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수요일

루브르 가는 날.

김밥 싸가는 날~ 룰룰루~~~

우리집 어릴 때 소풍 김밥은,

단무지, 당근, 계란, 시금치, 소고기. 이렇게가 정석이다.

노여사도 이렇게 싸고 이모도 이렇게 싸신다.

다만 우리집은 애들이 무진장 많았으므로

소풍 당사자 김밥에만 소고기가 들어가고

나머지 애들 도시락은 소시지로 대체.

소고기는 정육점에서 항상 반 근만 샀다. 한 근도 아니고 반 근.

정육점 아저씨가 귀찮아 하던 표정이 지금도 기억나므로, 저 반 근.

나는 확실히 기억한다.

다 크고 미국와서는, 절대적으로 소고기만 넣는다.

소시지 쳐다 보지도 않는다.

누구든, 돈 없이 살았을 시절의 집안 음식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기분을 알테지.

김밥도 집집마다 고유 레서피가 있어서

원래부터 소시지나 햄을 넣고 싼 김밥이 입에 맞는 사람이 있겠지만

만고 우리집 개인사에 비춰 볼 때

소시지가 들어간 김밥이 우리에겐 못 살았던 시절의 상징이다.

모두들 소고기가 들어간 걸 좋아했지만

항상 그렇게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난 사먹는 김밥도, 소시지가 들어간 건, 지금도 절대 안 사먹는다.

미국 오고 나서, 언젠가 노여사가 간단히 싼다고 소시지 넣고 싸셨다가

퇴근하고 온 셋째 성이 막 화 낸적 있다.

김밥에 소시지 들어간 거 보니 옛날 생각나서 슬퍼서 그랬단다.

그 이후로 노여사도 김밥을 안싸면 안쌌지 다시는 소시지 넣고 안 싸신다.

사촌 언니가 혼자 있는 동안, 그 곳의 한국 마켓에 가서

김밥김과 단무지와 김밥용 햄을 사다가 혼자 싸서 먹고 남은 재료가 있다고 해서

김밥 싸가기로 했는데,

시금치는 데치고 무치고 하는 것이

그 집 부엌 상황에 무리일 듯 싶어 오이로 대체하기로 합의 했지만,

소고기는 포기가 안된다.

사촌 언니는 소고기 사다 양념하고 볶고 하는게 일이 많아서 햄으로 대체했었다 한다.

사촌 언니가 쓰다 남은 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소고기 밀어 부치기로 했다.

간장, 설탕, 다진 마늘, 깨소금, 참기름 넣고 간 소고기 양념해서 냄비에 볶았다.

아 맛있는 냄새~

속재료를 내가 준비하기로 하고 마는건 사촌 언니가 하기로 했다.

소고기 볶은 다음에 계란 지단 부쳐서 썰고,

당근 채썰어 팬에 한 번 살짝 볶고,

오이 알맞은 크기로 썰어 놓고,

소금, 깨소금, 참기름에 밥 잘 저어 놓고.

준비 완료. 시켜놓고 난 샤워하러 들어감.

사촌 언니가 김발도 없이 김 열줄 잘도 말았다. 난 김발 없이는 못 마는데…

잘 썰어서 내가 가져간 락앤락 찬합에 각 세줄씩 넣다.

나머지 한 줄은 내가 집어 먹고ㅋ

나갈 준비 완료~!

날이 정말 화창~하다.

내내 버스만 타고 다니다, 파리오고 처음으로 지하철 타다.

뉴욕 지하철에 비해 길이가 무지하게 짧다. 달랑 세 칸?

그 한 칸도 뉴욕 지하철 한 칸보다 훨씬 짧다. 너무 귀엽다.

노선표 보니 대여섯 정거장 간다. 한 정거장도 디게 짧다.

길거리 차들도 미국 길거리에서 보는 차들에 비해 장난감 차처럼 보일만치 모두 컴팩트하더만

멋대가리 없고 밋밋한 것 없이 모든게 작고 짧고 개성있게 아기자기한 파리다.

루브르 박물관 역에서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

사촌 언니가 갑자기 발걸음을 다시 뒤로 하더니 뭔가를 집어 든다.

조그만 표 딱지들.

뭔데? 하니까, 루브르 입장권이란다.

일단 일일 입장권 끊으면 가지고 있으면서 하루 종일 들어왔다 나갔다 할 수 있다는데,

어떤 부지런한 사람들이 아침 일찍 왔다 벌써 돌아 가면서

누군가 쓰시라고 친절히 놓고 간 것이다!

넉 장이다.

날짜를 보니 9월 24일. 갑자기 셋이 오늘이 진짜 24일이 맞냐고, 호들갑을 떨고

핸드폰 꺼내서 날짜 확인하고.

흐미…24일 맞다!!!

이런 땡이 어디있나.

한 장에 9유로 씩인데. 석 장 챙기고 나머지 한 장 있던 자리에 다시 놓고.

세 아줌마, 한장씩 입장권 챙겨 들고 너무나 신이 나서 룰루랄라~~

거기다 금상첨화는, 이미 표가 있었기 때문에, 줄 안 서고 바로 들어갔다.

오늘은 꼼짝없이 줄 서겠구나,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던 이쁜아짐은

9유로 보다 이게 더 횡재다!

그 말 많고 의견 분분한 루브루의 피라미드를 코 앞에서 보니. 난 싫다.

궁전 건물이 그렇게나 아름다운데 왜 고철 덩어리가 한 가운데서 시야를 막고 있는 건지..

내가 건축물에 조예가 없어서 그런가.

아무튼지 난 싫다.

평생에 박물관이니 미술관과 아무 상관없이 40여년 인생을 살아온 이쁜아짐.

루브르가 생각보다 많이 재미있다.

관람객이 많기는 하지만 아주 유명한 몇 몇 작품 앞 빼 놓고는

사람에 치이는 느낌도 별로 없다.

조용하고 좋다.

박물관 나와서는, 이제 뉴욕에 돌아가면

메트로 폴리탄 뮤지움도 가보리라는 실로 놀라운 결심까지 했다.

입장료가 얼만지 많이 안 비쌌으면 좋겠다.

들어 가자 마자 밀로의 비너스가 보이고, 또 바로 니케 여신상도 나온다.

니케 여신상이 너무 멋지다.

정말 당장이라도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를 것 같은 느낌.

아…나도 저렇게 생기있게 살고 싶다…

계단 멀찍이서 니케상을 배경으로 사진 박아달라고 셋째 성한테 카메라 던져 주고,

활짝~ 웃으면서 사진을 찍으니,

덴장 이 구린 디카는 줌도 개판이라 내 얼굴이 여신상 다 가려 버렸다.

대문짝한 얼굴에

부스스해서 산발한 머리만 동료와 쥐뜯고 싸움하다 나온 귀신처럼 보이고

여신상은 귀퉁이에 날개죽지 겨우 조금 보인다.

이 디카 좀 빨리 망가져 줬으면 좋겠다 새로 사게.

그 유명한 모나리자는…

그간 여행 감상문 책에서 읽어 본 감회가 각인 되었던지라, 실망할 각오를 하고 봤는데…

예상을 깨고, 너무 좋았다.

사진으로 보던 모나리자 보다, 실제 그림의 모나리자는, 더 예쁘다.

훨씬 아름답다..

그림에서 은은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다.

오묘하다..

옆에서 사촌 언니가 그림 설명을 해줘서 루벤스 방도 너무 재밌게 봤고,

프랑스 회화 방에서 본 대작 그림들도 마음에 들었다.

수요일은 문을 밤 10시에 닫는다나? 9시도 넘어서야 루브루를 떠났다.

공짜로…구경한 번 잘 했네~~~~

박물관 나와서 셋 모두 다 피곤했지만,

이번 여행에 내가 꼭 해보고 싶다고 주장한 유일한 행사. 를 강행하기로 한다.

‘밤에 유람선 타기’ ㅋㅋㅋ

지하철타고 바토 뮤슈를 탈 수 있는 역까지.

‘바토 뮤슈’ 유람선 입장료가 생각보다 싸다. 10유로. 시간도 75분이라는데.

다만 유람선 내에서 그 어떤 음료나 스낵도 안 팔아서 좀 당황스러웠다.

커피, 한 초콜렛, 맥주 등등과 빵 부스러기 몇 개라도 팔면

장사 정말 잘 될 것 같은데…왜 안 팔까?

점심으로 김밥을 세 줄씩 먹은 바람에 그 시간까지 버티기는 했지만

또 다시 한 시간 반여를 빈 속으로 버티고 그러고 나서 저녁을 먹기엔 너무 허기질텐데.

입장권 파는 옆에, 아이스크림, 생수, 초콜렛 등을 파는 매점이 아주 아주 작은게

하나 있는데, 드럽게 비싼 가격이다.

킷캣 초콜렛 고 손바닥 만한거 1유로 50. 생수 제일 쬐깐한거 2유로 50.

초콜렛 한 덩이씩 나눠 먹고 나머지 한 덩이 한 입씩 셋이 나눠 먹었다…

우리 배 옆으로 디너 겸해서 도는 유람선이 지나간다.

일인당 130유로라나?

정복을 쫘악 잘 차려입은 웨이터들이 쟁반 들고 다니는 모습에,

따뜻한 조명 아래

잘 차려 입은 손님들 음식 접시 앞에 놓고 칼 질 하는게 너무나 선명히 보인다.

아…눈물 날 거 같다.

저 사람들 밥 먹네…

하니깐 성님들 깔깔깔 웃는다, 하지만 내 마음은

발까지 시려우니 청승도 이런 청승이 없다…휑한 바람이 분다.

유람선은, 내용은 기대한 만큼 훌륭했고,

세느 강변을 따라 보는 파리의 야경은 정말 황홀하도록 아름다웠지만

너무 배 고팠고 너무 추웠다.

파리의 밤 유람선은 꼭! 든든하게 먹고 든든하게 입고 탈 일이다.

참, 유람선 가이드가 몇 개국 언어로 나오는데 한국말로도 안내가 나온다.

불어, 영어, 한국어, 독일어 뭐 이렇게 네 가지 말이었던 것 같다.

일본어, 중국어,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한국어로 안내가 나와서 너무 신기.

상황이 상황인지라, 유람선 내려서 택시탔다.

이번엔 단박에 합의가 됬다.

열 두시가 다 된 시각에 집에 와서, 라면 세 개를 끓였다.

생각만큼 맛이 없었다.

너무 떨었나?? 너무 배 고팠나?

그랬다면 더 맛이 있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라면이 정말 맛이 없었다.

이 날 밤,

중년 아줌마 셋은,

이제 밤 늦은 시간에 라면은 이 나이에는 무리라는 사실을 절감하며

부대끼는 속을 부여잡고 고생스런 밤을 보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