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성적표와 학부모 면담의 시즌인가 보죠?

둘째 언니의 남매가 며칠 전에 성적표를 받아 왔고,

오늘 나란히 수업참관, 학부모 면담 그런 약속이 있는 날이라네요.

 

아이들 외가인 이쁜아짐 5남매나

아빠 쪽 가족 모두 포함,

낙오자도 큰 수재도 없이

딱 중간 정도의 학업 능력과 학벌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인데

큰 애인 이현경 양은 이런 집안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공부를 특출나게 잘하고 있는 아이고

그녀의 남동생 이 문제아 이현영 군은 역시나 다른 형태로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공교육 인생이 시작된 그 날부터 꿈결같이 바닥을 헤매고 있는 상태입니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같은 집에서 성장하고 있는 저 두 아동들은

학업 능력 외에도 성격이나 취향이 극과 극을 달리는 아동들로써

우리 노 여사도 우리 형제 다섯이 하나같이 다 틀리다는 말 입에 달고 사셨지만

정말 저 남매도 저렇게 틀리기도 힘들겠다 싶을 만큼 틀려요.

 

저 녀석이 3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던 올 여름 방학 때

멀리 펜실베니아 제 친구 집으로 데려 가서 하루밤 자고 놀다 올 적에

제 친구들 앞에서 60-53 을 큰 소리로 ‘10’!!!!

하는 바람에 이 이모를 망신, 망신, 개망신을 줬을 때

이번 학년에 있을 스테잇 와이드 시험, 쟤 패스 못한다에 일찌감치 5백원을 걸긴 했지만…

 

생일이 12월 말이라, 동급생들 중 개월 수가 많이 딸리는 편이긴 해서

킨더 가든 때부터 주구장창 유급 어쩌고 얘기 나올 때

저는 속으로 차라리 깨끗하게 지금 일 년 더 다니는게

앞으로 저 아이에게 남은 십여년 간의 학교 생활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우짜든동 유급은 면하고 어찌어찌 계속 진급은 하더라고요.

 

얼마 전 한국일보에 ‘임귀열’이라는 사람이 쓰는 영어 칼럼에서

일부러 한 학년 늦게 시작하는걸 ‘red shirting’ 이라고 한다는 얘기를 읽었거든요.

느긋하게 학교 시작해서 학업을 여유있게 따라가는게

길게 봤을 때는 좋다고 해서,

좀 사는 집들,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더 흔하게 있는 일이라고.

 

저걸 읽기 전에도

저 아동 저렇게 학업의 태반이 어려워 이해를 못하면서 내내 간신히 진급을 하느니

아예 한 번 유급을 해서 나머지 세월 느긋하고 여유있게 보내는게 아이한테도 더 좋을 것 같단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백인 중산층 가정이 한다고 해서 저게 좋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떤 집들은 일부러 일년 늦게 시작해서 동급생 보다 한 살 많게

시작부터 만학도로 가는 부모도 있는데

어차피 개월 수 딸리는 우리 현영이, 3학년 한 번 더 다니는거

그리 창피스러울 것도 없고, 아이한테 나쁠 것도 없겠다, 그런 확신이 들어요.

스테잇 와이드 패스 못하면 (분명 그럴 것 같지만 ㅋㅋㅋ)

3학년 반복은 기정 사실이 되겠지만, 그렇게 하고 나서

저 아이가 4학년부터 편하게 학교 공부 따라가게 되면

나머지 5,6,7,8,9,10,11,12 학년의 학교 인생이 더 편할 수 있는 거잖아요.

 

1학년이 되서 받아쓰기 내리 빵점을 받아 올 때,

그때도 가족들은 이 아이가 이번엔 정말 꿇겠구나…하는 마음의 준비를 했었는데,

그 때도 참 인내심 대단한 나이 지긋하신 담임 선생님의 특별 관심과 사랑으로

나머지 수업을 30분씩 하더니

글을 깨치긴 깨치더라고요. 그래서 1학년 말에 빵점 인생은 졸업하고

2학년으로 진급.

 

저 아동이 처음 받아쓰기 빵점 받아온 날,

저 집 엄마 신나 가지고 이모들한테 바쁘게 전화질.

 

야, 우리 현영이 빵점 받아왔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점이 이모인 나도 심란한데, 그렇다고 나도 안 웃은건 아니지만

엄마 입장이 되서 저렇게 유쾌한 웃음이 과연 나올까.

내리 삼 세번쯤 빵점을 받아 온 시점에서는 저희 신랑까지 걱정이 되서

튜더 하나 물색해서 붙여줘야 하는거 아니냐고. 제안을 했는데,

 

때 되면 하겠지.

 

하면서 끄덕도 안 했었거든요.

 

그러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 한 꾸준한 나머지 공부 결과

1학년 끝날 때 쯤엔 심지어 백점을.

그 날 또 이모들은 다 전화로 소식을 받았는데,

 

어이구 우리 현영이 백점 받았네? 했더니 이 아무 생각없는 녀석이 묻더랍니다.

 

엄마. 근데 백 점이 뭐야?

 

빵점도 백점도 별로 자기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1학년 아동 이현영.

그래도 2학년 까지는 인생 순탄했죠.

무엇보다, 야물딱치고 똑똑한 자기 누나랑 한 학교여서 함께 등교하고

하교 할 때 까지 그래도 학교 안에 급하면 찾아갈 지 보호자가 있었는데.

지 누나 이번에 6학년 되면서 중학생 됬거든요.

 

현영아, 이제 3학년 되면 누나 없이 혼자 학교 다녀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하고 제가 물었더니,

 

3학년을 쉬고 싶다고. 자기는 일 년 휴가가 필요하다고..

 

그래도 자기가 힘 있나요. 3학년 가라니까 3학년은 됬는데

이젠 천하태평이던 저 아동 엄마도 좀 위기 의식을 느꼈는지,

수학 튜더 한 명 구했다 하더라고요.

저 아동과 또 상태 비슷한 한 녀석이 토요일 아침마다 과외 선생님 집으로 가서

한 시간씩 수학 공부 하고 온다는데,

저 친구 녀석이 생일까지 똑같다고 하네요.

엄마들끼리도 친구고요.

 

친구도 다 지 같은 놈들인가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째 언니가 이러면서 좋아 합디다.

 

1학년 때 제일 친했던 친구. 유급.

2학년 때 제일 친했던 친구. 유급.

이현영 아동이 간당간당하게 겨우겨우 진급하는 동안 그의 베스트 프랜드들은

유급의 아픔을 겪으며 함께 진급하지 못하는 이별의 고통을 겪었거든요.

 

지금 같은 반 제일 친한 친구가 함께 과외받는 저 아이라고

어쩌면 공부 못하는 애들은 못하는 애들끼리 신기하게 마음이 맞나 보다고.

그렇게 따지면,

그 집 엄마랑 자기랑 친군데..

공부 못하는 집 엄마들끼리 친구라는 소리 아닌가.

자기는 뭐 좀 낫나.

 

저 쪽 엄마도 자기 아들 베스트 프랜드가 이현영인게

우리 둘째 언니처럼 마냥 웃기기만 할 지 그건 모르겠어요.

 

아무튼지,,,,,,

몇 개월에 걸친 수학 과외 결과,

이번 성적표,

수학  ‘1’

 

 

받아 왔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머지 과목 저 아동 엄마 왈,

‘전부 다 2로 박아 왔어’

 

애 엄마가 진짜, 자기 아들을 찌질이라고 하질 않나,

단어 선택도 박아 왔어 가 뭡니까 박아 왔어가.

그래도 이 소식을 전해듣는 나도 왜 웃음부터 나는건지.

 

그의 친구 녀석, 상황 거진 이현영 군과 일치 하는 가운데

자기는 ‘4’도 하나 있다고 자랑을 해서 우리 언니가 깜짝 놀랐대요.

 

어머나 그래?

 

하고 성적표를 봤더니, 진상은 이렇습니다.

 

교과목에 붙은 점수 ‘4’가 아니고

 

‘지각 횟수’ 옆에 붙은 숫자더래요.

 

아…

참…애들 왜 이렇게 웃기는지.

아무 생각없는 조카 녀석과 똑 같은 상태의 그의 친구 녀석.

배가 아프도록 웃었습니다.

 

세상에는 이번 성적표에서 수학 1 받아온 아이들이

저 두 녀석 말고도 여럿 있겠지만,

그 중에

저 점수 가지고 와서 엄마한테 야단맞을 걱정 않고

저렇게 속 편할 수 있는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갑자기 그 생각 해봅니다.

 

적어도 아이가 공부 강요, 성적에 대한 압박은 안 받고 크니

그건 참으로 다행이다. 그 생각 했어요.

세상에 모든 사람이 공부를 잘하고 일류 대학을 갈 수는 없는데

누군가는 ‘공부 못하는 자들의 자리’에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어차피 공부를 못하는 쪽이라면

기왕이면 부모로부터 과도하게 스트레스 받아서

다른 모든 자신감까지 없어져서

‘주눅든 공부 못하는 아이’,

보다는

‘뱃 속은 편한 공부 못하는 아이’

가 훨씬 낫지. 하는 생각.

 

지 뱃 속 편하면, 밥도 잘 먹고 지 좋아하는거 뭐 다른 거라도

명랑하게 할 것 아니예요.

그래서 저 아동은 오늘도 해맑은 표정으로 공룡이나 가지고 놀겠죠 뭐.

 

게다가 저 아이가 운이 좋은게,

저 애가 공부는 못할망정

애교가 많고 마음이 섬세하고 꾀도 말짱하고 그런 아이거든요.

공부 못하는데 선생님까지 무섭다거나 했으면 학교 가기 싫은 병이 생겼을지도 모르는데

다행히 1학년, 2학년, 3학년 다 상냥하고 좋은 선생님들이었어요.

선생님이 상냥하니 학교 가기 싫어하진 않아요. 참 다행이죠.

 

저 녀석은 세상 만사 걱정이 없으니

처음으로 빵점 짜리 시험지를 들이 밀었던 1학년 그 때 처럼

한국식으로 치면 ‘양’ ‘가’로 점철된 성적표를 들이 밀고 있는 지금도

자기가 내민 성적표의 현실이야 어찌됬건

지네 엄마한테 당당하고 뻔뻔하게 배 고프니 먹을거 내 놓을라고 했을테고

배 채우고 난 뒤에는 또 자기 하고 싶은거 하고 신나게 놀았을 테고…

그래…아이가 그렇게 커야 아이답지..

 

그래도 이 눔아.

니 눔이 집안 망신 시키는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느 누나 반 만큼이라도……, 까지도 안 바란다.

알파벳 깨치고 받아쓰기 빵점 면했다고 학업의 끝이 아니란 말이다.

3학년이면 구구단은 외워야 할 것 아니냐!

언제까지 짝수에서 짝수를 빼는데 홀수를 대답이라고 내 놓을 참이냐고!!!

 

 

다행이다 하면서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은 저렇게 윽박지르고 싶은데…

참아야 겠죠.

주말 쯤에 만나자고 해야겠어요.

그래도 받은 수학 빼고는 나머지는 다 ‘2’ 는 받아 왔으니

수고 했다고 격려 차원에서 짜장면이나 사주게…ㅎㅎㅎ

 

욕봤다 이현영.

원한다면 군만두도 시켜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