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칼럼을 시작한지도 벌써 일년이 되었어요.

 

시작을 할 때만 해도 신나는 마음 보다는 걱정이 한 짐이어서

결정하기 까지 남편과 그리고 다리를 놓아주고 용기를 불어 넣어준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나는 그냥 나 심심할 때 내 이야기 하는게 다인데,

그걸 남들한테 ‘읽어보라’ 할 가치가 있는 내용일까?

블로그라는 개인적인 공간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는 것과

많은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싸이트에 자리 하나를 차지하는 것은 많이 틀린 이야기인데

내가 과연 그런걸 해도 좋을지.

비웃음이나 당하고 욕이나 먹는 건 아닐지.

 

시작을 하고 나서는, 어느 정도까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염두에 두고 간혹은 글을 올리기 전에 셋째 성한테

주제에 관한 사전 검열을 받기도 했고요.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나는 상관 없다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등장하게 되는 나의 가족들이 원치 않는 부분은

제가 예의 차원에서 보호해 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수위 조절 문제로도 얘기를 나누고요.

 

한국에 갔더니, 셋째 성이 ‘참 좋지 않니?’ 하더라고요.

우리가 옛날에 여기 살 땐 그렇게 지겹게 못 살았는데

지금은 돈 찾아서 지갑에 십 몇 만원씩 넣고 다니며 ‘쓰기만’ 하니까 너무 좋지 않냐고요.

돈 쓰니까 참 좋다고.

그러면서 옛날에 살았던 집들을 찾아 보게 되었어요.

아직도 이모가 살고 계신 그 동네에 우리가 전전했던 길거리 단칸방 집들.

나는 그 때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셋째 성은 자기는 ‘가능하면 우리가 옛날에 살았던 집들 다 찾아 보고 싶다’고.

하루 저녁엔 동네 시장을 나갔다가 정말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집을

셋째 성이 꼭 보겠다고, 저는 뒤에 따라 가면서 정말 울듯이 말했어요.

‘언니. 그냥 가자. 난 정말 보고 싶지 않아. 떠올리고 싶지도 않아.’

 

세종로에 출입국 사무소에 체류 기간 연장하러 갔다가,

또 그 동네 잠깐 살았었던 집까지.

언니는 외유내강이라는 걸 항상 알고는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강한 언니는 끝끝내 그 단칸방 집들을 할 수 있는 한 다 둘러 보았다지요.

난 잊고 싶은데, 정말 떠올리기 싫은데…

 

신기한건 그렇게 괴로운 심정으로 언니를 쫄래쫄래 따라가서

다시 확인한 그 집들을

돌아 보고 나니, 희한하게 마음이 차분해 졌어요.

그 전엔, 나는 금의환향이 아니면 다시는 한국을 가지 않을테야.

내가 옛날에 그렇게 살았었던 흔적 따위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렇게 멋지고 화려하게, 좋은데서만 밥 먹고 좋은 것만 사고, 돈 펑펑 쓰면서

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한국을 가지 않을테야.

 

라고 했던 굳은 결심을 했었건만 수술 받으려고 경황없이 그렇게 다시 한국을 찾아서는

어이없이 옛날 살았던 집들 순방이라니…

그런데..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언니. 우리 참 잘 견뎠다.

엄마도, 우리도 참 대단해’

 

저 집에선 우리가 화장실도 없이 살았었고,

또 저 집에선 엄마가 애들 둘이라고 거짓말 하고 방 얻었다가 나중에 주인 아줌마 눈치보다

셋이라고 했었고, 나중엔 위에 둘은 다 커서 나가 산다고 했었고.

저 집에 살 땐 둘째 언니가 많이 아팠는데 병원도 못 갔었고

그 때 정말로 쌀 살 돈도 없어서 라면 끓이면서 우는 엄마를 봤고,

다음 날, 이모한테 가서 이만원만 꿔 오라고 보내서 맨날 이런건 나만 시킨다고 툴툴 거리며 집을 나섰었고,

 

다는 못 돌아보고 대충 7,8 군데. 많기도 많네.

 

셋째 성한테,

나 이런 얘기 나중에 칼럼에다 쓰면 언니가 싫겠지? 하고 물었더니,

아니야. 너가 하고 싶은 얘기면 써. 괜찮아.

속으로 깜짝! 놀랐어요. 저 자존심 강한 깍쟁이가!!!

남들이 만만하게 보니까 너무 개인적인 얘기는 쓰지 말라고 그토록 잔소리하던 언니가.

사람들이 속으로 흉 본다고

‘저 여자는 자기 사생활을 사람들더러 뭘 어쩌라고 저리 주절이 떠드는지?’하고요.

나는 나를 위해서 칼럼을 쓴다고 성한테 그리 말했죠.

칼럼을 쓰는 동안, 제 삶의 굵직한 문제 두 개가 풀렸어요.

남편과 다시 사랑에 빠지기

그리고 노여사와 다시 사랑에 빠지기.

 

맨날 노여사가 자식 복 없다고 투덜 거리실 때면,

머리가 아파서 맨날 셋째 성이랑 ‘괴롭다. 괴로워’ 하다가 둘이 킬킬대고 웃었거든요.

 

사실 봐봐.

그렇게 고생해서 5남매를 키웠는데, 5월에 장한 어머니상 같은거 받는 사람들 보면

힘들게 아이들 키워서, 의사네 변호사네 어쩌고 하는데

우리집 봐라.

자식 다섯이 하나같이 찌질하니 ㅋㅋㅋㅋㅋㅋ

우리가 엄마를 이해해야 돼. 내가 엄마래도 짜증나겠다.

우리는 엄마가 아무리 고생을 했어도 우리가 의사도 아니고 변호사도 아니라서

장한 어머니상도 못 타.

 

그럼 셋째 성이 맞장구치길,

 

맞아. 이러기도 힘들지ㅋㅋㅋㅋㅋ

 

늙으면 자식 자랑하는 맛으로 산다는데, 어디 명함내밀 자식이 하나나 있어야지.

 

한 때 노여사는 저 탓을 다 이쁜아짐 탓으로 돌리는 바람에 제가 한동안 괴로웠다죠.

‘

내가 다른 자식들한테는 아무 기대를 안 했어도

너는 어려서부터 밖에 내 놓으면 걱정 하나 할 것 없이 똘똘해서

너는 그래도 뭐 하나 할 줄 알았는데, 내가 실망이 크다’

 

엄마가 기대한 건 나 하나 뿐인데,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산다고.

젊디 젊은 것이 지 몸 아낀다고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집에 들어 앉으니

노여사의 안달이 극에 달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셨죠.

 

아니, 어머니.

제가 어려서부터 수학은 젬병에,

개구리 해부는커녕 집에 넘쳐나는 바퀴벌레도 못 죽이는 사람인데

의대를 가겠습니까, 약대를 가겠습니까, 한의대를 가겠습니까. 치대를 가겠습니까.

 

내 용돈 금전출납부도 못 쓰는 사람이

경영대학원을 가겠습니까, 회계사를 하겠습니까.

 

영어 이것 밖에 못해서 법대 못 간 것 정말 죄송합니다.

죽기 살기로 공부 열심히 안 한 것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잔머리는 잘 굴려도 공부 머리가 없는 걸 어쩝니까.

저라고 근사하게 한 가닥하면서 폼나게 살고 싶은 희망이 없었겠습니까.

아버지 닮아 체질이 한량 체질인 점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노여사의 결론은 항상,

천상 지 애비라

노력을 안 한다고. 도대체 열심히 하는게 없다고.

 

항상 제가 주장하는 말이지만, 자식이 지 애비 닮지 그럼 옆집 아저씨 닮냐고요..

그게 더 큰 일 아니냐고요..

진짜 답답하다고요..

 

형제 중에 하나가 잘 살면 나머지 형제들 다 도와서 잘 살게 해줘야 하는데

니가 부지런히 벌어서 좀 잘 살아야지, 어쩌자고 서방이 생활비 벌어다 준다고

그거만 보고 사냐고. 니가 벌면 그만큼 저축을 하지 않겠냐고.

 

직장 그만 두고부터 저 잔소리에 시달리느라 이쁜아짐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듣기 심히 괴로웠습니다.

나는 막내인데, 결혼해 사는 모양새 그저 무난한게 5남매 중 나 하난데,

왜 나 하나 그냥 이렇게 살게 지켜 보질 못하시고

형제들 돌 봐줄 만큼의 돈을 벌라고 성화신지.

 

오빠, 언니들만큼 신경써서 키우지도 않았으면서

다들 가슴에 손수건 하나씩 달고 엄마 아빠 손잡고 들어오는

국민학교 입학식 때 오지도 않고

국민학교 1학년 봄 소풍 때는 나는 혼자 보내고 3학년인 셋째 언니 소풍 쫒아가고

4학년 때 부반장 됐다고 하니, 돈들게 그런거 했다고 야단이나 치고.

 

셋째 언니한테 작아서 입지 못하는 옷 내가 입었는데, 언니가 자기 옷 입었다고 성깔 피우니

왜 언니가 아끼는 옷을 입었냐고 나를 야단치고.

골목에서 한참 놀다가 같이 놀던 언니가 갑자기 사라져서

오후 한 나절 하릴없이 온 동네를 언니찾아 돌아 댕기다 터덜터덜 집에 오니

미리 작전짜고 언니만 데리고 시장가서 예쁜 원피스 사주고 와서는

너는 언니보다 착하니까 괜찮지? 너는 다음에 사줄게. 하고.

 

대학 졸업식 때도 오지 않고.

 

엄마, 나 저렇게 키워놓고 이제 와서 나한테 실망하셨다고 그런 말씀 하시면 안돼죠.

다 크고 결혼을 했다고 해서 저 기억들이 다 그냥 없어지는게 아닌데,

이제 막 나는 정말로 나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지구 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그 기쁨에 취해 잘 살아 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딴지 거시면 안돼죠. 나 좀 내버려 두세요!!!

 

내가 이렇게 인간 관계에 문제가 많은 인생을 살고 있는게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엄마한테 받은 상처의 결과로 끊임없는 피해 의식 때문에,

너의 그 마음은 진심이야?

너는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거야?

나를 이용하려고 이러는 건 아니야?

친구도 애인도 제대로 사귀지를 못하다 이제사 제대로 연애다운 연애 해보고 결혼했구만,

왜 내가 이제는 갑자기 다른 형제들을 돌봐야 하는 위치에 있는건지.

엄마, 정말 이러지 마세요. 내가 너무 화가 나요.

 

남편이 해고를 당하고

연달아 제가 아픈 악재가 발생하면서, 노여사 저 잔소리가 쏙 들어 갔어요.

살 것 같습디다.

이모 말씀으로는, 저 병원에 있는 동안 전화 하셔서 한참을 우셨다고 합니다.

 

수술 마치고 정신 차리고 나서 미국 시간 맞춰서 노여사한테 전화 드리니,

목소리가 완전히 잠기셔 갖고,

제가 괜찮다고, 수술 잘 됐다고 하는데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하십니다.

 

미안해. 엄마가 너무 미안해.

그렇게 생리통이 심하다 할 때 진작 병원엘 가보라고 했어야 했는데,

엄마가 무심해서 듣고만 지나쳤어.

새끼라고 낳아서 좋은 건 하나도 못해주고 지지리 고생만 시키고.

제대로 입히지도 못하고 멕이지도 못하고, 고생만 시키다 이렇게…엉엉엉…

엄마가 다 잘못했어. 엄마가 미안해.

니가 항상 씩씩해서 엄마는 아무 것도 몰랐어.

뭐든지 씩씩하게 잘 하고 걱정할 게 하나도 없어서 엄마는 니 걱정을 안했어.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 엉엉엉…

 

진짜로…늙으니까. 엄마도 애기구나. ㅎㅎㅎ

그러니까 제발 ‘지 애비 닮아서 어쩌고’ 그런 얘기나 고만하삼.

그 아버지는 돌아 가신지 오래고,

그의 자식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유전자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사는 것 밖에 남지 않았으니.

 

내가…열살 때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모네 집에서, 우연히 들었던 이모네 안방에서 엄마가 이모한테 하던 말.

 

‘쑤시다고 몸이 아파서 끙끙대면 막내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팔도 주무르고 다리도 주무르고.

그게 인정이 많아서, 다른 것들은 그냥 자도 저건 일어나서 주물러.

그래도 정이 안가.

지 애비 쏙 빼 닮아서 아무리 그래도 그거한텐 정이 안 가.’

 

내 인생 최초의 실연.

엄마는…나를 싫어하는 거였구나.

나는 아빠를 너무 많이 닮은 거였구나.

나는 엄마를 참 좋아하는데…나도 언니처럼 엄마한테 사랑받고 싶은데…

나도 언니처럼 엄마를 많이 닮았어야 하는데…

 

수술 다음 날, 갈라진 목소리로 애기처럼 엉엉 우시며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엄마.

내 나이 열살 때의 실연의 아픔을 이제는 치유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그렇게나 무책임하게 엄마와 자식들을 고생시킨 아빠를 너무 많이 닮은 거라면

이제는 내가 아빠의 모습으로 엄마의 그 상처를 치유하는 대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빠는 엄마에게 고통과 삶의 고단함만 안겨준 사람이었지만,

그 아빠를 꼭 닮은 내가 엄마의 말년을 조금만 편하게 해드린다면

엄마도 나도 함께 치유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되었다고 저절로 어릴 시절의 마음 고생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난 이제 상처를 무방비 상태로 받기만 하는 아이가 아니고,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어른이기에

저 까탈시런 노인네 마음을 보듬어 안고 함께 치유의 단계에 들어가야 겠다고 결심.

 

엄마. 우리 키우느라고 많이 힘들었지?

혼자 우리 키우느라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우리 고아원에 내던지고 도망 안가고 키워줘서 고마워.

나 수술 받는다니까 엄마 많이 무서웠구나?

나 괜찮아. 수술 잘 됐대. 이제 안 아파.

 

엄마는 또 다시 한참을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엉엉엉...아...미챠...

 

큰언니는 아이를 둘 낳고 자궁 적출을 했어서 그 때만 해도 엄마가 이렇게 약한 모습은 아니었는데, 이제는 그 때 보다도 또 더 늙으셨고,

나는 그렇게 일부러 안가진 거라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아이 없이 자궁을 떼었다니 많이 슬프셨나 봐요.

너 애기 낳으면 이뻤을 텐데, 이쁜 애 나왔을 텐데..내가 키워줄라고 했는데...

 

아이구..이미 있는 손주들이나 잘 챙기삼. 둘째 언니 애 낳을 때마다

애 못 키워 준다고 도망가 놓구서는…

 

오늘 아침엔, 새해라고 전화 드려서,

‘어머니. 새해엔 더 건강하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어제는 술 많이 안 마셨습니다.

오늘 대빵 일찍 일어 났습니다’

했더니,

 

‘그래..’

 

‘그러니까 노여사도 막내 형편 다시 풀릴 때까지 건강하세요.

엄마랑 나랑 둘이 올해는 좋은데 놀러 갑시다.’

 

‘에휴…’

하시다 말을 그만 하시네요.

놀러는 무슨 놀러냐, 니네 빚 많이 졌지, 그거나 갚고 이사부터 가던가 무슨 놀러는 어느 세월에 너랑 나랑 놀러를 가냐, 뭐 이런 말이 하고 싶으셨을 텐데

안하기로 하셨나 봐요.

교육의 효과입니다. 좋은 말 서로 많이 하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자꾸 깝깝한 얘기 해봐야 기분만 나빠지고 도움 안 된다고

제가 맨날 사정을 했더니만…ㅋㅋㅋ

고집만 피우실 것 같던 양반도 하도 애원을 하고 사정을 하고 회유책을 썼더니

요새 많이 좋아 지셨어요.

 

엄마,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나한테 직접적으로 화를 내.

화 안내고 참으면 치매 걸리고. 참기만 하면 우울증 생기니깐, 화나면 나한테 화를 내.

내가 들어 드릴게.

 

말로 비비 꼬고 빈정대고 그런거 말고 직접적으로 표현을 해 버릇 하자고도

제가 많이 사정했거든요.

나한테 둘째 언니, 큰 언니, 오빠, 셋째 성 욕하시고

대신 내 욕이나 나한테 잔소리만 하지 마시라고.

같이 열심히 다른 못된 자식들 흉이나 보자고.

그런데 나는 착하고 잘 하니깐 내 흉은 빼시라고.

 

노여사가 언젠가 하신 말씀이,

그래도 너희들 다 이만큼 사는게 감사하다고 하시더군요.

지금들 사는게 힘들어서 그렇지

그런 환경에서 키웠는데, 어느 하나 가출하고 속 썩이고 이런 것 없이

남한테 해 끼치고 사는 사람 없이 다 ‘바르게’ 커 줬다고요.

 

그리고 덧붙인 말씀이,

저랑은 얘기하고 나면 항상 기분이 좋아진대요.

실현 가능성도 없이 제가 하도 뻥을 잘 쳐서 그런 것 같아요.

벌써 내세운 공약이 둘.

차 바꿔 드리겠습니다, 랑

해외 여행 보내 드리겠습니다.

같이 여행 가서 노여사 돈많은 영감 하나 꼬시는 작업 들어 가자 했더니

어이 없다 하면서도 디게 좋아하시네.

 

돈 많은 영감이 미쳤냐? 나 같은 할머니한테 넘어 오게?

 

그럼 연하로 합시다. 열살쯤 뻥쳐서 이제 막 환갑 넘었다고 하면 돼요.

화장발 세우고 어두운데 가서 작업하면 승산이 있습니다.

 

하도 많이 속으셔서 믿지는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저렇게 막 뻥을 치면

듣는 순간에는 좋아 하시는 눈치더라고요.

 

노여사로부터, ‘너랑은 전화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때 느낀 것이, 오호 바로 이거야!

재능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이 여러 사람 오는 곳에

한 자리 차지하고 무슨 얘기든 쓸 참이면,

기왕이면 글 읽고 나서 불쾌하거나, 재수가 없다거나, 참으로 밥맛이라거나,

진짜 시간 아깝다 라거나 하는게 아닌

읽고 나면 조금이라도 기분 좋아지는 얘기를 써야겠구나.

 

나는 남을 가르칠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삶의 연륜이 풍부한 사람도 아니고,

특정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시판에서 수다를 하는 사람이니,

기분좋은 수다를 떨어야 겠다.

 

잘 나지도 않은 사람으로 별로 잘 나가지 못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 내가

가볍더라도 그저 기분 좋은 얘기라도 할 수 있으면 그것 참 다행이겠다.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속으로 영글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내 이야기 들어 주세요, 하고 글을 쓰면서

내 이야기를 하는 자체로 내가 갖고 있는 문제들이 많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서 내 자신의 현재 위치도 다시 한 번 보게 되고, 감사할 건 감사하게 되고,

안되는 건 안되는 대로 또 어찌할까 차분히 궁리하게 되고.

 

몇 달 전, 여배우의 자살로 온 나라가 충격을 받았을 때

자살과 우울증 이런 주제로 많은 기사들이 신문에 쏟아져 나오더군요.

그 때 제 마음을 특히 잡았던 기사 하나가,

상담 전문가의 글이었는데요.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죽을 만큼 힘든’ 상황 자체가 아닌

‘내가 이렇게 힘든데,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데서

오는 절박함이 이유라고 하대요.

 

뭘 그런걸 갖고. 용기내서 살아야지. 더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이런 질책성 조언도 아주 위험하다고 하네요.

‘그저 들어주는 것’ 이게 좋대요.

 

그 기사를 읽고 또 감사하게 되었어요.

모르고 있었는데…나는 그간, 칼럼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서, 나는 그래서 많이는 지지리 궁상하지 않고

이만큼 무사히 온게 아닐까.

정말로 나는 운이 좋았구나.

 

희망은 별게 아닌 것 같아요.

현재의 문제를 개선해 보고자 하는 의욕. 그것인 것 같습니다.

의욕을 가지기 힘들 만큼 현재가 힘드신 분들…용기가 생기도록 제가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나는 기부를 열심히 한다거나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환경을 철저히 보호하고,

좋은게 좋다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갈등하는 사람들을 좋은 말로 화해시키는

친화력이 있다거나,

남들이 배울만큼 인간성이 좋다거나 등등과는

전혀 관계가 없이

나하고 싶은대로 내 맘대로 내 뱃속 편한 것이 세상 제일의 가치다 라고 외치며

오늘도 천방지축 나이값도 못하고

땡기면 이 나이에도 똥꼬치마 입고 외출에, 한심스러운 짓거리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 부족한 사람의 사는 이야기,

마음 속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열화와 같은 성원과 격려 부탁 드립니다.

 

셋째 성이 점심 시간마다 시간 나면 제 칼럼 클릭한대요. 조회수 높일려고.

저 역시, 본인이니까 노력 많이 합니다.

그래도 글 하나 당 백 번 이상은 좀 어렵더이다.

처음 글엔 한 이백은 했는데…

지가 글 올리고 지랑 가족들이 달라 붙어 조회수 올리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듯 해요.

내용으로 승부를 봐야지.

그럼 좀 힘들겠구나…끙…

 

그럼 그냥, 작년처럼만 할께요.

너무 치장하지도 말고, 너무 퍼지지도 말고, 적당히 긴장감있고 적당히 편하게.

그렇게 올 한 해 가겠습니다.

올 해도 칼럼을 쓰면서 내가 편해지고 내가 성장하는 그런 시간으로 만들겠습니다.

 

지난 한 해,

세월이 지나도 성장할 줄 모르던 상처받은 꼬맹이 여자 아이가,

늙은 엄마를 귀엽게 여기며 꼭 끌어안아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질 만큼 진짜로 컸어요.

 

남편이 돈 벌어다 주는거, 따박 따박 받아서 쓰기만 하고

정말 내가 이 남자와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를 몇 년간 잊고 살다가

남편이 더 이상 돈을 안 벌어다 주게 됬을 때

비로서 다시 남편을 향해 뽀뽀를 날리고 나랑 함께해 줘서 고맙다고 애교를 부릴 만큼

살가운 부인이 됐어요.

 

자궁을 떼고 나서야

나는 엄마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고

남편과 다시금 사랑에 빠지게 되고, 진짜 여자가 되었어요.

 

많이 행복하고 많이 감사합니다.

 

제가 엘지 직원도 아니고 사돈에 팔촌도 저 회사랑 아무 관계 없지만,

한 번 인용해 보렵니다.

 

Life is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