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편이 회사에서 짤렸습니다.

암튼지 사람 부려먹기만 하고 박봉에 그지 발쌔기 같은 직장,
이제부터 안 나가도 된다니 제 속은 시원하네요.
그러게 내가 그만두라고 그만두라고 몇 년을 얘기했고만,
그리 미련하게 꾸역꾸역 다니더만 기어이 이렇게 토사구팽을 당하는 구만요.
자르는 것 까진 좋은데,
개인 사물 찾으러 다음 날 가겠다니, 오지 말라 하대요..

이럴 수가 있나요.
거진 7년을 다닌 회산데...
벌써 빌딩 씨큐리티 가드한테 출입 금지 신청 해놓았다고 그러네요.
남편은 지금 여기에 제일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급작스런 해고 통보에 짚히는 바가 전혀 없는건 아닙니다.
갑자기 자르는거 좋다고요, 백번 양보해서 그거까지 이해해 줄 수 있는데,
남편이 어제 전화로
어떻게 개인 사물을 내가 못 챙겨오게 할 수 있느냐,
빌딩 시큐리티 가드 대동하고 다 지켜보는 가운데 내 개인 물건만 챙기면 되지 않느냐, 해도
안된다고 한게 정말 기가 막히는군요.

내가 당신들하고 지난 7년을 일한 사람이라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말할 때는 정말 제가 눈물이 왈칵 솓구치려고 했네요.

그것들 얼마나 잘사나 두고 본다는 말도 소용없고,
(세상이 원래 저런 것들이 더 잘 먹고 잘 살잖아요
두고 봐 봐야 내 속만 더 뒤집어지지..)

식구들끼리 죄다 달라붙어서 버는 돈은 다 지들끼리 나눠갖는 코딱지만한 회사서
객식구로는 신랑이 제일 처음 들어갔고,
신랑 이후에 더 고용한 두 명은 결국 못 버티고 더 월급 많이 주는데 찾아 나갈 동안
그리 꾸역꾸역 머슴 노릇을 하더만...

저야 뭐,
아무 마음의 준비가 없는 상태서 찾아오는 이런 위기를,
살면서 한 두 번 당해본 게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위기극복 액션 플랜 잽싸게 짜는데는 아주 일가견이 있거던요.

보니깐, 석 달은 어찌 어찌 버티겠네요.
집주인이 마음이 좋아서 집세 석달 정도 밀려도 어찌 할 사람도 아니고,
일단 이번 달 집세는 낸 상태고ㅎㅎㅎ 야호~~~~~

세금보고 해봐야 보너스 받은거 정확히 얼마가 저희 손에 떨어지는지 알 수 있지만,

일단 그거 현금으로 생활비하고
세금보고 4월 마감때까지 개겼다 하면 되고,
4월 셋째 주에 5천불 짜리 계 타는거 하나 있어요.

(둘째 언니가 계주로, 5월에 휴가 비용으로 하려던 거였음)
2,3월을 못 붓게 되면 그 중 4천불만 우리 돈이 되겠지만, 암튼 그렇고요.

제가 직장 알아보는거 조금 더 부지런히 해야는 하겠지만,
일단 한 달 정도 신랑하고 같이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 같고요.

신랑한테는 이 참에 최소 석 달 논다, 생각하고
맘편히 먹으라고 일단 그래 놨고요,
남편 학자금 융자 상환, 앞으로 23년 남아있긴 하지만, 뭐 큰 돈은 아니라 참 다행이니,
아예 이참에 그눔의 자격증이고 나발이고 아예 업계 떠나고 싶으면 맘대로 하라고 했어요.
어차피 드런 것들만 모여 일해먹는 업계니,
기타나 들고 밴드나 하던지 맘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뭐 나야 다룰 줄 아는 악기라고는 탬버린 밖에 없으니
(집에 불 들어오는 탬버린 개인 소장하고 있음)
가죽치마 입고 탬버린이나 치면서 당신 쫒아 다닐란다.

나 돈 있어야 사는 여자 아니고,
이 따우 꼴 보면서 돈 벌어봐야 인간이 존엄성이 없다고, 일장 연설을 제가ㅋㅋㅋ

일단, 엇저녁은 샴페인 두 병 사다가
남편은 기타 치고 저는 옆에서 장단 맞추고 잘 놀았어요.
남편이 밴드 생활도 몇 년 했었었고, 곡도 조금 쓰거든요.
그런데 노래는 못해요ㅎㅎㅎ
기타를 치는것까진 좋은데 노래까지 가미하면 엄청 웃김.

제가 2000년 연말쯤에 달랑 석 달 일한 곳이 있었어요.
위염에 질염에 벨 염증은 다 얻고 도저히 내 정신력으로는 더 이상 못버틴다, 하고 나온
내 인생에 제일 길었던 석 달을 살았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 때 몸도 많이 안 좋았고, 마음은 피폐할 때로 피폐했고,
학생이던, 그 당시 내 남자친구 신분이었던 남편이 그런 저를 보고 노래 하나 쓴게있어요.

제목은, it can be arranged 고,
내용은 뭐 딱 저 말대로, 지금 안 풀리는거 나를 힘들게 하는거
이거 다 해결될 수 있다, 너무 괴롭고 힘들어 하지 마라, 힘 내라 힘, 뭐 이런.

나를 위해 썼던 저 노래를 어제는 본인을 위해 열창을 하더군요.
콧구멍 벌렁 벌렁 해대면서.

그래, 다 잘 될거야.
it can be arranged, 그렇게 마음 먹자고...

노래를 들으면서는 저렇게 생각했는데,
자려고 누웠더니, 제 분노는 취기를 타고 활화산처럼 끓어 오르대요.

이일이 앞으로 남편 인생에 어떻게 내내 상처로 작용을 할지,
저 마음 약한 사람이 이 배신감을 어떻게 극복할런지,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저는 평소에 무슨 일을 할 때 '기회비용' 따지기와
(이래서 이러느니 차라리 안 하는게 낫다 뭐 이런 식이요)
고 다음에 악재가 발생했을 때 '더 나쁠 수도 있었다' 목록을 작성하는게
생활화 되가지고 이번에도 생각해 보니, 정말 상황이 이만하길 다행이네요.

앞으로 한 달 정도 지나서
수입 끊긴 여파가 온 몸으로 실감이 되기 시작하면 매일 매일 짜증에 한숨이 시작 되겠지만,
일단은 일 터진 직후라 이런 느긋한 생각이 드는군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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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째, 연말 보너스라도 줬다
이거 아니면 지금 당장에 돈 한푼도 없을 뻔 했는데..

둘 째, 역시 싼 렌트비 월세살이가 최고
집이라도 한 채 쥐고 있어서 다달이 모게지 2천 5백불씩 내지는 3천불씩 꼬박 나가는
그런 상황이었더라면 얼마나 암담했을까.

렌트비도 시세 만큼 천오백불 내지는 2천불씩 내고 살고 있었다면 또 얼마나 부담 됬을까.

우리 부부가
소유물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나를 소유하는 상황으로 만들며 살지는 않겠다라는 철학대로
아무것도 업그레이드 하지 않고 살았던게 이렇게 제대로 빛을 발하는구나.

처녀 때 부터 살던 이 아파트, 결혼을 하면서도
남편 월급이 올랐을 때도 좀 더 깨끗하고 폼나는 아파트로 이사안가고 버틴게
지금 이렇게 보람있을 수가 없네요.

요사이 이사온 사람들은 시세대로 내고 살지만
저는 그래도 10년 전에 꿰차고 들어 앉은지라,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싸게 내고 있거든요.

셋 째, 우리 부부,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녀야 하는 지병이 없다.
아픈 상태였다면 매우 많이 절망적이리라...
이만큼 건강하기가 정말 하느님 감사합니다. 가 절로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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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재밌고 신나고 즐거운 얘기로 시작했으면 좋았을걸
이런 구질구질한 소식을 구태여 한 이유에 대해 변명을 좀 하자면
혹시라도 신년 벽두부터 안좋은 일 있으셨던 분들 계시면
나만 정초부터 재수 옴 붙은게 아니었구나, 위로 하시라는 차원에서.

사실 지금 기분 엄청나게 더럽긴해요.

남편은 한동안 슬럼프에 빠질 것 같아 너무 걱정되고,
정말 이렇게 더티한 것들하고 같은 세상에 어울려 사느라
내가 인간답게 못살고 개 돼지처럼 사는가 싶기도 하고,
확 다 일렬로 세워놓고 똥침을 메겨 버리고도 싶고,
이렇게 내 남편 마음 아프게 한 것들, 똥침보다 더한 응징도 하고 싶고,
결국 세상이 또 이렇게 참고 사는 사람만 홍어X 되는가 싶어
제가 평생 갈고 닦자라고 마음먹은
'긍정적 사고 갖기 노력'에 빨간불이 들어 오누만요.

어제는 남편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삼계탕을, 정성을 다해 끓여 대령했는데 몇 입 못 먹더군요.

그래..에지간히 허탈하겠지...
하긴 이 상황에 입맛이 있으면 그게 이상하지..

그래도 어째요,
사람이 살면서, 나쁘고 억울한 일 하나도 안 당하고 살 수는 없으니,
기왕 내 팔자에 책정된 몫으로 겪어야 할 일이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겨 내야지 별 수 있나요.

어쨌든 지금 이 상황에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그 사람들 미워하기가 아니고 남편 마음 위로해주기이니
저는 계속 남편 좋아 하는거나 좀 해 먹이면서 화를 다스릴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