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샤워 하고 나서 머리 좀 말랐을 때 헤어 에센스 발라 주느라

거울 좀 보자니 머리를 좀 잘라 볼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앞 머리를 광대뼈 길이 만큼 좀 잘라 볼까?

아예 짧게 잘라 버릴까?

 

 

지금 머리가 길어 가지고, 굵은 파마 상태여요.

머리색은 아주 시커멓고 염색이나 블리치는 안한 상태고요.

긴 머리에 굵은 파마를 너무나 좋아하시는 노여사 소원 풀이 해드리는 셈이고,

남편 역시 긴머리를 선호.

 

 

짧게 잘라 볼까, 작년 가을에 심각하게 또 고민하다

셋째 언니가 진지하게 만류하는 바람에 접고요.

 

 

저기….넌 그러면 얼굴 더 커 보이는데….

그나마 긴 게 난데….

 

 

하기에…

 

 

한창 때는, 드럭 스토어에서 이것 저것 사다가

집에서 한 달이 멀다 하고 이 짓 저 짓 하느라 머리 카락이 성할 날이 없었는데…

머리에 실증을 너무나 너무나 잘 냈었는데 말이죠.

 

 

그 당시 노 여사가  제 머리카락을 굉장히 불쌍히 여기셨다는..

 

 

왜 하필 니 머리통에 달려서 그 고생을….

 

 

하십디다.

그러다 서른쯤 됬을 때였나, 어느 날부터

하일라이트니 염색이니 이런게 다 싫어 지더라고요.

이런게 나이 먹는 건가 봐요.

그래서 파마만 일년에 두 번 하는 패턴이 됬어요.

한 번은 꼬불렸다, 한 번은 풀었다 하는 거요.

 

 

그러다 지금은 반년에 한 번 하는 것도 심드렁해 지고,

이제는 쭉쭉 핀 머리가 예쁠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스트레이트 하기도 그렇고,

그나마 긴 머리 하자면 이렇게 굵은 웨이브 밖에는 대안도 없고,

지난 번에 한 게 언제더라…그냥 굵은 뼈다귀 갖고 말은 거거든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일 년 넘었나 봐요?

제가 또 파마가 잘 나오고 오래가는 머리털이라…아직도 멀쩡해요.

 

 

내 인생 제일 처음 했던, 다섯 살 때 그 뽀글 파마도

그리 굳세게 오래 가더만…

파마 오래가는 머리가 따로 있나 봐요.

 

 

제가 다섯 살 때,

엄마 낮잠 잘 적에 동네 미장원가서 엄마 이름대고

혼자 파마하고 온 적이 있거든요.

 

 

그 때 저희 집이 살던 동네가 도봉산 밑자락 동네.

지금의 그 곳은 많이 틀려져 있겠지만,

그 곳도 지금은 다 아파트들이 들어 섰다고 하던데, 제가 기억하는

70년대 중반의 도봉산 밑자락 동네, 19번 버스의 종점이었던

내가 열살까지 살았고 우리 엄마가 결혼 후부터 쭈욱 20년을 살았던

그 도봉산 밑자락 동네엔,

벽돌 찍는 공장도 있었고,

큰 포도밭도 있었고,

밤나무들이 우거진 중간에 아이들 공차고 노는 빈 공터도 있었고,

논이 있었는지 까지는 몰라도 밭은 많았고,

 

 

행정 구역 상은 서울시 맞았어도, 풍경은 전혀 서울스럽지 않은

그런 시골 동네 분위기 였거든요.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이 집 저 집

숟가락이 몇 갠지 젓가락이 몇 갠지도 다 알고 사는 그런 동네요.

 

 

동네에 애들이 많았어도,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없었어요.

둘째 언니나 오빠, 큰 언니 또래로가 동네 애들이었고

셋째 언니 나이대의 애들은 몇 명 끝물로 있었지만

나랑 동갑이거나 나보다 어린 애는 없는.

집에서도 막내, 동네서도 막내.

 

 

그래서 나보다 위 연배인 동네 애들이 다 학교간 시점인

낮 동안은 텅 빈 동네 골목을

혼자서 터덜 터덜 걸어 돌아 다니는게 제 주요 일과였거든요.

 

 

지금도 안 잊혀지는 그 짜증나던 오후도

그렇게 여느 때처럼 혼자 이 골목 저 골목을 고독하게 배회하는데

아 그 날 따라 만나는 동네 아줌마들 마다 앞머리 길다고 잔소리들을 하시네…

잔소리 끔찍하게 싫어하는 나한테 말이죠…

 

 

야야, 너 그 앞머리 눈 찌르겠다.

 

 

하이고. 느그 엄마는 뭐가 그래 바빠서 막둥이 머리가 눈 다 찌르도록 안 잘라 준다냐?

 

 

그 당시 애 헤어 스타일이래야,

뭐 다른거 있나요. 엄마가 잘라주는 바가지 머리.

그런데, 엄마가 그 당시 제 앞머리 처리해줘야 할 시점을

한 참 넘겨 버렸던 것 같아요.

 

 

저 날 유난히 내 앞머리가 더 길어 보였던 겐지

아무튼 같은 말 두 번 듣는 것도 짜증나는데

이건 마주치는 동네 아줌마들 마다 그 소리니…

 

 

아 어찌나 듣기 싫던지…

동네 마실 포기하고 집에 와서요,

언니들 학교서 쓰는 색종이 자르는 가위 찾아서는

거울보고 앉아서,

 

 

남이사, 앞머리가 눈을 찌르던 말던!!!

콧구녕을 찌르던 말던!!!

 

 

하고 씩씩대면서 앞머리를 혼자  잘랐다지요.

 

 

언니들, 오빠, 학교 갔다 와서는 제 꼬락서니 보고

웃기다고 뒤집어 지고 난리가 나고,

저녁 때 되서 마침내 외출에서 돌아온 나의 어머니, 노 여사.

 

 

(한숨…) 내가 정말….너 땜에 동네 챙피해서 못 살겠다…

 

 

엄마 들어오거든 잘라 달라고 해야지

어쩌자고 이 쥐뜯어 먹은 머리를 해 놨냐고…

 

 

엄마가 일자로 다듬어 준다고 손을 보긴 보셨는데

그러자면 쥐 뜯어 먹은 머리 중 제일 짧은 길이가 기준이 되잖아요.

앞머리…

거진 다 날라갔다고 보면 되죠.

 

 

다음 날, 동네 아줌마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저 집 막내딸 성깔이 보통 아니라고.

쪼그만게 어른들이 뭐라고 몇 마디 했다고 지가 머리를 잘랐다고 함시롱,

그 꼴 우습다고 웃고 난리가 났죠.

 

 

아니 이 아줌마들이 정말!!! 대체 나더러 어쩌라고!!!

이래도 타박 저래도 타박인가!!!!!!

 

 

그렇게 없는 앞머리로 온 동네서 괄세를 당하고 살던 어느 날,

그런 일이 흔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모처럼 집에 있던 엄마가 셋째 언니와 저를 품에 한 팔씩 안고

낮잠을 자자고 하셨어요.

내가 엄마 한 쪽 팔, 셋째 언니가 엄마 한 쪽 팔을 사이 좋게 차지하고

방에 누웠더니 엄마가 하시는 말.

 

 

우리 내일 셋이 다 같이 미장원 갈까?

 

 

나랑 셋째 언니 파마를 해주시겠다고. 내일 가자고…

 

 

흐미, 이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 그래도 이 눔의 앞머리 땜에 내가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는데,

파마라니….귀가 번쩍 뜨이더군요.

 

 

셋째 언니는, 자기는 파마는 하기 싫다고.

그랬더니 엄마가 그럼 넌 그냥 고대나 할래? 하시고

저야 당연히, 나는 파마 하겠노라고, 꼭 해줘야 한다고 확답을 받아 냈습니다.

 

 

문제는 마음이 급해졌다는거.

그 파마 소리 듣고부터 당연히 잠 다 달아 났습니다.

엄마랑 셋째 언니는 잠이 들었나 봅니다.

쌔근쌔근 숨소리만 들립니다.

 

 

내일?

이 낮 시간이 다 가고, 또 밤이 오고, 그 밤이 다 가고 하면 오는 내일???

그 내일까지 기다리라고???

 

 

아….이렇게 괴로울 수가 없습니다.

이 앞머리 때문에 당하는 수모에서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에

다음 날까지 기다릴 자신이 도저히 없어서

잠든 엄마와 언니를 뒤로 하고 혼자 집을 나서서

동네 미장원으로 가서요,

 

 

아줌마, 저 파마해 주세요.

 

 

미용실 안에 있던 아줌마들이 와하하 웃었던 것도 같고,

다른건 기억 안 나는데,

 

 

우리 엄마가 내일 와서 돈 준대요. 파마해 주세요.

 

 

라고 내가 한 말은 기억이 납니다.

그 미장원 아줌마도, 다섯 살 짜리가 엄마 이름 달고 파마 하겠다는게

기가 막히기야 했겠지만,

어쨌든 해주긴 해 주더군요.

완전 제대로 뽀글뽀글 파마로요.

 

 

파마 다 마치고 무사히 집에 왔더니,

낮잠자는 동안, 먼저 깨서 어디 동네 나가서 노는가 싶었던 막내 딸이,

뽀글뽀글 파마로 떡하니 대문 안을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오빠와 언니들,

내 모습에 기절.

다들 배꼽잡고 웃느라 자지러 지고,

내일까지 못 기다리겠어서 그냥 미장원 가서 엄마 이름 달고 파마하고 왔노라는

내 설명에 엄마는 다시 망연 자실….

 

 

내가 정말 너 땜에 동네 챙피해서 못 살겠다…

 

 

그 다음 날부터,

또 동네 아줌마들 저 땜에 신났죠.

저 집 막내딸이 맹랑하게 지 엄마 이름 대고 혼자 파마를 하고 갔다는 거부터 해서,

나만 보면 박장대소를 하고 웃고요. 기분 나쁘게.

애가 머리는 아줌마처럼 하고 다닐 수도 있는 거지 뭐.

자기들도 다 이런 뽀글 머리면서 왜 나보고만 속가락질하고 웃냐고요!!!

파마만 하면, 앞머리 때문에 당한 놀림은 없어지고

전세 역전될 줄 알았는데, 이게 뭐냐고!!!

나더러 어쩌라고!!!!!!

 

 

아줌마들도 아줌마들이지만, 더 기분 나빴던 건

동네 오빠라는 녀석들의 집단.

나보다 서너 살 많은 그 동네 머시매들이 집중적으로

저를 놀리기 시작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제가 원래도 피부가 까만 편인데, 햇빛에 나가면 또 금방 잘 타고요,

원래 그 당시 애들이란게 한 겨울 빼고는 항상 밖에서 노니

얼굴이며 팔이며 다리며 다 시커맸죠.

거기에다 머리를 바가지 스탈에서 빠글빠글 볶았으니

동네 머시매들이,

 

 

아프리카 추장 딸,

아프리카 토인,

 

 

이라고 함서, 저만 골목에 떴다 하면 저를 둘러싸고

저리 놀려대기 시작한 겁니다.

위기를 극복해 보고자 놓은 강수가 이렇게 악재로 작용하다니…

인생,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건지…

아….왕짜증….

 

 

허나,,,,

내가 누굽니까.

동네 오빠 녀석들 이 따우 놀림에 실의에 빠져

하루 왼 종일 집 안에만 있었다면 그건 제가 아니죠.

그럴 수야 없지.

나도 내 라이프가 있는데…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이렇게 찌그러져 있으면 내가 지는 거다,

나도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복수를 하자!

 

 

해가지고요,

 

 

나를 저리 놀리던 동네 오빠 녀석들이 골목에서

구슬치기라도 하는 정황이 포착되면,

아주 조용히…..근처까지 살금 살금 가가지고요,

 

 

땅에다 삼각형 모양 손가락으로 그리고 그 안에 구슬들 가지런히 모으고

게임 막 시작하려고 폼 잡는 그 순간에,

짠! 하고 뛰어가서 2-3초 동안 순식간에 발로 이리 저리 다 차서 망가 뜨리고요,

다시 쥐새끼처럼 샤샤삭~ 우리 집 대문안으로 도망.

 

 

저 짓을 반복해서 몇 번 했드만…

아….효과 좋더만요.

 

 

길에서 마주쳐도 나를 놀리기는 커녕

자기들이 알아서 피하더만요.

놀다가도 내 그림자만 보이면,

 

 

야, 야, 저기 깡패 온다, 다른데로 가자.

 

 

하면서.

 

 

자식들이 나잇살이나 나보다 더 먹고 남자가 되서리

집단으로 기집애 하나를 못 감당해서 피하기는….

쯧쯧쯧….

 

 

그 파마 머리가 진짜 풀리지도 않고 꽤나 오래가대요.

저는 그 질긴 파마가 다 풀릴 때까지,

당당하고 또 당당하게 고개 쳐 들고

동네 잘 활보하고 댕기며 잘 살았습니다.

 

 

부당하다 싶으면, 정면 돌파로 간다, 나는 당하고만 살지는 않겠다,

라는 인생 철학이

저 때 부텀 생긴 거는 같은데,

오히려 지금 이 나이 되니….마음이 좀 약해 지려고 해요.

내가 잘못 살았나 싶기도 하고요.

이젠 밟으면 밟히기도 하면서 좀 참고 살고 그래야 할까 봐요.

 

 

다들 자존심 없는 사람 없을 텐데,

좀 참고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꾸준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나는 보면,

항상 원점인 거예요.

 

 

그제는

뉴 올리언즈의 친구 분 방문을 그새 마치고

득달같이 뉴욕으로 돌아오신 노 여사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드시는 약을 타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하셔서요,

보험 회사에 전화하고, 뭐가 잘못 됐는지 알아내고,

약국 가서 무사히 약 타오고, 볼일 잘 보고요.

둘이 점심을 먹는데….

 

 

남편이 집에 있게된 이후로

노 여사가 요새 저한테 말도 아주 나긋나긋하게 하시고

아주 아주 다정하게 대해 주시거든요? ㅎㅎㅎ

거진 천지가 개벽할 노릇임.

 

 

점심 먹는데, 아주 진지하게, 정말 진심을 담아서 저한테 충고를…

보통 때 늘 하시던 잔소리랑은 목소리 톤이 틀려서요.

아주 조용 조용하게, 한 마디 한 마디 조심하는 흔적이 역력한ㅎㅎㅎ

 

 

느네 아버지, 그렇게 평생 일 안하고 산 거.

너 그거 닮으면 안된다…

자존심 보다 중요한게 책임감이야.

 

 

눼~~~

 

 

어떤 직장을 잡던, 이번엔 좀 더 참아 보겠다…다짐도 하고요.

내가 하기엔 이건 너무 하찮은 일 아니야? 하는 허세.

이런 후진 직장에서 일 한다고 말하기 챙피해. 다니고 싶지 않아. 하는 투정

내 안에서 이런 것들, 많이 많이 버려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이력서를,

내가 찾던 일 외에도, 다방면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노모를 모시고 미장원을 가서 머리를 해드려야 할 나이지

엄마 이름대고 외상으로 파마할 나이가 아니니…

 

 

흥미로운 건, 요즘 제 생활의 악재는 오로지 돈이 쪼인다는거.

고거 하나고요.

나머지는….다 편하고 너무 좋네요.

 

 

제가 그간 집에 있으면서 내 인생에 관해 고민하던 것들,

그리고 남편과 나의 관계,

남편이 회사일을 성실히 하고 월급을 따박 따박 가져다 주는 동안 내가 편했던 거,

하지만 남편이 시들고 있었던거,

저렇게 시드는거 그냥 모른척하고 한 평생 묻어가면 나는 편하겠다, 라고 생각하던 거.

그래도 역시나 내 마음 한 편은

뭔가 다 채워지지가 않는다는 걸 느끼던거.

생활비 걱정이 없었을 때는,

남편이 맨날 저녁 집에와서 궁시렁 대는거 지겨웠었는데,

이젠 내가 더 이상 꽤 부리지 말고, 내 몫을 해야 할 때다, 라고 확고하게

마음 먹으니 궁극적으로는 마음이 편해 졌다는거

참 흥미로와요.

 

 

요즘은 하루 하루가, 나를 재발견하고 남편을 재발견하고

우리를 재발견하는 그런 기분이예요.

내가 혼자 가슴 속에서 끙끙 앓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풀어가는 느낌이요.

 

 

남편의 찌들었던 얼굴에 생기가 돌고,

내가 알던 예전의 그 다정하고 항상 방긋방긋 웃는 그 남자로 돌아온거.

생활비 쪼들리는 대신 되찾은 저 남자의 해맑은 웃음.

 

 

만약에 만약에

정말 저 둘 중에 하나 선택해야 한다면…

요즘 같아선, 저는 후자를 선택하겠다….요런 마음이네요.

아직 덜 쪼들렸나 봅니다ㅋㅋㅋ

 

 

이제는 내가 이 남자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이게 제가 요즘 하는 생각의 대부분이어요.

 

 

사랑이 있는 한….나는 이 세상을 충분히 살아낼 수 있다고,

이 사랑에 취해 나는 오늘도 웃고, 내일도 웃으며

그렇게 살 거라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아~~ 행복해라~~~

 

 

아직 파마는 안해도 될 것 같고, 좀 다듬기나 할까 봐요.

머리 예쁘게 다듬어서 더 행복해지고 싶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