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뎅 미술관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작품, 작품이름 모름.

 

 

9월 23일 화요일

 

잠자리에 예민한 이쁜아짐은, 지금 사흘째 잠을 설치고 있다.

착한 집주인 아가씨가 방 침대를 나와 셋째 성한테 내주고

자기는 거실 바닥에서 잤다.

우리가 밖에서 잔다고 방에 들어가 자라고 해도

젊은 자기가 밖에서 자는게 낫다며 한사코 거실에 자리를 핀다.

요즘엔 저런 착한 젊은이도 있나 보다…

 

내가 저 나이 때는, 정말 싸가지가 말도 못하게 없었는데…

 

새벽 3시, 4시, 5시…

깨어 있는 채로 침대에 누워만 있다.

거실이 코 앞이고 또 그 코 앞이 화장실인

아주 아주 아주 수퍼 울트라 쁘띠한 아파트였던 관계로

집주인 아가씨 잠 깨울까봐 화장실도 못 간 채로

사흘 째 날밤을 새고 있다.

 

어차피 집에서도 잠을 잘 못자기는 매한가지지만, 집 떠나니 강도가 더 심하다.

 

집에서야, 남편되시는 양반은

내가 잠을 설치거나 말거나 옆에서 쿨쿨 잘 자는데

셋째 성은 내가 날밤을 꼬박 새다 시피 못 자는거 옆에서 다 눈치채고 있었다.

나 때문에 셋째 성 잠까지 설치는 거다.

 

사촌 언니가 큰 일이라며, 뉴욕 돌아가거든, 약이라도 먹어 보라고 한다.

정말 약을 먹어야 할까.

오버 더 카운터로 가볍게 먹어 볼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어디다 물어 봐야 하나..

 

집주인 아가씨는 이태리 행 비행기가 이른 아침 시간이라

알람을 5시 반에 맞춰 놨었다.

침대에 누워 말똥말똥 하기를 몇 시간 째, 드디어 알람이 울린다.

너무 반갑다.

집주인 아가씨 일어날 때, 나도 벌떡 일어나다.

 

침대에 억지로 누워 있지 않고 나도 일어나 화장실가서 쉬야도 하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서

자기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 깨셨냐고 미안해하는 집주인 아가씨한테

아니라고, 원래 잠 깨 있었다고 걱정 말라고 했다.

 

아가씨 화장실 들어가서 씻고 준비한다고 왔다 갔다 하는데

집에서 아침 먹고 나갈거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길래

미역 불리고 밥 앉혔다.

일인분의 찬밥이 남아 있었지만, 출장 가는 사람 찬 밥 먹여 보낼 수야 있나.

뜨신 밥 멕여 보내려고

밥 금방 되라고 우리 먹을 아침은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딱 한 컵만 씻어 앉쳤다

 

밥하는거 보더니 옴팡 미안해 하면서 자기가 밥상 차리려고 하길래

신경쓰지 말고 본인 일이나 보라고.

냉장고에서 밑반찬 꺼내고 새로한 밥 퍼주고,

국이 좀 덜 끓었는데 미역 말고 국물이라도 떠 먹으라고

끓고 있는 미역국 한 그릇 퍼주고

어여 먹으라고 했더니 아가씨 왈,

 

언니, 꼭 엄마 같아요.

 

아가씨 참 착해서 나도 고맙수. 6시 반에 아가씨 떠나고.

잘 다녀 오라고 배웅하자 마자

나도 미역국에 밥 말아서 김치랑 먹다.

성님들 기침 하셔서, 아침 대충들 드시고, 오늘은 뭐할까…

 

로뎅 미술관을 가기로 한다.

 

전 날 저녁에 꽁치조림 하면서 동시 다발로 후다닥 만든 샌드위치 점심으로 챙겨 집을 나서다.

 

아침 먹고도 한참이나 걸려서 나갈 준비가 완료되고,

버스타고,

내려서 또 걷고, 중간에 성당 하나도 들러서 구경하고 미술관 도착했더니,

도착 하자마자 배가 고프다.

 

구경 시작도 전에 바로 카페로 가서

카페올레와 핫 초콜렛 시켜서 햇빛 따땃한 곳에 자리 잡았다.

 

내가 하는 샌드위치는,

감자 쪄서 으깨고, 햄 다져 넣고, 삶은 계란 다져 넣고, 오이 얇게 썰어 살짝 절였다가

모든 재료를 마요네즈에 버무린 것.

저걸 미리 빵에 발라 가면 빵이 다 젖어 버리는 탓에

샌드위치 따로 락앤락에 담고, 빵은 봉지채로 들고 갔다.

 

빵 봉지 열어서 각자 발라 먹는데

사촌언니가 특히 맛있어 한다.

꽁치조림과 더불어, 요 샌드위치가 지금까지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란다.

 

우선 배부터 채우고 이제 관람 시작.

로뎅 미술관은 정원을 아름답게 잘 꾸며 놓은 것으로도 유명하단다.

정원에 있는 작품들만 보고 싶으면 달랑 1유로만 내면 되고,

집 안으로 들어가서 나머지 작품들 다 보고 싶으면 5유로 더 내면 된다.

유명한 작품들 웬만한 것은 다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들, 지옥의 문,

그리고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아 그러나 작품 이름을 까먹은…나중에 알아내야지.

 

무슨 여행객의 자세가 이 따위란 말인가.

 

정말 한심의 극치라 아니 할 수 없다.

 

아무튼 다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시간이 촉박하거나 한 여행객들은

정원만 돌아 봐도 엑기스는 다 보는 셈이라고 나 혼자 생각.

하지만 그래도 안까지 보고 나서 좋았던 것은,

까미유 클로델 방이 있었던 것.

개인적으로 로뎅 작품들보다 까미유 클로델 작품들이

더 강렬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이, 내 마음에는 훨씬 더 들었다.

만고 예술이라곤 눈꼽만치도 모르는 무식쟁이의 개인 감상담.

 

로뎅 미술관 나와서, 어디론가 좀 걷고

저녁 때 뭐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난다.

밥을 사먹고 들어갔던가??

아 맞다. 그랬던거 같다.

 

홍합 맛있게 하는 전문집에 가서,

와인 소스로 스팀한 홍합을 먹은 날이 저 날인가 보다.

프렌치 홍합은, 너무나 앙증맞은 크기의 홍합이었다.

뉴욕에서 먹는 홍합보다 맛도 훨씬 더 좋다.

워낙이 홍합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이쁜아짐.

기절할 듯이 맛있게 먹다.

 

저녁 먹고 나오니 파리 오고 처음으로 빗방울이 내린다.

 

내 인생 방침에 의하면 이런 날도 택시 타줘야 하는 날이다.

여기서 집까지, 역시나 대중 교통편 좀 애매하다고 한다.

택시 탔다. 음하하!

 

집에 와서 성님들,

수첩 펴들고 돈 계산 시작한다.

아니..피곤하지도 않나.

어제 그제 적는거 밀렸다고 더 지나면 진짜 기억 못한다고

둘이 용을 써가며 지난 일을 떠올린다.

 

진지하게 머리 맞대고,

그 때 우리 거기서 얼마 썼지? 점심 얼마씩 냈더라?

이러고 서로 묻고 서로 대답해 가며 열심히 각자 수첩에 기록을 한다.

 

이해가 안 간다.

 

사촌언니, 한참 적다가 나더러 넌 안 적냐고 한다.

 

“그런건 적어서 뭐해.

적는다고 써서 없어진 돈이 다시 생기는 것도 아닌데.

난 남아 있는 돈만 계산해. 앞으로 쓸거 얼마나 남았나”

 

내가 들고 다니다 잃어 버리지 않은 다음에야

어디다 써도 썼으니 없어진 돈인데,

써버린 돈은 머리 아프게 기록해 놔서 뭐 하누.

코방귀 한 번 뀌고

열심히 돈 계산하는 성님들을 뒤로 하고 침대로 가서 뻗다.

 

이 날은 새벽부터 설친 관계로 정말로 정말로 뻗다.

파리온 지 나흘 째 밤에 드디어 푹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