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tter Season

By

Tami Hoag

20년전, 11월 어느 날, 미네소타 (Minnesota) 주의 미네아폴리스 (Minneapolis)에서 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테드 더피 (Ted Duffy)라는 미네아폴리스 경찰서의 성범죄과에서 7년째 일하고 있던 형사로, 자신의 집 뒷뜰에서 장작을 패고 있다가 날아온 총에 맞아 즉사했다.

데드 더피는 아주 유능한 형사였다. 처음 성범죄과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그곳을 좀 더 나은 다른 부서로 옮겨갈 수 있는 발판으로 생각했지만, 그 일을 너무나 잘 해내는 바람에 그 자신을 인간의 패악으로 인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시궁창으로 더욱 들이미는 격이 되었다. 그곳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그는 사건들을 점점 더 잘 해결해냈다. 그리고 그가 점점 더 사건을 잘 해결해 낼수록 점점 더 그곳에서 나올 수 없게 되었고, 점점 더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자, 그것은 그의 영혼에 점점 더 큰 흔적을 남기며 망가져 갔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볼 때마다 그는 자신이 그의 쌍동이 형제보다 훨씬 더 빨리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주름살도 점점 더 깊어졌고, 눈빛은 공허해졌으며, 머리숫도 점점 없어지고 하얗게 변해갔다. 그는 안팎으로 자신이 의식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그런 자신의 화를 삭이기 위해 장작을 팼다. 그의 집은 그 도시의 여러 호수 중의 하나로 둘러싸인 크고 넓은 공원 뒷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공원은 그로 하여금 숲속에 살고 있다는 환상을 갖게 만들었다. 그가 죽은 날도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장작을 패고 있었다. 그는 일년중 이때가 제일 싫었다. 오후 내내 비가 오락가락 하다가 유리조각 같은 눈으로 변해 그의 붉은 뺨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그는 이런 미네소타의 겨울 날씨가 싫어 매번 은퇴하면 따뜻한 플로리다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심했지만, 한편으로는 만약 플로리다로 가서 장작패기를 못하면 자신의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가 항상 고민이었다. 또한 친구들, 그리고 그의 와이프 바비 (Barbie)와 근처에 사는 가족들. 만약 간다면 혼자 가야할 것이고,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그가 떠나면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그래서 그는 계속 장작을 팼다.

그런데, 잠시 후, 그가 장작을 팰 때 나는 소리에 이어 다른 소리가 났다. 그것은 멀리서부터 들려온 소리였다. 그 소리는 두발의 총소리였다. 하지만 왜 그가 죽었는지, 그에게 총을 쏜 범인은 누구였는지 밝혀지지 않았고 25년 동안 미제 사건 (cold case)으로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현재, 역시 11월 어느 날, 미네아폴리스 경찰서에 미제 사건 전담반이 생겼다. 이제 막 생긴 그곳에서 두 형사 니키 리스카 (Niki Liska)와 진 그라이더 (Gene Grider)가 어떤 사건을 최우선으로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라이더는 이제 전담반이 생겼으니 같은 경찰이었던 테드 더피 사건을 제일 먼저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니키는 해결될 가능성이 없는 그 사건은 아예 고려 대상도 아니라고 반대했다.

그라이더는 그녀가 경찰이 되기 전 살인사건 전담과를 비롯해서 30년 동안 과실 치사, 강도, 성범죄과 등에서 일했다. 그는 은퇴한지 18개월이 지났는데 미제 사건 전담반이 생긴 이후 이 부서에서 일하기 위해 복귀했다. 물론 파트타임이었다. 퇴임 후 연금으로만 살아야 했던 그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제의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가 그렇게 복귀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테드 더피였다.

그는 이번 달이 더피가 살해된지 25년이 되는 달이며 그의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건 수치라고 말했다. 이 사건을 위해 자신이 은퇴를 했음에도 다시 일하러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침내 미제 사건 전담반이 생겼으니 이 사건을 제일 먼저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니키가 그 사건을 아무도 해결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그것을 내내 맡아서 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자, 그라이더는 그들이 한 것은 아무런 지원이 없는 그저 부업 같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전국 어디서나 미제 사건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그렇게 단편적으로 말이다. 미제 사건 담당 부서라는 것은 현실 보다는 TV에서 더 잘 다루어지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경찰서는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예산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살인 사건 담당 형사들은 모두 오래된 미제 사건들을 갖고 있었는데 시간이 날 때 조금씩 조사하다가 다른 부서로 이동하거나 은퇴할 때 그것들을 다른 동료에게 넘겨주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간간히 해결되는 사건이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었다.

한편으로 니키 역시 그곳으로 옮겨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살인 사건과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데는 쉬지 않고 계속 24시간 이상 일해야 했지만, 미제 사건반은 그런 긴급상황이 없었다. 그래서 규칙적인 출퇴근 시간이 보장되어 아이들과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각각 14살과 16살이 된 두 아들 알 제이 (R.J.)와 카일 (Kyle)은 한참 사춘기를 맞아 소년에서 독립적인 어른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주변에 어른이 필요했고, 그녀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그일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니키가 그녀의 큰아들 카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한창 한 연쇄살인범을 뒤쫓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을 때였다. 요즘의 십대 아이들의 삶은 그녀의 십대 때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의 일을 얼마나 사랑하든지 간에 아이들은 그것보다 수백만배는 더 사랑했다. 그래서 이 부서로 옮겨왔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다른 형사와 싸워야 하는 현실에 부딪친 것이다. 그라이더는 테드 더피의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면 자신은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는 리스카를 째려보다가 미네아폴리스의 모든 경찰이 들고 일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테드 더피 사건이 경찰관이 결부된 사건들 중 유일하게 미제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고, 그것은 부서의 불명예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라이더는 자신들이 필요한 건 그 사건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25년이 지난 후에 그 누군가가 왜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한 혹 누군가가 말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증명해줄만한 확실한 증거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들은 말로 혹은 진술이 입증되지 않은 공범의 증언만으로 재판에 회부될 수 없었다. 니키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해결하려고 생각했던 미제 사건은 2001년에 있었던 한 젊은 엄마의 강간 살인 사건이었다. 두 명의 확실한 용의자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생각하기에 해결하기까지 딱 두개의 퍼즐 조각만 있으면 되었고 입증할 수 있는 약간의 운만 있으면 되었다. 희생자의 엄마와는 이미 연락이 되어 있었다.

잠시 후, 둘의 언쟁을 지켜 보고 있던 카운티 부검사장인 크리스 로간 (Christ Logan)이 니키에게 더피의 파일을 읽어보았냐고 물었다. 니키는 수십개의 다른 파일들을 읽고 있느라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로간은 조금만 시간을 내서 더피의 파일을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그러고 난 후에도 아무 것도 나오지 않더라도 적어도 시도는 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옆에 있던 그라이더는 그 사건은 분명 언론에서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정치적으로 야망이 있는 검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언론의 관심을 받는 거였다. 현재의 검사장이 상원에 출마할 것이라는 건 비밀이 아니었다. 그러면 로간이 해네핀 카운티 (Hennepin County)의 일인자가 될 것이었다. 만약 더피 사건을 가장 처음 다루기로 하면, 그 소식을 처음 내놓는 것으로 새로운 부서가 생겼다는 것을 알리게 될 것이고 동시에 경찰 유니언의 호의를 얻게 될 것이다. 일타쌍피였다. 즉 경찰에게, 그는 그 사건을 재조사하는 영웅으로 보여질 것이고, 언론이 다른 뉴스쪽으로 관심을 돌린 후, 그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조사한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여겨질 것이기 때문에 로간에게는 손해볼 일이 없었다.

니키는 의자에 몸을 깊숙히 묻고 팔짱을 낀채 생각했다. 실패했다고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그라이더가 원하는 사건 하나를 갖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면 그녀가 그 젊은 엄마의 사건을 해결하는 데 열중하고 있을 때 그가 관여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여러 형사들이 함께 일하고, 또 여러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는 살인 사건과와는 다르게 미제 사건과는 각각의 형사가 한번에 한 건씩 맡아서 그것을 해결하거나 혹은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다른 사건으로 옮겨가거나 했다.

마침내 로간이 더피의 사건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사건이라고 하자 새 과장으로 부임해 온 조앤 마쉐리노 (Joan Mascherino)가 테드 더피의 사건을 첫번째 사건으로 한다고 흰 보드에 적었다. 그라이더가 니키를 보고 교활한 미소를 짓자 그녀는 그들의 팀원 중 세번째 멤버인 캔드라 실리 (Candra Seley)를 바라보았다. 캔드라는 비지니스 및 테크놀러지과에서 잠시 데려온 인력으로 증거 검토, 테스트 결과의 처리와 재처리, 증인과 용의자의 백그라운드 체크, 증인 리스트 직성하기, 시각표 만들기 등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라이더가 일어나면서 당장 그 일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마쉐리노가 그를 저지했다. 그러더니 그라이더와 니키 둘 다에게 폭탄을 투하했다. 더피 사건은 니키가 담당이라고. 그라이더와 니키는 동시에 놀라서 뭐라고!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라이더는 얼굴을 붉히며 그것은 자기 사건이라고 말했다. 마쉐리노는 단호하게 그것을 신선한 눈으로 다시 보는 것이 필요하다며 오래된 사건을 새로운 사람이 맡는 것, 그것이 미제 사건 팀의 중요 포인트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라이더는 자신이 그 사건의 안팎을 다 알고 있으며 거기에 연관된 사람들을 다 안다고 주장했다. 마쉐리노는 그것이 바로 요점이라며, 자신은 그 사람들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 일이 어떨 것이라고 미리 예측하지 않는 사람. 그녀는 그것만이 이 오래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니키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잠자리로 보내지 않은 전남편과 이런저런 문제로 언쟁을 하고, 그것을 들은 알 제이가 속이 좋지 않다고 해 그를 재우러 올라갔다. 알 제이는 그녀에게 아빠와 싸우지 말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의 곁에서 진눈개비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그 진눈개비 소리를 들으며 잠이 깬 사람이 있었다. 에비 (Evi)는 시니어 사회 복지사로 크라이살리스 센터 (Chrysalis Center)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곳은 성폭행, 가정 내 폭력, 성매매 (성적 인신매매) 희생자들을 위해 일하는 곳이었다.

본명이 에반젤린 그레이스 예거 (Evangeline Grace Jeager)인 에비는 소방관인 남편 에릭 (Eric)과의 사이에 5살난 딸 미아 (Mia)를 두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성실한 남편과 어여쁜 아이를 가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자신의 상황이 꿈만 같았다. 그녀는 과거의 일로 인해 항상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간혹 불면증으로 힘들어 했다. 악몽을 꾸고 나면 즉각 깨어나지 못하고 가만히 누워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해야만 했다. 그러고 나면 다시 잠들지 못했다. 한때 그녀 역시 자신이 일하고 있는 센터의 여자 아이들처럼 그런 거리 생활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크라이살리스 센터의 도움으로 그 생활을 벗어나 대학엘 진학했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 그곳에서 과거의 자신의 상황과 같은 처지에 놓인 여자아이들을 돕고 있었다. 그녀는 크라이살라스 센터의 본보기였다.

그날도 역시 그녀는 새벽에 잠에서 깨어 남편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침대에서 빠져 나와 미아를 살펴본 다음 거실에서 TV를 켜고 뜨개질을 하고 있는데 에릭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잠시 후 TV에 여러 사진과 흉칙한 장면이 방영되었다. 에비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낯선 소름이 그녀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스쳐 지나갔다. TV에는 '새로운 미제 사건 전담반에서 첫번째 목표로 정한 미제 살인 사건'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그리고 사진이 보여졌다. 그것은 테드 더피가 양복을 입고 상을 받고 있는 장면으로, 그의 뒤에는 그의 아내인 바비와 쌍동이 형제가 박수를 치며 서 있었다.

에릭은 에비와 TV를 번갈아 보며 의아해 하며 그녀에게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에비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남편을 보며 새로 생긴 저 반은 많은 희생자들의 가족을 위한 뜻밖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잠자리로 들자고 말하는 남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그녀는 지금 자신이 꿈꾸던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이곳이 자신이 원하는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지만, 눈을 감자 과거의 사람들의 얼굴만이 떠올랐다.

한편, 진눈깨비가 창을 때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사람은 에비만이 아니었다. 새벽 1시 30분경, 미네소타 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루시엔 챔벌레인 (Lucien Chamberlain) 역시 진눈개비의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는 침대 옆 탁자에서 안경을 찾아 전화기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옆을 보니 아내 손드라 (Sondra)는 잠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가 코를 곤다며 귀마개를 하고 있었는데, 사실 코를 고는 사람은 그가 아닌 그녀였다. 그녀는 특히 술을 마신 날은 코를 골았는데, 요즘엔 평소보다 더 마시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뭔가를 숨기는 데 아주 능란해서 오랜 세월 동안 그를 바보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실은 그가 더 이상 개의치 않는 것인데도 말이다.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혹은 그의 친구들 혹은 이웃들 앞에서 그를 망신주지 않는 한 그는 그녀를 내버려 두었다. 그것이 그들의 결혼 상태였다. 인내와 동거. 그는 더 이상 그녀를 여자로 보지 않았다. 그의 인생은 오로지 그의 경력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저 공공 행사를 위한 동반자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결혼생활을 한지 30년이 되었다. 그녀와 결혼한 이유는 가족간의 관계 때문이었으며 그녀의 돈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는 최근 발표한 논문이 없어서 그리고 과 내의 권력 투쟁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쓴 일본과 중국의 무사 시대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관한 책이 팔리지 않았다는 것에 큰 상처를 받았으며, 만약 그의 동료들이 찬사를 보냈다면 그는 이미 동아시아 연구소의 소장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씁슬했다. 그는 그 자리를 놓고 일본인 동료 교수와 UCLA에서 온 베트남 출신의 교수와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못자고 있는데, 갑자기 아랫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분명 알람이 켜져 있어서 침입자가 있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다가 혹시 술에 취한 그의 아내가 알람을 켜놓은 걸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짜증이 났다. 잠시 후 그 소리가 또 들렸다. 창문의 셔터가 느슨해져서 창문에 부딪치는 소리일 것 같다고 생각하며 아래로 내려간 그는 서재 쪽에서 불빛이 새어나오는 걸 발견했다. 자신이 서재의 램프 끄는 걸 잊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불빛은 멀리 복도를 지나 있는 식당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패디오로 나가는 프렌치 도어의 아주 얇은 커튼이 바람에 날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도어 중 하나가 사람이 들락거릴 수 있을 정도로 조금 열려 있었다. 루시엔은 아무런 생각도, 움직일 수도 없이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그때, 검은 물체가 그의 서재쪽에서 다가왔다. 그는 닌자 복장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손까지 검은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눈만 내놓고 모든 부위를 검게 덮은 그의 눈동자는 마치 동물의 그것처럼 빛났다. 그 눈은 루시엔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루시엔은 소리를 지르려 숨을 들이 마셨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그런 그에게 닌자는 공격을 시작했다. 닌자가 그를 공격할 때 쓴 무기를 루시엔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수집품 중 하나인 쌍절곤이었다. 루시엔을 공격한 범인은 피묻은 무기를 루시엔의 곁에 두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는 서재로 가서 벽과 장식장 안에 들어 있는 고대 무기 수집품들을 감상했다. 그것들은 모두 치명적이었다. 범인이 그것들 중 검을 하나 들고 살펴보고 있는데, 그의 아내가 루시엔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범인은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조용한 동네에서 일어난 교수 부부의 살인 사건은 다음 날 하루종일 온 미디어에서 다루었다. 니키의 옛 파트너였던 살인 사건과의 코바치 (Kovac)와 그의 새로운 파트너인 테일러 (Tayler)가 이 사건을 맡기로 했다. 코바치는 자기보다 훨씬 젊은 새 파트너가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파트너라고 부르기도 싫었다. 그와 니키는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해와서 서로를 너무 잘 알았고, 서로의 한계가 무엇인지 잘 알았다.

그들이 꽁꽁 언 도로를 운전해 루시엔의 집으로 갔을 땐 이미 두 대의 방송국 차가 와 있었다. 희생자의 집은 TV에서 보여주는 땡스기빙 저녁을 먹는 중상위 중산 계급 가족의 집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가족 모두 날씬하고 단정한 옷차림에 미소를 띤 얼굴. 난도질 당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발견된 그런 곳이 아닌.

테일러는 그를 아는 척하는 한 동료에게서 처음 그곳에 오게된 설명을 들었다. 대학에서 루시엔이 아주 중요한 회의에 참석을 하지 않았고, 연락을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안부를 체크해 달라는 신고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현장에 놓여져 있는 검을 보면서 근처에서 근래에 강도 사건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그 동네는 안전한 곳으로 그저 자잘한 사건만이 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검시소의 컬버트슨 (Culbertson)이라는 법의학 조사관이 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그곳은 학살장소였다. 천정, 샹들리에, 커튼, 할 것 없이 거실 전체에 피가 튀었다고 말했다. 희생자들의 몸은 너무나 난도질을 당해서 그것을 본 순간 코바치는 그들이 살아서 숨쉬었던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코바치가 범인이 한 명인지 두 명인지 묻자 컬버트슨이 한 명이라고, 피묻은 신발자국 한 쌍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컬버트슨의 안내를 따라 루시엔의 서재로 간 두 사람은 벽과 장 안에 전시되어 있는 중국과 일본의 무기들을 보고 범인들의 천국이라고 말했다. 그곳에는 영화에서나 봄직한 무기들이 죽 진열되어 있었다. 테일러가 범인이 그것들이 그곳에 있는 것을 알았었는지 아니면 집안으로 침입해 들어와 알게 되었는지 묻자, 칼버트슨은 그것은 그들이 알아내야 할 일이라고 대답했다.

현장을 살펴보던 코바치와 테일러는 범인이 어떤 특정한 물건을 훔치려고 했던듯 책상 서랍 속의 물품들이 모두 바닥에 어질러져 있었고, 벽에 몇개의 빈 공간이 있었다. 범인은 금고와 열쇠를 찾고 있었던 것 같았다. 도대체 그 물건이 그곳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가족, 친구, 동료, 아니면 다른 수집가, 혹은 학생일 수도 있었다.

코바치는 서재에서 부엌까지의 살인범의 발자취를 짚어보면서 가능한 시나리오를 상상해 보았다. 먼저 쌍절곤으로 교수를 공격하여 머리를 박살 냈다면, 범인은 다시 서재로 가 검을 들고 교수의 아내가 남편을 찾아 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이 되었다. 한 사람의 죽음 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았다고 볼 수 있었다. 오버킬은 광분을 말했다. 말하자면 분노가 일었거나 혹은 광적 희열감. 쳄벌린 부인을 찌른 검이 그녀의 복부를 뚫고 마루 바닥에 박힌 것, 그것은 바로 뭔가를 설명하고 있는 하나의 진술이었다.

다음 날 아침, TV에서 그 소식을 지켜보던 니키는 미제 사건반으로 옮긴 후에는 출근 시간이 자유로워 눈 때문에 학교가 취소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아침을 차려줄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화면 상의 범행 현장에 쳐져 있는 노란 테이프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다.

뉴스 화면에서 경찰서의 높은 사람들이 다 나와 있는 것을 보고 물론 사건의 처음에는 다 그렇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이제 모든 관심이 그 사건에 집중된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엊그제 자신이 맡은 25년전의 테드 더피 살인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물러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부엌을 치우면서 범죄 현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프의 아내는 재혼해서 사건이 있었던 그 집을 떠났지만 이웃이 남아 있기를 빌었다. 하지만 25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더러는 늙고 더러는 기억을 잃었을 것이며 더러는 세상을 떠났을 것이었다. 예전에도 이웃들의 중요한 진술은 없었다. 이제와서 그들중 누군가가 그것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할 거라고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캔드라 실리는 이미 더피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이웃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에 착수했다.

니키와 실리는 먼저 더피의 아내 바비도 만났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남편 더치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쌍동이 형제인 또다른 더피와 재혼을 했다. 그녀는 자신들이 겨우 봉합하고 있는 상처를 건드리지 말라며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했다. 그녀의 그런 반응은 알고 보니 그라이더가 이미 바비에게 연락을 했 니키는 더피의 사건이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도 그녀가 그 사건을 맡게 되었다는 둥 하면서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놓은 후였다.

당시 바비와 더피 사이에는 친딸이 있었고, 두 명의 포스터 케어하는 여자아이들이 함께 살았다. 하지만 더피의 일이 있고 난 후 포스터 케어 아이들은 다른 집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더피의 집은 그동안 주인이 네 번 바뀌었고, 더피 사건 이후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이웃인 도널드 닐슨 (Donald Nilsen)이라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제레미 (Jeremy)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그를 떠났고, 아들 역시 고등학교를 마치자 마자 군에 입대해 버렸다. 그는 니키와 실리가 더피의 옛 집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때 창문으로 몰래 보고 있다가 그들을 향해 누구냐고 소리를 질렀다. 니키와 실리가 그에게 자신들은 경찰이며 더피의 사건을 다시 조사하고 있다고 얘기 좀 하자고 하자 그는 자신은 이미 모든 진술을 다했고, 경찰과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거듭 말했다. 

잠시 후 그를 만나고 나오다가 니키는 창문에서 자신들을 내려다 보고 있던 그를 발견하고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니키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의 원래의 진술서는 한 장이 못되었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니키가 보기에 그는 이웃에 일어나는 일에 모두 참견하는 그런 타입이었다. 조금 전의 인터뷰에서 그는 더피의 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괴로웠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더피가 장작을 팰 때, 또 두 번의 총성이 들렸을 때에 창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녀와 실리가 더피의 집 주변을 돌아볼 때 재빨리 그들을 염탐했었다. 그런데 더피가 죽어 땅에 누워 있을 때 보지 못했다고 했다. 더피의 시체가 그의 아내에 의해서 발견된 것은 오후 6시경이었다.

한편, 수사를 위해 루시엔 교수가 일하던 대학으로 간 코바치와 테일러는 학과장인 포레스트 포스터 (Forrest Foster)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로부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듣게 된다. 현재 동아시아학 연구소장 자리를 두고 네명의 후보가 있었고, 그중 일본인 사토 (Sato) 교수는 그 대학으로 온지 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은퇴한 일본인 교수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고, 그 은퇴 교수가 심사 위원으로 있다는 것, 그리고 후보자 네 명 중 한 명인 독일 출신 교수가 췌장암으로 몇주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테일러가 루시엔이 그 자리에 올라갈 에정이었느냐고 묻자 포스터 학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제일 우선 순위에 있었지만 며칠 전 루시엔의 제자 한 사람이 그를 상대로 대학 갈등 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고 했다. 내용은 그가 모욕을 주었고, 거들먹거렸으며, 남성우월주의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민원을 제기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듣고 놀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