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정보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보안을위해 재로그인해주십시오.

마가렛의 작은 서재

The Order by Daniel Silva (Thriller, 2020) Margaret Kim (margaret7630) 2021-5-5  14:35:19

The Order


By


Daniel Silva




목요일 밤, 1142, 루이지 도나티 (Luigi Donati)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는 그것을 받기 전 잠깐 망설였다. 그의 셀폰 화면에 나타난 번호는 알바네제 (Albanese)의 것이었다. 그가 이 시간에 전화를 한 건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루이지가 전화를 받자 상대방이 각하, 어디에 계십니까? 라고 물었다. 루이지가 성 밖에 있다고 대답하자 저쪽에서 아, , 목요일이군요, 그렇죠? 라고 말했다. 루이지가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라고 묻자, 상대방은 전화로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누군가 듣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라고 말했다.


밖은 축축하고 추웠다. 도나티는 검정 사제복과 로만 칼러를 입고 있었다. 그는 사무실에서 입는 직위를 나타내는 자홍색 망토는 걸치지 않았다. 대주교인 도나티는 교황 바오로 7세의 개인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키가 크고 날렵한 몸매, 그리고 검은 머리칼과 영화 배우 같은 모습을 한 그는 최근 63세 생일을 맞이했다. 나이가 들어도 그의 잘생김은 줄어들지 않았다. 베니티 페어(Vanity Fair) 잡지가 최근 그를 '섹시한 루이지'라고 할 정도였다.


'전화로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도나티는 이 순간이 올 것을 대비해 일년 이상 마음의 준비를 했다. 교황이 첫 번째 약한 심장마비가 왔을 때부터. 그는 세상에 그리고 교황청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숨겼다. 하지만 많은 밤 중 왜 하필 오늘 밤인가.


거리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도나티는 불현듯 죽은 듯이 조용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중심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궁전들이 몰려 있는 거리로, 사제는 발을 들이지 않는 곳이었다. 특히 도나티가 속해 있는 지적으로 엄격하고 때때로 반항적 질서를 가진 예수회 (Society of Jesus)에서 교육받고 훈련받은 사제는 더욱 그랬다. 그의 공식적인 바티칸 자동차가 가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는 바티칸 경찰 코르포 델라 젠다르메리아 (Corpo della Gendarmeria) 소속 130명 중의 한 명인 지아니 (Gianni)였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로마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했다.


'그는 모르지...'


도나티는 차를 타고 가며 셀폰에서 주요 이태리 신문의 웹사이트를 검색했다. 라디오에서 사비아노 (Saviano) 수상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는데, 그것은 아랍과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어떻게 나라를 망치고 있는지에 대한 또 다른 불평이었다. 사비아노는 교황을 내알하는 것에 관해 여러 달 동안 바티칸을 괴롭히고 있었다. 도나티는 전혀 반갑지 않아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됐다고 하자 지아니가 라디오를 껐다.


도나티는 독일산 고급차의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스도 병사가 여행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이것이 기사가 있는 리무진을 타고 로마를 가로지르는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었다. 거의 20년 동안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참모총장처럼 일했다. 성 베드로 광장에 대한 테러리스트의 공격, 유물과 바티칸 박물관이 연관된 스캔들, 사제의 성적 학대와 관련된 골칫거리 등등 격동의 시간이었지만, 도나티는 매 순간 그것을 즐겼다. 이제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은 끝났다. 그는 다시 한낫 사제로 돌아왔다. 혼자라는 생각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잠시 후, 그들은 바티칸 도시 국가의 영토로 들어섰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하고, 도나티는 그리스도교 국가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도 궁전' (Apostle Palace) 빌딩 3층에 내려 교황 전용 아파트로 갔다. 군복 차림의 스위스 가드가 문 밖에서 장대처럼 꼿꼿하게 서 있었다. 도나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목요일이라... 왜 목요일이어야 했을까?


도나티는 교황의 서재를 훑어보았다. 18년이 지났지만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었다. 전화기를 제외하고. 도나티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쓰던 오래된 회전 장치를 현대식 다중 회선 기계로 바꾸는 것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방은 예전과 하나도 바뀐 게 없었을 것이었다. 피에트로 루케시 (Pietro Lucchesi)는 그의 전임자의 긴 그림자에서 결코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도나티는 본능적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127분이었다. 그날 저녁 교황은 830분에 서재로 퇴근해 90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보통, 도나티는 그의 곁에 있거나 바로 아래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날은 목요일이었고, 그가 그 자신으로 돌아와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9시까지만 머물렀다.


루케시 (Lucchesi)가 도나티에게 서재의 창문을 가리고 있는 두꺼운 커튼을 좀 열어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것은 매 일요일마다 정오에 교황이 삼종기도 (Angelus)를 바치는 그 창문이었다. 도나티는 그가 모시는 분의 요구를 따랐다. 그는 셔터도 열고 성하가 문서 작업을 하는 동안 성 베드로 광장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지금 커튼은 완벽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도나티는 그것을 옆으로 밀었다. 셔터 역시 닫혀 있었다.


책상은 평소 어질러 놓는 루케시 답지 않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도나티가 떠나기 전에는 없었던 찻잔이 놓여져 있었는데 내용물이 반쯤 남아 있었다. 여러 서류가 들어 있는 노란 폴더들이 오래된 접이식 램프 아래 깔끔하게 놓여져 있었다. 필라델피아 대교구로부터 온 성적 학대 스캔들로 인한 재정적 손실에 대한 보고서, 다음 수요일 공개 석상에서 언급될 사안들, 다가온 교황의 브라질 방문을 위한 강론 초고, 사비아노와 그의 이태리 극우 지지자들이 귀찮게 할 게 분명한 이민 문제에 대한 회칙을 위한 노트들.


그런데, 한 가지 물품이 없었다. 쓰레기통을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비어 있었다. 종이 조각 조차도 없었다.


'뭘 찾고 계신가요, 각하?' 라는 말이 들렸다. 도나티가 고개를 들어 보니 도메니코 알바네제 (Domenico Albanese) 추기경이 입구에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알바네제는 칼라브리안 (Calabrian) 태생으로, 현재 그는 바티칸 내에서 여러 시니어 직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가 자정이 지난 시간에 교황의 아파트에 나타난 것에 대해 설명할 수는 없었다. 교황 궁무처장인 그는 성 베드로의 보위가 비었다는 걸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단독 책무를 갖고 있었다.


도나티는 알바네제를 따라 짧은 복도를 지나 교황의 침실로 들어갔다. 세 명의 추기경, 즉 마르셀 고베르 (Marcel Gaubert), 호세 마리아 나바로 (Jose Maria Navarro), 안젤로 프랑코나 (Angelo Francona)가 어둑한 곳에 서 있었다. 고베르는 국무 장관으로, 사실상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수상이며 외교 수장이었다. 나바로는 신앙교리성의 수장, 가톨릭 정교회의 수호자, 이단에 대항하는 변호인이였다. 세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프랑코나는 추기경단의 수장이었다.


도나티에게 말을 건 사람은 나바로였다. 스페인인 그는 카스티야 엑센트가 있는 이태리어로 당신이 가장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 모두 그의 충실한 하인이었지만 그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당신이었다고 말했다. 마른 몸의 프랑스인인 고베르 추기경은 나바로의 상투적인 말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방 가장자리에 서 있던 세 명의 평신도 역시 그랬다. 그들은 교황의 주치의였던 닥터 옥타비오 가요 (Octavio Gallo), 교황청 경찰서장인 로렌조 비탈레 (Lorenzo Vitale), 그리고 교황의 스위스 근위대 사령관 알리오스 메쯜러 (Alios Metzler) 였다.


도나티가 가장 늦게 도착한 것 같았다. 죽은 교황의 침대 곁으로 교회의 시니어들인 그들을 소환할 사람은 바로 개인 비서인 도나티 그 자신이어야 했다. 궁무처장이 아니라. 갑자기 도나티는 죄의식으로 괴로웠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시신을 보자 저항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루케시는 아직 그의 흰색 수단을 입고 있었다. 그의 슬리퍼는 벗겨졌고 모관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의 손을 가슴에 얹어 두었는데 묵주를 쥐고 있었다. 눈은 감겨 있었고, 턱은 늘어져 있었지만 얼굴에 고통의 증거는 없었고, 그가 고통받았다는 걸 보여주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로, 도나티는 성하가 갑자기 깨어나 그의 저녁이 어땠는지 물어도 놀랄 것 같지 않았다.


도나티는 루케시가 교황의 직책을 맡은 첫날부터 그의 스케줄을 관리했다. 저녁 일상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7시부터 830분까지 였고, 서재에서의 서류 작업은 830분부터 10시까지, 그리고 이어 개인 채플에서의 15분 동안의 기도와 반성의 시간이 있었다. 통상, 그는 1030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나쁜 줄 알면서도 침대에서 탐정 소설을 즐겼다. 소설 한 권이 그의 돋보기 밑에 놓여 있었다.


도나티가 보기에 교황이 죽은 지 거의 두 시간 혹은 더 길 수도 있었다. 그는 조용히 누가 그를 발견했느냐고, 집안 살림을 돌보아 주는 수녀 중 한 명은 아닌 것 같은데, 라고 말하자 알바네제 추기경이 자신이 발견했다고 말했다. 도나티가 그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자 알바네제가 성하는 채플에서 생을 마감하셨다고 하면서 10시가 막 지나고 몇분 후에 그를 발견했고, 그가 죽은 시간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도나티는 왜 자신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알바네제는 여기 저기 당신을 찾았다고 했고, 도나티가 자신의 셀폰으로 했어야 했다고 하자 알바네제는 여러 차례 했지만 당신이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도나티는 궁무처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당신은 채플에서 뭘하고 있었느냐고 묻자 알바네제는 이건 심문이 시작된 것처럼 들린다고 하면서 나바로 추기경을 보았다가 다시 도나티를 바라보았다. 그는 성하께서 그와 함께 기도해 달라고 하셨었다고, 자신은 그의 초대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도나티가 그가 직접 전화를 하셨느냐고 묻자 궁무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아파트로 했다고 했다. 도나티가 그것이 몇시였느냐고 묻자 알바네제는 깜빡한 대수롭지 않은 사항을 회상하듯 천장을 쳐다보며 915분에서 20분이라고 하면서 그가 10시가 지나고 몇분 후 와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도착했을 땐.., 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도나티가 침대를 내려다 보며 교황이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됐느냐고 묻자 알바네제는 자신이 옮겼다고 했다. 도나티가 혼자서요? 라고 묻자 알바네제는 성하께서는 교회의 무게를 그의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지만 죽은 그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도나티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 국무장관을 소환했고, 국무장관이 나바로와 프랑코나 추기경에게 차례로 연락한 다음 자신이 가요 의사에게 연락해 그가 교황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선고한 것이라고 했다.


도나티가 교황의 주치의에게 사망 선고를 한 시간이 언제냐고 묻자 의사가 1110분이라고 대답했다. 알바네제 추기경이 살짝 목청을 가다듬으며 자신이 공식적인 선언에서 시간대를 살짝 조종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도나티에게 만약 원한다면 그를 발견한 사람이 당신이었다고 말해 줄 수 있다고 했고, 도나티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도나티는 콘클라베 (conclave: 교황 선거 회의)에서 예기치 않게 베니스의 총대교구장이었던 루케시를 로마 가톨릭 교회의 265번째 교황으로 선출한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바티칸 연구가들은 그에게 '비현실적인 피에트로'라는 명칭을 부여했고, 교회 강경파들은 그를 '뜻밖의 교황' 이라고 조롱했다.


잠시 후, 누군가 도나티의 어깨를 건드렸다. 알바네제가 각하, 반지요, 라고 말했다. 죽은 교황의 '어부의 반지' (Ring of the Fisherman a.k.a 'Piscatory Ring', 교황의 공식적인 반지로, 낚시하는 베드로의 형상이 양각되어 있음-마가렛 주)를 추기경들 앞에서 부수는 것이 궁무처장의 책무였다. 그러나 교황의 이마를 은망치로 세 번 두드리는 전통처럼 반지 폐기 관행도 폐지되었다. 자주 착용하지 않았던 루케시의 반지는 십자가의 표시로 두 번 깊게 자국을 내는 것으로 끝날 것이었다. 하지만 교황의 아파트를 즉시 잠그고 밀봉하는 것과 같은 다른 전통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루케시의 유일한 개인 비서였던 도나티 조차도 일단 시신이 옮겨지면 들어가는 게 금지되었다.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도나티는 침대 옆 테이블 서랍에서 묵직한 금반지를 집어 들어 그것을 알바네제 추기경에게 건넸고, 그는 그것을 벨벳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숙연하게 'Sede vacante' (교황궐위상태)라고 선언했다.


성 베드로의 왕좌는 이제 비었다. 사도 헌장은 알바네제 추기경이 최고지도자 부재 기간 동안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일시적인 관리자로 봉사한다고 명령했다. 그 기간은 새 교황이 선출되면 끝나게 되어 있었다. 그저 명목상의 주교인 도나티는 그 문제에 있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사실, 그가 모시던 분이 가고 없는 지금, 그는 지위나 권력이 없었고, 궁무처장에게 대답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도나티가 언제쯤 대중에게 선언할 계획이냐고 묻자 알바네제는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도나티가 그걸 검토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알바네제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만약 좀 더 늦으면...이라고 말하는데 도나티가 루케시의 몸에 손을 올리며 물론이죠, 각하, 하고 말했다. 루케시의 몸은 이미 차가웠다. 그는 혼자 루케시와 잠깐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에 있던 사람들이 천천히 나갔는데, 알바네제 추기경이 가장 늦게 떠났다. 도나티가 그에게 물어볼 게 있다고 하면서 서재의 커튼을 닫은 사람이 누구냐고, 자신이 9시에 떠날 때엔 그것이 열려 있었고, 셔터 역시 그랬다고 말했다. 알바네제가 자신이 닫았다고 하면서 늦게까지 아파트에 불이 켜져 있는 걸 광장에서 사람들이 보지 않았으면 했다고 말했다.


궁무처장은 문을 열어둔 채 밖으로 나갔다. 그가 모시던 분과 혼자 남은 도나티는 눈물을 삼켰다. 나중에 슬퍼할 시간이 있겠지. 그는 몸을 루케시의 귀 가까이 대고 차가운 손을 꼭 잡으며 말 좀 해 보세요, 이곳에서 오늘 밤 진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라고 속삭였다.


한편, 수상에게 그녀의 남편 가브리엘 (Garbriel Allon)이 절실히 휴가가 필요하다고 남모르게 알린 사람은 키아라 (Chiara) 였다. 가브리엘은 이스라엘 텔 아비브 (Tel Aviv)의 킹 사울 불르바드 (King Saul Boulevard)에 있는 이스라엘 비밀 정보국의 책임자로 마지못해 자리잡은 이래, 오후의 잠깐 휴식 조차도 갖지 못했고, 파리의 폭탄 테러 후 며칠 동안의 근로 요양이 전부였다. 그 사고로 그는 아래 척추뼈 두 개가 골절되었다.


여전히, 그것은 가볍게 여길 만한 일이 아니었다. 가브리엘은 안전한 대화와 강한 보안을 요구했다. 키아라와 쌍동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에 대한 협박이 너무 강해서 그들은 이스라엘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본 적이 없었다. 먼 곳으로의 외국 여행을 간다는 건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서 모든 국가 위급 상황이 생기면 가브리엘은 즉각 킹 사울 불르바드로 돌아와야 했다. 그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었다.


휴가 동안 가브리엘이 할 수 있는 뭔가를 찾는다는 것이 숙제였다. 매일 아침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하기 전 몇 시간 동안 그가 몰두할 수 있는 것. 키아라는 이것을 이미 그가 편안해 했던 베니스 (Venice)에서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가 미술 복원 기술을 공부했고 견습 시절을 보냈던 도시, 그와 그녀가 사랑에 빠졌던 그곳에서 말이다. 그녀는 그 도시에서 태어났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곳의 점점 줄어드는 유태인 커뮤니티에서 유태교 최고 지도자로 일했다. 더구나, 그녀의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날마다 성화였다. 그녀는 그곳이 완벽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일석이조.


그녀는 가브리엘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리지 않았다. 만약 말하면, 그는 자신이 하루라도 휴가를 받으면 왜 이스라엘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온갖 걱정스런 이유를 갖다 대며 일장 연설을 할 것이 분명했다. 대신, 그녀는 부국장인 우찌 나봇 (Uzi Navot)과 상의해 비밀스럽게 날짜를 선택했다. 사무실의 보안을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는 시설관리과에서는 숙소를 알아보았다. 가브리엘과 매우 가까운 지역 경찰과 정보기관에서는 보안을 책임지기로 했다.


10월 말 어느 날, 가브리엘의 걱정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그들은 베니스에 도착해 6개의 전통 구역 (sestieri) 중 가장 북쪽 카나리지오 (Cannaregio)에 있는 허물어질 것 같은 오래된 궁전의 2층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는 커다란 응접실과 현대식 가전제품이 갖춰진 부엌, 그리고 리오 델라 미제리코르디아 (Rio della Misericordia)가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가 있었다. 네 개의 방 중 하나에 시설관리과에서 킹 사울 불르바드와 연결되는 보안 라인을 설치해 두었다. 그것은 텐트처럼 생긴 것으로, 사무실에서 쓰는 암호로 '추파' (chuppah) 였다. 그곳에서는 가브리엘이 도청 걱정 없이 전화로 얘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평상복 차림의 군경찰관이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과의 협의로 가브리엘은 9mm 베레타 권총을 소지하기로 했다. 현장요원이었고 남편보다 총을 더 잘 쏘는 키아라 역시.


알론 가족은 월요일 저녁 베니스에 도착한지 몇 시간 후 키아라의 부모인 제이콥 졸리 (Jacob Zilli) 랍비와 그의 아내 알레시아 (Alessia)와 함께 그들의 집에서 식사를 했다. 가브리엘은 애써 네 번만 전화를 확인하고 그쳤다. 랍비가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고 하자 가브리엘이 여느 때와 같다고 대답했다.


이후 몇 마디 계속 얘기를 나누다가 랍비는 가브리엘에게 마침내 아이들을 데리고 베니스에 올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지만, 이어 그는 목소리를 낮춰 어려운 시기에 오게 되었다고, 사비아노와 극우 친구들이 유럽에 검은 세력을 깨우고 있다고 말했다.


수상인 쥐세페 (Giusseppe) 사비아노는 외국인 혐오주의자였고, 편협했으며, 자유로운 언론을 믿지 않았다. 게다가 의회 자유주의나 법의 지배 같은 세부 사항에 조금도 참을성이 없었다. 현재 오스트리아의 수상으로 일하고 있는 신출내기 신국수주의자인 그의 친한 친구 외르크 카우프만 (Jorg Kaufmann) 역시 그랬다. 프랑스에서는 인민 전선당 대표인 세실 르클레르 (Cecile Leclerc)가 다음 엘리제 궁의 입주자가 될 거라고 널리 추측되고 있었고, 독일에서는 악셀 브루너 (Axel Brunner)라는 전 신나치 스킨헤드가 이끈 국민민주당이 1월의 총선에서 2등이 될 것이라고 기대되고 있었다. 모든 곳에서, 극우가 일어서고 있는 것 같았다.


서유럽에서의 극우의 상승은 세계화와 경제 불확실성, 그리고 대륙의 빠르게 변하는 인구 통계에 의해 더욱 활성화되고 있었다. 랍비는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행위들을 예로 들며 사비아노 같은 반 이민 정치가들이 병을 흔들고 뚜껑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의 지지자들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오는 망명자들에 대해 불평을 하지만, 그들이 가장 무시하는 사람들은 우리, 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 사례를 예를 들며 얘기를 하다가 오늘은 재미없는 얘기를 그만 하자고 하면서 손주들과의 저녁을 망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가브리엘은 일찍 잠에서 깨어 추파 아래에서 킹 사울 불르바드에 있는 그의 간부들과 얘기를 하느라 몇 시간을 보낸 후, 가족과 함께 모터보트도 타고 자신이 복원한 그림이 있는 성당에도 들렀다. 가을날의 햇빛이 사라질 무렵, 아이들은 시끄러운 게임에 합류했고, 가브리엘과 키아라는 한 나무 벤치에 앉아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아라가 경찰 초소를 흘끗 보더니 무장한 남자 두 명이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수요일, 가브리엘은 아침 전화 업무 후 아파트를 빠져 나와 나무 상자 하나를 들고 마돈나 델로토 (Madonna dell'Orto) 성당으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프란체스코 티에폴로 (Francesco Tiepolo)가 의뢰한 틴토레토 (Tintoreto)에 대한 복원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오래 오후 2시까지 교회에 머물렀고, 저녁엔 아이들을 조부모에게 맞기고 키아라와 밖에서 식사를 했다.


다음 날 목요일에, 그는 오전에 아이들을 곤돌라를 태워주었고 정오부터 티에폴로가 교회 문을 닫는 5시까지 작업을 했다. 그가 잠자리에 든 시간은 거의 새벽 1시가 다 돼서 였다. 키아라는 책을 읽고 있었고 TV는 무음이었다. 그런데, 화면에 생방송으로 성 베드로 성당이 중계 되고 있었다. 가브리엘이 볼륨을 켜자 오랜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편, 그날 아침 늦게, 교황 바오로 7세의 시신은 사도 궁전 빌딩 2층에 있는 살라 클레멘티나 (Sala Clementina)로 옮겨졌다. 그것은 다음 날 이른 오후까지 그곳에 머무른 다음 이틀 동안의 공공 전시를 위해 조용히 성 베드로 성당으로 이동되었다. 바티칸 방송은 교황의 최측근이며 친구였던 루이지 도나티 추기경이 그가 모시던 분의 곁을 거의 떠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교회 전통에 따르면 교황의 장례와 매장은 사후 4일에서 6일 걸린다고 되어 있었다. 도메니코 알바네제 추기경 궁무처장은 다음 날 화요일 그것이 시행될 거라고 하면서 콘클라베는 그후 10일 동안 소집될 거라고 발표했다. 바티칸 연구가들은 그것이 개혁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의 격전적이고 분열을 초래하는 다툼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죽은 교황에게 대적했던 추기경단 내에서 자신의 세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교회의 교리 문지기로서의 지위를 이용했던 호세 마리아 나바로 추기경이 유력하다고 했다.


피에트로 루케시가 총대주교로 있었던 베니스에서는 시장이 3일 동안 추모의 날로 선포했다. 시의 벨 소리가 멈췄고, 보통 규모의 미사를 성 마르코 (St. Mark) 성당에서 개최했다. 그외에 일상은 평소처럼 흘러갔다. 지역 사람들이 커피나 음료를 마시기 위해 모인 바에서도 죽은 교황의 이름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았고 바티칸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사람은 더 적었다. 전 세계 그리스도교국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베니스의 교회들은 외국 여행객들이 르네상스 예술 작품을 얼빠진듯 바라보는 그런 곳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일시적인 관심이 아닌 로마에서 행해지는 행사들을 계속 체크했다. 교황의 장례식날 아침, 그는 교회에 일찍 도착해 1215분까지 방해받지 않고 작업을 했다. 그때 신도석에서 발자국 소리가 울려 그는 확대경 차양을 올리고 그의 플랫폼을 덮고 있던 방수포 덮개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아트 스쿼드 (Art Squad)라고 알려진 경찰 문화 유산 방어부의 체사레 페라리 (Cesare Ferrari) 장군이 서 있었다.


가브리엘과 페라리 장군과의 인연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킹 사울 불르바드 사무실의 책임자가 되기 바로 직전, 가브리엘은 세상에서 가장 찾으려고 애를 썼던 카라바지오 (Caravagio)의 도둑맞은 그림 한 점을 되찾았었다. 그리고 그 공은 모두 아트 스쿼드에게 돌아갔다. 이 이유로 페라리는 가브리엘이 베니스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그와 그의 가족의 안전 보장을 제공해 주는 데 동의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잠깐 휴식를 갖기로 하고 함께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 (bar)로 갔다. 카운터 뒤의 TV에서는 교황의 장례식이 중계되고 있었다. 장군이 궁금해 할 것 같아서 말한다며 도나티 추기경은 당신이 참석하기를 원했다고 했다. 가브리엘이 그런데 왜 자신이 초대받지 못했느냐고 묻자 장군이 궁무처장이 듣지 않은 것 같다고 하면서 알바네제는 당신이 도나티나 교황과 친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그렇다면 자신이 참석하지 않은 게 오히려 더 나았을 것 같다고, 그저 혼란만 주었을 뿐일 테니까요, 라고 말하자 장군이 인상을 찌뿌리며 그들이 당신을 상석에 앉혔어야 되지 않느냐고 하면서 만약 당신이 아니었으면 교황은 테러리스트의 바티칸 공격 때 죽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들은 커피 두 잔을 시켰다. 남자 바텐더가 가져다 준 커피에 설탕을 넣고 젓는 장군의 오른손엔 손가락 두 개가 없었다. 그는 비밀 단체가 우글거리는 나폴리에서 근무하던 중 편지 폭탄으로 인해 손가락과 오른쪽 눈을 잃었다.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는 의안으로 인해 그는 차갑고 유연성 없는 시선을 갖게 되었다. 가브리엘 조차도 그의 시선을 피할 정도였다.


지금 그의 시선은 TV에 가 있었다. 카메라가 정치가, 왕가, 그리고 유명 연예인들의 얼굴을 훑더니 점차 주세페 사비아노에게로 가 멈췄다. 페라리는 사비아노 같은 사람의 등장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국민들은 자유 민주주의, 유럽 연합, 그리고 서방 동맹 등과 같은 공상적인 개념에 대해 신념을 잃었다고 했다. 세계화와 자동화 사이에서, 대부분의 젊은 이태리 청년들은 적당한 경력을 시작할 수도 없으며, 만약 그들이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원한다면 영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만약 그들이 이곳에 있으면 관광객들에게 커피 서비스나 할 뿐이라고 하면서 바텐더를 흘끗 보았다. 그러다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아니면 아스라엘 정보 장교가 되던지, 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사비아노가 그중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고 하자 장군은 아마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러는 동안 그는 힘과 자신감을 보여주게 된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능숙함은 어떠냐고 묻자 장군이 그가 이민자들을 계속 밀어내는 한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가 헛소리를 하든 관심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만약 극우 웹사이트에서 고안해낸 그런 위기 말고 진짜 위기가 오면 어떨 거 같으냐고 묻자 장군이 예를 들면? 하고 물었고, 가브리엘은 이런저런 걸 예로 들면서 그중 세계적인 팬데믹 같은, 말하자면 우리 인간이 자연 방어력이 없는 인플루엔자의 새로운 변종 같은 것 말이에요, 라고 말했다. 페라리 장군이 전염병? 이라고 되묻자 가브리엘이 비웃지 말라고 하면서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은 사비아노 같은 무능하고 충분한 소양이 없는 사람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 거 같으냐고 물었다. 그는 그가 전문 의료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 같은지, 아니면 그는 자신이 그들보다 더 잘 안다고 할 거 같은지, 또 그가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 할 것 같은지, 아니면 그는 백신과 구명 치료법이 바로 임박했다고 말할 것인지 물었다.


장군은 사비아노는 중국인들과 이민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며 비난하고 더 강해질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브리엘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뭔가가 있느냐고 물었다. 가브리엘은 뇌가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1918년에 있었던 인플루엔자 대유행 같은 규모의 것에 대비해 뭔가를 이미 했어야 한다며 자신은 수상에게 이스라엘이 직면한 모든 위험 중 가장 나쁜 건 펜데믹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장군이 자신은 도둑맞은 예술품만 찾으면 되는 게 참 다행이라고 말하며 TV를 바라보았다. 가브리엘이 다음 교황은 나바로가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페라리 장군이 그건 소문일 뿐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아는 게 있느냐고 묻자 페라리 장군은 마치 가득찬 기자들에게 말하듯 군경찰은 교황의 승계 과정에 대한 추적 감찰을 하지 않으며 이태리의 보안과 정보 기관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은 다음 교황이 누가 되든 이스라엘과는 상관없다고 하자 페라리 장군이 이젠 상관있게 되었다고 했다. 가브리엘이 무슨 말이냐고 하자 장군은 화면에 나오는 도나티를 보며 그가 설명하게 놔두겠다고 했다. 그는 도나티가 가브리엘이 그와 잠깐 얘기할 시간이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고 말했고, 가브리엘은 왜 그가 직접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느냐고 하자 장군이 그는 전화로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무슨 얘기인지 당신에게 말했느냐고 묻자 장군이 고개를 흔들며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만 말했었다고, 그는 내일 점심 시간에 로마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시간은 오후 1, 장소는 가브리엘도 아는 곳이었다. 장군은 도나티가 당신이 혼자 오기를 원한다고 했다. 가브리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브리엘의 로마행에 대해 얘기를 들은 키아라는 화를 내며 말도 안 된다고, 자신이 이 휴가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느냐며 수상까지 만나야 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은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둘만이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가브리엘이 일부러 마련한 시간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그저 하루라고 말했지만 키아라는 당신도 그걸 믿진 않지 않느냐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그렇지만 시도를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하자 키아라는 와인잔을 입술로 가져가며 당신은 왜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그가 알바네제 추기경이 베드로 광장에 자신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못했는 모양이라고 대답하자 키아라가 그 추기경이 바로 시신을 발견한 사람 아니냐고 말했고, 가브리엘이 전용 채플에서, 라고 말했다. 키아라가 정말로 그렇게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당신은 바티칸 공보실에서 정확하지 않은 공보를 냈다는 말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키아라가 당신과 루이지는 몇년 동안 몇몇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성명을 공동으로 내놓지 않았느냐고 했고, 가브리엘은 그렇지만 자신들의 동기는 항상 깨끗했다고 말했다.


키아라가 왜 그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페라리 장군은 뭐라고 말하더냐고 물었다. 가브리엘은 그가 별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키아라가 그답지 않다고 하자 가브리엘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다음 교황 선출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고 하면서 장군이 자세한 얘기를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들은 아이들 얘기를 하다가 그의 임기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가브리엘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자 키아라가 누가 그걸 세고 있느냐고 말했다. 일손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하는 가브리엘에게 키아라는 자신은 다른 건 다 괜찮고 그저 당신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2년은 눈 깜박할 새에 지나갈 거라고 말하자 키아라는 당신은 그들이 다음 임기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할 거냐고 했고, 가브리엘은 절대로, 하고 대답했다. 가브리엘은 수상에게 단임제로 일하겠다고 말했었다. 키아라는 그가 사무실을 떠난 후에도 이스라엘에 머무르면 위기가 있을 때마다 그를 찾을 거라며 자신은 베니스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가브리엘은 불평을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그것이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의 임기 2년 동안 키아라에겐 그 생각뿐일 것이었다. 둘이 그렇게 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계산을 하기 위해 웨이터를 기다리다가 키아라가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고 하면서, 루이지는 항상 밤 늦게 루케시의 곁에 남아 있었으며, 루케시가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하고 명상을 하기 위해 채플에 갈 때도 항상 함께 있지 않았느냐고, 그런데 왜 루케시의 시신을 발견한 사람이 알바네제 추기경이라고 바티칸은 공보했느냐고 말했다. 가브리엘은 내일 도나티를 만난 후에야 사실을 알게 될 거라고 하자 키아라가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을 데리고 가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반대했지만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조식후 아이들을 랍비의 집에 맡기고 산타 루치아 (Santa Lucia) 역에서 8시 로마행 기차를 탔다. 이태리 중부의 평야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가브리엘은 이메일을 체크하고 킹 사울 불르바드와 텍스트를 주고 받기도 했다. 키아라는 기차에 비치된 잡지와 카달로그를 넘기며 보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가끔 어두워지는 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도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머릿수도 괜찮았는데 그의 관자놀이 부분은 온통 흰머리였다. 그것은 사무실의 명령에 따라 그가 수행했던 첫 번째 암살 직후 하룻밤 사이에 그렇게 색이 변해 버렸다. 그 작전은 1972년 가을에, 그들이 곧 도착할 도시에서 있었었다.


기차가 플로렌스 (Florence)에 도착할 무렵, 킹 사울 블루바드로부터 긴급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것은 베를린에서 자동차 폭파가 있었다는 소식이었다. 키아라가 우리 돌아가야 하는 거냐며 누구 소행이냐고 묻자 가브리엘은 아직은 아니라고, 이슬람 국가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은 기차가 로마 테르미니 (Roma Termini) 역에 도착할 때까지 베를린으로부터 업데이트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피아자 나보나 (Piazza Navona)에서 어슬렁거리며 미행당하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도나티와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은 남쪽으로 조금만 가면 되는 곳이었다. 키아라가 먼저 들어갔고 웨이터가 창가의 테이블로 그녀를 안내했다. 3분 후쯤 도착한 가브리엘은 따뜻한 가을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야외에 앉았다. 그는 그곳에서 키아라를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낡은 피아트 (Fiat) 한 대가 천천히 정원의 자갈길로 들어섰다. 그것은 바티칸이 보유하고 있는 특별 넘버가 아닌 일반 로마 번호를 달고 있었다. 뒷 좌석에서 크고 잘생긴 사제가 내렸다. 그가 오자 레스토랑은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그는 가브리엘에게 미안하다며 『베너티 페어』의 기자와 인터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후 어딜 가든 자신을 알아본다고 말했다. 그리고 휴가를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가브리엘이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모시던 분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자신의 어려워진 상황과 지위의 상실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어디서 머무르고 있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예수회 집회소라고 대답하면서 바티칸에서 바로 길 아래쪽에 있다고 했다. 가브리엘이 그들이 당신이 뭔가 할 일을 찾아 주었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그레고리아 대학에서 교회법을 가르치게 될 거라고 하면서 자신은 또한 교회의 유태인과 얽힌 역사에 대한 과정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언젠간 당신이 객원 강사로 강의를 하게 될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그럴 수 있을까요? 라고 묻자 도나티가 그렇다고 하면서 우리의 두 종교 사이의 관계가 여태까지 중 가장 좋다고, 그것은 당신이 피에트로 루케시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서 그렇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교황이 죽던 날 밤 당신에게 텍스트를 보냈었다고 말하자 도나티가 정말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왜 자신에게 답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알바네제 추기경이 당신을 장례식에 참석하도록 허락하지 않은 것에 반대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라고 하면서 자신은 민감한 문제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고, 우리 관계의 친밀성에 불필요한 관심을 갖게 하는 걸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그 민감한 문제라는 건 뭐냐고 묻자 도나티는 그건 교황의 죽음과 관련된 거라고 하면서 약간 더듬거리며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그것은 시신을 발견한 사람의 정체부터 시작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자 도나티가 눈치채고 있었느냐고 물었고, 가브리엘은 그걸 언급한 사람은 사실 키아라라고 말했다. 그가 도나티에게 시신을 발견한 사람이 왜 도나티 당신이 아니고 알바네제 였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메뉴를 보며 뭔가를 시켜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을 돌렸다.


잠시 후, 호텔 지배인이 둘의 테이블로 접대용 와인 한 병을 보내왔고, 다시 그들 둘만 남게 되자 도나티는 교황 바오로 7세의 마지막 시간들에 대해서 가브리엘에게 설명했다. 도나티의 설명을 듣던 가브리엘이 마지막으로 했던 활동이 무었이었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자신이 교황에게 밤에 복용해야 하는 양의 약을 주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그가 무슨 약을 복용중이었느냐고 묻자 도나티가 세 가지 약 이름을 대며 모두 심장병을 치료하는 약이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그걸 잘 감추었다고 말하자 도나티는 이곳에서는 모두들 거기에 능숙하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몇 달 전 교황이 심한 기침 감기로 병원에 잠깐 머무른 게 생각난다고 하자 도나티가 심장 마비였다고, 그의 두 번째 였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왜 그렇게 숨겨야 하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만약 바티칸의 나머지 사람들이 루케시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그의 교황직은 사실상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며, 남은 시간 동안 그는 많은 일을 해야 했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무슨 일이었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교황이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엄청난 이슈들을 전하기 위해 세 번째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려고 고려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파는 아직 2차 공의회와 타협하고 있는데, 그건 반 세기 이상 전에 완성되었고, 3차 공의회는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당신이 루케시에게 약을 준 후 무엇을 했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자신은 기사가 기다리고 있는 차로 갔고, 그때가 9시 가량이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차를 타고 어디 갔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잠깐 다른 말을 했다가 가브리엘에게 베로니카 마케세 (Veronica Marchese)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닥터 베로니카 마케세는 국립 에트루스코 박물관 (Museo Nazionale Etrusco) 관장이었으며 이태리에서 에트루스칸 문명과 유물에 대한 가장 첫 번째 권위자였다. 1980년대 동안, 몬테 큐코 (Monte Cucco)의 움브리아 (Umbrian) 마을 근처 고고학 유적지를 연구하는 동안, 그녀는 예수회 소속의 한 신부와 사랑에 빠졌다. 그는 해방 신학의 열렬한 옹호자였는데, 엘 살바도르 (El Salvador)의 모라잔 지방 (Morazan Province)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그의 신념을 잃었다.


둘의 관계는 신부가 베니스 교구에서 일하게 되어 교회로 돌아가자 갑자기 끝나버렸다. 상심한 베로니카는 바티칸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명문가 출신의 부유한 로마인 사업가인 카를로 (Carlo) 마케세와 결혼했는데, 그는 성 베드로 성당의 돔 꼭대기에 있는 감상용 갤러리에서 떨어져 죽었다. 가브리엘은 그가 방호 장벽 위로 올라갈 때 카를로의 옆에 서 있었다. 200 미터 아래에서 도나티는 그의 부서진 몸에 기도를 해 주었다.


가브리엘이 그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된 거냐고 물었다. 도나티가 말을 돌리려 하자 가브리엘이 대답하라고 재촉했다. 도나티가 아무 것도 계속된 건 없지만, 그녀와 정기적으로 저녁 식사를 해오고 있다고 말하며 정확하게 아마 2년이 넘을 거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당신들 두 사람이 대중들이 있는 데서 밥을 먹진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라고 말하자 도나티가 아니라고, 베로니카의 집에서만 먹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과 키아라도 베로니카의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가브리엘이 얼마나 자주 만났느냐고 묻자 도나티가 위급 상황이 없다면 매주 목요일 저녁에, 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한 첫 번째 규칙이 패턴을 피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도나티는 베로니카와 자신이 저녁을 같이 먹는 것에 있어서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면서 독신의 규율에 여자를 만난다는 걸 금지하고 있진 않다고, 그저 단순히 그녀와 결혼할 수 없다는 것뿐, 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그럼 자신이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허락할 거냐고 말하자 도나티는 엄밀히 말하자면 그렇다고 대답했다.


가브리엘은 비난의 눈초리로 도나티를 바라보며 왜 당신 자신을 기꺼이 그렇게 유혹에 가까운 곳에 두느냐고 물었다. 도나티는 베로니카가 말하길 자신이 그렇게 하는 건 등산을 하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했다고 하면서 그 자신이 발걸음을 제대로 유지하는지 아닌지 보려고, 만약 자신이 실패한다면 신께서 내려와 자신을 붙잡아 주실 것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가브리엘이 베로니카가 신중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하며 바티칸의 당신 동료들은 어떠냐고, 둘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도나티는 그곳은 재미있는 가쉽을 좋아하는 성적으로 억압된 남자들로 가득찬 작은 곳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그것이 당신이 심장병이 있는 한 남자가 당신이 사도 궁전에 있지 않은 날 밤에 죽은 것을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냐고 묻자 도나티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브리엘이 분명 그 이상의 것이 있군요, 라고 말하자 도나티는 그렇다고, 더 이상의, 라고 말했다.


도나티에 따르면 모든 건 알바네제 추기경의 전화로 시작되었다. 그것은 궁무처장이 죽은 교황을 채플에서 발견한 거의 2시간 후쯤에 온 것이었다. 알바네제는 도나티에게 여러 번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고 했고, 도나티는 자신의 전화를 체크했지만 받지 못한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다. 가브리엘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인 것처럼 들린다고 하면서 그런 다음은 어찌됐느냐고 물었다.


도나티는 교황의 서재 상황을 설명했다. 셔터와 커튼이 모두 닫혀 있었고, 책상 위에는 반쯤 남은 찻잔이 놓여져 있었는데, 한 가지 물품이 없어졌다고 하면서 그것은 사적인 편지였다며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가브리엘이 루케시가 수신인이었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그가 편지를 쓴 사람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편지의 내용을 물었지만 도나티는 교황이 자신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은 도나티가 완전히 정직하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그 편지는 손으로 쓴 거였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교황은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그것은 누구에게 쓴 거였느냐고 묻자 도나티가 옛 친구라고 대답했다.


도나티는 그런 다음 알바네제가 자신을 교황의 침실로 데려갔을 때 마주했던 상황에 대해서 묘사했다. 그리고 알바네제의 시신 발견, 그런 다음 그것을 옮긴 거에 대한 설명을 언급했다. 도나티는 솔직히 말해서 알바네제의 이야기 중 그럴듯한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라고 하면서 교황은 아주 왜소했고 알바네제는 황소같으니, 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물론 다른 설명이 가능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가브리엘에게 도나티는 교황은 채플까지 가지 못했고, 차를 마시다 책상에 앉아서 죽었다고, 자신이 침실에서 나왔을 때 찻잔이 치워져 있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교황의 시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동안 누군가가 찻잔과 받침을 치웠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교황의 시신은 사후 검사를 받았다고 생각치 않는다고 하면서 방부처리가 되었느냐고 묻자 도나티가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말했다. 예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신은 성당에 진열된 동안 완전히 회색으로 변했고 비오 12세도 그랬다고 했다. 그는 재앙이라고 하면서, 알바네제가 말하길 자신은 운에 맡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며 아마 그는 자신의 자취를 덮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찌됐든, 시신이 방부 처리됐으므로 독약의 흔적을 찾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교황 전용 아파트 밖 복도에는 보안 카메라가 없지 않느냐고 하자 도나티는 만약 거기에 카메라가 있다면 전용이 아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하지만 근무중인 스위스 가드가 있었을 거 아니냐고 하자 도나티가 언제나 있다고 했고, 가브리엘이 그럼 그가 아파트에 누가 들어갔는지 보았을 거 아니냐고 말하자 도나티가 그럴 거라고 대답했다. 가브리엘이 그에게 물어보았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당신이 걱정하는 걸 로렌조 비탈레에게 말했느냐고 묻자 도나티는 그런다고 그가 무얼 하겠느냐고, 교황의 죽음이 살인일 수도 있다고 조사하겠느냐고 말하며 바티칸에서의 경험이 있음에도 그런 질문을 하다니 놀랍다고 말했다. 그는 게다가 알바네제는 그걸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하자면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전용 채플에서 교황을 발견했고 도움없이 그를 침실로 옮겼다는 것. 그리고 교회의 가장 힘있는 세 명의 추기경이 참석한 곳에서 성 베드로의 왕좌가 비었다는 걸 선언할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시동을 걸었다고 했다. 모든 건 도나티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여자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중에 일어났다고 하면서, 만약 자신이 알바네제에게 의의를 제기한다면 그는 자신을 망하게 할 것이고, 바티칸 역시 그렇게 될 거라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성 베드로 광장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 중에서 믿음직한 사람에게 살짝 얘기를 흘리는 건 어떻겠느냐고 하자 도나티는 기자를 믿기에는 이 문제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라고 하면서 이건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낼 수 있는 충분히 숙련되고 가차없는 누군가가 다루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브리엘이 나같은 사람을 말하는 거냐고, 자신은 지금 휴가 중이고 일주일 안에 텔 아비브 (Tel Aviv)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도나티는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 누가 교황을 죽였는지 당신이 알아낼 시간은 충분하다고 하면서, 사실상 그건 이미 시작되었다고, 다음 교황을 선출할 사람들 대부분 카사 산타 마르타 (Casa Santa Marta or The Domus Sanctae Marthae: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옆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로 다음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콘클라베에 참가하는 추기경단을 위한 숙소-마가렛 주)에 들어가 있다고 했다. 그는 그들이 매일 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스포츠 뉴스 얘기를 하진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들이 시스틴 채플 (Sistine Chapel)에 줄서서 들어가고 문이 닫히기 전 교황의 살인 뒤에 누가 있는지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시스틴 채플이 문이 닫히고 콘클라베가 시작되면 교황이 선출되기 전까지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마가렛 주).


가브리엘이 모든 걸 감안해 볼 때 루케시가 살해되었다고 할 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다고 말하자 도나티는 자신이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브리엘이 이제 말할 때가 되었다고 하자 도나티는 잃어버린 그 편지는 바로 당신에게 쓴 거였는데, 교황이 바티칸 비밀 문서고에서 발견한 무언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그날 밤 교황의 아파트 앞에 서 있던 스위스 가드는 교황이 죽은 몇 시간 후 바티칸을 떠났고 그후 그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데...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