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셋째 성이 사다준 게볶음이요.

너무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요건...컨테이너에 든 3분의 1 정도고요.

앉은 자리에서 다 작살냈어요.

에효….만나자 이별이라더니…

칼럼 시작하고 꼴랑 넉달만에 벌써 휴가 신청 합니다.

한 석 달 정도 신변 정리 좀 하고 다시 돌아 올께요.

이것이 말이죠,

정초부텀 안좋은 일이 연달아 생겨대는 바람에 한없는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져 부렀네요.

남편 뜬금없이 직장 짤려,

친정 집 또 한 번 뒤집어져

직장 잡겠다고 좀 돌아다녀 봤는데 생각처럼 잘 안되서 힘 빠져

이번엔 제 몸이 고장 났다고 하네요.

내 주변이 어수선하고

되는 일이 없으니,

즐겁고 재미나고 활기차고, 좀 꼬여도 좋게 생각하고 아자! 하면서 살자고

그런 얘기들 나누고 싶어 시작한게 이 칼럼인데

아무래도 제 상황이 이러니

자꾸 처지는 마음에 우울의 극치를 달려가는 고로

차라리 좀 쉬고 몸과 마음에 다시 활기가 생기면 그 때 웃는 얼굴로

다시 얘기를 나누는 편이 좋겠다…싶네요.

서방이 벌어다 주는 돈 아쉬운 줄 모르고

돈 십불 이십불 우습게 알고 살던 버릇 버리고 겸손해 지라고

신랑 직장이 갑자기 이리 되었나 보다 했더니,

겸손해야 할 것이 그것만이 아니었나 봐요.

내가 눈만 낮추면 직장 까짓거 언제든 구할 수 있겠지…했는데

그것 안됬고,

건강만 하면 젊은데 뭔들 못하랴, 했는데

건강에 대해서도 역시 오만이었고

그나마 담배라도 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네, 그렇습니다. 금연은 아직도 잘 하고 있습니다)

담배 끊었으니 앞으로 건강하게 살 줄 알았는데…ㅎㅎㅎ

감기만 걸려도 얄밉고 서운하게 느껴지고

원래 굼띤 사람이지만 내가 아플 때 나의 필요에 더 굼띠게 반응한다고 느껴져서

울화가 치미는 남편인지라,

그래도 심각하다면 심각하다는 사안에 봉착하니 그냥 울화가 마구 잡이로 치밀어서

둘이 힘 합쳐 다독이는게 아니라

제가 계속 쥐잡듯이 잡아 댔삼.

요즘 김형경이라는 소설가가 쓴 책을 읽고 있는데요,

제목은 ‘사람 풍경’

심리/여행 에세이, 라고 하네요.

집 팔아서 혼자 유럽을 여행 했나 보더라고요.

그 과정에 만난 사람들과 또 자신의 과거, 이런 것들을

무의식 , 사랑, 대상 선택, 분노, 우울, 불안, 공포…이런 주제 별로

에세이 한 꼭지 씩을 써놓은 책이예요.

지금 딱 요 시점에 제가 새겨 들을 부분이 많더라고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쓴 정신 분석 책은 그 말이 뭔 말인지 알아 듣기도 힘든 것이 태반인데

(이 말을 지껄이는 본인은 무슨 뜻인지 알고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때도 많고

번역서의 경우는 그 번역의 어설픔에서 오는 난해함으로

차라리 원어로 된 책이 더 쉽겠다는 생각조차 들고요)

소설가가 쓴 정신 분석 책이라 쉽기도 쉽고

글쟁이라는 본업에 걸맞게 내용 전달 뿐 아니라 감성 전달까지 된다는거.

말을 말처럼 써 놓았다는거

(당연한거 같은데 말을 말처럼 하지 않고 무작정 어렵게만 해놓은 책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는게 제 느낌)

글 순간 순간에 내 자신으로의 반추가 아주 자연스럽게 되더군요.

오래도록 나는 자신을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이라 생각해왔다. 성인이 된 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생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왔다. 그러나 정신분석을 받으며 자각한 것은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식의 과도한 자주성이 의존성의 뒷면이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내면에는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도움받고 싶은 마음이 어마어마하게 억압되어 있었다.

그 의존성이 어떤 형태로 표출되어 왔는지도 보였다. 중학교 때는 우표나 옛날 돈을 수집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불필요하면서도 자잘한 물건을 사들이는 쇼핑 습관이 있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만신을 찾기도 했고,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생의 비의를 직접 알아보고자 명리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황황해할 때마다 “어디 든든한 말뚝이 있어 마음을 묶어 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 갈망 역시 의존성이었다.

본문 중에서

남편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의존증’이었구나.

남편 전에도 내가 했던 사랑들은 다 나의 ‘의존증’ 이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겉으로 보여지는, 소위 남자를 휘어잡는 듯한 느낌, 천방지축, 제 멋대로,

꼭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이런 면들의 깊은 내면에 나는 누군가에겐가 심정적으로 ‘의존’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는 유형의 사람이다…라는걸 깨달았어요.

나는 남자한테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고,

내가 비록 이렇지만 그래도 당신은 나를 끝까지 사랑해야 해.

내가 이렇게 화를 내고 아무리 당신을 힘들게 해도

당신은 나를 너무 사랑하니까 끝까지 헌신해야 해

끊임없이 힘들게 하고 부려먹을 ‘대상’에 대한 의존증.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은,

혹시라도 지금의 남편과 헤어진다거나 하면,

다른 이성을, 집중할 대상을 아주 빨리 순식간에 찾아 낼 거라는거.

난, 내 문제에만 집중하는 사람,

남의 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 했었는데

사실 내면에는 강도가 크고 다양한 형태의 ‘시기심’이 존재하고 있었고,

나는 강한 사람인가, 강한 척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는 착한 사람인가, 남들이 나를 착하게 봐주기를 계산하고 사는 사람인가,

나는 경우가 바른 사람인가, 이기적인 면을 최대한 남들한테 안 들키려고 하는 사람인가.

도 반문해 보고.

나는…엄마처럼 화내지 않겠다…다짐을 하고 또 하면서도

지금 남편한테 엄마가 하던 거,

내가 너무나 싫어하던 엄마의 화내는 방식,

‘상대방 진만 빼놓고 해결책도 나올 수 없게끔 모든 가능성에 대해 마음을 닫아 놓은 채

마구 쏟아 놓는 방식의 화’를 또 다시 하고 있었어요.

같이 의사 보러 가기로 해놓고 화내고 혼자 가버리고,

갔다 와서도 어찌 됬는지 얘기도 안해주고 또 혼자 화내고.

“내가 앞으로 홀몬 치료를 하던, 수술로 혹을 떼던, 자궁 적출을 하던,

다 내가 혼자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신경 끊어!

앞으로 부부 관계는 무기한 없을 테니 그런 줄 알고!!!

당신도 그간 열 번 하고 싶은거 한 번 밖에 못해서 항상 좌절 스러웠겠지만

그 한 번도 나는 아픈거 참으면서 한거라고.

이제 왜 내가 아팠는지 알았으니까,

난 아픈거 싫으니까 다 나을 때까지 부부 관계 안할거니까 그런줄 알도록 해.

내가 이 와중에 꼴랑 부부관계 안하는 죄책감까지 느껴야겠어???”

남편은 암 말도 안했구만 나 혼자 미친년처럼 다다다다~~ㅎㅎㅎ

근데 저 부부 관계 무기한 보류 선언은 하고 나니깐

속은 되게 시원했어요.

“어차피 내 몸이잖아.

당신 몸 아픈거 아니잖아.

무슨 상관이야?”

저렇게 쌀쌀맞게

this is my body. this is my pain. This, doesn’t, concern, you.

내 몸, 내 고통, 당신은 이것과 관계가 없다 라고

특히나 마지막 말은 한 단어씩 끊어서 또박또박,

그렇게 냉소의 극치로 찬바람이 쌩쌩 불게 말을 하니

남편은

of course, it does...라고 말은 하면서도

감히 다가와서 안아 주려고도 못하고,

저러고 나서는 갑자기 주저 앉아 엉엉 울다가,

또 곰새 일어나서 남편 꼴베기 싫다고 집 나가서 셋째 언니네로 가서

언니가 밥부터 먹으라고 부엌에서 반찬들 꺼내는데

식탁에 앉아서 땅콩을 까먹으면서

그간 했던 리서치 브리핑을 해줬어요.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얘기해 주고…

그러니까 혹이 크면, 혹만 떼내는게 더 위험하다고 이만큼이 자궁 벽에 붙어있는데

그걸 떼면 여기서 피가 나온다는 소리잖아.

출혈이 너무 많아 지는거지.

그러니까 아예 적출이 더 안전하다고.

적출에도 서브히스터렉터미, 토탈히스터렉터미, 래디컬히스터랙터미가 있는데,

자궁만 떼어내는냐, 난소도 함께 떼느냐, 자궁 경부까지 아예 싹 다 적출하느냐

뭐 그런 차이들이 있고,

이게 이게 오버리거던? 이걸 왜 같이 떼야 하냐면 난소를 남겨두면

이미 근종 세포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상태라

자궁적출 후에도 재발 위험이 있다고 하네.

자궁 근종하고 자궁선근종하고의 차이는 자궁 근종은 감자 캐듯이 근종만 떼어낼 수 있지만

선근종은 파뿌리처럼 자궁 내막에 혹이 잔뿌리를 내린거 있지. 그래서 이런 경우는,

하면서 열심히 재잘 재잘 하다가, 갑자기

근데…내가 이 나이에…자궁을 적출하면 우울해서 어떻게 살아…

라는 말이 나오면서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언니가 밥 먹을 땐 맛있게 밥만 먹으라길래, 또 얼른 눈물 닦고

밥 두 그릇 먹었어요.

식욕은 건재하다는ㅎㅎㅎ

어제는 회사 동료들하고 중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약속이 있다고 했던 셋째 성이

동료가 차로 데려다 준다고 해서 우리집으로 온다고

갑자기 전화가 온거예요.

아무리 동생 집이라도, 절대 저렇게 갑자기 들이 닥치는 법이 절대 없는 사람인데,

예의와 경우를 워낙 중시하는 사람 이거던요.

계산은 계산이다 하면 또 1전 단위까지 칼같이 하고요.

(무슨 물건을 사다 달라고 해서 물건값을 나중에 주거나 그럴 때요)

우수리 떼고 대충 얼마, 뭐 이런거 얄짤 없어요.

우리 집에 올 때도, 프라이버시 존중해서 항상 미리 물어보고 계획하고 오는 사람인데,

어제는 갑자기 저래서 황당해서요.

거기다 자기가 중국 음식을 먹어서 속이 느글거려서

김치해서 밥 몇 숟갈만 먹으려 하니 밥 없으면 밥도 지금 하라는 거예요.

이런 당당한 요구도 처음 있는 일이고.

제가 어차피 쌀도 안 불렸다, 불릴라면 세 시간 걸린다

김치빈대떡이나 해먹자, 했더니

극구 안된다고 그냥 빨리 흰 밥이라도 하라고 성화를.

이상타….하면서 밥 앉쳤죠.

급하게 집으로 들어오는데 손에 들린 빨간 비닐 봉투, 그 안에 종이 박스.

그걸 한 번 쓱 만져보더니 만족한 얼굴로 제 앞으로 내미네요.

아….안 식었다.

야 이거 뜨듯할 때 빨리 먹어.

하고 보니깐 게볶음ㅎㅎㅎ

접 때 한 2,3주 전에 제가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남편과 함께

오로지 저 게볶음 먹겠다고 차이나타운 행차를 했었는데,

주문 하자마자, 웨이터 아저씨 하는 말.

노 크랩. 노 딜리버리.

그래서 못 먹었거든요. 오징어 어쩌고 시켰는데,

오징어가 우리가 먹는 그런 오징어 질감이 아니고

씹어도 씹어도 그냥 입 안에서 껌처럼 맴도는

아주 희한하고 기분 나쁜 질감이라 몇 점 먹다 말고

남편이 시킨 돼지고기 요리 같이 먹고 왔었거든요.

제가 갔다 와서

‘아주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네.

왜 하필 내가 간 날이 게 배달이 안 온 날이냐고.

저거 먹겠다고 일부러 나간거구만.”

막 그랬었거든요.

저게 사실 1인분 요리는 아니고, 여러 사람 나눠 먹으라고

큰 접시에 나오는 거잖아요.

게 딱지에 하나에 먼저 밥 비벼 먹고, 또 그 다음거 그 다음거 먹다가

다리 떼고 빨아 먹고 몸통 살 발라 먹고,

옆에서 젓가락으로 게 딱지에 남은 살 구석구석 발라주던 언니가,

제가 논스탑으로 저렇게 먹어 대는걸 보고 있다가,

야, 너 이거 한 번 다 먹어 봐. ㅋㅋㅋ

나 원래 접때도 꽃게 여섯 마리 끓여서 앉은 자리에서 다 먹은 적 있어.

아니 뭐 저거 앉은 자리에서 다 먹는게 그리 어렵나…

다 먹었죠.

(남편은 게를 안 먹어요)

소스는 냉장고에 다시 넣었고요.

저 소스만으로도 한 번 덮밥식으로 먹을 수 있겠더라고요.

큰 언니가 갓 마흔 넘기고 자궁 적출술 받았을 때,

그 때 내가 한동안 내 마음이 우울해서 고생 했었는데

이번엔 내가 당사자가 되었어요.

수술만 하면 나을 수 있는거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수술도 못하고 죽을병 걸린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하고 셋째 언니한테 말했더니,

그럼 그럼.

저거 맞는 말이고, 저렇게 생각을 계속 쭉 하려고 하는데,

문득 문득 무섭고, 속상한 마음이 덮쳐서

정말 큰 소리로 엉엉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터져요.

암 걸린 사람,

난치병 걸린 사람,

날 받아 놓은 사람들……에 비해

장난 같은 진단이지만,

나는 지금 이 불행을, 불행이라고 떳떳하게 말하고 싶어요.

자궁 적출 하는 여자들 많다고, 흔하다고,

죽을 병 아니고 자궁만 떼내면 건강하다고 그만하길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이런 말 남들로부터 듣고 싶지 않아요.

이미 한 번 들었는데 기분 굉장히 나쁘더라고요.

지금 나의 슬픔을 이해해 주고 나를 불쌍해 하고 같이 절망해 주는게

내 기분을 도와주는거 같은데,

별거 아니라고,

너만 그런거 아니라고,

암도 아닌데,

죽을 병도 아닌데.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그냥 나 혼자 속으로 생각하고 내가 알아서 기운내면 모를까. ㅎㅎㅎ

나는 불행하고

나는 슬프고

난 지금 울만한 상황이다, 이건 엄살이 아니다, 라고 부끄러움 없이 외치고 싶어요.

그리고 지금은 울고 싶어요.

생리통 심하다 심하다, 매달 죽다 살아난다 해도,

생리전부터 진통제를 먹고 생리 기간 내내 진통제로 버티고 해도,

간혹은 진통제를 먹고도

벽을 다 박박 긁고 그냥 확 기절을 해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면, 아….이번에도 이렇게 한 달을 넘기는구나….하면서

겁이 나서 병원을 못 갔어요.

큰 언니처럼 나도 그렇다고 하면 어쩌나…싶어서요.

(그렇다고 제가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뭐 그런건 아니고요

산부인과 검진도 꼬박 댕겼습니다)

이번 달에는 생리가 끝나고도 계속 2주가 넘게,

그러니까 3월 한달을 거진 매일 진통제를 먹다가

일년 365일을 진통제로 살 수는 없겠다 싶어서 병원 갔더니

내가 겁먹고 못왔던 그 이유를, 그게 문제라고 똑똑히 말을 해주네요.

셋째 성이,

자기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배가 너무 아파서 초음파 찍었는데 그게 똥이었다 더라.

그래서 병원에서 관장했다,

인터넷 친구들한테 얘기하니,

배 아파 응급실 간 적 있는데 가스 였더라, 는 경험담,

모두가 줄줄이 ‘똥이길 바랍니다’ 했는데

결국은 똥이 아니라고 판명이 나부렀어요ㅎㅎㅎ

일단 지금은

제가 리서치도 더 해서 더 공부도 하고

2차 소견 이런 것들도 받아야 하고

수술을 한다면 당장 할 지 몇 달 그냥 더 진통제로 버티며 걔겨 볼지,

어차피 지금 보험도 없는데

아예 한국에 나가서 수술을 받고 올까 이런 저런 옵션들 생각 중에 있고요.

석달 정도?

신병 치료에 몰두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시댁에 가서 며칠 놀다 왔으면 싶고요,

남편은, 텔레비전 앞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뒤통수만 봐도

한 대 치고 싶게 울화가 치밀어도

시어머니는 왜 이렇게 보고 싶은지…ㅎㅎㅎ

올해는 시댁 마당에 잡초처럼 자라는 민트랑 차이브

얻어다 화분에 키우고 싶다고 했었거든요.

텃밭도 올해 농사 활동 개시 들어 가셨는지도 궁금하고요.

얼마 전에 자기 집에서 일주일 있다 온 신랑은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아요.

시아버님이 직장 얼른 알아보라고 한 마디 하셨다고 왕 삐져서는

계속 자기 아버지 흉 보느라고 정신 없었거든요.

자기는 쉰 한 살에 은퇴해 놓구선.

그나마 일할 때도 그렇게 빡시게 일한 적도 한 번도 없으면서

날더러 게으르다고. 자기나 잘 하지. 이럼서.

아니, 이제 칠십도 한참 넘으셨는데 이제 와서 자기 아버지가 잘할게 뭐가 있겠어요.

아버지가 당연히 그런 말 하실 수도 있지.

그래 그 동안 많이 힘들었지? 당분간 쉴 때 푹 쉬거라,

이렇게 안 나오고 이제 쉴만큼 쉬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저리 삐져서는….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벌써 석 달 꽉 차게 되가요.

제가 먼저 취직하려던 계획이 틀어진 것 빼고는(ㅋㅋㅋ)

둘이 합의한게 석 달 노는걸로 합시다 였으니, 빨랑 다시 취직할 때가 오기도 온거죠.

뭘 그걸 가지고 그리 삐지나…ㅋㅋㅋ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셋째 언니네 가서 머리 식히고 오자나.

아니 거긴 같은 시내 30분 안에 있는 집이고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덴데 거길 무슨 머리 식힌다고 우리 부부가 가서 며칠을 걔기다 옵니까.

(저만 가라는 것도 아니고 ‘함께’가자고 하는 겁니다)

저런 말을 심각하게 하는데 제가 아주 좌절스럽습니다.

뜨거운 바닷가로 신혼 여행 갈적에

나 몰래 백양 에어메리 짐 속에 챙겨 갔을 때부터 알아는 봤지만…

뭔가 정상 성인의 사고 체계가 아니예요 우리 신랑은.

남들은 이런 얘기 들으면서 웃겠지만

나는 사실 좀 많이 화가 나요.

바보도 아니면서 왜 저럴까….싶고.

암튼지 남편이, 자긴 별로 가고 싶지 않지만, 제가 꼭 가고 싶다니깐

어제 그러더군요. 그럼 갔다 오자고. ㅎㅎㅎ V~~~^^

며칠 느긋하게 있으면서

그간 친구 블로그에서 배운 서양 요리들도 해 드리고

저녁 먹고 나서는 시어머니 좋아하시는 브릿지도 하고

그러고 싶다고 그랬거든요.

시골 시댁가는 짐이야 막입는 옷 몇 개 넣고 시외버스 터미널가서 바로 버스만 타면 되니까 준비할 것도 없어요.

미친년 날뛰듯이 혼자 화낸 며칠을 보내고

어제 저녁 드디어 차분히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남편하고 했어요.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고,

남편한테,

내가 나한테 나는 화를 내가 지난 며칠 당신한테 투사를 했다고, 미안하다고 했고요.

남편이 이제부터 직장 알아보기로 했고요ㅎㅎㅎ

(제가 미안하다고 했어요.

나는 내가 일하겠다, 하면 직장이 뚝딱! 구해질 줄 알았다고

이럴 줄 몰랐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지금 당장은 너무 우울한 나머지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이예요.

셋째 언니 빼 놓고는 아무랑도 얘기 안하고 있는 상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서

동네 수퍼를 가는 길에도 눈물이 나고

혼자 밥 먹다고 눈물이 나고

당분간은 이런 바닥 친 우울을 그냥 받아 들여야 할 것 같아요.

억지로, 난 할 수 있어, 괜찮아 질거야, 이렇게

긍정적으로 살라고 내 자신을 다그치거나 강요하지 말고

일단 슬프니까 슬픈대로 슬픔을 만끽할 만큼 하고

그 다음에 추스리려고요.

몸과 마음,

둘 다 잘 추스리고 활기 찾아서 다시 뵐께요.

지난 넉 달 여간 칼럼 재밌다 해주시고 아껴 주셔서 감사 드리고요,

제가 행복한 계절, 수영복 입고 물장구 치면 만사가 행복한,

그 여름에 다시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