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결심한 ‘뉴욕 돌아가면 열심히 살자’의 첫 프로젝트 대청소.

대청소의 첫 발로 거실 책장 정리. 저거 한 달 넘게 걸려서 끝내 놨어요. 십년 묵은 청소라는게 어느 날 하루 날 잡아서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 그저 매일 매일 조금씩 움직이면서 치우자. 해서 내 책 들부터 정리해서 내가 계속 가지고 있을 것들, 도서관에 기증할 것들 추려놓고, 신랑더러 본인거 하라고 했더니 세월아 네월아…잔소리는 우리 부부의 적이기 때문에 그냥 저도 마냥 놔뒀죠.

저 사람도 언제 청소하면서 당신도 빨리 해라, 다그치는 일 없으니 저도 내가 갑자기 청소 모드가 됬다고 저 사람 다그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같아, 저 사람이 스스로 청소 모드가 되서 자기 물건 처리할 때 까지 기다리느라고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마침내 신랑도 자기 책들, 가지고 있을 것들, 도서관에 기증할 것들 추려내서, 빨래하는 카트로 두 번, 동네 도서관에 갖다 주고 왔고요. 이제 집에 책은 별로 남아있질 않네요. 책도 끼고 살지 않기로 했거든요. 

아무튼, 저렇게 거실 책장 끝내고 진도를 드디어 안방으로 옮긴 며칠 전, 여기 저기 구석탱이에 쑤셔 박아 놓은 것들 꺼내서 정리를 좀 했는데..

이 아자씨가 자기 물건 정리해서 버릴 것, 가지고 있을 것을 잘 가려서 다 내다 버린 것 까진 좋았는데

가지고 있을 것으로 분류된 것 중에 책꽂이에 뭔가를 쑤셔 박은 모양.

그걸 제가 책장 먼지 털다 쭈르르 뭔가 떨어져서 보니, 나를 '울컥'하게 하는 사진 두 장.

흠...우리 신랑은 자기 사진이란게 없어요. 이 집에 갖고 있는게요. 시골서 도시 나오기 전에 이미 웬만한 자기 물건은 다 시댁 차고에 쌓아 놓고 온지라, 자기 과거 사진도 들고 온 게 없는데, 조거 달랑 두 개.

저걸 제가 이 집에 발 들여 놓은 그 날 이후 우연히 보게 되서, 내 눈에 띄지 않게 잘 보관하라, 고 말을 했는데

이 칠칠 맞은 양반이 저걸 어쩌자고 또 내 눈에 보이게...

저희 집에 조그만 서랍 네 칸 짜리가 있는데, 위로 셋은 공동 서랍.

은행 관련 돈 관련 서류들이니 여행 관련 서류들이니 잡동사니 쑤셔 박아 놓는 용도.

그리고 마지막 것을 제가 남편의 공간으로 증여 했거던요? 저 서랍에 자물쇠 장치가 있다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내가 살던 집에 신랑이 합류 했으므로 무언가 자기 만의 비밀 물건들을 쑤셔 박을 데를 주면 좋겠다, 싶어서 내주고

분명히 말했어요. 이 서랍은 내가 건들지 않는 서랍이다, 라고요. 나는 절대 건들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러고 그 말대로 실행 중이예요. 저 냥반 비밀 물건이래야 뭐 지지부지 그지 같은 물건 몇 개 들어 있겠지  뭐 별거 있을라고요.

그래도 사람이라는게 어느 정도는 '나만의 공간'이란게 필요하겠다…싶어 저리 했더니 본인도 좋아하면서 뭔가를 쑤셔 넣긴 하는 눈치더라고요. 내 눈에 안 띄었으면 하는 사진. 거기다 넣어 두면 좀 좋아요.

왜 저걸 떡하니 우리 두 사람 같이 쓰는 책장에 마구잡이로 낑겨 넣어서 툭, 떨어지게 하느냐고요.

얼굴에 들이댔더니, 오마나??? 자기가 되려 큰 소리를???

전 맹세하고 아무 말도 안했음. 미리 쫄은 거죠. 이거 엿 됬다.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싶었는지,

갑자기 그 사진 두 장을 자기 손으로 박박 찢어서 내 버리더니, 저한테다 다다다다.

그게 내가 그 사진을 맨날 들여다 볼라고 그런거냐, 그 사진은 '내' 사진이기도 해서 내가 들어갔기 때문에 안 버린 것 뿐이다,

그게 나한테 중요한 사진이었으면 내가 서랍에 넣었지 거기다 쑤셔 박았겠느냐.

내 말이...

그래 그럼 왜 그랬는데?? 이 칠뜨기야!

내가 그간 당신 비위를 에지간히 맞춰줬구나. 파리 가는 문제도 있고 해서 어르고 달래고 알랑방구 뀌고

맞춰줄거 다 맞춰 줬더니 기어이 푸닥거리를 신청하시는구만.

요청한 대로 확 지랄을 쳐 버릴까 하다가, 나는 혈압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니, 생각을 바꾸고 조용히 집을 나서서

동네 꽃집 가서요, 그간 생각만 하고 있던 로즈마리 모종 조그만거 하나 사왔어요.

집에 와서 말없이 분갈이 해주고, 베이즐 자라는 화분도 흙에 공기 넣어 준다고 솎아 주고,

거실에 신문지 펼쳐 놓고 화분 만지고 화초 만지작 거리고 있자니, 이쁜아짐 너 사람 됬구나, 소리가 절로 납니다.

눈치보던 신랑이 기어 나와서는 '내가 오바했어요. 미안해요 부인' 하길래......

이번엔 내가 울어 버렸더니. 죽을라고 하네...

강한 마눌의 눈물을 본 심정이 어떠냐 이 칠뜨기 남편아!!!!!!!!

내가 너더러 그 사진을 찢으라고 했니, 갖다 버리라고 했니. 그저 봤을 때 내 기분이 안 좋으니 눈에 띄게만 하지 말라고 그렇게 그 옛날에 신신 당부를 했는데

내 눈에 띄길래 갖다 댄 것 뿐인데 어디다 대고 나한테 큰 소리야 큰 소리가!!!

내가 조금 울었더니, 자기는 통곡을 하네.

아우 진짜 내가 내 맘대로 울지도 못하는 구나.

나 인터넷 할거니까 내 시간 갖게 내버려 두라고 조용히 한 마디 했더니, 눈물 훔치면서 방으로 들어가대요.

저 문제의 사진 두 장.

그냥 둘이 찍은 거면 제가 괜시리 기분 나빠하겠습니까. 제가 아무리 성질 나쁘다고 그 정도로 싸이코는 아니예요. 하나는 둘이 그냥 무심히 앉아 있는 그저 평범한 사진. 나머지 하나. 요게 핵심이죠. 둘이 쳐 뽀뽀하고 있는 사진.

그거 내가 보기 싫다는데 이유 대줘야 하나요?

일단, 싸움은 저렇게 일단락이 되서 넘어가고, 그 다음 날, 남편이 다시 차분하게 얘기를 꺼내더군요. 자신의 오버리액트 였다고.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제가 울 때 저를 달래준다고 하던 말이,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나는 당신 밖에 없고, 그 사진이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해서 그리한게 아니고, 그저 그 옛날의 ‘내’가 들어있는 사진이라 둔 것 뿐이라고.

제가 그 때 받아친 말이 ‘나는 당신 부인인데, 당신 부인이라는 위치가 내 남자가 내 남편이 이전일 때일 망정 다른 여자랑 뽀뽀하고 있는 사진을 보고도 기분 나빠하면 안되는구나…싶어서 슬픈 거니까 나 슬퍼하게 내 버려 두라고’ 였거든요.

기분대로 하자면, 누가 지금 과거 따위를 문제 삼는거야 이 칠뜩아!

과거 캐자면 내가 당신보다 킹왕짱이야!

문제의 핵심을 보란 말이다!!!

라고 마구 소리 질러 주고 싶었지만…그냥 저렇게 마구 연약한 척, 상처받은 척 으로…

그래서 남편이 얘기를 다시 꺼냈을 때 제가 그랬어요.

과거 사진이라 의미가 있고 없고, 그걸 보고 내가 기분을 나빠할 이유가 있고 없고 , 이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는 나한테 의미가 없고, 그저 난 그 사진을 봤을 때 감정의 자동 반사가 일어나서 ‘좋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 뿐이었고, 당신이 그런 내 ‘감정’을 이해해 주기 바랬다. 그 뿐이다.

네 맞습니다 부인. 부인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부인. 저를 용서해 주세요 부인.

음…흡족한 반응이네요.

누가 그 사진들 찢으래. 괜히 멀쩡한 사람을 나쁜 사람 만들고 있어.

자기가 괜히 흥분해서 박박 찢어서 내다 버리고는…

그러나,,,,,

마음 한 켠, 왜 일케 속시원한거야.

이겼다 또 이겼다...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