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grace

By

J. M. Coetzee

52세인 데이빗 루리 (David Lurie)는 남아공 (South Africa)의 케이프 타운 (Cape Town)에 있는 한 공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원래 그는 현대 언어를 가르치는 교수였다가 거대한 학교 운영 합리화 정책의 한 부분으로 고전과 현대 언어과가 없어진 후 커뮤니케이션에서 외래 교수로 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리된 과의 다른 교수들처럼 등록과 상관없이 그도 일년에 한개의 특정 분야에서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 해에 그가 받은 오퍼는 낭만주의 시인들에 대한 한 과정이었고, 나머지 대부분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관한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는 처음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고, 학생들에게도 아무런 감명이 없었다. 그들은 그의 이름도 잊은 채 그가 말할 때 못본 체 앞만 바라봤다. 그들의 무관심은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국가를 향한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실행했다. 또한 무엇보다 가르치는 일은 그에게 생동감을 주었기 때문에, 또한 그것은 그에게 겸손을 가르쳐주고 이 세상에서 그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에, 그는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가르치는 사람이 오로지 배우고자 하는 사람 보다 더 잘 배운다는 논리가 그에게도 역시 해당되는 말이었다.

이혼남인 그는 신체 건강한 남자로, 그동안 성욕에 관한 문제를 그런대로 잘 처리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중,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그는 그린 포인트 (Green Point)에 있는 윈저 맨션스 (Windsor Mensions) 113호실로 가 그를 기다리는 소라야 (Soraya)라는 직업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한 에스코트 업체 소속 여성으로, 소라야라는 이름이 본명이 아닌 것이 분명했고, 엄밀히 따지면 그는 그녀의 아버지 뻘이었다. 그녀와의 관계는 만족스러웠고 그래서 일년 넘게 그녀와의 계약을 유지해 왔다. 삭막한 주중에 목요일은 그에게 사치와 관능의 오아시스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 아침, 우연히 시내에 나갔다가 거리에서 사내 아이 둘을 데리고 쇼핑을 하고 오는 길인 것 같은 소라야를 마주친 일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아이들은 한눈에 그녀의 아들들인 것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녀를 많이 닮았다. 그는 멈칫거리다 그들을 따라갔다. 그들은 시내의 한 여관으로 들어 갔다. 그는 걷다가 다시 돌아와 그곳을 두번 지나갔다. 소라야와 아이들은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일순간, 유리창을 통해 소라야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 순간, 그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 것에 대해 즉시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 목요일날 둘이 만났을 때, 두 사람 다 그 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억은 불편하게 그들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위태로울 게 분명한 이중 생활을 하는 소라야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는 그녀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라고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도 그녀도 그 일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어린 두 아들이 그들 사이에 그림자처럼 스며 들어 있었고, 그는 그들의 진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는 그의 아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혹은 그는 무지의 행복을 선택한 것인가?

그동안 살아 오면서 그는 외모적으로나 성격적으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그래서 그는 그가 의도를 가지고 쳐다 본 여자들은 반드시 그에게 화답을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것이 그가 살아 온 방식이었다. 수십년 동안 그것이 그의 삶의 근본이었다. 그는 그동안 여자가 필요하면 동료의 아내들과 바람을 피우거나, 바닷가나 클럽의 바에서 여행객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으며, 창녀들과 관계를 하기도 하는 등 아주 난잡하게 살았다. 그러다가 소라야를 소개 받았던 것이었다. 그녀의 소개란에 '오후에만 가능' 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것이 그로 하여금 결정하기 쉽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어느 하루 만에 그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아무런 경고 없이. 한번 힐끗거림으로 그는 하루밤 사이에 유령이 되어 버렸다. 이후에도 소라야는 여전히 약속을 지켰지만, 그는 그녀가 다른 여자로 변신하고 그를 또다른 고객으로 대하면서 점점 냉랭해져 가는 걸 느꼈다. 그날 이후 '낯설음'이 그들 사이에 놓여져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네번째 목요일, 그동안 그가 '혹시'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던 때가 왔다. 그가 아파트를 떠나려는데 소라야가 어머니가 아파 돌봐드려야 한다고 다음 주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가 그러면 그 다음 주에 볼 수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엄마의 상황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기 전 전화로 먼저 확인을 해보라고 했다.

며칠을 기다린 후, 그가 업체로 전화를 하자 담당자가 소라야는 이제 더이상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없다고, 그것은 규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담당자는 다른 아가씨를 소개받기 원하냐면서 다른 이국적인 아가씨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다른 직업 여성을 만나보기도 하고 그의 과에 새로 들어 온 비서와도 관계를 맺어 보았지만 어느 쪽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의 곁에는 여전히 소라야가 있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 했던 챕터를 그만 닫아야 했지만, 대신 사설탐정을 고용해 그녀를 찾아 나섰다. 수일 내에 그는 그녀의 진짜 이름, 주소, 그리고 전화번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남편과 아이들이 나갔을 시간인 오전 9시에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가 데이빗이라고, 잘 지내냐고 인사한 후 언제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자신은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으로 전화를 해 자신을 희롱하고 있다며, 절대로 다시는 전화하지 말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놀랐다. 전에는 한번도 그렇게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그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녀의 남편에 대한 질투의 그림자가 그를 훑고 지나 가는 걸 느꼈다.

목요일의 막간이 없어지자 한 주가 사막처럼 특색이 없어져 버렸다. 혼자 뭘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서 가고 있던 학생들 중 그의 낭만주의 수업을 듣는 한 여학생을 발견했다. 그녀의 이름은 멜라니 아이작스 (Melanie Isaacs) 였고,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최악도 아닌, 총명하긴 했지만 열심히 하진 않는 그런 학생이었다. 그녀는 작고 말랐으며 커다란 검은 눈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외모는 항상 눈에 띄였다. 그는 가볍게 그녀에게 매혹되었다. 물론 큰 관심은 아니었고, 그가 누군가에게 빠져 있거나 돈을 지불하는 관계의 여자가 없을 때 통과하는 시기에 있는 관심 정도였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아는 척을 했다. 멜라니는 그가 관심있게 보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비가 오고 있었고, 그는 그녀에게 계절 중 이 시기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때이고,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고 말하며 이 근처에 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근처에 있는 아파트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은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며 그녀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좋다고, 하지만 7시 30분까지는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집으로 가 와인을 한잔 하며 그가 강의한 낭만주의 시인들과 그녀가 들었던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그가 간단히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하자 그녀는 잠깐 주춤거리다가 먼저 전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전화 통화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오래 걸렸다. 잠시 후 저녁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오래 전에 본 그 영화는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었고, 그녀에게도 그러길 바랬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영화가 끝나자 일어나 집안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살폈다.

잠시 후, 그는 오래된 방식으로 싯구를 이용해 그녀를 유혹하려 했지만 그녀에겐 먹혀들지 않았다. 그는 다시 선생이 되었고, 그녀는 잔을 내려놓더니 가야겠다고 일어섰다. 문을 열자 구름이 걷히고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가 사랑스런 밤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쳐다보지 않았다. 그가 집까지 걸어서 데려다 줄까 하고 물으니 그녀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가 알겠다고 하면서 팔을 뻗어 그녀를 감싸 안자 그녀의 가슴이 느껴졌다. 그러자 그녀는 그의 포옹에서 빠져 나와 가버렸다.

거기에서 멈췄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그러지 않았다. 그는 일요일 아침 텅빈 캠퍼스 과사무실로 가서 멜라니의 등록 카드를 찾아 집주소와 전화번호 등을 적었다. 그녀의 아파트로 전화를 해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고, 그녀는 조금 주저하다가 만나기로 한 곳으로 나왔다. 차안에서 불안해 하는 그녀에게 둘 사이의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이 그렇게 멀리까지 가도록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너무 멀리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는 다시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섹스를 했다. 그녀는 내내 수동적이었지만 그는 행위가 너무 만족스러워서 잠시 망각의 세계로 빠졌다. 다시 정신이 돌아와 보니 그녀가 눈을 감고 살짝 인상을 찌푸린째 그의 아래에 누워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얼굴을 돌리더니 그에게서 빠져 나가 자신의 물건들을 챙겨 방을 나갔다. 몇분 후 그녀는 옷을 입고 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를 붙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다음 날 그는 기분좋게 학교로 갔다. 멜라니는 수업에 오지 않았다. 화요일은 종일 비가 내렸고, 커뮤니케이션 빌딩 입구에 서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멜라니를 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기다리라고 말하고 우산을 갖고 왔다. 주차장까지 함께 간 두 사람은 그의 차를 타고 그녀의 아파트로 갔다. 가는 내내 그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아파트에 다다르자 그가 자신을 안으로 초대하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룸메이트가 있다고 말했다. 그가 그날 저녁엔 어떠냐고 묻자 그녀는 연극 리허설이 있다고 했고, 그가 그럼 언제 만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며 차에서 내렸다.

며칠 후 그는 그녀의 리허설에 예고 없이 찾아가서 그녀의 연습 과정을 지켜보았고, 다음 날 예고 없이 그녀의 아파트로 찾아 갔다. 그가 안으려 하자 그녀는 사촌이 금방 돌아 올 거라고 거부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그녀를 침실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았지만 얼굴을 돌리고 입술을 피하고 눈을 피했다. 그녀는 그가 옷을 벗길 때 가만히 있었고, 오히려 팔을 들거나 엉덩이를 들고 그를 도와주기까지 했다.

강간은 아니었다. 아니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원치 않은, 속속들이 원치 않은 행위였다. 마치 여우의 주둥이가 바로 목까지 왔을 때의 토끼처럼 체념하기로 얼마 동안 자신을 죽이기로 결정한 것처럼.

행위가 끝나자 멜라니는 사촌이 올 거라며 빨리 가라고 했고, 그는 그녀의 말을 따랐다. 하지만 그의 차로 왔을 때 그는 아주 낙담해서 차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실수였다. 아주 커다란 실수였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 날 그녀는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간 고사 시험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유감스러운 결석이었다. 이후 출석부에 기록할 때 그는 출석한 걸로 체크를 하고 70점이라고 표시를 했다.

그녀는 다음 주 내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가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받지않았다. 그러다가 일요일 자정, 그의 집 초인종이 울렸다. 찾아온 사람은 멜라니였는데, 그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눈길을 피하며 자고 가도 되느냐고 속삭였다. 그는 물론이라고 대답하며 안심했다. 그는 팔을 뻗어 그녀를 안았는데, 차고 뻣뻣했다. 그가 차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필요없다고 그저 자고싶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딸 방 침대로 데려가 잘자라고 키스하고 혼자 있게 내버려 두었다.

다음 날 아침 7시, 그녀는 깨어있었다. 그가 기분이 어떠냐고 묻고 무슨 일인지 말해보라고 하자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침대 곁에 앉아 안아주자 그녀는 서럽게 울었다. 그가 괜찮다고 무슨 일인지 말하라고 하자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을 추스리더니 당분간 그의 집에 머물러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여기 머무른다고? 라고 조심스럽게 되물으며, 좋은 생각일까? 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몸을 그에게 더 밀착시켰다.

그녀는 이순간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그는 그저 빨리 지나가는 작은 일탈 정도로 생각했다. 빨리 시작하고 빨리 빠지는. 그런데 지금 그녀는 그의 집에 있었다. 복잡한 문제들을 그녀의 뒤에 달고서. 그녀는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 거지? 조심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확실했다. 분명한 건 시작부터 조심했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 곁에 누웠다. 멜라니 아이작스가 그의 집에 함께 머문다는 건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생각은 매혹적인 것이었다. 매일 밤 그녀가 있을 것이고, 매일 밤 그녀 곁으로, 그녀에게 빠져들 수 있을테니까.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곧 이 사실을 알아 차릴 것이고, 소근거릴 것이다. 심지어 스캔들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뭐가 문제인가? 그는 그녀의 몸을 애무하며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오니 멜라니는 완전히 회복해서 마치 자신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저녁 때 리허설을 마치고 와서 얘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말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그는 그것이 신경쓰였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다시 섹스를 하면서 둘 사이에 미래가 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도 가져 보았다.

그런데, 다음 날 오후, 그의 사무실로 한 낯선 사내가 찾아 왔다. 앉으라는 허락도 없이 그는 의자에 앉더니 여기저기를 둘러 보았고 책꽂이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키가 컸고 강단있어 보였다. 가는 수염과 한쪽 귀에 귀걸이를 하고 있었으며 검은 가죽 자켓과 검은 가죽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나이들어 보였으며 문제아처럼 보였다. 잠시 후, 그는 멜라니에게서 당신에 대해서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데이빗이 정말이냐고, 자신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더냐고 묻자 그 청년은 당신이 그녀를 건드렸다고,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데이빗은 한참을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자업자득이라고. 멜라니 같은 아이는 결코 가볍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했어야 했다고. 그가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그 청년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당신은 자신이 똑똑하다고, 정말 여자들에게 인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당신의 아내가 당신이 무슨 일을 저지른지 알게 되도 그렇게 똑똑하게 보일까?' 라고 말했다.

데이빗이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원하는 게 뭐냐고 묻자 그 청년은 충분하다는 얘기는 집아 치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당신이 그저 다른 사람의 삶에 마음대로 들어왔다가 마음대로 걸어나가 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그의 책상 위에 있는 것들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쓸어 버렸다. 책상 위에 있던 종이들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그가 일어나 충분하다고, 이제 나가라고 소리치자 그 청년은 그를 훙내내며 조롱했다. 그리고 일어서서 문쪽으로 가더니 작별인사를 하며 기대하시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는 밤늦게까지 멜라니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대신 거리에 세워놓았던 그의 차가 파손되었다. 타이어가 찢어졌고 도어락에는 접착제가 주입되어 있었다. 앞유리에는 신문지가 붙여져 있었고 페인트도 긁혀 있었다. 수리비만 600 란드 (Rand: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화폐단위)가 나왔다. 수리공이 누구 짓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간결하게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기습' 이후 멜라니는 거리를 유지했다. 놀랍지도 않았다. 만약 그가 부끄러우면 그녀 역시도 부끄러울 것이었다. 하지만 월요일 그녀는 다시 수업에 들어왔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옆에는 그 검은 옷 차림의 남자친구가 있었다. 보통은 학생들이 떠들어 댔지만, 그날은 조용했다. 그들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그가 그 침입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그의 차에 했던 짓이 충분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분명 갚아야 할 금액이 더 남아 있는데, 이를 갈면서 갚는 거 외에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의 바이런 (Byron)에 대한 수업 도중, 멜라니의 남자 친구는 사사건건 너무나 많은 질문을 했고, 이제 강의실 안의 다른 아이들도 데이빗과 그 아이 둘 사이에 흐르고 있는 기운을 알게 된 것 같았다. 바이런의 시에 대한 분석이 끝나고 과제를 내준 다음 수업을 일찍 마쳤다. 그리고 멜라니에게 얘기 좀 하자고 말하며 자신의 사무실로 가자고 말했다. 그녀의 남자 친구 역시 뒤에서 따라왔다.

그는 멜라니에게 자신은 다른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녀의 남자 친구가 수업에 들어 와서 방해하는 걸 더이상 참아줄 수 없다고 말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번 치루지 못한 시험을 만회하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주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를 단지 그의 다른 학생들처럼 대하는 것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시험을 다시 치룰 수 없다고, 그것을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눈치채기를 바라며 준비가 됐든 그렇지 않든 중요하지 않다고, 그저 와서 참석만 하라고, 날짜를 정하자고 말했다. 그녀를 고개를 들고 도전적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거부하는 건지. 그가 월요일 자신의 사무실이라고 말하자 그녀는 일어서서 가방을 어깨에 맸다. 그는 자신이 책임이 있다며 최소한 절차는 밟아야 한다고 말하며, 상황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 말했다.

하지만, 멜라니는 월요일 재 시험날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메일 박스에 멜라니가 수업을 포기한다는 공식 철회 카드가 들어 있었고, 한 시간 후, 멜라니의 아버지가 데이빗에게 전화를 해 멜라니가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한다며, 그녀가 데이빗을 매우 존경하고 있으니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데이빗이 멜라니와 통화를 시도 했지만 그녀의 사촌인 폴린 (Pauline)이 멜라니가 그와 통화를 원치 않는다며 바꿔주지 않았다. 이후 그의 수업은 참석하는 학생들 수가 점점 줄어 들었다. 둘의 이야기가 학교에 퍼진 게 분명했다.

얼마 후, 멜라니의 아버지가 찾아와 그를 비난한 걸 시작으로, 다음 날 아침 부총장으로부터 대학 행동 강력 3.1항에 따라 면담이 필요하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3항은 인종이나 종교, 성, 동성애자, 혹은 장애인에 대한 폭력 혹은 괴롭힘을 근거로 하는 조항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이제 거의 모든 학생이 알게 된듯 수업에 참석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그의 전 와이프인 로잘린 (Rosalind)이 말했듯 그의 경력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결말이었고, 멜라니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그의 이야기는 '성폭행 교수'라는 제목으로 신문에도 보도가 되었다.

그일로 학교 커미티의 심리가 시작되었다. 데이빗은 멜라니도 함께 참석하는 줄 알았지만 그녀는 전날 이미 심리를 마쳤다는 얘기를 듣고 더이상 반복하기 싫다며 멜라니가 그에 대해서 진술한 모든 것과 자신에게 기소된 모든 것들을 다 인정하며 자신은 유죄라고 말했다. 그러자 커미티 멤버 중의 한 사람이 멜라니의 진술을 모두 인정하기 전에 먼저 그것을 읽어보라고 권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커미티에서 크게 문제 삼는 건 시험을 보지 않은 멜라니에게 그가 점수를 주었다는 것도 포함되었지만 그는 법률적인 도움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그들이 듣고 싶은 발언으로 그 심리를 마무리했다. 자신은 멜라니에 관하여 자신의 지위를 이용했으며,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고 후회한다고.

학교 신문에 '이 바보는 누구인가?' 라는 제목 아래 커미티 심리를 마치고 건물을 나오는 그의 모습이 보도 되었고, 이후 커미티에서는 그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면 학교를 완전히 떠나는 것이 아닌 휴직 처리를 하겠다고 권고했지만 그는 이미 자신이 할 것을 다 했다며 그들의 권고를 거부하고 학교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딸 루시 (Lucy)가 사는 이스턴 케이프 (Eastern Cape)로 떠났다.

루시는 도시에서 몇마일 떨어진 외곽에 있는 소규모 농작지에서 살고 있었다. 그곳은 5 헥타르 정도 되는 대부분이 경작지인 곳으로, 풍력 펌프, 마굿간과 바깥채, 그리고 낮고 큰 대자인 노란색 농가가 있었다. 앞쪽 경계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고 한련화와 제라늄이 심어져 있었다. 그녀의 차 뒤에 자신의 차를 세우고 있는데 앞쪽 베란다 그늘에서 루시 (Lucy)가 햇빛으로 나왔다. 그는 일 년만에 보는 딸을 못알아 볼 뻔 했다. 그녀는 살이 쪄 있었다.

루시는 6 년 전 그레함스타운 (Grahamstown)에서 가죽 상품과 햇빛에서 구운 도자기를 파는 젊은 사람들 집단 구성원의 멤버로 그곳으로 옮겨왔다. 얼마 후, 그 공동체는 와해되었고 한 무리는 뉴 베데스타 (New Bethesda)로 옮겨 갔지만 루시는 헬렌 (Helen)이라는 파트너와 그곳에 남기로 했다. 그가 보기에 헬렌은 몸집이 크고 슬픈 표정을 한 여인으로 목소리가 낮고 피부가 좋지 않은, 루시보다 더 나이가 든 여자였다. 그는 도대체 루시가 헬렌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속으로 루시가 헬렌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을 만나기를 바랬다.

루시는 그곳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경작지를 제대로 경작해보고 싶다고 말했고, 그는 그녀가 그 땅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장난으로 농사를 짓는 어린 아이가 아닌 굳건한 시골 아낙네가 되어 있었다. 루시에 따르면 헬렌은 4월에 요하네스버그 (Johannesburg)로 돌아갔고 현재 그녀는 홀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곳은 여자 혼자 살기에는 몹시 위험스러워 보였다. 그가 혼자 무섭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개들이 있어서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이웃에서 산 총도 있지만 아직 한번도 그것을 사용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루시는 그가 식사를 마치자 집 주변을 구경시켜 주었다. 개는 5 마리가 있었는데 모두 경비견들이었다. 그녀는 마켓 가판대를 갖고 있고 토요일 아침 마다 그곳에서 농장에서 수확한 것들을 판다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설명을 하는 루시는 모든 것들에 익숙한 듯 보였다. 그가 보기에 그녀는 새로운 삶을 제대로 살아 가고 있는 듯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을 신경쓸 필요는 없다고 책을 가져왔으니 책상과 의자만 있으면 된다고 하자 루시가 특별하게 하고 있는 일이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일에 대한 것은 그들이 자주 대화를 나누는 소재는 아니었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썼던 글과는 다른 뮤지컬을 써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가 자신에 대한 얘기를 들었느냐고 묻자 루시는 엄마에게서 들었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현관에 키가 큰 한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루시는 그가 자신을 도와주는 원주민이며 이름은 페트러스 (Petrus)라고 소개했다. 루시에 따르면, 페트러스는 그곳에 있는 오래된 마굿간에서 아내와 살고 있는데, 애들레이드 (Adelaide)에 다른 아내와 장성한 아이들이 또 있으며 가끔 그곳에 가서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온다고 말했다. 루시는 데이빗에게 얼마 동안 있을 거냐고 물었고 그는 일주일 가량이라고, 참아 줄 수 있겠느냐고 말하자 루시는 있고 싶은 만큼 있으라고 대답했다.

루시의 집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는 그에게 다르고 낯선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다. 토요일 아침 7시 꽃과 감자, 양파, 배추 등을 차에 싣고 마켓으로 나갔다. 2주 전 그는 강의실에서 같은 뜻을 가진 다른 형태의 단어들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아주 멀게 느껴졌다. 루시가 많은 손님들에게 그녀의 아버지를 소개하자 그들은 딸이 자랑스럽겠다고 말했고 그 역시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에게 그날 아침은 몹시 힘든 시간이었다.

끝무렵에 동물들을 구조하고 돌보는 애완동물 병원을 운영하는 이웃 마을에 사는 베브 쇼 (Bev Shaw)의 집에 약품을 얻으러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루시와 데이빗은 동물 구조에 대한 의견 차이로 다투게 되었다. 루시는 국가의 재정 지원의 부족에 대해서, 데이빗은 창조 질서 상 동물과 인간은 다른 개체라는 것 등등. 그럼에도 데이빗은 루시의 추천으로 베브 쇼의 동물 병원에 가 그녀를 돕게 된다.

다음 날, 그녀의 침실에서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목의 책을 읽고 있는 루시를 보면서 그는 그녀가 태어났을 때 아무런 조건없이 그녀에게 그의 사랑을 보여 주어다고 생각했는데, 성장하는 동안 그녀는 보호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고, 그와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왜 둘은 서로에게 스스로를 보여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요일 아침, 그와 루시는 아침 산책을 나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세 명의 낯선 사내들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두 명의 성인과 한 명의 소년이었다. 데이빗이 루시에게 아는 사람들이냐고 묻자 그녀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잠시 후 두 사람은 좀 전에 그들을 스쳐 지나갔던 세 사내가 루시의 집 앞에 서 있는 걸 발견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