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일 토요일

 

 

눈 뜨자 마자 현미 녹차 한 잔.

커피 안 마신지도 거진 한 달 째.

생각보다 마시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금방 내린 커피 없이 시작하는 하루란 상상도 할 수 없던 내가,

하루 도합 너댓잔은 너끈히 마셔대던 내가..

희한하다.

 

 

아침에 눈 뜨면서 허기가 진다…싶어도

일단, 담배를 곁들여 내리 커피 몇 잔을 마시고 나면

식욕이 어느 덧 가신다.

그래서 아침은 굶고 몇 시간 이리 저리 움직인 뒤에야 그 날의 첫 끼니를 시작하던 내가,

현미 녹차 기분 좋게 한 잔 마시며 아침 준비를 한다.

 

 

아침부터 매운게 땡긴다.

떡볶이를 만든다.

계란까지 하나 찌고, 오뎅도 썰어 놓고.

라면 사리가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실하다.

사실 라면 사리보다 쫄면 사리가 난 더 좋다.

장보기 리스트에 쫄면 추가 해야겠다.

맛나게 먹는다.

요샌 먹는 것 마다 다 맛있다.

 

 

한 시간 정도 경과.

냉장고에서 요거트를 꺼내 대접에 담는다.

작은 볼은 안되고 스파게티 담아 먹는 큰 대접에다.

조만간, 스프용 커다란 머그, 예쁜거 하나 요거트 용으로 장만해야 겠다.

라즈베리, 블루베리, 바나나, 복숭아, 다 때려 넣고 그라놀라도 한 주먹 듬뿍 넣는다.

입 심심할 때 기왕이면 몸에 좋은 것들로다 먹어 보겠다고

당근, 샐러리 내내 옆에 두고 하루 종일 먹다가

며칠 전에 요거트도 간식 리스트에 추가했는데,

평생 이런 스타일로는 처음 먹는데 이것도 맛있다.

입에 짝짝 붙는다.

취직하면 요걸로다 매일 아침을 먹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요거트 먹은 숟가락 내려 놓자 마자

전 날 저녁 재워둔 돼지갈비 꺼낸다.

바비큐 소스 옷을 입은 아기 돼지 등갈비 열한대를

베이킹 판에 얌전히 놓고 오븐 안에 넣는다.

감자 쪄서 매쉬드 포테이토 만들고 샐러드 준비하고.

 

 

돼지갈비가 거진 다 되어 갈쯤,

부지런한 남편님 드디어 기침 하신다.

남편은 아침, 나는 점심으로 바비큐 립을 맛나게 먹는다.

열한대다 보니…

아침부터 괴기를 과하게 멕이는 건 건강상 안 좋을거 같아

남편 다섯 대,

내가 여섯 대, 이렇게 먹는다.

 

 

신문이나 좀 읽어 볼까나…하니

또 뭔가 허전하다.

땅콩을 대접에 두어 줌 덜어 담는다.

봉지째 끼고 시작했다간 끝장을 보는 관계로

얼마 전부터 저렇게 덜어 먹는다.

껍질 까는 행위도 살짝 카타르시스가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엄청 고소하다. 이것도 진짜 맛있다.

 

 

점심 먹고 겨우 두 시간도 채 안된 것 같은데…

또 뭔가가 먹고 싶다.

냉장고에서 짜장 소스 만들어 놓은 것 꺼낸다.

밥 담아서 짜장 얹고 전자 렌지에 돌리는 동안

단무지 꺼내서 자른다.

배 안 고프다고 하다가도 내가 뭘 먹으면 꼭 쳐다 보다가 한 입만 달라고 하는 남편.

한 입만 달라길래 한 입 준다.

예전엔 짜장밥이란걸 별로 안 좋아했는데..

이것도 진짜 맛있네..

 

 

이제 하루 반 정도 지났다.

 

 

이 이후로

짜장밥 맛나게 먹고 나서,

요거트 한 대접, 입가심으로 바로 또 먹고,

당근, 샐러리 꺼내다 블루 치즈 드레싱 찍어 먹고,

그래도 하루 한 끼는 백반을 먹어 줘야 하니,

큰 접시 꺼내서 밥하고

무말랭이 무침, 오뎅 볶음, 멸치 볶음, 오이지 무침, 감자 조림, 김치를

부페식으로 담아 먹고,

생전 안 먹던 아이스크림까지 몇 입에다,

아침에 먹다 남긴 떡볶이 다시 먹는다.

 

 

친구한테 전화 온다

 

 

삼십분 정도 수다 떨고 났더니 남편이 쏘세지 야채 볶음 어쩌고 한다.

저거 사실 내가 원래 좋아하는 반찬도 아닌데,

얼마 전에 문득, 한국 호프집에서 안주로 나오는게 생각이 나서

호프집 다니며 놀던 시절을 추억하고자

그저 즉흥적으로 한 번 어설프게

딱 푸랑크 푸르트 소시지 어슷 썰어서 양파랑 케찹에 볶아 봤더니,

남편이 자기 입에 딱 맞는 요리라고 난리.

그 이후로 요새 한참 저거 밤참으로 먹는데 재미 들렸다.

뭐 어려운거 아니니까 후다닥 볶아서

사이좋게 함께 먹는다.

예전엔 이거 별로 안 좋아했는데…왜 이거까지 이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

 

 

저기까지 먹고 편히 잠들다…

 

 

원래도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고 끼니 잘 챙겨 먹는 사람이

완전 달리는 말에 날개가 달렸다……

밥 되는 것만 먹고 끼니 챙겨 먹으면

과일, 간식, 주전부리 전혀 안하던 사람이

이젠 안 먹는게 없다…

 

 

어제는 간식으로 감자 네 개 쪄서 신랑이랑 간식으로 먹고.

감자 하나만 봐도,

짜장에 들어가, 된장찌개 끓여 먹어, 매쉬드 포테이토 해,

감자채볶음에다 감자 조림, 거기다 수제비

5파운드 짜리 감자 한 봉지가 일주일 만에 거덜났다…

예전엔 5파운드 짜리 사면 먹다 먹다 다 못 먹어서

꼭 막판 서너개는 무르고 싹나고 버리고 그랬는데..

그래서 몇 개씩 사다 먹지 5파운드 짜리는 안 사다 먹었었는데..

이번에 산 5파운드…저렇게 겁나게 먹어 치워 버렸다.

 

 

담배 끊으면 잘 먹는다는 건 익히 들어본 바였으나,

정말 이 정도일 줄 까지는 몰랐는데.

이런 상태로 얼마나 가는 건지,

이러다 좀 있으면 제 자리를 찾는 건지 아니면 계속 이렇게 먹어대는 건지 모르겠네..

 

 

이런 내가 무서워서

한 번 일기로 정리를 해보자 했더니,

써놓고 나니 더 무섭다.

 

 

하루에 7불씩 굳는다고 좋아라 했더니

이건 내가 먹어대는 추가 식비가 너끈히 하루 7불 되는거 같다..

아니, 더 되는 것 같다..

허탈하다…

 

 

맨날 이리 뽀지게 섭생을 잘해 그런지 응가가 규칙적으로 잘 나오긴 한다.

그거 하나는 다행이다…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