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즈 데이 기념으로 특식을 해 먹는다고,

그래 나도 이번에 필레미뇽을 구워 봐?

아니면 그냥 하던 대로 립 아이를 살까?

마구 고민을 며칠 동안 하다,

남편과 상의 끝에 필레미뇽을 한 번 도전해 보는 걸로 결정.

 

 

낮에 공원으로 산책을 하고 둘이 함께 푸주간 가서 고기 사고

맛나게 스테이크 구워 먹읍시다, 로.

 

 

그러나...

막상 그 전 날 밤,

이틀째 냉장고 안에 있던 생삼겹이 생각이 났습니다.

고 이틀 전에, 노 여사랑 정말 오랜 만에 한국 마켓가서 장을 보고 왔었거든요.

얼리면 맛 없어진다고 그냥 냉장실에 두었었는데, 그거 이틀 됬으니

얼른 먹어 치우던지, 얼리던지 해야 하잖아요.

 

 

내일, 그냥 이거 구워 먹을까?

 

 

했더니, 남편도 그러자고 하네요.

산책은, 남편이 나가자고 한 바로 그 시점에 제가 점심밥 잔뜩 먹고

배가 너무 불러서 꾸벅 꾸벅 졸던 시점.

 

 

그래서 낮잠 실컷 자고, 일어나서 수퍼가서 맥주랑 상추 사다가

삼겹살 구워서 발렌타인즈 데이 디너를 먹었고요.

 

 

실은 요새, 하품을 달고 살아요.

금연 중이거든요.

그간, 니코틴 패치다, 검이다, 금연초다, 별의별 금연보조제 안해본게 없네요.

물론 다 실패.

 

담배를 이참에 그만 피자, 하고 보니,

담배맛을 북돋워 주는 여타 조건들을 같이 피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서

아침에 눈 뜨자 마자, 커피 내려서, 따땃한 커피잔 옆에 놓고 한 대 피는 버릇.

그래, 음….커피도 안되겠다.

 

 

저녁마다 남편이랑 맥주 옆에 끼고 마셔대면서 줄담배.

음…맥주도 안되겠다.

 

 

해서,

커피, 술, 담배를,

카페인, 니코틴, 알코홀을 동시 다발적으로다 끊고 있습니다.

 

 

처음 이틀, 커피를 거르니,

하루 왼 종일 하품ㅎㅎㅎ

저 셋 중에, 사실 제일 끊기 쉬운건 맥주 였고요.

그 다음 커피,

그 다음 담배요.

 

 

내가 담배를 어언 고딩 때부터 시작을 했으니,

흡연 경력 20여년이 되가네요.

그 중 한 십년은 아주 규칙적으로 하루에 한 갑을 피는 골초의 생활.

 

 

몸, 당연히 안 좋습니다.

담배 이외에도, 20대 시절의 과도한 음주가무 생활의 여파,

뭐 이런 것도 있겠죠.

 

 

건강도 건강이고, 정말로 중요한 돈.

무시할 수 없는 부분, 돈. 돈,돈,돈!

이 뉴욕 시티, 담배 한 갑에 7불…

제가 항상 주장 하는게, 세계 각지에서 싼 값에 담배 사 필 수 있는 사람들,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들 피시라고.

이렇게 눈 튀어나오게 비싼 돈 주고 사서 피워야 하는 사람도 있음을

마음 한 구석에 아로 새기며,

당신들이 얼마나 행복한 처지의 흡연가 인지 감사들 하시라고.

 

 

담배를 그간 많이 많이 끊고는 싶었어요.

 

 

처음에 피웠을 때는, 그저 어쩌다 보니.

그러다 맛이 들려서, 계속 피게 됬죠.

20대의 나이는, 건강을 염려할 나이가 아닌지라, 그냥 생각없이 막 피워 댔어요.

피고 싶을 때마다.

 

 

서른이 되고,

내 몸이 더 이상 꽃띠가 아니라는 사실이 항상 피곤한 컨디션으로 증명이 되고 

거기서 또 한 살 두 살 더 먹고,

결혼을 하고,

남편은 내 건강을 걱정하고,

뭐 그렇게 겸사 겸사 금연 생각을 하기 시작해서리,

시도는 많이 해 봤어요.

 

 

나는, 정말….

아예 담배라는걸 몰랐더라면 좋았을걸…

아예 한 번도 안 피웠더라면 좋았을걸…

그만 두기가 이렇게 힘든데…아이,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까…참는거 너무 싫어..

아 괴로워, 괴로워…

정말 괴로워…

 

 

니코틴 패치,

껌,

금연초,

다 해 봤는데요. 음….죄다 실패.

담배를 끊어 보겠다…하고, 시도를 했다, 결론은 무너지고 또 입에 물고.

그 때의 자책감과 자괴감.

그래도 역시나 이래서 중독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합리화.

모른척하고 그냥 계속 피기..

이런 싸이클.

 

 

이번엔…왜 담배를 피지 말아보자, 했냐면,

그냥 다 지겨워서요.

담배도 지겹고, 항상 담배를 물고 있는 나도 지겹고,

담뱃값도 드럽게 비싼데 부부 백수인 시점에 웬 럭셔리 돈 지랄이냐 싶기도 하고ㅋㅋㅋ

 

 

그냥 제 맘 속에 든 느낌이.

 

 

enough is enough.

 

 

됐다, 나는 그간 충분히 담배를 펴왔다. 이걸로 됐다. 뭐 이런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지금 이 시점에서,

 

 

나 담배 끊었어요~~!!!

 

 

라고 말하기는 시기 상조인듯 하고요.

2월 5일부터 시작했으니, 열흘 넘었네요. 곧 2주.

금단현상이 피크라는 3일 째. 잘 넘겼고요.

머시냐…

뭐 별로 생각을 안하는 쪽으로. 그렇게 전략을 짰어요.

피면 안된다, 펴서는 안된다, 라기 보다,

난 피기 싫다, 안 필거다 이런 쪽으로 생각하기로.

 

 

그냥 저냥 괜찮다가…

한 3일 전엔가. 하루 저녁.

노곤한 기분이 드는 것이, 시원한 맥주에다 담배 한 대 따악 피면 좋겠구만.

하는 생각이.

 

 

남편한테,

 

 

아…오늘은 좀 힘드네…

 

 

했더니, 매우 안타까워 하는 표정.

 

 

그냥, 이것 저것 음식들 줏어 먹고 잤어요.

그 날 밤 꿈에,

 

 

담배 피는 꿈 꿨어요ㅎㅎㅎㅎㅎㅎㅎ

 

 

내가 살면서, 담배를 피는 꿈을 꿀 거라는건 정말 꿈에도 생각을 못 했는데…

꿈에서,

딱 한 대만, 하고 한 갑을 사서 한 개 피우고 나머진 버리고

자책하는 내용이요.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 한 두개 핀다고 하고,

어쩌다 술 마시게 되면 또 고 때만 몇 개 핀다하고,

이런 사람들이 ‘담배 끊어야지…’ 하면 저는 꼭 묻거든요.

왜 끊으시게요? 전 제가 그 정도만 피면 절대 힘들게 끊을 생각

안할거예요!

하고.

 

 

저는 하루 한 갑 피웠으니, 완전 골초라 끊을 필요가 있었지만요.

 

 

여태 한 금연 노력 중에는, 지금이 좀 틀려요.

잘 되고는 있어요.

그래도 인생 장담하는거 아니라 하니,

이 시점에서, 나 담배 끊었어요! 라는 말은 아끼기로 하고요,

그저 열흘을 넘겼다…정도로.

 

 

이 시점에서 남편한테 전하고 싶은 감사의 말은,

당신,,,,,,,,나 아니면 담배, 둘 중에 하나 선택해!!!

 

 

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거.

담배 연기가 싫어서라기 보다 내 건강이 염려돼 내가 담배 끊기를 바랬던 남편이라는 거.

 

 

I won’t be able to make it without you.

 

 

하면서 같이 오래 오래 살자고…ㅎㅎㅎㅎ

 

 

사실,

사랑이라는게 그런게 아니잖아요.

 

 

날 이만큼 사랑한다면 이걸 해줘.

 

 

날 이만큼 사랑한다면 그건 하지 말아줘.

 

 

그런게.

 

 

사실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건 사랑하는거고, 오징어를 사랑하는건 또 그거고.

 

 

만약에 남편이,

날 사랑한다면 제발 집에서 오징어 좀 구워 먹지 말아줘.

 

 

라고 했다면…

 

 

내지는,

나는 집안이 다 카톨릭인데, 이모님도 수녀님이고고,

증조 외삼촌도 신부님이고, 그러니 우리 결혼은 카톨릭으로 성당에서 해야지.

날 사랑한다면 이 정도 이해해 주겠지.

 

 

아니, 담배는 왜 그리 피나요.

담배 연기 정말 싫어요. 날 사랑한다면 제발 담배 좀 끊어 줘요.

 

 

했다면…

 

 

내가 집에서

오징어 한 마리를 구워 먹으면서도 신경전을 벌였을 테고

(안 구워 먹었을 거라는 소리는 절대 아닙니다)

결혼식을, 성당이 아닌

한국 식당 잔칫집에서 하면서도 좀 껄끄러웠을 테고

(눈치보다 성당에서 했을지도 모른다, 라는 말 절대 아닙니다)

 

 

담배를 꾸역꾸역 피기 위해 말다툼도 좀 했을 테고

(말싸움하기 귀찮아 안 피웠을 거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오늘 한국에서 사촌 언니가 전화가 와서 한 시간을 수다를 떨면서,

 

 

그래도 장하네 담배를 끊는다고,

커피랑 술도 끊고 말이야.

ㅎㅎㅎ

 

 

나도 ㅎㅎㅎ

 

 

 

사랑한다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방한테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지 말 것~!

 

 

사랑한다면,

기다려 줘야 할 것들,

사랑한다면,

저 사람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해 줘야 할 것들,

그리고 사랑한다면,

아무 것도 아무 것도, 강요하지 말 것…

저 사람이 어떻게 하는게 지금 상황에서 최대한 마음이 편하고 행복할지 만을 생각해 줄 것,

그것이 사랑.

나라면 이럴텐데~, 아 도저히 이해가 안돼….

사랑한다면, 저런 생각은 하지 말 것.

내 가치관과 상식의 범위를 떠나,

저 사람의 가치관과 상식의 범위 안에서 생각해 볼 것~.

 

 

담배 피는게 나쁜건 나도 알고 있거든.

몰라서가 아니거든.

나도 이 생활 청산하고 싶거든.

 

 

그러니까,

모 아니면 도, 식으로,

나야 담배야, 둘 중에 하나 선택해.

이런 식으로 양자택일 강요를 한 번도 안했던 남편, 다시 한 번 땡큐.

 

 

결혼 직 후, 처음으로 금연 얘기를 꺼내고부터 지금까지,

계속 실패만 거듭하는 부인에게 실망과 질책 대신,

매번 아낌없는 지지와 신뢰를 희망의 미소에 실어 보내는 남편,

땡큐~

 

 

하루 담뱃값이 7불이니, 이거 한달이면 210불,

일년이면 우리 부부, 휴가비가 빠지네요.

2월 5일부터 절약한 담뱃값, 77불!!!!

흐미…

계속 해보겠다 주먹 불끈 쥐어 봅니다.

하루 7불, 저 돈 장난 아니네요.

 

 

정말 저 돈만 굳어도 뭘 해도 하겠네.

 

 

이 글, 금연 조장글 내지는 흡연 비난글 아니고요,

하루에 몇 개 안되게 피시는 분들, 정신 건강을 위해서

지나친 금연 삼가시고, 하시던 대로 하시고요,

나는 골초였어서 끊는게 여러모로 좋겠다, 이것 뿐이예요.

 

 

나는 절대적으로 내가 담배를 통제하며 다룰 줄 알았지,

담배가 내 생활을 통제하게 될 줄,

그 어린 나이에는 정말 몰랐거든요.

 

 

지금 나는, 담배에 대한 내 통제력을 다시 찾고 싶어요.

 

 

그래, 네가 거기에 있다는 거 내가 안다.

너를 집어서 피고 안 피고는 내 마음이야.

 

 

내 삶의 주체가 된다는 것,

중독부터 끊자!

그 어떤 것에도 의존적이지 않은 삶, 그게 바로 주체적인 삶이겠지.

나는 담배가 없어도 살고,

술이 없어도 살고,

커피가 없어도 살고,

살 수 있다!!!

 

 

그렇다는 거죠.

담배의 노예로 산 지난 세월, 진짜 좀 많이 짜증나고 지겨워요.

담배 확 끊고, 고 담에 나가 일해서 돈을 쓸어 모으는 방향으로다….ㅎㅎㅎ

 

 

아…요거, 이번 금연,

앞으로 며칠이나 더 갈래나…ㅎㅎㅎ

잘 돼야 할텐데 말이죠.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