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월요일

일찌감치 루브르 박물관은 수요일에 가기로 결정했었다.

수요일이 밤 늦게까지 연단다.

우리는 모두 아침부터 피곤에 지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침 9시에 박물관을 향해 떠나는 일은 불가능 하므로,

천천히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볼 수 있는 날 관람을 하기로.

애초에 미술관/박물관은 욕심 내지 않고 3곳 정도만 보기로 했었다.

어차피 체력에 제한이 많은 세 사람이니,

무리해서 여기 저기 강박증으로 발품팔지 말고

그 날 그 날 컨디션 흐름대로, 기분대로, 그리고 날씨 보면서 계획 잡기로 했었다.

오늘은 뭐할까...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개선문까지 걷기로 한다.

사촌 언니가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오르세 미술관 앞에 내려서

그 지점부터 걸으면 될 것 같다고 한다.

버스 내렸더니 세느 강변이다. 너무 좋다. 진짜 파리 왔구나, 하는 감동이 밀려온다.

루브르가 뒤로 보인다.

오옷~ 저것이 루브르야? 흥분해서 사진 한 방 박고.

내가 강변을 좀 걷고 싶다고 해서 강가로 내려갔다.

기온은 뉴욕보다 훨씬 쌀쌀하지만, 어쨌든 햇빛은 쨍쨍, 날은 화창하다.

지나가는 유람선 보고 손 열심히 흔들어 주면서 강변을 거닐다.

성님들한테 ‘여기 밤에 와도 참 좋겠다’ 하며 셋째 성한테 사진 한 장 박아 달랬더니,

셔터 누르기 전에 꼭 외친다. ‘배!!!’

나 배 나왔다고 숨 들이 마시라는 소리다.

그래서 사진마다 표정이 좀 이상하다. 셔터 누를 적에 헉~ 하고 숨 들이 마시는 바람에..

뒤로는 루브르를 하고 일직선 상으로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콩코르드 광장을 지나고 샹젤리제 거리가 시작된다.

플라터너스 가로수가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길을 걷는다.

사촌 언니가, 언젠가 한국에서 갔던 샹송 음악회에서 본 이상한 아줌마들 얘기를 해준다.

셋째 성이랑 함께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플라터너스 길이 끝나고 드디어 상가들이 나온다.

여행 전에 셋째 성하고 잠깐 얘기했던 루이비똥 대형 매장도 나온다.

사촌 언니 왈, 백인들은 그냥 들어가고 동양인들은 신분증인가 뭔가 검사를 하고 들여 보낸다나?

셋째 성이 여행 전에, 루이비똥 가방 사다주는 알바 얘기를 했었다.

한 사람 당 살 수 있는 개수에 제한이 있어서 브로커가 매장 밖에서 지시한 물건을 사오면 얼마 간의 수고비를 준다고.

젊은 여행객들이 단발성 알바식으로 한다는 소리를 몇 년 전엔가 인터넷 어디서 봤다고.

우리도 그거나 할까? ㅋㅋㅋ하길래, 설마 셋째 성도 진심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이 나이에 거기까지 가서 그 짓은 안한다,고 확실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었다.

집에 서도 안하는 밥벌이를 놀러가서 하게 생겼나.

드디어 개선문이 가까운 시야로 들어온다. 멋지다!

개선문 구경하고 사진도 몇 장 박고, 집에 가려고 하니

사촌 언니, 아마 여기서 집으로 한 번에 가는 버스나 지하철은 없을 거라며 걱정하며

지도를 펼친다.

지도 펼치자 마자, 벤치 옆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어디 가냐고 묻는다.

사촌 언니가 불어로 대화 시작, 룩상브루 간다고.

할아버지 저기 보이는 길 하나만 건너면 82번 버스가 있으니 그거 타고 가란다.

신이 나서 길 건너 버스 정류장 가니 82번 버스 안 선다.

다 엄한 동네로 가는 버스들만 서너개 있다.

허탈감에 피곤과 짜증이 노도처럼 몰려온다.

이상한 노인네야, 노망 났나 부네. 하고 벤치에 털썩 주저 앉았다.

택시를 타자고 해야지.

성님들 열심히 지도랑 지하철 노선표를 본다.

택시 타자고 했더니, 셋째 성 바로 째리기 시작한다.

셋째 성은 세상에서 택시비가 제일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평소에도 내가 택시타기 좋아하는걸 굉장히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사촌 언니도 택시타는 거, 돈이 아깝다고 한다.

왜 다들 택시를 싫어하는 거얏!

나는 타라고 있는 택시인데 이용해 줄 필요가 있을 때는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짐이 많거나, 시간이 많이 늦었거나,

혹은 지금처럼 대중 교통 편이 애매한 상황에서 무지하게 피곤하거나.

성님들 어찌할까 계속 고민중인데, 나 그냥 벤치에 누워 버렸다.

얘기 끝나면 알려 달라하고 내 가방 베고 눈 감아 버리다..

그래서 택시 타기로 했다. 음하하!

역시 똥고집은 효과가 있다.

기사 총각이 운전을 무지하게 잘한다.

옆에서 사촌 언니 왈, 아주 지름길로 샤샤삭 빠릿빠릿하게 잘 가고 있다고 흡족해 한다.

러시아워 시간대 였는데, 거진 신호 한 번 안 받고 집으로 왔다.

택시비, 예상만큼 많이 안 나왔다. 계산하고 내리니 두 성님들 만족한다.

그래도 니 덕분에 집까지 편안하게 왔다고.

집에서 조금 쉬고 저녁 거리 장 본다고 집 앞 무프타르 거리로.

내심 소고기 무국을 끓일까 했는데, 그 동네 슈퍼마켓엔 무도 파도 안 판다.

그냥 꽁치조림이나 해 먹자고 하고 생수와 샌드위치 만들 재료만 사서 들어오다.

집주인 아가씨가 인턴쉽하는 회사에서 좋은 소식을 들고 퇴근했다.

사촌언니가 옆 집 방을 빼는 내일부터,

좁은 집에 여자 네 명이 있을 생각에 심란해 했는데 (이불도 부족하고)

회사에서 이태리 본사로 누군가 출장을 보내야 하는데,

정식 직원들 지금 모두 눈 코 뜰새 없이 바쁘고,

인턴인 자기 조차 야근을 하는 상황이라고.

그래서 회사가,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집주인 아가씨를 보내기로 결정했단다.

무려 4박 5일.

그러니까 다음 날인 화요일부터 우리 떠나기 바로 전 날이 토요일까지

우리 셋만 집에 있게 되는 거다!!!

집 문제 꼬여서 왕창 스트레스 받다가 우연히 이렇게 일이 대박이 났다.

집주인 아가씨 역시, 출장 간다고 본인도 신이 엄청 나서

정말 잘 된 일 아니냐고 축제 분위기.

기분 완전히 업 되서, 다음 날 점심 거리까지 하겠다고 샌드위치 재료 사다.

뉴욕에서 꽁치캔도 두 개 사왔다고 자랑했을 때 사촌 언니 반응이 시큰둥 했었다.

꽁치 별로 안 좋아한다는 식으로.

그래도 다른 저녁 거리 못 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끓였는데,

한 입 먹어 보더니 이건 맛있다고 한다. 보람있다.

사촌 언니 말로는, 여태 누구랑 누구가 어디 어디를 갔을 때 몇 번씩 끓여 준적이 있는데

매번 맛이 별로 였다고 이런 맛이 아니었다고 하며

나더러 어떻게 한거냐고 묻는다.

냄비에 김치 먼저 넣고 조금 볶다가 꽁치캔 따서 국물째 다 들이 붓고

김치 국물 조금 더 넣어서 10분 정도 끓이면 땡. 이라고 했다.

일체의 다른 양념은 아무 것도 들어간게 없고,

간 맞출 필요도 무슨 요리 테크닉도 없는 초간단 메뉴인데,

사촌 언니, 셋째 성, 집주인 아가씨, 모두 모두 너무 맛있다며 잘 먹는다.

저렇게 쉬운 것도, 요리랍시고 해 놓으면 나는 밥먹고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

상도 다른 사람이 치우고 설거지도 다른 사람이 한다.

나는 이런게 너무 좋다.

나는 설거지가 세상에서 세번째 쯤으로 싫다…

첫 번째로 싫은건, 배고픈거

두 번재로 싫은건, 줄 서서 기다리는거.

좋은 소식과 함께 저녁 잘 먹고 이렇게 셋째 날 마무리.

내일 부터는 우리 끼리구나 얏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