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 여섯,

남편 나이 스물 여덟에 저희가 만났어요.

 

 

남편은 그 때 고향 시골 마을서 이 시티로 내려와 대학원 첫 학기를 하던 중이었고,

저는 학교를 막 졸업하고 셋째 언니 집에 얹혀 살면서,

나도 대학원을 가볼까…..하고 시험 하나 준비 중이었고요.

(결론은 원서도 못 내 봤어요. 시험을 너무 못 봐서리ㅎㅎㅎ)

 

 

남편은 그 당시 정리가 미처 안된 오래된 사이의 여자 친구가 있었어요.

처녀 총각들 사귀다 다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사귀다 헤어지는건 다 뭐가 안 맞고 불편한 이유들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어요.

이 커플의 문제를 남편의 입을 통해 들어본 바,

그 당시 사귄지 4년 된 여자 친구가 결혼 압박을 좀 하던 모양이었고

남편은 그녀와의 결혼도 싫을 뿐더러 이제는 헤어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처음 일년 아주 좋았고 나머지 3년 괴로웠다네요.

잔소리가 장난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세상에 잔소리 듣기 좋아하는 사람 어디 있겠냐마는,

저나 남편이나, 저희 둘, 정말 끔찍하게 잔소리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서로 목숨 부지하는데 지장 있는 일 아니면,

웬만한 일에는

이건 이렇게 해라, 그건 왜 그렇게 하느냐, 뭐 이런 잔소리를 서로에게 일체 안해요.

치약을 위에서부터 짜던, 밑에서부터 짜던,

옷을 벗어서 잘 개어 놓던, 아무데나 휙휙 던져 놓던,

청소를 안하건 빨래를 안하건, 밥을 하던 안하던,

당췌 저런 걸로는 어쩌고 저쩌고 해본 일이 없네요.

다른 쪽으로야 부부싸움 하죠. 만날 좋을 수는 없으니ㅋㅋㅋ

 

 

하여 ,아무튼,

그 잡도 변변치 않은 시골에서 평생을 그리 보내기도 답답하기도 하고,

눈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공식에 의거해

그 여자 친구와 차차 이별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겸사 겸사

시골 생활과 행복하지 않은 연인 관계를 둘 다 청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내로 내려와 대학원을 다니는 방법을 택했다고 하네요.

 

 

문제는, 생각지도 않게

시내 생활 시작한지 두어달 만에 어떤 이쁜 처자를 덜컥 만나 버린거.

그녀를 사랑하게 되버린거.

그래서 이 여자가 아니면 살 수 없게 되버린거.

ㅋㅋㅋ

 

 

그래서 관계를 공식적으로 마무리를 짓는 일이 시급해 지는 바람에

남편은 옛 여인에게 이별 통보를 하고

그녀는 울고…

 

 

왜 눈물이 안 나오겠습니까.

4년을 사귀었고 결혼을 하고 싶었던 남자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헤어지자고 하는데…

 

 

남편은 남편대로 그 죄책감이 컸을 테고.

성격 자체가 어디가서 싫은 소리 한 마디를 못하는 사람인데,

자기도 정말 많이 미안했겠죠.

 

 

그녀와 남편의 가장 큰 문제는, 그녀의 잔소리 말고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2세 문제요.

저희, 결혼 전에 2세는 없다고 서로 확실하게 합의 보고 했어요.

남편은 2세에 관해 확고하게 ‘없다’라는 사람이고

그녀는 아이 서넛은 낳고 싶어 했고요.

 

 

2세 문제는 사실 성격 차이 보다도 더 큰 문제잖아요.

한 쪽은 아이를 전혀 원하지 않고, 한 쪽은 빅 패밀리를 원하고.

가슴 아픈 이별 통보였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녀도 남편과 헤어지고 바로 다른 남자 만나 연애를 하고

저희 보다 훨씬 빨리 결혼을 했네요.

그 남자가, 무슨 금융 쪽 일을 한다던데, 우리 신랑보다 돈도 훨씬 잘 벌고요,

결혼 하자마자 그녀가 그리도 원하던 아이 바로 낳고

근사한 집도 사고,

지금 둘째 임신해서 막달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 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바뜨, 그러나,,,,,

 

 

그녀가 저를 만나고 싶어하나 봅니다. 그것도 아주 강렬히.

 

 

자기 결혼할 때, 청첩장을 남편 회사로 보냈다 하더군요.

한참 지나서 남편이 얘기 하더라고요.

실은 청첩장 받았었지만, 당신이 가고 싶어하지 않을거 같아 말도 안 꺼냈다고요.

 

 

음…잘 했네.

 

 

남편 고등학교 친구 중에, 이 사람 저 사람 그 모두와 연락을 주고 받고

꾸준히 친구하는 타입의 사람이 있어요. 이름하야 주책씨.

저희가 지난 번에 가서 자고 온 그 집 아자씨.

큰 시누하고 둘째 시누, 남편하고 겹치는 친구가 많습니다.

거진 그 물이 그 물이거던요.

 

 

저 주책씨, 큰 시누 옛날 남자친구하고도 여직도 연락하고 만나나 보더라고요.

큰 시누는 그 남자와 만나기는 커녕 연락조차 당췌 안 한다고 합니다.

자기야 그렇게 한 번 연결이 된 사람 평생 지키는 스타일인거야 누가 뭐라겠어요.

다만 그렇지 않은 쪽에서 피하고 싶다면 배려해 줘야 하는거 아닌가요.

 

 

자기가 무슨 파티를 열면

꼭 섞어서 초대를 하고 싶어 한다 이 말이죠.

그래서 제가 주책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저 주책씨께서 작년 이 맘때 팟 럭 파티를 했거던요.

각자 십시일반으로 음식 조금씩 싸와서 나눠 먹고 하는 그거 있잖아요.

저는 갈비찜을 한다고, 그 비싼 찜갈비 사다가 핏물을 빼내 어쩌내

이러고 씨름하고 있는데, 남편이 그럽니다.

 

E (남편의 ex) 네 부부를 초대해도 괜찮겠냐고 주책씨가 물어 봤는데,

그 집 초대할거면 하라고, 그 대신 우리는 못 간다고 했다고요.

저게 그 주책씨는 이해가 안됐나 봅니다.

대체 왜 우리 부부가 그러면 못 간다는 건지…

이미 다 끝난 관계인데, 왜 너의 부인은 그녀를 피하는건지.

저 갈비찜하다 빈정 상해서 다 때려 엎고 싶었지만 그래도 화를 억누르고요,

남편 붙잡고 차근 차근 얘기 했네요.

 

 

당신 친구가, 이해를 못 해?

나더러 쿨하지가 않대? 그래서 당신이 창피했어?

 

 

했더니, 창피까지는 아니라고. 정색을 하지만.

아니긴 뭐가 아니예요. 안 그러면 저한테 뭐하러 저런 얘기 꺼냈겠어요.

안하고 넘어가면 나도 모를 일인데.

주책씨가 그랬겠죠, 그게 무슨 대수라고 너 와이프는 그 여자 만나는걸 피하냐고요.

제 짐작엔, 저 주책씨도 주책씨지만

그녀 쪽에서 꼭 한 번 그런 자리를 만들고 싶어하는거 같아요.

 

 

그녀는 이미 제 사진 많이 봤을 겁니다.

저희 결혼식 사진들, 주책씨 통해 봤을 테고요,

남편 말로는 자기는 저 여인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대요.

하지만, 친구가 여는 파티에 초대하는 손님 관계로

우리 부부가 영향력을 미치니 이거 민폐 아닌가 싶었나 봅니다.

 

 

그녀 입장에선, 날 버린 너, 나 잘살고 있거든?

하는거 보여 주고 싶은 마음도 있기야 했겠죠.

그럼 그거 나 빼고 둘이 알아서 하든가. 나는 관여 안하겠다 이거거든요.

나 없이 그 집 부부랑 어울려 놀던가 맘대로 하셔. 난 안 가.

단지 이거예요.

난 지금 현재 이 상태에서의 내 인맥 관리만도 버거운데

뭐하러 쓸데없이 저런 새로운 관계까지 엮어야 하나요. 골치 아프게.

 

 

남편은 친구가 자꾸 저렇게 나오니

귀가 살짝 그리로 기울었을 테고,

그래서 용기를 내서 저를 떠보시는 식으로 저런 말을 흘렸을 텐데…..

 

 

용기를 낸 것 까진 좋습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싫어서 안 한다는데 뭔 잡설이 이리 많냐고요…

 

 

남편한테 좀 더 확실히 말 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갈비찜 하다 말고, 앞치마 벗어서 획 집어 던지고 마주 앉았습니다.

저 인상쓰고 목소리깔면 좀 무섭거든요.

 

 

그녀 입장에서, 대체 날 버리게 한 그 여자가 누군가….

궁금도 한 거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10년도 더 전의 일이어요.

자기도 자존심 상하는 방법으로 헤어짐을 당했지만

결과적으로 자기 인생관에 더 잘 맞는 남자 만나 아이 낳고 살고 있고,

우리는 우리대로 나름 잘 살고 있고요.

 

 

10년이란 세월, 저 궁금증을 못 버리고 구태여 날 만나보고 싶어하는거

이거 좀 집착 아닌가 전 그리 받아들여 지네요.

 

 

저는 그녀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 조금도 없어요.

나를 만나기 이전의 남편의 연인, 저는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도 나름 풋사랑, 첫사랑, 지루한 사랑, 지겨운 사랑 다 해보고

매달려도 보고, 차기도 하고, 실연의 아픔에 머리도 밀어보고

할 거 다 해 보고 만난게 남편이지만,

그 중에 연락하는 사람 없어요.

사랑 끝내고 친구로 남는 관계?

다른 사람들은 그런거 잘 하나 모르겠는데,

나 한 개인으로서는 그렇게 될 거 같지도 않고,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옛날에 읽었던 책에

남녀 사이에 우정이란, 서로에게 성적인 욕망이 전혀 없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했던 구절이 있었어요.

헤어지기야 서로 지겨워서 헤어졌건,

사랑하기에 헤어졌건, 뭐 이런 이유는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아무튼지 간에 헤어진 이유야 어쨌건,

헤어졌으면 그걸로 챕터 덮고 새 챕터로 진도를 나가야지

같이 한 때 이불 속에서 뒹굴던 사람들이 무슨 우정이예요 우정은.

우정이야 하던대로 이미 친구인 사람들 하고나

싸우지 말고 돈 떼 먹거나 보증 서주지 않고 잘 지내면 되지.

아니 친구가 없어서, 옛날에 뽀뽀하고 껴안고 잠자던 사람하고 하나요.

 

 

결혼 후의 이성 문제는 깨끗할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배우자가 싫다면, 안하면 간단한 거잖아요.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부인이나 남편이 싫다고 하는데

어거지로 그 잘난 우정을 추구한답니까.

 

 

더 짜증나는건,

내 남편이 그녀와 연락을 하고 살겠다고 해서

남편하고 이런 실랑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친구만 깔끔하게 처리해 주면 되는데

제 3자인 친구 때문에 이런다는 거요.

 

 

이거 뭐 이쯤되면,

문화 차이고 나발이고 까지도 끌어 들일 필요도 없겠다 싶더군요.

 

 

남편한테,

내가 그녀를 안 만남으로 해서 우리 결혼 생활에 악영향이 생길

그 어떤 소지라도 있냐고 물었습니다.

 

 

남편,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럼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우리가 혹시라도 나중에 말다툼 같은 걸 할 소지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남편, 그럴 수도 있겠다 합니다.

 

 

자, 답 나왔잖아요.

 

 

내가 이러는건 문화 차이 때문도 아니고

내가 싸이코이기 때문도 아니고,

단지 내가 그러기 싫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이 결정은, 내가 남한테 이해를 받을 일이 아니고, 존중 받아야 할 일이라고요.

 

 

End of story.

Period.

 

 

당신 친구한테 나의 이런 뜻을 전하고,

당신도 행여나 여태 내가 쿨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날 이해하려 들지 말고, 내 결정이나 존중해 주면 된다고요.

이게 옳고 그름의 문제나, 가치관 인생관 문제 아니고 그저 내 기분 문제라고요.

 

 

짜증을 억누르고 얘기 마치고

갈비찜 무사히 다 해서 들고 가서 다른 음식들 남아 도는 가운데

갈비찜만 히트쳐서 일찌거니 동나고, 잘 놀다 왔어요,

저 사건 이후로

저렇게 남편의 옛 연인과의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부부 동반 파티 일은 남편과는 정리를 확실히 했습니다.

 

 

나는 그저 내 뱃속 편하게 사는게 장땡인 사람이거든요.

내 마음이 거스르는데 억지로 되도 않는 쿨 한 척하고 살고 싶은 생각 요만큼도 없습니다.

이런거 말고도 골치 아픈 일 많은데

쓰잘데기 없이 이런 불필요한 골칫거리 안고 살고 싶지가 않아요.

 

 

저희 부부는 내일 수퍼볼 파티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지금 임신 막달이라 못 올 것 같다고는 했지만, 그 남편은 올거 같다고 하네요.

정말 대단한 주책씨 입니다.

그녀는 못 오고 남편만 올 수 있으니, 남편이라도 꾸역꾸역 초대를.

그거야 그 사람 소관이니 넘어 가기로 하고,

난 그래도 안 갑니다.

그녀의 남편하고도 만나보고 싶은 생각 전혀 없거든요.

남편한테는 소신껏 하라고 했어요.

 

 

어찌되나 두고 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