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뉴욕에 사는 걸 싫어하는 제일 첫 번째 이유가

겨울이 너무 길기 때문이예요.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서 부터 장장 5개월은 너끈히 될법한 겨울.

5개월이 뭔가...반년도 되겠네요.

4월에도 눈 내리고 지롤 발광 날씨가 한 두번이 아니니...

 

정말 찰나처럼 스치는 봄, 가을 빼고 뉴욕은 여름 아니면 겨울 두 계절 뿐인것처럼 느껴질 때도 많고요.

 

사람따라 봄 타는 사람, 가을 타는 사람 그렇게 있다는데,

저는 해마다 초겨울을 심하게 타요.

이제 겨울이 시작되려는구나....하는 11월만 되면 어찌나 마음이 가라앉는지...

 

이렇게 11월이 되서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여기서 내가 하는 겨울 준비라는게 외투 상태 점검해서 드라이 클리닝 갖다 주던지,

내복에 목숨건 신랑의 백양 에어메리들 손닿기 쉬운곳에 정리 해 놓는거랑,

그 외엔 별게 없는데...

이 아파트는 집주인이 인심도 좋아서, 기름값 올랐다고 렌트 아파트들이 히팅을 대거 줄여대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청시레 히팅 빵빵하게 틀어줘서

이 시점부터 저는 다시 반바지에 탱크탑, 집에서 이런거 입고 있거든요.

 

뜨신 물 잘나와 집은 여름처럼 더워...

뭐 하나 불편할 거 없는 겨울인데.

 

 

평소에는 제가 20년 살았던 한국의 기억을 이제는 전혀 안 떠올리다시피 하고 사는데

꼭 요맘 때 그 생각이 나네요.

 

김장철이 되면 옷 집안을 짓누르던 엄마 한숨 소리,

거기에 파묻혀 꼬맹이였던 나는 나대로 '김장도 김장이지만, 그럼 연탄은 또 어떻게???'하는 걱정.

없이 사는 사람들한테는 겨울이 여름보다 몇 배는 나기 힘든 계절인데...

 

 

그래도 가끔 듣는 얘기처럼, 정말 돈이 없어서

시장 바닥에 떨어진 우거지를 수집해 김장을 담근 일은 한 번도 없지만,

우짜든동 엄마의 한숨 퍼레이드가 몇 날 며칠을 가다

결국은 또 작은 이모네 김장에 묻어서 우리도 그걸 얻어다 먹는 일 다반사.

 

자꾸 그런 일들이 생각나서

마음이 무겁고 쳐지고 주루룩 눈물도 나고 그래요.

11월마다 찾아오는 이 마음병이

미국 산 지 16년 째가 되도 신기하게 안 잊어버려지고 해마다 또 오고 또 오고 그러네요.

 

겨울이라 더 힘들었던 기억들,

많이 추웠고, 많이 배도 고팠고 했던 기억들.

이제는 그래도 나도 어른이라고 내가 어렸을 때 했던 그 힘들었던 기억에 그치지않고

자식들을 그렇게 밖에 키울 수 없었던 엄마 심정이 어땠을까...까지 생각이 미치니

괴로움 따블.

 

다시 그렇게 살게되면 차라리 죽어버리자,

절대 가난하게는 살지 말자라고 다짐했던

스무살 뉴욕에서의 처음 11월, 또 그 다음해 11월, 또 그 다음해 11월,

이렇게 16번째 11월을 보냈네요.

 

뭐 지금도 부자하고는 거리가 멀지만서도ㅎㅎㅎ

 

밥 걱정, 난방 걱정이야 안하고 사니깐 굉장한 차이는 차이죠ㅎㅎㅎ

이 차이는 실로 엄청남.

김치도, 마켓에 항상 배추 나오니 그 때 그 때 사다 담가 먹으면 되고.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11월이 가고 아예 칼바람부는 12월이 되면

그래도 마음잡고 긴 겨울나기 적응 태세를 갖추긴해요.

으....겨울 지겨워 지겨워....하긴 하지만, 그래도 싱숭생숭 단계는 지나고 그냥 단순 짜증 모드가 되기 때문에

딱 11월만 어떻게 잘 넘기면

또 한 번의 겨울을 그럭저럭 보내게 되는데...

 

그렇게 올해의 11월도 갔고, 12월도 이젠 거진 다 갔고,

해가 바뀌면 꼭 이력서 돌려서 취직하리라 하는 다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력서를 써 놓기는 써 놓고도,

정말 부끄러워서 어디 보내지를 못하고 있다는.

이건 학교 졸업한지 십년이 넘도록 뭐 하나 제대로 일한 경력이 없네요.

전공하고 상관없이 첫 직장 잡은것까진 그래도 좋았는데,

어디 한 군데 일년을 넘게 다닌데도 없고,

이 쪽일 조금 하다, 에이 아니다, 해서 또 다른거 하다, 아 이것도 아니야, 를 반복.

그나마 마지막 직장에서 2년 반을 일했어 가지고, 그 때 직장서 일년 넘었던 시점에서 친구들이

'야 너 인간됬구나...떡이라도 해서 돌리고 잔치하자' 그랬었는데...

그 직장 그만둔지도 또 2년 반의 공백기를 이력서가 말해주네요.

 

참말로...내가 사장이라고 직원 뽑는대도 누가 저런 이력서 보내면 면접하자는 소리도 하기 싫을거 같음.

 

나는 정말 조직 생활이 안맞아.....

 

라고 진단을 내렸지만, 사실 저거 남들이 듣기에 엄청 배부른 소리 맞긴하죠.

누구는 적성에 맞아서 직장 다니고, 누구는 남의 돈 쉽게 받는 사람 있나요.

다들 더럽고 치사해도 참고, 아니꼬와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고 그러고 사는데,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으로 아침마다 괴로워서 샤워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게

나만 그런건 아닐텐데,

출근길부터 기운이 다 떨어져서 점심 시간 바라보고 오전 근무 버티고,

퇴근 시간 바라보고 오후 근무 버티고,

주말이면 뭐해, 그 끔찍한 월요일 아침이 또 화살처럼 올텐데 하며 금요일 밤조차 즐겁지 않은 것도

나만 그런게 아닐텐데,

나는 대체 왜 이리 대책없이 사회부적응자로 살고 있는건지.

간혹 하는 일이 적성에 잘 맞는다, 일이 즐겁다,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요.

 

직장을 그만둘 때, 남편과 합의하기를

 

나 딱 반년만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

내가 정말 뭘 잘 할 수 있는지, 앞으로 뭘 계속하면 좋을지 차분히 생각해 보고 싶어..

 

원래 게으른 사람들이, 말로는 저렇게 이유도 그럴싸하게 잘 갖다 붙이잖아요.

저리 말했더니, 남편도 흔쾌히 그러라고 했는데, 그 반년이 지금 2년 반이 넘어가고 있어요.

내년 5월이면 꽉차게 3년 됨.

 

 

제가 집에 있는 기간을 월급으로 환산해서 그간 얼마의 손해를 보고 있는건지를 정산해서

정기적으로 확인 시켜주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취직은 꼭 해야 해요ㅎㅎㅎ

 

그렇게 없이 자라느라 그 고생을 했으면, 악착같이 일해서 돈 모으고 살아야지,

당장 생활비 된다고 사지 멀쩡한 젊디 젊은게 어찌 이리 사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혀를 차시고,

걔는 왜 그렇게 돈 욕심이 없는지 몰라, 하면서 제 친구한테까지 흉 보시면서

 

저보고, 돈쓰는 재미라도 붙이라는 거예요.

(동기부여를 하라 이 말씀인거 같음)

나가서 벌고, 번돈으로 좋은거 사고, 이사도 가고, 침대도 바꾸고 다 하라고.

너 친구들 하고 사는 것 좀 보라고, 다들 집도 사고 하는데 왜 혼자 이러고 있냐고.

 

 

저는 그런거 안하고 차라리 일을 안하겠다, 는 주의라

제 모친하고 저하고 돈벌이와 소비에 관한 철학이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는 상황.

다만 말미에 '그럼 애라도 낳던가!!!' 라는 소리는 이젠 더 이상 안하시네요.

이건 집에 있는다고 살림을 반짝 반짝하는 것도 아니면서 하루 종일 뭐하냐고 난리.

 

저 집청소 안하는 것에 대해, 이 집에 사는 저나 남편은 암시롱도 안하는데

오로지 우리 까칠한 모친만 엄청나게 괴로워하심.

저희 엄마가 무지하게 깔끔하시거든요. 청소의 귀재.

한 번 지나가셨던 자리는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다른건 몰라도 또 한 깔끔 하셨어가지고

어렸을 때 이부자리 깔기 전에 항상 걸레 빨아다 방 구석구석 깨끗이 훔치고 이부자리 깔아주셨는데..

 

저보고 대체 넌 왜 청소를 안하는거냐고, 누굴 닮아 그러는 거냐고 다그치시는데...

전들 아나요. 내가 왜 이러는지, 누굴 닮아 이러는지.

 

가만, 어렸을 때 살던 동네서 옆집 아저씨가 좀 지저분 하더라는 소문을 들은 것도 같고..

 

아, 나도 몰라.

 

아뭏든지,

제가 사실 돈 욕심이 없는건 아니죠.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있나요.

다만 게으를 뿐이라는게 정답인거 같은데,

아뭏든지 더 이상 집에서 이러고 있는건, 노모한테도 불효,

남편한테도 사실 미안,

혼자만 저 거친 바깥 세상에서 용쓰고 집세 밥값 반찬값 다 벌어오라고 하는게

부부 의리상 더 하긴 사실 좀 많이 미안하고.

 

남편은, 갑자기 풀타임으로는 말고 파트타임으로 시작해서 웜업을 하라고 제안 중인데

그것도 괜찮은 생각인거 같고요.

취직해서 돈 벌면, 다달이 드리는 엄마 용돈부터, 내년엔 인상해 드리고 싶고요ㅎㅎㅎ

 

직장 그만 둔 이후로, 올해도 아무 하는 일 없이 이렇게 지리멸렬 가는가 싶더니,

막판에 이런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서 한 가지 숨통은 틔였어요.

저도 저지만,

남편이 너무 너무 좋아하네요.

 

본인은 물론 자기 회사 사람들이나 시댁이나, 한글 한자도 못읽는 사람들인데,

고등학교 동창들한테까지 다 자랑질 벌써 끝내 놨고요.

크리스마스 때 시댁 갔을 적에, 저녁 내내 제 칼럼쓰는 얘기.

첫 글 올린 이틀 째 조회수가 천도 넘었다는 자랑.

 

아..거기서 이백은 빼.

그건 내가 한거야.

 

저 말을 솔직하게 하고 싶었는데, 못하고 넘어갔네요.

해 넘기기 전에

뉴 이어스 이브 때 고백할까 봐요.

 

올해는 친정에서 어수선하고 서로간에 마음 상하는 큰 일들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평생에 없던 불면증까지 생겨서 고생했고,

제가 체중 변화가 거진 없는 사람인데 두달여 기간에 살이 15파운드까지 빠지기도 했고

(두 가지 다 회복새에 들어서서 지금은 차차 나아지고 있네요.

살도 다시 찌고 있고요)

형제가 많다보니 조용한 적은 거진 없긴한데 그래도 올해는 유독 좀 큰 사건들이.

내년은 천천히 시간을 갖고 서로 마음 상한 부분을 치유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고,

 

그 외의 부분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딱 올해만 같았으면 싶네요.

엄마도 이 만큼만 한 해 또 건강하시고,

남편도 이 만큼만 건강하고,

돈도 딱 요만큼만 계속 벌어다 주고ㅎㅎㅎ

우리 부부 서로 생각해주는 마음도 딱 요만큼만 계속 됬으면 하고,

 

저만 취직하면 꼭 만사 형통이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어요.

 

여러분들도,

모두 모두 대박 나시라는 실현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덕담은 저는 하기 싫고,

 

올해 보다는 한 가지 한 가지가 더 잘 풀리는 내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건강 하시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