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l's Ghost
By
Michael Ondaatje
이 소설의 배경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의 스리랑카이다. 작가의 노트에 따르면, 당시 스리랑카에서는 정부와 남부의 반정부 반군 그리고 북부의 분리주의 게릴라 등의 세 집단 사이에 내전이 있었다. 반군과 게릴라들은 정부에 전쟁을 선포했고, 정부는 그에 대응해, 합법적인 단속반뿐만 아니라 비합법적인 군대를 조직해 분리주의자와 반군 양쪽 모두를 색출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어느 날, 한 문화 유적지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해골이 발견된다.
…
스리랑카 출신의 법의학자 (forensic scientist)인 애닐 (Anil Tissera)이 카투나야케 (Katunayake) 공항에 도착한 것은 3월 초 어느 날이었다. 그녀는 현재 인권 단체 소속인 자격으로 고국의 땅을 밟게 되었다. 처음, 스리랑카로 갈 법인류학자를 뽑는다는 말이 있었을 때, 그녀는 별 기대 없이 지원서를 제네바의 인권센터로 보냈다. 지금은 비록 자신이 영국 여권을 가지고 여행을 하고 있지만, 스리랑카에서 태어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뽑힐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스리랑카 정부는 인권전문가들이 스리랑카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 했다. 지난 수년간 국제 사면 위원회 (Amnesty International)와 다른 인권 단체들이 스위스로 항의서를 보냈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흰 머리 때문에 '실버 대통령'이라고 불리우는 카투갈라 (Katugala) 대통령은 이 나라에서의 살인을 위한 조직화된 군사행동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압력과, 서구의 무역 상대국들의 회유로, 마침내 스리랑카 정부는 결국 지역 담당관과 외부 자문관을 한 팀으로 만들어 조사하겠다는 제스처를 보였고, 애닐이 제네바 조직의 법의학 전문가로 뽑혀 콜롬보(Colombo: 스리랑카의 수도)의 한 고고학자와 팀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7주 프로젝트였다. 인권 센터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번 계획으로 뭔가가 밝혀질 거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애닐이 스리랑카로 돌아온 것은 15년만이었다. 그녀는 18살 때 그곳을 떠나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했다. 처음 영국에서 공부할 때 한 세대 전에 그곳에서 공부했던 삼촌이나 아버지의 친구분이 얘기했던 그런 낭만과는 다르게, 지리적인 것도 너무나 낯설었고, 강의실을 찾지 못해 첫 주에 두 번이나 수업을 놓치기도 했다. 당시 그녀는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과 불확실함 때문에 그녀에게 정성을 쏟는 자신과 같은 스리랑카 출신의 같은 의대생인 한 남학생에게 친근감을 느꼈고, 둘은 금세 사랑에 빠져 그녀의 나이 20대 초반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가 콜롬보로 돌아와 그저 손자를 낳아 키우기를 바라는 시아버지가 다녀간 후로 둘은 매사에 부딪쳤다.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은 섹스뿐이었다. 당시 그들의 삶은 싸움과 섹스로 요약되었다. 그녀가 연구실에서 돌아오면 그의 질투가 기다리고 있었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녀의 연구와 공부는 멀어져 갔다.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그에게서 벗어나는 길을 택했고, 이후 그녀는 그의 이름을 소리내서 불러본 적이 없었으며, 자신이 결혼했었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원래 그녀의 이름은 애닐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오빠가 사용하지 않던 중간 이름이었다. 그녀는 그 이름을 갖기 위해 12살 때 오빠와 거래를 하였고, 그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준 뒤, 결국 애닐은 그녀의 이름이 되었다. 그녀는 애닐이라는 이름이 가진 모든 것이 좋았으며, 특히 남자 이름으로 지어졌음에도 그것이 풍기는 여성스러움이 좋았다. 나중에 사춘기의 고집스럽고 분노에 차 있던 그녀를 못마땅해 하던 부모가 점술가에게 그녀를 데리고 갔는데, 어떻게 그 이름을 갖게 됐는지 상황을 전혀 모른 점술가가 그것이 이름 때문이라며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했지만, 애닐은 거부했다. 애닐을 설득하지 못한 점술가는 마지막 해결책이라며 Anil의 끝에 e를 하나 더 넣어 그녀와 그녀의 이름을 좀 더 여성스럽게 만들면 그녀의 분노가 좀 수그러들 것이라고 했지만, 애닐은 그 마저도 거부했다.
연청색의 UN 바코드가 찍혀있는 여권이 처리되자 마자 한 젊은 관료가 다가와 그녀 곁에서 함께 걸었다. 그녀가 짐을 들고 끙끙대고 있었지만 그 사람은 본체 만체 했다. 그는 그녀에게 이것저것 묻다가 신할라 (Sinhala) 어 [스리랑카에서 사용되는 세 가지 국어 중의 하나로, 처음엔 신할라어와 타밀 (Tamil)어 두 가지 였으나 1987년 인도와의 협정으로, 2012년 이후 영어 역시 공식 언어로 지정되었다-마가렛 주]를 할 줄 아는지 물었고, 애닐은 조금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짐이 차에 실릴 때까지 손도 대지 않았다. 한 시간 후 그는 그들이 그녀를 위해 렌트해 놓은 집 앞에 도착해 그녀의 손을 힘차게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디야세나 씨 (Mr. Diyasena)와의 미팅이 있다고 말하며 그녀에게 그곳에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없다고 대답했다. 부모님은 그녀가 영국에 있을 때 사고로 두분 다 돌아가셨고, 친척들이 콜롬보 여기저기에 살고 있었지만 그녀가 온다는 걸 알리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부모님이 안 계신 이곳에 돌아오고 싶지 않아서 계속 외국에 머물렀다.
십대 때, 그녀는 유명한 수영 선수였는데 그것은 일생동안 그녀를 따라다녔다. 16살 때 그녀는 한 유명 호텔에서 개최한 2마일 경기에 출전해 우승했다. 매년 100명의 사람들이 바다로 달려가 1마일 밖에 있는 부표까지 헤엄쳐 갔다가 돌아오는 경기로, 가장 빠른 여성과 남성은 하루나 이틀 스포츠 페이지를 장식했다. 당시 신문에 실린 1월의 어느 아침 파도를 헤치며 걸어나오는 그녀의 사진을 아버지는 자신의 병원 오피스에 걸어놓았다. 그 흑백 사진은 그녀의 가족에게 너무나 오랫동안 하나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수면제 한 알을 찾아 선풍기를 틀고 사롱으로 갈아 입은 다음 침대로 올라갔다. 그녀가 제일 그리웠던 게 바로 선풍기였다. 스리랑카를 떠난 이후, 그곳과의 실질적 연결고리는 부모님이 매해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보내주신 사롱과, 수영 대회에 관한 뉴스 클립뿐이었다.
그녀는 시트를 침대 아래로 내리고 허공을 바라보며 어두워진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 섬 나라는 더 이상 과거와는 상관없었다. 그녀는 초창기의 명성을 무시한 채 15년을 살았다. 그리고 비극적 사건에 대한 서류들과 뉴스 기사들을 읽었다. 이제 그녀는 스리랑카를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외국에 나가서 산 세월이 길었다. 하지만 도덕적인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거리는 아직 그 거리였고, 시민들은 여전히 그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쇼핑을 하고, 직업을 바꾸고, 웃고 있었다. 가장 어두운 그리스 비극들이 그곳에서 일어난 일에 비하면 오히려 순수할 정도인데도 말이다. 꼬챙이에 꽂혀진 사람의 머리들. 마탈레 (Matale)에 있는 코코아 채취장에서 파내어진 유골들. 그곳에서는 희생자들의 가족에게 왜 그들이 죽었는지도, 누구에게 희생되었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보고서에는 실종된 사람들의 명단도 있었다. 주로 십대 사내들이었고 30, 40대도 있었다. 그들은 집을 나서다가, 친구랑 얘기하다가, 크리켓 게임을 하고 있다가, 길을 걷다가, 목욕을 하러 가다가 등등 별 특별한 이유없이 실종되었다. 분노에 찬 가족들에게서 온 편지에는 그들이 사라진 장소와 시간, 실종 당시 입었던 옷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미국을 떠나기 전 받은 여러 인권 그룹에서 모은 보고서들에 따르면, 초기 조사는 아무도 체포하지 못했으며, 조직단체들의 항의는 경찰이나 정부의 중간 레벨까지도 닿지 못했다. 십대 아이들을 찾는 부모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묵살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증거가 될 수 있었고, 쏟아지는 뉴스 속에 담겨져 있는 모든 것이 복사되어 제네바에 있는 이방인들에게로 보내졌다. 애닐은 보고서들을 집어들고 실종자들과 살해자들을 기록한 폴더를 열었다. 그녀가 매일 마지막으로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
1983년부터 줄곧 위기상황이 계속되었고, 인종 공격과 정치적 살해가 계속되었다. 북쪽에서 고향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분리주의 게릴라 집단의 테러, 정부에 대항하는 남쪽 반란군의 반란사태, 그 둘을 저지하기 위한 특수 부대의 보복성 테러행위. 그들은 시체를 불에 태우거나 강이나 바다에 버렸고, 시체를 숨겨놨다가 재매장했다. 그것은 신식무기와 그저 불보듯 구경하면서 부추기는 옆 나라 사람들과 치루는 백년 전쟁이었으며, 무기와 마약 거래상들의 지원을 받는 전쟁이었다. 정쟁들이 비밀스럽게 무기 거래에 돈을 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스리랑카에 온 둘째날, 그들은 애닐에게 킨지 로드 병원(Kynsey Road Hospital)에서 법의학 학생들을 만나주기를 요청했다. 그럴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는 아직 인권조사과 (Human Rights Investigation)에서 요구해서 그녀와 한 팀이 된 스리랑카 정부 측의 사람인 고고학자 디야세나 씨를 만나지 못했다. 그는 현재 그곳에 있지 않으며 콜롬보로 돌아오면 즉시 그녀에게 연락하겠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병원에서 법의학 학생들과 함께 살펴 볼 첫 번째 시체는 죽은 지 얼마 안된 것으로, 그 남자는 그녀가 비행기를 타고 온 이후에 죽은 것으로 보였다. 그녀가 이른 아침 페타 시장을 걷는 동안 일어난 일임이 틀림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애닐은 떨리는 손을 멈춰야 했다. 그것은 아직 '누군가'였다. 보통 정치적 희생자들은 훨씬 나중에 발견되었다. 그녀는 상처와 마모를 살펴보기 위해 각각의 손가락을 푸른색 용액이 담겨 있는 비커에 담궜다.
그녀는 그 사람이 스무 살 정도 되었고, 죽은 지 열 두 시간이 되었다고 말하며 학생들에게 동의하냐고 물었다. 동의한다고 대답하는 그들은 불안해 보였고, 심지어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들에게 몇 가지 중요하게 생각되는 점을 이야기 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손가락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어떻게 팔을 부러뜨릴 수가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방어하기 위해 손을 올리기 마련이어서 보통 손가락이 상처를 입게 마련인데 말이다.
두 번째 시체는 갈비뼈에 골절이 있었다. 그것은 배가 물에 닿기 전에 최소한 5백 피트 이상의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는 걸 의미했다. 공기가 그를 녹아웃 시킨 것으로, 그것은 헬리콥터에서 떨어뜨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음 날, 그녀는 아침 일찍 그녀는 삼륜 오토바이 택시인 바자즈 (bajaj)를 타고 비가 내리는 거리를 달려 디야세나 씨를 만나러 갔다. 그녀가 고고학 사무실로 들어서자 누군가가 그녀에게 당신이 그 수영선수로군! 하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가슴이 딱 벌어진 40대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가 만나기로 한 사라스 (Sarath) 디야세나가 아니기를 바랬지만, 그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녀가 수영은 오래 전의 일이니 다시는 언급하지 말자고, 이후 그 다리 아래에는 수 많은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느릿느릿 '맞아요, 맞아'라고 말했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서 빈틈없고 시간을 끄는 매너리즘을 느꼈다. 그의 두 번 반복된 '맞아요'는 예의상 공식적이면서 내키지 않은 동의를 표현하는 말이었지만 또한 잠시 모든 걸 보류하자는 제안도 내포되어 있는 말이었다.
그녀는 그들의 첫 만남에서 몇 마디 말로 이미 충돌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아닌 척 그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만나서 정말로 반갑고, 그가 쓴 글을 여러 개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그녀의 일과 별 상관 없는 분야의 사람이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지역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애닐의 요구로 함께 아침을 먹으며 그는 말했다. 사체들이 주 단위로 발견되고 있다고. 테러는 88년과 89년에 정점을 이뤘지만, 물론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다고 했다. 양쪽이 모두 죽이고 증거를 없애고 있다고 했다. 그는 '양쪽 모두'를 강조했다. 이것은 비공식적인 전쟁이고, 그들은 외세를 이용해 비밀 갱단과 소대를 조직하고 있었다. 중앙 아메리카와는 달랐다. 살인을 저지르는 쪽은 정부만이 아니었다. 여전히 남쪽에 둘, 북쪽에 하나있는 세 캠프의 적들이 무기, 정치적 선전, 공포심, 독자적인 포스터, 검열 등을 이용해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구에서 최신 무기들을 수입하거나 직접 제조한 무기들을 사용했다.
2년 전서부터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지거나,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불탄 시체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희생자들이 누구인지 알아 볼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그저 고고학자일 뿐이고, 그녀가 속한 위원회와 정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법의학자와 고고학자의 기묘한 짝짓기는 그의 생각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들이 알 수 있는 건 거의 대부분이 알려지지 않은 불법적 처형이라는 것뿐이라고 했다. 반군에 의한 것이거나, 정부 혹은 게릴리 분리주의자들에 의한. 말하자면 살인은 모든 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이에 애닐은 어느 쪽이 제일 나쁜지 말할 수가 없다며, 보고서들은 모두 끔찍했다고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그는 자신들이 일할 곳을 보여주겠다며 선착장에 정박되어 있는 배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것은 한때 콜롬보와 영국의 사이드 항구 (Port Said)를 왕래했던 여객선이었던 『오롱세이』 (Oronsay) 호로, 지금은 킨지 로드 병원에서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고 있었다. 콜롬보에 있는 병원들이 실험실이 부족한 관계로 변형된 여객선의 한 부분이 사라스와 애닐의 기지가 된 것이다.
어두컴컴한 배 안으로 들어가 휏불에 불을 붙이고 안쪽으로 들어간 사라스가 금속 벽을 탕탕 두드리자 쥐들이 허둥지둥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 애닐은 사라스에게 그 소리가 마치 아내가 없는 침대에 애인과 누워 있는데, 갑자기 돌아온 아내 소리에 허둥지둥 옷을 챙기며 안절부절 못하는 남편의 모습 같다고 말하려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결혼생활이 어떤지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그녀는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한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그녀는 자신의 스승을 위한 컨퍼런스에서 의장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녀가 스승을 소개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아마도 마이크가 켜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스승의 강의 도중 그녀의 특이한 웃음소리가 그대로 녹음이 되었고, 당시 숨겨진 도시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고 그런 것에 대한 세부적인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던 컬리스 (Cullis)라는 작가가 그 테입을 구입했는데, 그는 그 테입 속에 녹음된 그녀의 웃음소리에 반했다. 한 번도 만난 적도, 같은 장소에 있어본 적도 없는데, 그녀의 웃음소리에 반한 것이다. 그가 테입을 듣고난 몇 달 후 그들은 처음 만났다. 그날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를 보며 그는 자신 역시 자유로움을 느꼈지만, 이미 결혼한 그의 마음은 저당잡혀 있었다. 그런데 애닐이 학회 참석차 캐나다 몬트리얼 (Montreal)에 갔다가 회의가 지루해 슬그머니 도망치듯 빠져나오다 호텔 로비에서 아주 우연히 컬리스와 부딪쳤고, 그날 이후 그들은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삼각관계는 좋은 게 아니었다.
둘은 차라리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더 사랑하는 것 같았다. 함께 있을 때는 혹시 하는 마음에 더욱 조심스러웠고, 애닐은 그런 상황이 몹시 힘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가 그녀를 만나러 텍사스로 왔을 때,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와 만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그가 그저 심심풀이로 만나는 여자일 뿐이라고 느꼈다고 말했고, 그는 어떤 경우든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했다.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그가 가겠다는 그녀의 머리를 붙들고 놔주지 않자, 그녀는 좀 전에 그가 아보카도를 잘랐던 과도를 떠올렸고, 그것을 집어들고 그의 팔을 찔렀다.
그녀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신음소리를 거의 눈으로 읽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그녀는 전화로 택시를 부른 다음 화장을 하고 자신의 것은 먼지 한 조각이라도 남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꼼꼼히 가방을 쌌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자신이 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그 일이 벌어진 그곳을 기억하라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차에서 그녀는 미친 듯이 뛰는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그녀는 진정이 되면 그가 잠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팽팽한 분노로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후 가끔 어떤 상황에서 그를 이렇게 떠올리곤 했다.
잠시 후, 사라스는 유황램프에 불을 붙이겠다며 애닐에게 눈을 잠시 감으라고 했다. 투과성이 좋은 빛이 커다란 방을 비쳤는데, 사라스는 자신이 발굴한 고고학적인 것들을 이미 그곳에 갖다 둔 것 같았다. 온 바닥에 투명한 비닐에 쌓인 돌과 뼈 조각들, 그리고 단단하게 묶인 상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상자를 풀고 최근에 발굴한 것들을 꺼내며 대부분 6세기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그것들이 발견된 곳은 반다라웰라 (Bandarawela) 근처에 있는 수도승들의 성스러운 무덤일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애닐이 해골이 발견됐느냐고 묻자 지금까지 세 구가 발견됐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의 것이라고 보이는 몇 개의 화석화된 나무 항아리들도 발견되었는데, 모두 같은 시기의 패턴을 갖고 있다고 했다.
애닐은 장갑을 끼고 무게를 가늠하기 위해 오래된 뼛조각을 들어올려 보았다. 잠시 후 그런 것들 더미에서 뼛조각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을 문질러 보았다. 그것은 오래된 것 같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 역시 같은 장소에서 나온 것이 맞냐며 6세기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라스가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아무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정부의 고고학 유적지 내의 수도승들의 무덤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하지만 그 뼈는 그 시기의 것이 아니라고 거듭 말하자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며 그곳은 정부 보호 구역이라고 말하며, 해골들과 뼈들이 반다라웰라 동굴 근처의 자연발생적 구덩이에 매장되어 있었고, 다른 시기의 것들을 발견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녀가 그곳에 가 볼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허가서를 얻어보겠다고 했다.
며칠 후, 애닐은 킨지 로드 병원에 갔다가 고위 의료 담당자인 닥터 페레라 (Dr. Perera)와 마주친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공사중인 병원에서 소리를 지르며 흥분하고 있었다. 그는 키가 작고 말랐으며, 악명이 높았다. 그에 관해서 익명의 메모와 포스터들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고 있었는데, 그중 한 포스터에서는 그가 글래스고 (Glasgow)에서 살인 용의자로 수배되었다고 했다. 그의 동료들은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애닐은 콜롬보에 온 이튿날 밤 그가 토론하는 걸 들었는데,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고위급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녀가 잠깐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닥터 페레라를 지나치려 하는데 그가 그녀를 불러세웠다. 그리고 지금 바쁘냐고 물었다. 약속이 있었지만 바꿀 수 있었고, 그와 아버지에 대해 몹시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한창 열받아 있는 상태가 아닌, 그가 좀 더 진정되고, 혼자 있을 때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정부 관리와 약속이 있다며, 하지만 자신이 당분간 콜롬보에 머무를 예정이니 곧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역시 그녀에게 수영선수였지 않느냐고 했고, 그녀는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를 떴다.
며칠 후 애닐은 고고학 사무실에서 만난 사라스가 말라리라 예방약을 먹었는지 묻자 그의 자상함에 약간 놀랐다. 집으로 돌아와 미국에서 친구 (Leaf)가 보내 온 엽서를 들여다 보다가 애닐은 사라스 생각을 했다. 아직 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고고학 사무실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가 얼마나 정부 쪽에 가담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가 인권 조사 위원회 소속인 그녀를 돕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가 정부의 눈과 귀가 되어 보고를 하고 있다면, 그녀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이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치적 위기 상황 동안의 범죄 과학 수사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걸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얽히고 설킨 체스의 움직임과 뒷방 거래 그리고 '국가의 이익'을 위한 무언의 진술. 콩고에서는 한 인권 그룹이 어느 정도의 지켜야 할 선을 넘는 일이 있었는데, 그들이 모은 데이터가 하룻 밤 사이에 모두 사라져버렸고, 그들의 문서도 모두 불에 타버렸다. 당시 그 조사팀에서 아주 낮은 역할인 프로그램 보조원으로 일했던 애닐을 비롯해 모든 팀원들은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제네바의 국제 권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기가 있는 곳에서는 그것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곳 정부가 떠나라고 하면 떠나야 했다. 아무 것도 갖고 나올 수가 없었다. 슬라이드 트레이 (Slide tray) 하나도, 필름 한 조각도. 공항에서 그들이 옷을 뒤지는 동안 그녀는 거의 벌거벗겨진 채 간이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녀는 사라스가 이 전쟁에서 그녀의 중립성을 위해 배정된 것인가? 그는 단순히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고고학자일 뿐인 것인가?, 생각했다. 어제 콜롬보 외곽을 다녀오는 길에 그는 그녀에게 몇 개의 사원들을 보여준 다음, 그의 학생들이 작업하고 있는 사적지를 지나면서는 그들과 합류해 즐겁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를 보면서 애닐은 사라스가 정말 알고 싶어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땅과 관련된 것이며, 그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세상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녀에게 그가 정말로 하고 싶은 건 언젠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 나라의 남부에 있었던 한 도시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벽 하나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그때의 그는 지금까지 만났던 중 가장 감정 표현을 많이 했고, 거의 열정적이기까지 했다. 그가 그리는 상상 속의 그 도시와 그 옆에서 넘실거리는 파도가 그녀에게로 달려오는 것 같았다.
한편, 구관조 새장을 든 한 남자가 기차에 올랐다. 기차 안에는 사방에 경찰이 쫙 갈려 있었다. 그는 다른 승객들을 살펴보며 짐 사이를 헤쳐 나갔다. 남아 있는 좌석이 없어서 바닥에 앉았다. 그는 사롱과 샌달을 신었고, 갈레 로드 (Galle Road)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기차는 완행열차로 바위 사이를 지나가다가 갑자기 확트인 전경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는 쿠루네갈라 (Kurunegala)에 도착하기 1마일 정도 전에 터널이 있고 기차는 곡선을 그리며 어둡고 꽉막힌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터널을 지나고 다시 햇빛으로 나가면 사람들은 내릴 준비를 할 것이었다.
그는 기차가 막 어둠 속으로 들어가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 분간 전구의 희미하고 탁한 빛이 비췄다가 이내 꺼졌다. 그는 새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의 3분.
그는 기억하고 있던 난간 옆 정부 관리가 있는 곳을 향해 재빨리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그의 머리채를 붙잡고 끌어당긴 다음 체인을 그의 목에 감고 졸랐다. 그는 어둠 속에서 시간 계산을 했다. 그 사람의 몸이 그에게로 쓰러졌지만, 그는 믿지 않고 체인을 풀지 않았다.
1분 남았다. 그는 일어서서 그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그를 세운 채 그는 열려진 창문을 향하게끔 조종했다. 노란 불빛이 1초 동안 깜빡거렸다. 그는 그 관료를 바닥에서 확 끌어당겨 열려진 창문 밖으로 밀었다. 바깥의 센 바람이 머리와 어깨를 뒤쪽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는 그 사람을 좀 더 밀어 손에서 놔버렸다. 그 사람은 터널의 소음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어느 날 밤, 애닐은 배의 실험실에서 혼자 작업을 하다가 수술용 칼로 엄지 손가락을 심하게 베었다. 급히 응급조치를 한 후 감염이 걱정되어 집에 가는 길에 병원 응급실로 갔다. 분명 그와 사라스가 없을 때 쥐들이 기계 위에도 돌아다녔을 것이었다. 긴 의자에 15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거나 누워있었다. 가끔 의사가 나와 환자의 이름을 불러 데리고 들어갔다. 한 시간 이상 그곳에서 기다리다가 그녀는 치료받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길에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들에게 비하면 자신의 상처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냥 돌아가기로 결정한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검은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들어오더니 그들 가운데 앉았다. 그의 옷은 피투성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기다리며.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 처럼 번호표를 뽑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의자에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그는 몸을 뻗고 눕더니 자신의 코트를 벗어 베개로 삼았다. 하지만 그는 잠을 자지 않고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애닐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코트에 묻은 피 때문에 붉게 젖어 있었다. 그는 잠시 후 일어나 호주머니에서 책을 한 권 꺼내더니 빠른 속도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알약을 하나 꺼내서 삼키더니 다시 누웠다. 이번에는 잠이 들었다. 간호사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었다. 그가 깨지 않자 그녀는 계속 흔들었다. 그러자 그는 잠에서 깨어나 책을 집어 넣더니 다른 환자 중 한 사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의사였던 것이다. 그때가 바로 애닐이 병원을 나선 때였다. 병원에서 조차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인데 그녀에게 무슨 기회가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애닐과 사라스는 세 구의 시체가 발견된 반다라웰라를 향해 떠났다. 가는 도중 애닐은 현재의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불평을 했고, 특히 자신이 스리랑카에 온 이후 계속 기다렸지만, 열려져 있어야 할 문이 닫혀져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실종에 대해서 조사하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사무실로 갔더니 자신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곳에 온 목적은 그저 제스처일 뿐. 그런 다음 그녀는 사라스에게 자신이 첫날 발견했던 작은 뼈 조각이 오래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라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뭔가를 밝힐 때 조심하라고 말했다. 애닐이 그것을 누구에게 밝힐 건지도 말이죠, 라고 하자 그렇다고 했다. 애닐이 자신은 그곳에 초대되어 왔다는 걸 강조하자, 사라스는 국제 조사가 많은 걸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가 무덤을 조사하기 위해 허가서 받는 게 어려웠느냐고 묻자 사라스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리프의 엽서에 나와 있던 새에 관해 얘기를 하다가 애닐이 사라스에게 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아내가 새에 대해 잘 알았다고 말했다. 애닐은 기다렸지만 더 이상의 말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의 아내는 지금 어디 있냐고 묻자 그는 몇년 전 아내를 잃었다고, 그녀는 자살했다고 말했다. 애닐이 너무나 미안해 하자 그는 자신의 아내는 죽기 몇달 전 이미 그를 떠났었다고 말했다. 애닐은 자신이 너무 궁금한 것이 많다며 항상 많은 걸 질문을 해서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든다며 사과했다.
다시 차로 돌아온 애닐은 긴 침묵을 깨기 위해 아버지 얘기를 꺼내며, 아버지에게서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었다고 하자 사라스는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자신에게는 일생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이 두 분 계셨는데, 스승 나라다 (Narada)는 자신이 좀 더 단순하고, 스스로에게 더 명확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고 했다. 나라다는 고고학 분야에서 최고였지만 동생 팔리파나 (Palipana)가 더 유명했고, 나라다는 자는 중 피살당했다고 했다. 사라스는 죽은 동갑내기 친구보다 스승이 더 생각이 난다며, 그가 자신이 어떻게 나이 들어 가야 하는지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애닐이 궁금해 하자, 사라스는 나라다의 살인은 그의 제자에 의한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는 것, 처음 사건이 있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정치적 살인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던 때였다고 했다.
애닐과 사라스가 조사하러 간 곳은 1911년에 선사시대 유물들이 발견된 이후 그 주변의 수백개의 무덤 그리고 얕은 동굴바위 고분이 탐색된 곳으로, 지금은 정부 보호 고고학 유적지가 되었는데, 그곳에서 해골들이 다시 발견된 것이다. 그곳에 도착한 애닐과 사라스는 먼저 고대의 잔재들을 찾아내어 기록했다. 그러다가 세 구의 거의 온전한 해골을 발견했고, 며칠 후 그들은 마른 근육이 아직 뼈들을 붙잡고 있으며 반쯤 불에 탄 선사시대의 것이 아닌 네 번째 해골을 발견했다. 애닐의 조사에 따르면, 그것은 이미 다른 곳에서 살해된 뒤 그곳으로 옮겨졌으며, 그 사람이 완전히 죽지 않았거나, 더 나쁜 건 산 채로 불에 태워졌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해골에 '항해사' (Sailor)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의 죽음에 대해 옥신각신 하다가 사라스는 약속했던 절에 데리고 가겠다며 준비하라고 화제를 바꿨다. 그녀는 그가 그렇게 갑자기 화제를 바꾸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곳에 두고 가는 것이 영 찝찝했다. 하지만 사라스는 그런 애닐에게 그럼 가는 곳마다 그것들을 들고 다닐 거냐고 말했다. 애닐은 이때다 생각하며 당신이 누구 편인지 정말 모르겠다고 오랫동안 생각했던 말을 꺼냈다. 그는 말을 하려다 말고 잠시 멈추더니 다시 천천히 말했다. 자신이 뭘 할 것 같냐고. 애닐은 그가 '항해사'를 어딘가로 옮겨버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애닐은 그에게 정부에 친척이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물론 있다고, 하지만 그를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그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잠시 전에 그가 불을 켠 것을 본 애닐은 그에게 왜 불을 켰는지 물었고, 그는 펜을 찾기 위해 그랬다며, 혹시 자신이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불을 켰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애닐은 다시 그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애닐이 물론 그가 진실의 목적이 좀 더 복잡하다고 느끼는 걸 알고 있으며, 이 나라에서는 만약 진실을 말하면 좀 더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하자, 사라스는 모두가 다 겁에 질려 있다고, 그것은 국가적 재앙이라고 말했다. 애닐이 많은 시체들이 땅속에서 발견되고 있고, 신원도 밝혀지지 않은 채 살해되고 있다며 얘기를 다시 하자 사라스는 자신들이 콜롬보에서 6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있으면서도 속삭이듯 말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결국 애닐은 절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사라스 혼자 나갔다.
애닐은 유럽과 북미에서 지냈던 동안에도 느끼지 못했던 이질감을 이곳에서 느끼고 있었다. 불확실한 법칙들과 사방에 만연된 공포 사이에서 한쪽 말만 듣고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한쪽 역시 의지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공포가 만연된 나라에서, 사람들은 불확실한 분위기 때문에 제대로 슬퍼할 수도 없었다. 만약 어떤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에 대해 항의하면, 그것은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이 살해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야기했다. 당신이 아는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해도, 당신이 조용하게만 있는다면 그들은 살아있을 수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 나라에 만연된 정신병적 상처였다. 죽음, 상실 등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 밤 수색과 대낮의 납치 또는 살인 등이 수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거기에 대항해서 싸운다는 것은 스스로를 바쳐야 하는 것밖엔 없었다. 그래서 법을 떠나 할 수 있는 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복수뿐이었다.
그녀는 '항해사'를 싸고 있던 비닐을 벗기며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생각했다. 모든 잃어버린 목소리의 대표자. 그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 될 것이었다.
애닐은 휴게소 주인을 불러 가벼운 저녁을 주문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뜻밖에도 사라스의 아내가 살아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에 따르면 사라스의 아내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며, 때로 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그의 사촌이 그와 함께 그곳에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애닐이 그의 사촌의 이름을 아느냐고 묻자 주인은 모른다고 말했다. 그날 밤 애닐은 심하게 아픈다. 콜롬보로 가는 도중 애닐의 증세가 너무 심각해 호텔에서 머물렀고, 사라스는 일사병인 것 같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애닐은 다시 찾아올 두통에 대비해 약을 먹은 다음 사라스에게 전화해 '항해사'가 잘 있는지 물었고, 사라스는 차의 트렁크에 잘 있다고 했다. 그날 밤 사라스는 애닐의 울음소리에 잠이 들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사라스는 애닐의 손목을 잡고 맥박을 체크했다. 열은 많이 내려 있었다. 그는 오후에 콜롬보에 도착할 것이고, 배 작업실에서 해골에 대해 작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닐이 무슨 일이 있어도 해골을 자신들이 보관해야 한다고 하자, 사라스는 4구의 해골을 한 단위로 고대의 것으로 가장해서 자신들이 모두 보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닐이 구별하기 위해 '항해사'의 뒷꿈치에서 뼈를 조금 떼어냈다고 말하자, 사라스는 꽃가루와 흙 샘플을 조금 더 떼어낸다면 그가 처음에 어디에 묻혔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 구의 해골을 옮기고 난 후 사라스는 장비를 좀 더 구해야 하며 그것은 하루가 걸릴 것이니 다음 날은 쉬라고 말했다. 그가 떠나고 애닐은 쇠망치로 벽을 때려 쥐들을 쫓고 난 후 '항해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유황불빛 아래서 그를 다시 조사하며 그의 죽음에 대한 사실들을 적어나갔다. 한쪽 팔뚝이 부러져 있었고, 부분적으로 불에 탔다. 목 부분의 척추골도 손상됐다. 두개골에 작은 총상의 가능성이 있었다. 들어갔다 나온 구멍. 그녀는 뼈에 난 상처들로 '항해사'의 마지막 행동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는 구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팔들로 얼굴을 가렸으며, 총을 맞았는데, 총알은 그의 팔을 뚫은 다음 목을 관통했다. 그가 땅에 누워 있는 동안 그들이 다가와 그를 죽였다. 최후의 한방. 가장 작고 가장 싼 .22 구경이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그에게 불을 붙이고, 타오르는 그 불을 이용해 그의 무덤을 판 것이다.
다음 날, 애닐은 하루 쉬라는 사라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아침 6시에 킨지 로드 병원으로 갔다. 아침 일찍 활동하는 건 그녀의 오랜 습관이었다. 애닐은 자신이 찾고 있던 곤충학자 치트라 (Chitra)가 그 병원에서 연구하고 있는 걸 발견하고 그녀를 만나러 그곳에 온 것이었다. 애닐은 그녀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해골을 보여주며 거기에 혹시 거기에 붙어 있는 곤충들을 검사해서 그것이 처음 묻혔던 곳을 알아보고 싶었다.
한편, 그날 밤 사라스는 혼자 배 위의 작업실로 가 공기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곧 약해지기 시작할 반다라웰라에서 가져 온 네 구의 해골을 보호하기 위해 그것들을 깨끗히 씻어낸 다음 그 위에 붓으로 액체 플라스틱을 발랐다. 그런 후 그것들 각각에 대해 노트를 하고 '항해사'를 제외한 나머지 세구의 사진을 앞 쪽과 측면에서 찍었다.
그는 잠시 배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운 후 다시 플라스틱 냄새가 짙게 풍기는 선창으로 들어갔다. 그는 '항해사'를 잠깐 바라보다가 혼잣말로 지금 해야 해, 하면서 앞 쪽과 측면 사진 두 장을 찍었다. 그리고 폴라로이드 사진이 나올 때까지 잠시 서 있었다. '항해사'의 모습이 완전히 인화되자 그는 그 사진들을 갈색 봉투에 넣고 봉한 다음 주소를 적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외투 호주머니에 넣었다.
세 구의 해골에는 두개골이 없었지만 '항해사'에게는 있었다. 그는 피우고 있던 담배를 끄고 몸을 기울여 메스로 두개골과 목의 척추뼈가 연결되어 있는 인대를 자르고 두개골을 분리했다. 그는 그것을 그의 책상으로 가져갔다. 화상이 머리에까지 이르지 않아서 전두, 안와부 그리고 누골 판들은 손상되지 않았고, 두개골 위의 접합 흔적들도 단단했다. 사라스는 그것을 비닐로 싸서 커다란 쇼핑백에 넣었다. 그는 다시 돌아와 두개골 없이 '항해사'의 사진을 앞쪽과 측면 두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는 지금 그와 애닐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의 스승 팔리파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팔리파나를 못 본 지는 수년이 되었다. 팔리파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고학자였다. 그로 인해 유럽인들이 아시아가 유럽보다 훨씬 더 오래된 문화를 가졌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그가 60대 때, 그의 한 제자가 팔리파나가 발견한 바위 위의 문자가 위조됐다고 의의를 제기한 문제로 그의 명성은 나락에 떨어졌고, 후에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팔리파나는 세상과 단절하고 자신의 몸을 숨겼다. 그는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챙겨 몇년 전 그의 형과 함께 여행하던 도중 발견했던 아누라다푸라 (Anuradhapura) 근처의 숲속 수도원으로 옮겨가 내내 그곳에서 지내고 있었다.
사라스는 애닐을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갔다. 한참을 달려 그들은 숲에 도착해서 처음엔 팔리파나의 시중을 드는 어린 소녀를, 잠시 후 팔리파나를 만났다. 나중에 애닐은 그 소녀의 이름은 라크마 (Larkma)이며, 팔리파나의 누이의 딸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녀의 부모는 내전 때 살해됐고, 부모가 죽는 걸 본 라크마는 이후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모든 걸 차단해 버렸다. 그녀는 유일한 친척인 팔리파나가 찾으러 갈 때까지 콜롬보 북부에 있는 고아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악몽에 시달리며.
팔리파나가 찾아 갔을 때, 그녀는 작은 소리에도 놀랬고, 밥을 먹을 때면 벌레나 유리조각을 찾는다며 손가락으로 음식을 헤집었다. 침대 위에서는 자지 못하고 침대 아래 숨었다. 당시 팔리파나 역시 자신의 경력에 위기의 상황을 겪고 있었고, 눈 역시 녹내장 말기 상태였다. 그는 그녀를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노인과 열두 살짜리 소녀는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빠져 나왔다.
조카를 데려온 팔리파나는 그녀에게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설명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무런 말없이 그가 하는 얘기를 듣던 소녀는 마침내 자신의 엄마의 오빠인 그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는 걸 느끼게 된 것이었다. (나중에 팔리파나가 죽기 전, 그녀는 칼루디야 포쿠나의 물에 잠긴 바위에다 신할라어로 그에게 배운 운문들을 조각했다. 팔리파나는 그 옆에서 그녀가 내는 바위 때리는 소리를 마치 그녀가 큰소리로 읊조리는 듯한 소리로 들으며 함께 했다. 그가 죽은 후 그녀는 그의 마지막 노트를 그의 옷속에 함께 꿰매 화장시켰다. 그런 다음 그가 남긴 낡은 안경만을 가지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팔리파나와 인사를 나누다가 애닐은 그가 보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무슨 일로 왔냐고 묻자 사라스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걸 보고 팔리파나는 그 일이 정부에 반한 비밀 용무라는 걸 눈치챘다. 그가 자신이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하자 사라스는 그에게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팔리파나가 자신은 더 이상 앞을 볼 수가 없지만, 사라스가 갖고 온 것을 자신에게 건네보라고 말했다.
사라스는 비닐에 싸온 '항해사'의 두개골을 팔리파나의 무릎에 놓았다. 애닐은 그것을 발견하게 된 계기와, 그것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두 번 묻힌 것, 그리고 그것이 정부에 의한 희생자의 것인지 아닌지 밝혀내야 한다는 것 등을 설명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 두개골을 가지고 그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애닐이 그가 28살이었다는 걸 알아 냈고, 한 가지 방법은 28살 당시의 그를 알아보는 누군가를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승이 자신들이 어디로 가야할 지, 어떻게 해야할 지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아왔다고 말하고, 그것은 아무도 알아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팔리파나는 그들에게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이라며 부처상에 눈을 그리는 일을 하는 아난다 우두가마 (Ananda Udugama)라는 한 기능공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는 그 일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존재였지만, 개인적으로 끔찍한 일을 겪은 후 붓을 손에서 놓고 지금은 광물 채취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팔리파나와 작별을 하고 콜롬보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출발한 그들은 마탈레 (Matale)에서 한 시간 정도 남쪽으로 가다가 코너를 돌았는데, 트럭 한 대가 그들을 향해 불을 밝히고 돌진해 오고 있었다. 사라스가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자 차가 마구 흔들리며 쇄석도로 위에서 미끄러졌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 트럭은 움직이지 않고, 그저 도로 위해 정차한 채 그들의 차를 향해 헤드라이트를 켜놓고 있었다.
사라스는 브레이크를 놓고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잠이 들었던 애닐도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고 있었다. 트럭 앞 도로에 한 남자가 누워 있었다. 웃옷을 벗고, 팔과 다리를 쫙 벌린 채. 주변은 조용했다. 차 엔진도 꺼진 상태였고, 개 짖는 소리도 심지어 매미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라스는 트럭 운전사들이 종종 저런 식으로 휴식을 취한다고 말했다. 아니면 그가 취해서 쉬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고학자로서 여행을 많이 다니는 그는 종종 저런 모습을 본다고 했다.
하지만, 차를 타고 가던 잠시 후 그들은 그 상황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만약 사라스가 말한 상황이었다면 누워 있는 사람 주변에 반드시 개들이 있었을텐데 지금 그 사람의 곁에는 개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애닐은 혹시 개가 한 마리도 안 사는 마을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사라스에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고, 그는 다시 차를 돌려 그곳으로 갔다.
트럭 운전사는 아직 살아 있었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거의 의식이 없었다. 누군가 그를 아스팔트 위에다 눕혀 놓고 그의 양 팔에 못을 박았던 것이다. 그들이 다가가자 그는 그들이 자신을 고문하거나 죽이러 온 사람들인 줄 알고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애닐이 그의 얼굴을 양 손으로 잡고 있고, 사라스는 못을 아스팔트에서 빼냈다. 애닐은 그의 손에 박힌 못은 빼내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했다. 그들은 차 안에 있던 담요를 꺼내 그를 감싸 안고 자신들의 차에 태웠다.
가는 도중 애닐은 뒷좌석에 앉아 공포에 질려 있는 그 남자를 살피며 사라스에게 소독약이 필요하다고 했고, 사라스는 가까운 마을에 차를 멈추고 애닐이 요구한 대로 뜨거운 물과 소금을 구했다. 이름이 구네세나 (Gunesena)인 트럭 운전사 옆에 앉은 애닐은 물에 적신 수건으로 그의 양 손을 계속 소독하였고, 한 시간 후 그들은 의사인 사라스의 동생 가미니 (Gamini)가 일하고 있는 콜롬보 외곽의 응급 병원에 도착했다. (나중에 애닐은 가미니가 이전에 자신이 칼로 손가락을 베어 병원에 왔을 때 봤던 피가 흠뻑 묻은 옷을 입고 환자 사이에 앉아 있었던 그 의사였다는 걸 알게 된다.)
애닐이 가미니에게 사라스에게 동생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자 가미니는 둘이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사라스와 가미니의 집안은 대대로 변호사 가문이었다. 하지만 사라스가 자신은 법학에 관심이 없다며 집을 떠났고, 몇 년 후 가미니 역시 집을 떠나 의대에 진학했다.
사라스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자 가미니는 그저 자고 일하는 게 전부라며 결혼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사실 가미니는 사라스의 아내를 사랑했다. 가미니가 이혼 후 살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로 병원에서 지낼 때 사라스의 아내가 그를 찾아와 그를 자신들의 집에서 지내게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가 너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그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그는 그녀를 식당으로 데리고 가 함께 밥을 먹었다. 그는 몇달 동안 먹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음식을 먹었고, 의문에 찬 그녀의 시선을 뒤로 했다. 둘은 사라스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오직 그녀의 일에 대한 얘기만을 나눴다. 그녀는 그가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가미니 역시 자신이 언제나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오직 그녀의 얼굴과 팔만 바라보며 가능한한 그녀와의 접촉을 피했다. 식사가 끝나고 헤어질 때도 행여 그녀가 자신이 너무 말랐다는 걸 알게 될까봐 포옹도 하지 않았다. 그는 미치게 그녀를 만지고 싶고, 그녀를 안고 싶었지만 그저 멀어지는 차를 향해 손만 흔들었다.
그가 그녀를 만난 건 콜롬보에서의 어느 가장 무도회 파티에서였다. 당시 두 사람은 결혼 전이었고, 그날 그는 그녀가 자신의 형의 약혼자라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그날 파티 도중 그녀에게 두 번이나 결혼하자고 청혼했다. 그녀는 웃으며 이미 약혼한 몸이라고 말했다. 연못가에서 대화를 나누다 그가 물로 얼굴에 묻힌 물감을 씻어내자 그녀는 마침내 그가 자신의 약혼자의 동생이라는 걸 알았고, 그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더 청혼했다.
나중에 그녀가 양잿물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해서 병원에 실려 왔을 때 가미니도 그곳에 있었다. 그는 그녀가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혼자라고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 최선을 다했다. 그는 그녀가 그곳에서 그와 함께 편안하기를 바랬다. 그녀의 남편이 아닌 그와 함께. 결국 그날 밤 그는 그녀를 살리지 못했고, 영원히 떠나 보내야 했다.
구에네사의 치료를 마치고 가미니의 권유로 그들은 길가 가판대로 가 음식을 주문했다. 그것을 먹는 동안 가미니는 요즘 저런 상태의 환자들, 일부러 못을 손에 대고 박지는 않더라도 나사, 못 등이 박힌 환자들이 아주 많이 병원을 찾고 있다고 했다. 사제 폭탄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폭탄이 터지면서 주변의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었다.
가미니는 이미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고, 발굴된 사람들을 조사하기에는 때가 별로 좋지 않다며, 정부는 결과를 원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 정부는 다른 두 쪽과 모두 싸우고 있고, 더 이상의 비난은 원치 않는다고, 조심하라고 말했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옳은 사람도 없다고.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조사에 대해 알고 있으며, 항상 누군가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고.
가미니가 일하는 병원엔 사방에서 희생된 사람들이 들어왔다. 고문을 당한 사람, 공중에서 헬리콥터로부터 떨어뜨려진 사람 등등. 그는 고문 희생자들의 신원을 확인해주는 남쪽 별관을 피해 다녔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그는 인턴들이 작성해놓은 죽은 사람들에 대한 리포트와 사진등을 훑어보고 확인하고 사인을 했다. 그리고 인권위원회에서 그에게 준 녹음기에 짧게 자신의 의견을 남겼다. 좀 더 잘 보기 위해 창문가로 가 햇빛에 비춰본 사진들은 끔찍했다. 그때가 일주일 중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다. 이제 그들은 사진을 찍을 때 희생자들의 얼굴을 가렸다. 그에게는 그것이 일하기에 훨씬 나았다. 혹시 희생자가 아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위험도 없었다.
사실, 아내가 떠난 두 달 후 가미니는 피로로 쓰러졌고, 병원에서는 그에게 강제 휴가를 주었다. 당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간 후 매년 찾아갔던 바닷가엘 갔다. 그곳은 지금은 택시 운전사도 가기 꺼려할 정도로 위험 곳이 되었다.어느 날 흠뻑 취해 기절한듯 해변에 쓰러져 있는데, 그곳에서 활동하는 게릴라들이 그를 자신들의 캠프로 데려가 부상자들을 치료하게 했다. 부상당한 사람들은 거의 열다섯, 열여섯 정도 되는 아이들이었다. 가미니는 도대체 저렇게 어린 아이들을 누가 전쟁터로 내모는가 회의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사라스와 애닐에게 외국에서 의자에 앉아 정의를 논하는 폭도들이 자신을 만나러 병원으로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들에게 다리를 자를 수밖에 없는 환자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사라스에게 혹시 채굴지역을 돌아다닐 때에는 부츠보다는 가벼운 테니스화를 신고 다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지뢰를 밟았을 때 그것이 허벅지와 생식기 위쪽에서 터져 진흙, 풀, 금속 등과 뒤엉켜 있는 한쪽 다리와 신발의 잔해 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며칠 후, 애닐과 사라스는 전에 만났던 치트라(Chitra)라는 곤충학자의 도움과 사라스가 알아낸 사실, 즉 '항해사'가 처음 논에 묻혔다가 요즘 사람이라는 사실을 위장하기 위해 제한 구역인 옛 무덤으로 옮겨진 것을 확인한 것, 그가 처음 묻힌 곳은 래트나푸라 (Ratnapura) 지역이라 것 등,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종합해 가능성이 있는 장소를 두 곳으로 좁혔고, 마침내 팔리파나가 소개했던, 불상에 눈을 그리는 일을 그만두고 지금은 광석 채굴장에서 일하는 아난다 우두가마를 찾아 그를 설득해 함께 그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어린시절 디프테리아에 걸린 가미니를 피해 사라스가 잠깐 지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일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사라스가 정부에 하는 일을 보고하고, 또 물품들을 보충하러 콜롬보에 간 사이 애닐은 아난다와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의 일에 방해가 되면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도 했고, 보통은 거의 한 마디 대화도 없이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애닐은 쭈그리고 앉아 일하는 아난다의 다리 근육들이 모두 긴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 '항해사' 역시 아난다처럼 광석 채굴장에서 일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그후 이틀 동안 비가 내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집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애닐은 잠시라도 사라스와 아난다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사라스의 핸드폰을 빌려 들판으로 나갔다. 누구하고라도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킨지 로드 병원의 닥터 페레라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닥터 페레라는 처음엔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생각난듯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물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지금 있는 곳을 말하지 말라고 했던 사라스의 경고 대로 그녀는 자신이 있는 곳을 말하지 않았다. 닥터 페레라가 두 번째 물었을 때 그녀는 전화 수신이 안 좋아 잘 안들리는 척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아난다는 '항해사' 얼굴 재건축을 완성했다. 그것을 보러가기 전 사라스는 애닐에게 절대로 아난다에게 그것에 대한 불평을 하지 말아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그는 다시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아난다가 다시 만든 '항해사'의 얼굴은 현재의 상황에서 볼 때 아무런 긴장감이나 고통이 없는 너무나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사라스는 그것이 아난다의 죽은 자에 대한 기원이라고 말했다. 애닐이 그 말 뜻을 묻자 사라스가 아난다가 겪은 일에 대해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난다에게는 시리사 (Sirrisa)라는 아내가 있었다. 그녀는 집 근처 학교에서 청소 일을 하였는데, 항상 아침 6시 30분 학교에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넜다. 그 시간 그녀가 지나가는 다리 위에는 남학생들이 모여 있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날도 역시 마찬가지로 같은 시간에 다리를 건너는데, 항상 있던 아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대신 다리가 막 시작된 곳 양쪽에 기다란 막대에 꽂혀진 사람의 머리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조금 더 가니 그렇게 꽂혀진 머리들이 더 있었고, 다리를 지나갈 수록 더 많이,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자 수 없이 많은 머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운동장에 있어야 할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날 그녀 역시 실종되었고,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애닐은 캄캄한 집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흐느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난다는 자신의 목을 칼로 찔러 자살을 시도하고, 애닐의 재빠른 응급조치로 목숨을 살려 병원으로 이송된다.
그리고, 마침내, 애닐과 사라스는 세 번째 흑연 광산 마을에서 '항해사'의 신원을 밝혀낸다. 그는 루완 쿠마라 (Ruwan Kmara)라는 토디 채취 하는 사람이었는데, 나무에서 떨어져 그후 흑연 광산에서 일하고 있던 중 납치를 당했다. 그들은 다시 숙소로 돌아와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을 세웠다. 사라스는 좀 더 충분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는 조심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콜롬보로 돌아 가서 정부의 범죄자 명단에 루안 쿠마라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오겠다며,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틀 정도 후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그녀에게 주고, 그녀가 그에게 접촉할 일은 없을테지만, 자신이 그녀에게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닷새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에 대한 의심과 공포가 다시 들고 일어났다. 정부 고위직에 있다는 친척, 진실의 위험성에 대한 그의 견해. 애닐은 초조하게 혼자 숙소 주변을 맴돌았다. 엿새 째 되는 날, 그녀는 사라스의 전화기로 아난다가 실려갔던 병원에 전화를 했는데, 아난다는 치료를 받고 이미 퇴원한 것 같았다. 그녀는 얘기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항해사'와 그녀뿐이었다.
그러다 그녀는 전화기를 들고 수신이 가장 좋은 논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상상하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 자신이 있는 곳과 상황을 말하며 도움을 청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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