.

무엇보다 저렇게 생각하면 과거의 친구 관계, 이성 관계, 부모 자식 관계에서

내 마음을 많이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나에게 교훈을 준 사람들로 발상 전환해서 용서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기거든.

 

너를 힘들게 하고 못되게 구는 사람들을 무작정 참아 내라는게 아니라

기왕이면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지혜를 갖고

너를 부당하게 대하는 친구나 이성을

을 향해 네가 네 자신을 먼저 돌보고

너는 가치있는 사람이고 존중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당당히 외치는 자신감을 가지라는 뜻이야.

관계에 있어서 자존감을 갖고 자주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는 건

마땅히 인간으로 누려야 할 권리이기 때문에

끌려 다니지 말란 말이지.

 

네 돈으로 학비 보태는거

많이 속상하겠지만,

이모의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내 돈 내고 하는 공부만큼

열심히 하게 되는 공부가 없더구나.

세상에서 내 돈이 제일 아까운 돈이거든.

내 돈이란, 내가 번 돈.

부모 돈도 내 돈이 아니고 남편 돈도 내 돈이 아니야.

세상에서 제일 확실한 돈은 내가 번 돈.

그 돈 쓰기가 세상에서 제일 아깝고

그런 돈으로 내 학교 등록금을 내면,

시시껄렁한 학교 생활은 불가능해 지지.

 

이 아침잠 많은 이모가 아침 8시 수업을 단 한 번도 빼먹은 적이 없다면 믿을래?

한 학기 등록하자 이모가 한 일은 전자 계산기 가져다가

총 등록금 액수를 수업 시간으로 나눠서

내가 시간당 내는 돈을 셈했지.

내가 이거 안가면 내 돈 얼마 잃어 버리는거다 하니 아침에 눈이 저절로 떠진다.

나는 그냥 내다 버릴 돈 없었거든.

용돈은 기차 타고 왕복 네 시간 걸리는 시내로 나와 아르바이트 해서 충당했지만

등록금은 내 이름으로 진 빚이니

이거 내가 졸업하면 에누리없이 내가 갚아야 할 돈인데

빚진 돈 그냥 내버리는 짓 절대 못하게 되더라.

그리고 냉정한 말 하자면 대학은 ‘당연히’ 가는게 아니고

네가 ‘선택’해서 가는거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이모 역시 할머니가 등 떠밀어 간 학교 아니고, 어떻게든 4년제 학위 갖고 싶어서

이모가 내 욕심에 결정한 일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부럽긴 해도, 내가 이렇게라도 학교 다니는거 정말 행복했지.

 

공부? 이모가 당연한 말 한 마디 할까?

공부. 너 위해서 하는 공부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저 말이 정답이야.

너 위해 하는 공부,

그것을 위해 들어가는 돈. 네 돈으로 내는 거.

네가 불행한 아이라 그런게 아니고 어쩌면 당연한거야.

이걸 네가 뼈속 깊이 깨닫지 않으면 네 마음이 항상 우울 상태에 있게 돼.

이모는 다행히 저걸 일찌감치 깨달아서

많이 바쁘고 정신없는 대학 생활이었지만 그 구심점은

‘활력’이었어. 내 인생 내가 일궈 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그 자부심이 나를 바쁜 생활을 기쁘게 할 수 있는 활력으로 에너지 전환이 된거지.

이걸 고생이라고 생각하면 넌 많이 우울할 테고

자부심으로 발상의 전환을 한다면 활력이 생길테고.

어때? 이모처럼 해보지 않을래?

 

그래서 이모가 나의 대학 시절을 생각하며 했던 생각 하나는,

만약 이모한테 자식이 있었다면,

그 자식이 자라서 대학을 간다면,

그 때쯤 이모가 돈이 아주 많더라도

등록금은 네 이름으로 론을 받아라. 할 작정이었어.

등록금 내 줄 만한 재력으로 차라리 졸업 후에 목돈으로 주면서 깜짝 놀래켜

줄 수는 있다 하더라도 학생인 동안은

고스란히 네가 너 위해 하는 공부에 들어가는 ‘돈’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지.

돈이 있어도 안 주었을 거라 이 말이야.

이 말은 이모가 너보다 어른으로 어른인 척 하면 한 마디 하자면,

이모는 자신있게 지금 네가 내 손으로 등록금 부담을 지고 있다는게

네 인생 길게 봤을 때 분명 플러스가 된다 이 소리란다.

 

여름 동안 나가 놀 시간도 없이 일에 매여 있다는 거 답답하고 속상하지?

이모도 주말에 일을 할 때면

왜 항상 토요일 일요일은 이렇게 날씨가 좋은 건지.

비라도 죽죽 내려서 날이 우중충하면 내 기분이 좀 위로가 될텐데

이렇게 눈이 부시도록 화창한 날씨에

밖의 세상은 커피 한 잔 들고 한가하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는 사람들로 꽉 차 있는데

나는 왜 이 가게 안에 새처럼 갇혀있나…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의 시중을 들고 점심밥 먹기도 주인의 눈치를 보고

나는 여기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방학 때 여기 저기 놀러도 가고

특히 이 미국아이들 스프링 브레이크에 바닷가로 놀러가는거

너무나 먼 세상 얘기였고,

방학 때 일하는 건, 답답해 하더는 생각조차 못할 만큼

너무나 당연한 일로 받아 들었였다.

 

그럼 이모가 아르바이트와 학교 공부, 요 두 가지만 하느라

그렇게 바삐 살았던거냐 하면 절대 그건 아니고.

노는 건 이모가 우리 집안에서 제일 많이 했지.

친구들 만나 놀거 다 놀고

남자 친구도 사귈거 다 사귀고

술 마시러 다니고 춤추러 다니고 어지간히 많이도 했지.

자기 할 거 다 하고도 놀 시간도 분명 생겨.

놀 시간이 거저 생기는건 아니고 그 시간을 만들 체력이 따라주는 나이라는 거지.

 

체력이 받쳐주니까 잘 시간이 놀 시간으로 만들어 지는거야.

스무살의 나이는 그게 돼.

그렇다고 이모처럼 술 먹고 춤추러 다니고

노래방 가고 남자애들하고 히히덕 거리는 것만 노는 게 아니고

너 하고 싶은거 하는게 다 노는 거지.

그거 할 시간은 네가 원하면 충분히 만들어 지니까

나는 생활의 노예, 야 라는 걱정 따위는 미리 하지 말도록.

 

지금 네가 억울하고 힘든건 억울하고 힘든대로

어쨌든 저기 저 나중에 네가 할 사회인으로 살 그 날이 오면

너는 누구보다 네 자신이 스스로 인생 살아야 한다는 그런 깨달음으로 무장하고

훨씬 더 강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거 이모는 확신해.

그건 네가 계속 살면서 너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긍지로

누구도 뺏지 못할 너의 자산이 되어 있을거야.

 

다른 사람은 이해 못하더라도 지금의 네 상황,

이모가 똑같이 그 입장에 있어 봤기 때문에 이모는 너를 이해한다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어.

스무살의 이모는 세상 울분도 많았고 다 같잖고 유치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세상 자체에 대한 반항의 극치였었고

머리속의 잡다한 생각으로만 집중되는 에너지를 감당하기가 힘들어

해가 지면 머리를 마비시킬 수 있는 술 먹고 춤추고 그러고 놀았었는데

 

이모가 보는 스무살의 너는

나보다는 세상에 대해 훨씬 더 건강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 점이 참 다행스럽다.

이모는 기분파의 극치답게 항상 감정에 들끓어서

사랑이든 미움이든 심지어 냉소조차도

그것이 찌개가 너무 센 불에 부글부글 끓어 넘쳐대는 것처럼

호되게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었고

너는 인간형을 구분하자고 보면 이모랑은 저 반대편쯤 있는 유형의 성품이고.

실리적이고 냉정하고 실속 그 자체인 성격.

네가 스스로 보는 너의 단점을 너는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모가 봤을 때는 너는 다소 이기적이거든?

 

이모가 두 해 정도 있으면 마흔이 되는 나인데

스무살 때의 나 보다 지금은 많이 다듬어진 사람이 된게 사실이야.

타고난 성품은 바꾸지 못하지만 다듬어 가면서는 살 수 있어.

이모도 감정의 찌개가 아직도 끓고는 있지만

끓어 넘치지는 않게 그렇게 노력하며 살고 있다.

 

너도 너를 다듬어 가는데 있어서

대학 생활이 좋은 경험이 되기를 바라고

남에게 주는 기쁨을 깨닫게 되길 바라고

무엇보다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그런 대상을 만나길 바래.

동성이든 이성이든 간에.

그런 친구가 이미 있다면 잘 지켜 나가도록 하고.

너무 내 것을 안 뺏기려고 움켜 쥐고 있는 것 보다

조금 느슨해져 보는 거. 연습이라도 하면 좋을 것 같고.

네 옆에 너를 그런 모습으로 함께 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고맙게 느끼고 앞으로도 계속 진심으로 대해주고.

 

교우 관계를 네가 친밀감을 많이 느끼는 한국 아이들에만 국한하지 말고

여러 배경의 친구들을 두루 사귀어 봤으면 하는게

사실 이모의 큰 바람이다.

 

어른들처럼,

중국애들 이래서 싫고

인도애들 저래서 싫고

흑인애들 무엇 땜에 싫고

백인애들도 이래서 싫고

남미애들도 저래서 싫고

 

그래서 마음맞는 한국 아이들 서넛이 뭉치게 되서

네 귀한 20대 초반을 그 안에다만 가둬두게 되면

미국까지 와서 사는 보람이 없잖니?

어차피 네가 싫다 싫다하는 그 애들 한테도 너는 어쩌고 저쩌고한 한국애일 뿐이야.

 

사람이 공부 왜 하는데.

좁은 생각 안에 갇혀 있지 말라고,

거기에서 나와 바른 가치로 나아가라고

그래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 보자고 하는 거거든.

이모가 너무 진부한 얘기하는 거 같아?

미국까지 와서 더욱이 이 뉴욕이라는 대처에서,

다른 사람들은 그 기회를 누리고자 일부러도 오는 곳에 살면서

너를 좁은 그릇의 한계에 가두지 말라는 뜻이야.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는

인간이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거든.

 

너 옛날에 이모한테 왜 아이 안 낳는거냐고 물었을 때,

이모가 ‘가족 이기주의’ 싫어서. 라고 했더니 웃었었지?

세상에 내 부모만 중한거 아니고

내 새끼만 중한거 아니고

나만 중한거 아니고

우리 모두 다 중요한 거거든.

왕이모가 현경이 현영이 옷 내내 얻어 입히면서 키워도

방글라데시에 돈 보내는 것 알지?

큰 돈 아니라도 그렇게 없는 집도 더 없는 집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게 세상인거야.

 

우리 엄마, 우리 아빠, 내 동생, 우리 이모, 우리 할머니 말고도

세상은 쟤네 엄마 아빠, 쟤네 동생, 쟤네 이모, 쟤네 할머니와도

같이 공평하게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세상에는 중국 사람, 일본 사람, 멕시코 사람, 이태리 사람, 미국 사람, 프랑스 사람, 아프리카 사람 두루 다 있잖아.

한국 사람’만’, 있는게 아니거든.

 

한국 문화권을 가진 친구들하고만 교류하다

대학생이 됬다고 하루 아침에 마음 바꿔 먹고 아무하고나 스스럼 없이

친해질 수는 없겠지.

 

이모가 바라는 건,

최소한 스스럼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나라 사람들, 다른 출신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말은

의식적으로 삼가라는 거지.

 

너희들(한국애들)끼리라고

흑인애들 비하하고, 히스패닉들 무시하고, 중국애들한테 코방귀 뀌고

이런건 정말 못된 사고 방식이니까 의식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하라는 뜻이야.

어른들 그러는 것도 슬픈데

어린 너희들까지, 제일 열려있고 잘못된 가치에 제일 민감해야 할

너희 대학생들까지 어른들이 하는 구태의연을 잘못된 줄도 모르고 똑같이 한다면

어른들 하는 말대로

그럼 미래가 없는거야.

상우 나이의 아이들이 그렇게 하는건 집에서 지역사회에서

어른들이 못 가르친 책임이야.

너희들 주변엔 멕시칸 주제에 라든지 깜둥이 자식이, 저 짱꼴라

이런 말들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내뱉는

한국 어른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반면에 그걸 나쁘다고 가르쳐 주는 어른들은 너무나 적기 때문에 그렇거든.

 

이제 대학생이 되는 너는, 이제는 그런 것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기회를 갖게 되는 거야.

그리고 이건 네가 누나로써 상우도 차차 가르쳤으면 좋겠고,

네가 이 가치에 익숙해 져서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그런 인종 차별적이고 인간 비하적인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것까지 불편해지는 단계가 되면

그 때는 어른이라도 네가 똑바로 말해주게 될거야.

 

그러지 마세요.

 

라고.

 

도둑질 하는 건 나쁜 짓이예요.

 

라고 어디서든 누구한테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지?

 

인간이 인간을 업신여기는 것은 나쁜 마음이예요.

 

도 하나도 다르지 않다.

졸업하고 사회 생활하게 되면,

 

나를 동양인이라고, 한국인이라고 차별하지 마세요.

 

라고 요구하게 될 때가 있을거야.

저런 요구를 당당하게 할 수 있기 위해선

너부터 남을 차별하는 마음이 없어야 공평하겠지?

 

살다 보면 나보다 똑똑한 사람, 나보다 돈많은 사람은 항상 있어.

나보다 덜 똑똑한 사람, 나보다 돈없는 사람도 항상 있고.

나보다 잘난 사람한테는 어렵게 대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은 막 대하고 산다면

평생을 그렇게, 누군가 한테는 비굴한 인간으로

누군가한테는 못된 인간으로 사는 거야.

하지만 세상 사람들을 다 존중하는 마음으로 공평하게 대하고 살면

너는 항상 괜찮은 사람으로 살 수 있어.

어떤게 더 좋을거 같아?

 

네가 발상의 전환, 의식의 전환, 생소한 것들에 마음을 여는 자세를

갖지 못한다면 앞으로 네가 가진 인간으로써의 그릇이 성장하는데

아주 많은 한계가 올거야.

스무살 네가 여지껏 보지 못했던 생각과 가치들에

너 스스로를 얼만큼 활짝 열어 젖히는가가

앞으로 또 20년 더 사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칠거라 이모는 확신한다.

대학이 너를 나은 사람으로 바꿔주는게 아니라

네가 너를 나은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 수 있는 기회가 거기 있어.

네가 정말 하느냐, 얼만큼 하느냐의 문제인거지.

 

생각을 바꾸고 마음이 다 각도로 마침내 열리면 말야,

부잣집 아이들도 더 이상은 고깝게 안 보이고.

사실, 그애들이 부모 잘 만난거야 그애들 복인거지

그애들이 내 복을 빼앗아간 건 아니잖아.

나도 부유하지 못한 집에 태어나 자라지 못한게 내 선택 밖의 일이었듯이

부유한 집에 태어나 자란 그 애들도 마찬가지거든.

 

틀려서 많이 어색했던 다른 문화권 아이들도 한두마디 나누게 되고

심지어는 공통점에 마음이 맞는 부분을 찾아낼 수도 있게 되고

같이 웃으면서 친구도 할 수 있게 되는거야.

 

내가 주말에 일해서 내 술값 버는 것도 좀 재미나게 생각이 되어지고

(너는 술을 안 마셔서 이모는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저 술과는 평생 멀리하는게 상책이야)

이나마라도 놀러 다닐 수 있어서 내 젊은 날이 유쾌하다 생각되어 지고

노는 것도 내가 번 돈으로 놀아야 최선을 다해 신명나게 놀아지거든.

기왕 내 돈쓰고 하는 거면, 최대한 효과를 봐야지.

 

대학 4년 동안,

저런거 다하고 아주 많이 변한 사람으로

이만큼 성장한 사람으로 졸업하게 된다면

아마 그 때 쯤엔 너는 네 돈으로 낸 등록금 하나도 아깝단 생각 안 들거야.

 

이모 그 빚 갚는데 10년 걸렸지만,

그거 갚으면서 아깝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해봤어.

오히려 생활비 쪼달리면서 한 달 내고 한 달 내고 하면서도

자부심이 나를 한 달에 한 번씩 그렇게 자극해 줬지.

 

봐!

넌 네 힘으로 대학 공부했어.

다른 집 아이들보다 넌 4년 빨리 세상에 대한 자생력을 키웠다고

자랑스럽지 않니?

그리고 봐.

펑펑 쓸 돈은 못 벌어도

결혼도 전에 너는 이미 너 혼자만의 방을 가지고 독립 했잖아.

렌트비, 전기세, 전화세 다 네가 번 돈으로 내면서

이렇게 네 힘으로 원베드 아파트에서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잖아.

적은 돈이라도 네 어머니 용돈까지 드리잖아.

 

이모부랑 연애할 때, 사랑 싸움이라도 하고 나면 이모가 말했었지.

 

‘혼자 있고 싶어. 내 집에서 나가 줘’

 

내가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어른으로 스스로 산다는 건 저런거야.

너 입을 옷, 너 먹을 음식, 너 잠잘 집을

네 힘으로 스스로 해결하는 것.

그게 많이 힘들고 많이 외롭기도 하고 많이 두렵기도 하지만

당당하게 내 것이라고 권리주장 할 수 있는 내 것이 있다는 것.

네가 너로써 온전하게 독립된 인간이 되기 위해선 경제적 자립이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데

너는 그걸 벌써 다른 집 아이들보다 몇 년 빨리 단련하고 있는거야.

이모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억울하기로 말하면 이모는 너보다 더 했어.

너야 첫째인데 니네 엄마가 돈 없어서 못해주는 거지,

이모는 할머니가 희야 이모까지는 대학 등록금 주시고는 이모만 안 줬어.

언니들까지는 한국에서 대학 나왔지만

미국은 부모 돈으로 안 다닌다고

여기선 다 자기가 자기 힘으로 대학 간다고 하셔 가지고

대학 다니는 동안 할머니한테 받은 돈은 졸업 선물로 받은 5백불이 다야.

 

 

네 돈으로 4년을 공부 하게 되면

대학원 진학에 대한 결정도 올바르게 내릴 수 있을거야.

 

정말 내가 공부가 하고 싶어 가는 대학원인지

정말 내가 전문인이 되가는 과정을 치열하게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정말 이게 내가 앞으로 몇 십년 동안 하고 싶은 분야인지

 

아니면 대충 취직 안되니까

그냥 몇 년 더 학생 신분인게 편하니까.

아니면 부모가 학비 대줘 생활비 대줘 꼭 박사만 되달라고 들볶으니까.

 

절대 후자는 안될거야.

왜냐면 대학원 론은 학부하고는 비교가 안되게 더 비싸니까.

이모 학부융자는 10년에 끝났지만 이모부 거는 30년인거 알지?

몇 배의 각오가 있어야 너도 큰 빚을 낼 강단이 생길 테니까.

전자의 이유로 대학원도 가야 끝이 좋은건 말 안해도 알겠지?

 

이모가 이 편지로 네 마음을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하고

여전히 짜증나는 소리만 했다면

정말 미안하지만, 이모는 나름대로 많이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네가 편하게 대학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어.

우리 조금이라도 좋게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밝게 살자.

이모도 노력 중이야.

이모한테 전화 아무 때나 해도 되고, 정이 답답하면 이모 집으로 뛰어 와도 좋아.

알겠지?

지금 이 모습으로 이렇게 잘 자라주어 정말 자랑스럽다.

사랑한다 한 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