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거, 노인네 어찌나 성격 까칠하신지..

까칠대마녀는 제가 엄마에게 지어드린 별명인데,

당연히 당사자는 모르고 계십니다.

제가 뒤에서 그녀를 지칭하는 별명이죠.

물론 그녀에게도 이름은 있습니다.

골수 미국 사대주의자답게,

시민권 따시면서 아예 법적으로 바꿔버린 영어 이름도 있고요ㅎㅎㅎ

진짜 웃김ㅋㅋㅋ

당연히 라스트 네임도 있습니다.

그녀의 라스트 네임은 '노'

평소에는 노여사라고 제가 잘 부릅니다.

노여사께서 기분 전환을 위해 뱅기타고

뉴올리언즈 친구분 댁에 가셨습니다.

이 시점에 아주 탁월한 결정이라고 봅니다.

한 한달 정도 계실거 같아요.

전 그 동안 해방입니다. 음하하!!!!!!!

그제는 동남편하고 노여사한테

여행 잘 다녀 오시라는 인사드리러 방문하여

차려주시는 저녁 밥 잘 먹고

좀 앉아서 티비도 보다가 왔네요.

남편이 채널을 아메리칸 아이돌에 맞춰 놨길래

심드렁하니 소파에 길게 누워서 보다가

정말 너무나 노래 못하는 어떤 청년 때문에 실컷 웃고요.

갑자기 생각이 나서,

저거 나이 제한이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남편 대답이 28세인거 같다고 하네요.

에잇,,,,,,,,,나도 나이만 아니면 저기 나가는건데...

했더니,

무슨 노래 하시게요?

합니다.

내가 어제 했던 노래 있잖아. 한국 노래.

그거 춤도 있는데 나 그거 똑같이 할 수 있어. 볼래?

하고 벌떡 일어나서,

“흠흠. 제목은 웨키 월드(wacky world) 입니다”

하고 율동을 곁들어 노래 한 곡을 뽑았더니 남편이 아주 즐거워 합니다.

제가 평소에

잠자리 누워서 자장가 식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둘이 손잡고 산책 나가면 또 흥얼흥얼 하기도 하고 그러거던요.

제 노래가 끝나면 남편은 항상 '듣기 좋다'라고 말을 해줍니다.

예전엔 한국 동요를 자장가로 많이 불렀는데 요샌 잘 안해요.

엄마가 섬그늘에 꿀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일하러 나간 엄마에 혼자 집보다 잠들어 버리는 아가에

아...이거 상상만해도 너무 청승맞은 장면이라 이젠 안 불러요.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기차 지나가는 철길 옆에 붙은 무허가 오두막집도 심란하거니와

그 안에서 잠만 잘자는 갓난장이도 심란하고,

대체 동요가 왜 이리 다 청승 맞은거야,

이젠 화딱지가 나서 잘 안 불러요.

그 다음부터 그냥 가요를 주로 부르는데,

며칠 전에 동네로 함께 손잡고 나갔다가

제 입에서 그냥 튀어나오는 노래가 있길래 나즈막히 주욱 불러줬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가 다 끝나고도 '듣기 좋다'라는 말이 없네요.

이 노래는 별로 마음에 안드나 보다..했습니다.

그저께 다시 저 노래를

율동을 곁들어 부르니 이번엔 반응이 바로 나오네요.

세상은 요지경~~요지경 속이다~~

하면서, 감기 기운 끝자락으로

아직 코맹맹이 소리가 나온건 정말 완벽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가운데로 몰아 유지하는게

생각보다도 정말 힘들더군요.

그래도 혼신의 힘을 다해 끝까지 다 불렀습니다.

남편도 즐거워하고,

지난 연말부터 저한테 못마땅한게 있어서 저랑 말도 안하고

저녁 내내 눈도 안 맞추던 새침떼기 셋째 언니도

흥미롭다는 듯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주방 뒷 정리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시던 엄마도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지켜보시고...

내 비록 몇 년 후면 마흔이 되겠지만,

그래도 집안의 막내라고

나의 율동을 곁들인 노래 한 곡으로

이렇게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즐거워하니

오랜 만에 막내 노릇 제대로 한 것 같아

눈알은 튀어나올 듯 쑤셔도 보람은 있더군요.

그러나 그 뿌듯함도 잠깐. 그리고 이내 밀려오는 허탈함……

에효...

입담이면 입담,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이렇게 재주가 많은 난데 이렇게 찌그러져 살다니...

출연만 시켜주면 나도 만능 엔터테이너 소리 들을 자신이 있고만,

지금 백수로 몇 년째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회한이……

나도 집에서 조금만 밀어 줬더라면, 지금쯤 떴다 뿐이겠어요,

진짜 잘 나갈 자신이 있었는데 말이죠.

‘그 때 미스코리아를 나갔어야 하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갔어야 했어.

사채를 끌어 써서라도 말야…

넌 그저 조용히 살아주는게 집안 도와주는 일이라는 말은 오빠 말은 무시하고,

더 떼를 써보는 거였는데...’

제가 미국 온 첫 해에 '미스 뉴욕' 나가려고 했었거든요.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 부딪혀 아쉽게도 출전을 못했습니다.

미스코리아 못 나간게 정말 두고 두고 한이 됩니다.

한국일보에 떡하니 나온 광고를 보고 마음이 급해져서

하나뿐인 오빠 붙잡고 사정 사정 했더랬죠.

제발 내보내 달라고..연예계로 뻗어 나가서 꼭 성공해서

오빠랑 엄마 힘든 일 그만하게 해주겠다고, 집안 꼭 일으키겠다고요.

오빠 사장님한테 가서 딸라 이자로 2만불만 어여 빌려 오라고,

그리 간곡히 부탁을 했건만..

키는 제가 좀 되요 다행히.

나머지는 얼굴인데..

사실 눈,코야 장난이죠.

저건 푼 돈이고 웜업하는 개념으로다 살짝만 손보면 되는거고,

그 담에

광대뼈랑 턱, 돌출입 교정하고 무턱 교정,

정도만 하면 나도 나갈 수 있다는데 말예요.

15년도 더 전의 일인데, 2만불 정도면 저거 되지 않나요?

저거 돈 빌려서 깔끔하게 튜닝 싸악 해서

내보내만 주면 나머진 내가 알아서 뜬다니까,

막내 동생의 눈물어린 호소를 단칼에 거절하대요. 오빠가.

그러면서 집안을 위해 그냥 조용히만 살아 달라고..헐...

아니, 오라버니,

이거 세상이 여자가 책 많이 읽고 교양있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밥 많이 먹고 힘 쎄다고 알아 주는것도 아니고,

그저 이쁘면 장땡에 그게 한 밑천인데, 나 좀 밀어주시오!!!

했는데도, 안된다네요...

아직은 현대 의학의 힘도 너한테 어떻게 작용할지는 자기는 확신을 못한다나...

투자가 아니라 도박이라나...헐...

도박이라도 그렇죠.

했어야 했던 일이라고 봅니다.

인생 어차피 한 방인데 말예요.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

조금 무리하게라도 투자를 해야 버는게 있죠.

세상에 100% 안전빵 투자가 어디있나요.

그 어떤 투자나 리스크는 다 있는 법이거늘…

그 때 미스코리아만 나갔어 봐요,

재벌집 며느리가 됬을지,

미스 월드 참가차 해외 나갔다가

아랍 왕자의 사돈의 팔촌쯤 되는 집 자제랑 눈이 맞아서

아들 하나 낳아주고 요트 선물 받고,

아들 하나 또 낳아주고 성 한채 선물 받고,

맨날 드레스 입고 살고 있을지 누가 아나요.

내가 드레스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웨딩드레스 입고 노래방까지 갔던 사람인데..

웨딩드레스 입고 밥 하라고 해도 맨날 할 자신이 있는데...

내가 요트 선물 받으면 설마 나만 타고 혼자 호강 하겠냐고요,

친정 식구들 주루룩 다 태우고

요트 안에 노래방 기계도 떡 하니 설치해서

탬버린, 후레쉬 완벽 구비해 놓고

음주가무 제대로 하면서 지중해 한 바퀴 쌈박하게 돌아주지.

한 바퀴가 뭡니까.

두 바퀴, 세 바퀴도 돌아주지...

저렇게만 풀렸으면

유럽 각처의 별장들 돌아 다니면서 드레스입고

사시사철 핫소스에 생굴먹고 살았을 사람이

방하나 짜리 아파트에 쭈그리고 앉아서

맥주나 들이 부으면서

대가리 떼고 똥 발라가면서 고추장에 멸치나 찍어 먹고 있으니

아...이게 뭐냐고요..

그런데 멸치도 맛있긴 맛있네..

그렇지, 아무리 잘 나가도

만날 서양 음식만 먹고 살 수는 없지.

그럼 뭐,

달팽이 요리 먹다 질리면

중국집에서 우렁 볶음 시켜다 먹고

곰발바닥 요리 먹다 질리면

한국에서 돼지 귀때기 고기 좀 보내달라 해서 먹고

산해진미 골고루 다 먹고 나서는

황금칠한 화장실 변기에 철퍼덕 앉아

황금색 똥이나 시원하게 싸고 살아야

어울릴 사람이 이게 뭐냐고요…

암튼지, 이젠 나이 먹어서 미스코리아도 못 나가고,

아메리칸 아이돌도 못 나가고,

아쉬운대로 누드집 하나 찍고 싶어도

누가 돈내고 내 뱃살 보자는 사람도 없을테고,

제가 생각해도 내 재주가 아까워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다만 한 가지 희망적인 일은,

한국에 사는 사촌동생이, 영화 쪽으로 일을 하나 보더라고요.

촬영을 배우는가 뭐 그런가 봅니다.

그래서 제가 친히 국제 전화를 걸어서,

얘, 이 누나 어떻게 단역이라도 좀 안되겠니?

했는데 뭐 단호한 거절은 아니었습니다.

수줍게, 허허허,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는 걸 보니,

자기도 이 누나가 가능성이 있다는 걸 동의하는 눈치.

단역이라도 시켜만주면 난 한 방에 뜰 자신 있거던요.

길가는 행인을 시켜도,

내 맘대로 그냥 주인공 바짓가랑이 잡고 자빠지던가 뭐 이런 애드립으로.

벌써 다 머리 속에 궁리해 놓은 게 있어요.

난 욕도 일용 엄니보다 잘하고,

뭐든 시켜만 주면 다 잘 할 수 있다고

제가 아주 신신 당부를 했습니다.

사촌 동생이 요새 제 전화를 통 안 받던데,

일이 많이 바쁜가 봅니다.

그래 네가 바빠야 누나를 데뷔시켜 주지.

계속 전화 안 받아도 초조해하지 않으마…….

지지부진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로 마음이 무거워진 가운데,

그래도 남편이 내 재주를 보고 저리 즐거워 해주니...

위안이 됩니다.

남편이 박수를 다 치고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그런 건 어디서 배우셨어요?

하고 묻습니다.

내가 지어내서 한게 아니고 진짜 이 노래 부른 가수가 이렇게 춤을 췄고,

난 그저 오늘 흉내 한 번 내본 것 뿐이라고 설명해 줬습니다.

그런데 잘하긴 좀 잘한거 같다고..

내가 소질은 좀 있는거 같다고 조금 덧붙이고요.

또 하나 진짜 흉내 잘 낼 자신이 있는

'타이거 버터플라이' 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건 남자 가수 노래라 소품으로 콧수염이 필요하니,

다음 기회에 보여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무척 궁금해 했지만,

아무리 남편에게라도 밑천은 좀 지키고 있어야 하고,

개인기라는게 그렇잖아요,

새로운거 계발하고 싶다고 마구 계발 되어 지는게 아니기 때문에

있는거 가지고 버티자면 좀 신중해야 할 필요를 느껴서,

독한 맘으로 거절했네요.

조금만 더 뜸들였다가

발렌타인스 데이 때 저녁 먹고나서 터뜨려 볼까..생각 중입니다.

그런데 참, 콩글리쉬라는걸 알면서도 저리 말하긴 했는데

호랑나비가 영어로 정말 뭐지요?

무슨 이름이 따로 있는게 맞죠?

오후에 전화 드리니,

까칠대마녀님은 무사히 뉴올리언즈에 도착하셨고,

효녀인척 하는 강박관념에 항상 시달리는 이 불효녀는

당분간 내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되서 마음이 홀가분하네요.

노여사, 천천히 놀다 오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