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ence

By

Shusaku Endo

Translated from the Japanese by

William Johnston

포르투칼의 예수회 (Society of Jesus) 소속이며 일본으로 보내졌던 크리스토바오 페레이라 (Christovao Ferreira) 신부가 나가사키 (Nagasaki)에서의 '구덩이' (the pit) 고문을 겪은 후 배교했다는 새로운 소식이 로마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경험많은 선교사였던 페레이라 신부는 일본에서 33년을 지내면서 동료, 선후배 사제들뿐만 아니라 비슷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또한 대단한 능력을 가진 신학자였는데, 박해 때 선교 사업을 위해 처음 비밀리에 카미가타 (Kamigata)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가 로마로 보내온 편지들은 불굴의 의지로 가득차 있었다. 비록 그가 위치한 곳의 상황이 아주 처참하다고 해도 그와 같은 사람이 신앙을 저버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의 배교에 대한 소식이 단지 네덜란드나 일본인들에 의해 꾸며진 허구적인 보고가 아닌가, 하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예수회에서나 전체 교회 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로마에서는 일본 선교가 얼마나 궁핍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선교사들이 보내온 편지를 보면 그런 상황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1587년부터 섭정을 하던 히데요시 (Hideyoshi)는 그의 선대들의 정책을 뒤집어 그리스도교에 대한 무시무시한 박해를 시작했다. 그것은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Nishizaka)에서 26명의 사제와 교인들을 처형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이후 전국의 그리스도교인들을 집에서 끌어내어 고문하고 잔인하게 죽였다. 토쿠가와 장군 (Shogun Tokugawa) 역시 같은 정책을 따라 1614년 일본에 있는 모든 선교사들을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같은 해 10월, 일본인 선교사나 외국인 선교사 모두 합하여 70명의 사제가 마카오와 마닐라로 가는 배에 승선해 도피길에 올랐다. 하지만 37명의 사제는 신자들을 두고 도망갈 수 없다며 일본에 남아 숨어지냈다. 페레이라 역시 그런 지하 사제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편지로 선교사들과 그리스도교인들의 체포소식 그리고 이어지는 처벌 등을 그의 윗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행한 체벌 중에는 옷을 벗기고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한 국자씩 그들의 몸에 붓는 고문도 있었다. 그 국자들은 구멍이 뚫려져 있어서 그 과정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 되었고, 따라서 고통도 오래 갔다. 그 고문은 꼭 신자들뿐만 아니라 사제들도 함께 받았다. 그들중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심한 고문을 하진 않았는데 그들의 목적은 그들을 죽이는 게 아니라 배교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의사를 데려와 상처를 치료해 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 나가사끼의 영주였던 우네메 (Uneme)는 그렇게 해서는 결코 자신들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모진 고문을 이겨내는 사제들의 용기를 보고 교인들은 더욱 힘을 얻었고, 대중들에게 그리스도교 교리를 전하는 데 효과가 있었다. 우네메의 의도와는 상반된 결과를 보인 것이다. 편지로 이런 상황을 알렸던 페레이라의 배교 소식은 고문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던 간에 커다란 충격이었다.

1635년, 로마의 루비노 신부 (Father Rubino)와 함께 네 명의 신부가 모였다. 그들은 극심한 고통의 땅으로 들어가 지하에서 선교 임무를 다하기 위해 그리고 페레이라의 배교에 대한 사죄를 위해 일본으로 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페레이라의 배교는 그만큼 교회에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그들의 무모한 계획은 처음엔 윗선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열정과 사도적 열의에 동정을 느꼈지만, 교도권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나라에 사제를 더 파견한다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프랜시스 하비에르 (Francis Xavier) 시절부터 그리스도교에 대한 씨가 풍부하게 뿌려진 곳으로서, 지도자가 없이 방치되어 교인들을 나몰라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의 유럽에서는 페레이라가 변두리에 있는 그토록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그의 신앙을 버렸다는 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실패뿐만 아니라 신앙 자체의 그리고 유럽 전체의 부끄러운 실패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여러 가지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 루비오 신부와 네 명의 사제는 마침내 배를 탈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고, 그중 세 명의 젊은 신부가 길고 힘든 여행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세 명의 신부들은 일본의 상황에 대해 자신들이 알아야 할 것을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들중, 세바스찬 로드리게즈 (Sebastian Rodrigues)는 1610년에 타스코 (Tasco)라는 곳에서 태어났으며, 17살이 되던 해에 신학교에 들어갔다. 로드리게즈의 친구인 나머지 두 사람, 후안 드 산타 마르타 (Juan de Santa Marta)와 프란치스코 가르페 (Francisco Garrpe)도 캄폴리드 (Campolide) 신학교에서 로드리게즈와 함께 공부했다. 그들은 소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했을 때부터 신학을 가르쳤던 페레이라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의 맑고 푸른 눈과 부드럽게 빛났던 얼굴이 고문으로 뒤틀린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고, 또한 그로 인해 그가 신에게 등을 돌렸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한편, 당시 동양으로 파견된 포루투칼인 선교사들이 리스본 (Lisbon)에서 인도로 가는 함대에 합류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 인도 함대의 출발은 리스본에서 일년 중 가장 흥미로운 행사 중의 하나였다. 그들이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인도의 고아 (Goa)로 먼저 간 다음 몇달에 걸친 항해를 해야 했다. 고아는 프랜시스 하비에르 때부터 동쪽으로의 모든 선교를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그곳에는 아시아 모든 곳에서부터 온 학생들이 공부하는 두 개의 신학교가 있었으며 유럽 출신의 선교사들이 자신들이 들어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상황을 배우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선교사들은 자신들이 가야할 곳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때론 6개월 혹은 1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1638년 3월 25일, 드디어 로드리게즈 일행은 주앙 다스코 (Joao Dasco) 주교로부터 축복을 받은 후 산타 이사벨라 (Santa Isabella)라는 이름의 인도 함대에 탈 수 있었다. 그것은 아프리카를 지나 인도로 가는 배였다. 가는 도중 폭풍도 만났고, 심한 비도 내렸다. 또 어떤 날은 견딜 수 없는 더위가 그들을 괴롭혔다. 그런 다음, 이 모든 악조건과 더불어 전염병이 발병했다. 그들이 탄 배에서만도 백명이 넘는 희생자들이 갑판 위에서 그리고 아래의 침상에 누워 신음했다. 후안 드 산타 마르타도 그중 한명이었다. 이후 폭풍으로 배가 뒤집힐 뻔한 나날등이 계속되던 중 그들은 드디어 목적지인 고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들은 일본의 소식은 끔찍했다. 그들이 배를 탄 그 해에, 3,500 명이 넘는 교인들이 쉬미바라 (Shimabara)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처형을 당했다고 했다. 그로 인해 그곳 전체가 인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되었고, 그 와중에 남아있던 그리스도교인들을 한 사람씩 한 사람 씩 찾아내 죽였다고 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소식은 그 반란으로 인해 일본 정부가 모든 무역상과의 교류를 차단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포루투칼의 배가 일본의 항구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마카오 (Macao)에 도착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절망했다. 그들이 도착하자 마자 마카오에 있던 발리그나노 (Valignano) 시찰관이 일본에서의 선교는 이제 불가능하며 그런 위험한 곳에 더 이상의 선교사를 파견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지하 선교사들에게서 온 보고서를 보면 일본에서의 선교 임무는 갑작스럽고 급격하게 끝났으며, 나가사키에서 마카오로 돌아온 네덜란드 항해사들에 의해 들은 페레이라의 일은 그가 붙잡혀 '구덩이' 고문을 받았지만 그것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페레이라가 붙잡힌 바로 그날 일본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치쿠고 (Chikugo)의 새 영주인 이노우에 (Inoue)라는 사람이 페레이라를 엄격히 문초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경우든 마카오의 교회에서는 세 명의 신부들이 일본으로 들어가는 것을 동의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발리그나노 신부의 솔직한 의견이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포루투칼 상선이 쉬마바라 반란과 연관되어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으므로 포루투칼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건 불가능하고 극히 위험스러운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 근처의 바다는 영국과 네덜란드 군함들이 떼지어 있어서 포루투칼 배를 향해 공격을 하였다.

하지만, 후안 드 산타 마르타는 그런 고통받는 땅에서 사제를 잃은 그리스도교인들은 목자 잃은 양떼와 같다며, 누군가는 그곳으로 가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아주 작은 거라도 신앙의 불씨는 꺼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발리그나노 신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역시 원로로서의 그의 의무와 불행하게 처형된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의 딜레마로 깊은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또한 그는 페레이라를 찾아야 하는 의무가 한 가지 더 있다는 그들의 말에 페레이라에 관한 소식은 더 이상 없다고 대답했다. 그들이 그가 살아있기는 한 거냐고 묻자 그것 조차도 확인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공포와 마찬가지인 이노우에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쉬마바라의 반란부터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의 처형을 지휘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노우에가 그리스도교인이었으며 세례까지 받은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아직 마카오에 있었던 로드리게즈와 가르페는 그에 관해 더 이상의 정보를 들을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의 간곡한 애원에 발리그나노 신부의 마음이 움직였고 그들은 일본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들은 운좋게 마카오의 중국인들 사이에서 살고 있던 한 일본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를 소개시켜준 중국인에 따르면, 그 일본인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를 처음 만난 날, 그는 알콜 중독자인 것처럼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그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28-9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그는 거렁뱅이 같았다. 그의 이름은 키치지로 (Kichijiro)였다. 그는 자시이 나가사키 근처의 히젠 (Hizen) 지구 출신 어부였는데 쉬마바라 반란이 있기 전 바다에서 표류 중 한 포루투칼 배가 그를 구해주었다고 했다. 술에 취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드리게즈는 그의 얼굴에서 교활한 표정을 보았고 말할 때 눈을 굴렸다.

가르페가 그에게 그리스도교인이냐고 묻자 키치지로는 갑자기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들은 가르페의 질문이 왜 그를 그토록 기분 상하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에 그는 그 문제에 대해서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의 설득 끝에 그는 큐슈 (Kyushu)에서의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처형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바닷가에 나무 막대기를 세워놓고 그곳에 그리스도교인들을 묶어 서서히 죽게 만든 고문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얼굴을 비틀었다. 로드리게즈는 혹시 그 사람들 중 그의 친구나 친척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가르페가 다시 그에게 신자가 아니냐고 묻자 그는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했다.

그들이 어찌됐든 당신은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고 자신들은 배를 살 돈이 있으니 선장 한 사람과 선원들을 구하자고 말하자 술에 취해 있으며 지저분했던 그의 노란색 눈이 교활하게 반짝였다. 그리고 구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꼭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서 고향에 남아 있는 친척들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렇게 그들의 계약은 성사가 되었다.

그때까지 그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어떻든, 그들이 일본에 도착하면 왼쪽으로 가야할지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조차 몰랐거니와 그들을 위해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그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교인들을 만나야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조마조마한 친구를 만난 것은 다행이었다. 적어도 이 사람을 그들의 일본에서의 첫 안내자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들은 아주 허름한 배를 한 척 구해 흰개미가 갉아먹은 그것을 수리했다. 수리가 된 그 배는 발리그나노 신부가 구해준 25명의 중국인 선원들과 함께 그들을 일본 근처로 데려다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떠나야 할 날짜가 다가오는 도중, 말라리아에 걸린 후안 드 산타 마르타 신부의 상태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편, 그들은 그들의 운명을 책임질 키치히로라는 일본인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는 다른 중국인 선원들과 잘 어울리는 듯 보였지만 참으로 교활한 사람이었다. 중국인 감독이 쳐다볼 때는 열심히 일한 척 하다가 그가 다른 곳으로 가면 언제 그랬냐는듯 게으름을 피웠다. 처음엔 다른 선원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점점 시간이 흘러 참을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그를 때렸다. 놀랍게도 세명의 선원들에게 구타를 당하자 창백해진 그는 모래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세상에서 가장 추한 방법으로 그들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을 했다. 결국 그 싸움은 신부들의 개입으로 중단되었고, 그는 그들에게 비굴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가르페가 그에게 진짜로 일본인이냐고 묻자 키치지로는 그렇다고 했다. 가르페가 그렇게 물어본 것은 그 동안 일본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기 때문이었다. 키치지로는 그들에게 일본에 도착하면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교인들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했지만 그의 행동으로 보아 그를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당시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를 믿을 수밖에.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배를 타고 마카오를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후안 드 산타 마르타는 결국 함께 배에 오르지 못했다.

가는 도중, 거친 바다 위에서 풍랑에 흔들리는 배에서 로드리게즈와 가르페는 키치지로가 멀미로 토하면서 얼떨결에 '산타 마리아' (Santa Maria)와 '그라시아' (gratia)라고 두번이나 내뱉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믿는 종교가 한 인간을 그렇게 비겁쟁이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가르페가 그에게 분명히 답하라며 그리스도교인이냐고 묻자 키치지로는 힘차게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말했다. 만약 그가 신자라면 왜 신부인 자신들에게 조차도 그 사실을 숨겨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후, 며칠이 지나도 육지가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한 선원이 소리를 지르며 뭔가를 가리켰는데, 그곳을 보니 새 한 마리가 날고 있었고 물 위에는 지난 밤의 폭풍우로 인해 수없이 많은 나무가지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가려고 하는 육지가 멀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문제는 만약 그렇다면 그 배는 더 이상 그곳에 다가갈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곳이 일본이 맞다면, 근처의 어떠한 작은 배라도 그들이 탄 배를 발견해서는 안되었다. 눈앞에 본토처럼 보이는 섬이 솟아 있었다.

가르페와 로드리게즈는 짐 사이에 개처럼 숨어 어둠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밤중이 되자 배는 소리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달이 뜨지 않아서 하늘은 어두웠고, 아무도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양쪽에 가파른 산이 솟아 있는 항구로 다가갔다. 키치지로가 먼저 내렸고 다음으로 로드리게즈,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르페가 내렸다. 그곳이 정말로 일본땅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에 속한 땅인지 솔직히 알 수가 없었다.

키치지로가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자리를 뜨자 두 사람은 조용히 얕은 구덩이에 숨어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젖은 옷을 움켜쥐고 숨을 멈췄다. 그들 눈앞을 지나가는 사람을 보니 머리에 천을 쓰고 등에 바구니를 매고 가는 한 노부인이었다. 그녀는 그들을 보지 못하고 계속 걸어갔다. 가르페가 키치지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불평했다. 하지만 로드리게즈는 더욱 나쁜 상황을 상상했다. 그가 그저 도망간 것이 아니라 유다처럼 그들을 배신한 것이라면...

그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흘렀고, 당시 로드리게즈의 영혼은 산산히 부셔져 버린 것 같았다. 정말로 공포스러운 시간이었다.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러 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몇사람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든 횃불이 어둠 속에서 움울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들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횃불을 앞으로 내밀자 그 불빛에 한 못생긴 얼굴이 나타났다. 붉기도 하고 검기도 한 그 얼굴을 가진 사람은 한 작은 노인이었는데, 그의 주변에 놀라운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대여섯 명의 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노인이 성호를 그으며 포루투칼어로 '신부님! 신부님! (Padre! Padre!' 하고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는 곤경에 처한 그들을 배려하는듯한 느낌이 배여있었다. 로드리게즈는 자신의 나라 언어로 '신부님!'이라고 불러주는 소리를 그곳에서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 노인이 더 이상의 포루투칼어를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가 그은 성호는 그들이 한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그들은 정말로 일본인 그리스도교인들이었다. 로드리게즈는 재빨리 모래 구덩이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일본 땅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었다.

키치지로는 특유의 아첨꾼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 사람들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아주 작은 일에도 도망갈 준비가 되어 있는 생쥐 같았다. 로드리게즈는 인간을 사랑해서 자신을 맡긴 그가 믿는 신과는 달리 키치지로라는 그 사람을 불신하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 입술을 깨물었다. 노인이 속삭이듯 서두르라고 계속 걸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방인들' (gentiles)에게 들키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교인임을 알려주는 또 다른 단어였다.

그날 밤, 그들은 로드리게즈와 가르페를 그들의 낮은 지붕 아래에 숨겼다. 근처의 마굿간에서 악취가 풍겨왔지만 그들은 위험하지 않다고 안심시켰다. 그런데 그때 키치지로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리스도인들을 찾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음 날, 로드리게즈와 가르페는 농부들의 옷으로 갈아입고 전날 만났던 젊은 사람들과 함깨 마을 뒷쪽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교인들은 그들이 그곳에 숨어있기를 바랬다. 그곳은 석탄을 쌓아놓는 오두막이 있었고 좀 더 안전한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도착한 곳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곳은 토모기 (Tomogi)라는 어촌으로, 나가사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주민은 200명 가량이었고 그 마을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이미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로드리게즈가 지금 상황은 어떠냐고 묻자 모키치 (Mokichi)라는 젊은이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교인들이라는 것이 발각되면 그들은 모두 처형될 거라고 말했다.

그들은 로드리게즈와 가르페가 목에 걸고 왔던 십자가를 주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뻐하면서 고개를 숙여 고개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이 절을 한 다음 십자가를 이마에 댄체 오랫동안 경외의 시간을 가졌다. 오랫동안 그런 십자가를 가져본 적이 없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6년전 한 일본인 신부와 예수회 수사와 비밀리에 접촉을 했지만, 그들이 죽고 난 후에는 다른 신부나 수사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6년 동안 자신들만의 비밀 조직을 만들어 그것을 유지해 오고 있었는데, 전날 해변에서 만났던 노인이 사제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들 모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사를 건 투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다른 마을까지는 연결되지 못한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혈육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또한 다른 사람들과 연결이 되면 자칫 정찰관에게 들킬 염려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로드리게즈는 십자가를 든 진짜 신부가 그곳에 다시 왔다는 걸 가능한한 많은 교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날 이후부터 그들은 밤에는 미사를 드리고 낮에는 그들을 찾아 올라오는 교인들을 기다리며 숨어지냈다.

매일 두 사람이 그들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었다. 그들은 고해를 듣고 보속을 주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그들은 혹시나 지나가던 누군가가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낮동안엔 오두막의 문을 꼭 닫았다. 물론 불을 피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모키치와 그의 친구가 오두막 바닥 바로 밑을 파 굴을 만들었다.

한편, 토모기라는 마을은 작은 밭에서 감자와 밀을 재배해 먹고 사는 아주 가난한 마을로, 그곳에 그리스도교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인간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그들은 자신들을 인간으로 대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다. 그들은 신부님들의 인간적인 친절함과 자선에 감동을 받았다.

로드리게즈가 아직 모든 교인들을 만난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관리들의 눈을 피해 밤에 오직 두 사람만이 그들의 오두막으로 올라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쉬마바라의 반란 이후 그 구역의 영주는 숨어있는 그리스도교인들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매일 관리들이 모든 마을을 샅샅히 뒤지고 다녔다. 그리고 때론 갑자기 어떤 집을 습격하기도 했다. 그들은 지난 해 이후로 옆집과의 사이에 울타리를 치지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이웃의 행동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고, 만약 조금이라도 수상한 점이 발견되면 즉시 신고하라는 게 이유였다. 누군가 신부들을 신고하면 보상으로 은 300개를 받을 수 있었다. 만약 수사들을 신고하면 200개였고, 같은 신자를 신고하면 100개였다. 가난한 농부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양이고 유혹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로드리게즈는 그들을 찾아온 젊은이들이 얼굴에 왜 아무 표정이 없는지 궁금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얼굴에 슬픔이나 기쁨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의 그리스도교인으로서 비밀스럽게 살아야 했던 환경이 그들의 얼굴을 마치 가면처럼 표정없이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참으로 비통하고 슬픈 일이었다. 왜 신은 이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그토록 힘든 짐을 지우시는가? 그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편, 며칠 동안 비가 내려 로드리게즈와 가르페는 밖엘 나오지 못했다. 그들은 페레이라 신부에 대해서 알고싶었지만, 토모기 마을의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1633년까지 그는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나가사끼에서 지하 사도직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식이 끊겨버린 것이었다. 로드리게즈는 그가 살아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가르페에게 둘중 한 사람이 나가사끼에 가보면 페레이라를 아는 교인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던 이를 잡느라 여념이 없던 가르페는 만약 그들이 잡히면 모든 게 끝이라고 말했다. 그냥 둘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주위의 농부들에게까지 그 위험이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들이 이 나라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마지막 디딤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로드리게즈는 한숨을 깊이 쉬었다. 그리고 키치지로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자 가르페는 코웃음을 치며 그 자를 어찌 믿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로드리게즈가 만약 자신들도 페레이라처럼 붙잡히면 어떡하냐고 하자 가르페는 지금은 자신을 괴롭히는 이가 더 문제라고 댓구했다.

일본으로 온 이후 가르페는 항상 긍정적이었다. 실은 로드리게즈 자신 역시 그들이 붙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인간은 참으로 이상한 존재여서 어려움이 닥쳐오면 가슴 깊은 곳에서 그것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았다. 비 오는 날이면 저 멀리 언덕에는 해가 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로드리게즈는 일본인들에게 잡히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 작은 오두막에서 그는 영원한 평안을 느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이상한 감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무렵, 두 사람이 다른 날처럼 오두막과 숲 사이에 있는 바위 위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무에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 위로 날아 올랐다. 그것은 하늘에 아주 시커먼 곡선을 남기며 먼 언덕을 향해 날개짓을 했다.

그때, 가르페가 숨을 죽이며 다급하게 누군가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선을 땅에 고정시키고 날카롭지만 조용한 소리로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말했다. 저 멀리 이제 막 지기 시작한 햇빛이 비추고 있는 언덕 위에 두 명의 남자가 그들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들이 토모기의 농부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로드리게즈와 가르페는 움직이지 않은채 마치 돌처럼 가만히 앉아서 서쪽으로 지고 있는 햇빛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지 않기를 기도했다.

언덕 위 두 남자가 거기 누가 있느냐고 소리쳤다. 대답을 해야 할지 아니면 조용히 있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가르페가 그들이 언덕을 내려와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오고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아니라며 그들이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갔다고 말했다. 그들의 모습이 점점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서양빛을 받고 서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그들이 두 사람을 보았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밤, 그들을 만나러 온 교인 두 사람에게 아까의 상황을 말하자 그중 한 사람이 오두막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들은 서로 얘기를 나누더니 마룻바닥 판을 뜯어내고 벽에 걸려 있던 삽을 내려 땅을 파기 시작했다. 로드리게즈와 가르페가 들어갈 만한 구덩이를 판 다음 그들은 그 안에 짚을 넣고 다시 나무판으로 덮었다. 그곳이 두 사람의 은신처인 모양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두 사람은 아주 조심했다. 오두막 밖으로 전혀 나가지 않았고, 밤엔 어떤 불도 밝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닷새 후, 그들은 일본으로 온 이후 처음으로 비밀리에 어린아기에게 세례를 주었다. 초도 없었고 음악도 없었으며 단지 성수로 쓰고 있던 작은 깨진 유리컵 속의 물이 전부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성스럽고 값진 세례식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끝나고 지친 가르페는 곯아 떨어져 코를 골았고 그 소리에 잠을 깬 로드리게즈는 순간 누군가가 그들의 문을 슬그머니 열려고 하는 걸 발견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