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만이었다.
정확히 삼년하고도 2개월.

삼년만에 마주하는 그는 체중이 많이 빠져있었다.
몸이 날렵해진 탓에
얼굴은 제 나이보다 다섯살은 젊어보였다.

가벼운 목례가 오간 후에
그가 먼저 말을 건넨다.

오랜만이네요......그 사이 결혼은........?

그의 질문에 가슴에 찌르르 통증이 온다.

......했군요..........

왼손 약지에 낀 결혼반지를 봤으리라.........

명치끝의 통증은 계속된다.
삼년전 그를 마지막으로 봤을때도
나는 가슴이 이렇게 아팠었다.

그를 본다.
아무 감정이 실리지 않은 표정.

나에게 있어서는
가슴이 아프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사람인데........

이런 나를 바라보는 그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하다.
나를 기억이나 하긴 하는걸까.

가슴이 아파요........
가슴에 커다란 못이 박혀있는 것처럼요.
어떨땐 상채기에 소금 뿌린것처럼 아프기도 해요.
밤에 자려고 누우면 더 하구요.........

벽속의 그림처럼 앉아있는 저 사람 앞에서
언제나 속을 드러내는 건 나 뿐이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기 할말을 한다.
나는 허둥대며 내가 할말조차 기억을 못해낸다.
혹시 기분이라도 거스를까 싶어
묻고 싶은 것도 참는다.

내가 왜 이러지......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이렇게 허둥대지 않아도 되는데.........

삼년전 마지막 보았을때도 그랬고
십년전 처음 그를 알게 됬을 때부터 그랬었다.

삼년전 그를 두번째 보던 날,

나는 이른 아침 샤워를 하고 그가 있는 곳의 문을 바쁘게 두드렸었다.

간밤에 아무 것도 먹지 못한 후였다.
그렇게 힘없이 그를 두번째로 보게 되었다.
가슴은 여전히.....
정말 많이 아팠다.....

침대에 누운 내 팔을 조심스럽게 잡은 그,
두렵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아프진 않을까......

눈을 조용히 감았고 다시 눈을 떴을 땐 그는 옆에 없었다.
내 머리는 아직도 젖어 있었다.

본능적으로 시계를 쳐다 보았다.

10분이 지난 후였다.

후후.

이렇게 빨리 끝날 수도 있는 거였구나.
별거 아니구나......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아무 기억도 없다.

그냥 이렇게 끝이 난 거였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그가 있는 그 곳을 빠져 나올때
그는 나늘 배웅해 주지 않았다.

바쁜 사람이잖아...
그냥 이렇게 조용히 내가 알아서 나가는게 쿨한거야.

커피를 한 잔 사들고
회사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그렇게 나는 그를 두번째 보았던 거다.

두주 후 그를 세번째 보던 날,
그는 나를 위로했었다.

괜찮아요.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역시 그가 나에게 할애한 십분여의 시간 동안
하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그가 나에게 했어야 할 말만을 황망히 듣고
그냥 그렇게 다시 나오고 말았다.

그렇다고
불공평하다고
초라하게 항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그와 나는 처음부터 불공평한 관계임을 받아들여야 할 따름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 공평한 관계는 어디에도 없다.

부모, 자식간도 그렇다.
내 눈앞의 어린 자식이 소중하고 아까울게 없을 동안
외로울 부모 마음은 보살펴 드릴 여유가 없다.

노사 관계는 또 어떠한가.
‘회사와 함께 성장할 성실한 직원 구함’
열악한 근무환경에 군소리말고
박봉에 토달지 말고 머슴처럼 일이나 하라는 소리다.

세상이 불공평한건
그 세상을 메우고 있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한다는 연인 사이는 어떤가.
서로가 상대방이 더 헌신적이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확인해가는 피로한 과정일 뿐이다.
불공평한 관계에서 내가 승자이고 싶은........

불평하지 말자......
나 역시 누군가에게 불공평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멍청한 밤들을 보내던 때에도
혼자서 독한 술을 마시던 나이 어린 여자애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사람의 마음은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았던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동안, 그가 먼저 말문을 연다.
조용히 자기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아무 감정도 없이 검토하던 그가 묻는다.

술은......끊었어요?
 

나는 바로 대답을 못하고 잠시 머뭇거린다.
 

아니요........

마지못해 대답하자 갑자기 쥐랄 쥐랄 생난리가 난다.

아니, 의사가 시키는건 하나도 안하면서
젊은 분이 위장내과를 이렇게 자주 오시면 어떡합니까?

아따, 윽박지르기는.
누군 오고 싶어서 오나.
아 의사양반, 당신은 술없이 세상살이 버티는 재주 있나본데
나는 없수다!

성질같아선 저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근데요, 요샌 아주 쬐끔 밖에 안마셔요.
커피도 하루 세잔으로 줄였어요.........

라고 말하는 비굴한 내 자신이 정말 싫다.

저기, 내시경 한번 더 찍어야 될까요.......?

지금 증상가지곤 내시경까진 필요없을거 같습니다.
내시경 그렇게 막 찍는거 아닙니다.
우선 이 약 먹고 2주 후에 오세요.

덴장, 누가 막 찍으래나.
접때 해보니깐 10분 밖에 안걸리고 아프지도 않길래
그냥 한 번 물어본거지.
제약회사서 홍보용으로 공짜로 준 약 던져주면서 생색은.

그래도 내가 참는다 약값 굳어서.
누군 당신 보고 싶어서 여기 오냐고,,,,,,,,
위염 재발한거 같아서 왔다고,,,,,,,,,,

내가 더러버서 아프질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