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zarus Project

By

Aleksandar Hemon

1908년 3월 2일 이른 아침,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한 청년이 링컨 플레이스 (Lincoln Place) 31번지에 있는 시카고 경찰 서장 조지 쉬피 (George Shippy)의 집 벨을 눌렀다. 그는 19살의 라자러스 에버부크 (Lazarus Averbuch)이며, 동유럽 유태인 이민자였다. 테레사 (Theresa)라는 메이드가 문을 살짝 열고 헛웃음을 웃으며, 그 청년을 아래에서 위로, 더러운 신발에서부터 거무스레한 얼굴까지 훑어보며 왜 왔는지 물었다. 그가 쉬피 서장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하자 테레사는 단호한 독일 엑센트로 너무 이른 시간이며, 쉬피 서장은 9시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말하며 9시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녀는 그의 엑센트가 어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라자러스는 계단을 다시 내려가 문을 열었다. 그는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바지를 위로 끌어 올렸다. 그것은 아직 그에게 너무 컸다. 그는 어느 쪽으로 가야되는 지 결정을 하려는 듯 왼쪽을 봤다가 오른쪽을 보았다. 링컨 플레이스는 다른 세상이었다. 그곳의 집들은 성 같았다. 창들은 높고 넓었으며, 거리엔 잡상인들이 한명도 없었다. 사실 거리엔 인적이 드물었다. 얼음에 둘러싸인 나무들은 생기없는 아침빛에 반짝거렸다. 얼음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해 부러진 가지가 길에 떨어지면서 쩔그렁소리를 냈다. 건너편 집 커텐 뒤에서 누군가가 밖을 살짝 엿보고 있었는데, 뒤쪽 공간의 그늘이 그 사람의 얼굴을 어둡게 가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젊은 아가씨였는데, 그가 그녀에게 미소를 짓자 그녀는 재빨리 커텐을 닫아 버렸다.

늦추위가 도시를 심히 괴롭히고 있었다. 1월의 눈과 2월의 혹독한 추위는 끝났는데, 기온은 말도 안되게 올랐다가 심술궂게 떨어졌다. 라자러스의 손과 발은 꽁꽁 얼어 있었다. 그는 호주머니 안에서 손가락을 굽혀 보았다. 그리고 피가 돌게 하기 위해 마치 춤을 추듯 발가락 끝으로 한발 두발 떼어보았다. 시카고에 온 지 7개월이 되었는데, 대부분 추웠다. 늦여름의 더위는 그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악몽일 뿐이었다. 갑자기 변덕스럽게 따뜻했던 10월 어느 날, 그는 누이인 올가 (Olga)와 함께 이끼 색깔의 호수엘 갔는데, 리드미컬하게 다가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좋은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웹스터 (Webster) 가로 향했다. 그곳은 깨어 있었다. 칼라에 털이 달린 코트를 입은 여자들이 커다란 모자가 다치지 않게 잡으며 고개를 숙이고 그들의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티하나 없이 깨끗한 오버슈즈를 신은 남자들이 여자들 뒤를 따라 차에 탔는데, 그들의 소매에 달린 커프스 단추가 반짝거렸다. 게토에서 같이 지냈던 이사도르 (Isador)는 딴 세상 같은 그곳에 가고 싶다고 했었다. 자본가들이 사는 곳, 부의 평온함과 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고요함을 즐길 수 있는 곳. 하지만 그곳으로 떠났던 이사도르는 화가난 채 다시 게토로 돌아왔다. 그리고 말했다. 그곳은 항상 시끄럽고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너무나 가깝게 들리고, 항상 악취에 젖어 있다고. 그곳은, 우유는 상한 맛이 나고, 꿀은 씁쓸하다고.

커다란 차가 흥분한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달려와 거의 그를 칠뻔 했다. 마차들은 배 같았으며, 말들은 살찌고, 손질이 잘되어 있었고, 고분고분했다. 아직 켜져있는 거리의 가로등이 상점의 유리창에 반사되었다. 한 유리창에, 머리없는 마네킹이 부드러운 흰 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다. 그는 그 앞에 멈춰섰다. 그는 빌려 신은 이사도르의 신발로 인해 잡힌 물집이 좀 덜 아프게 양쪽 발을 굴렸다. 그는 고향집에서 새 드레스를 입어보며 즐거움에 키득거리던 누이들을 생각했다. 그는 산책할 때면 그의 누이들을 향해 미소짓는 잘생긴 청년들 때문에 자랑스럽기도 했고 질투가 나기도 했었다. 지금의 삶 이전의 삶이었다. 집이란 더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게 됐을 때 인식하게 되는 그런 곳인 것 같았다.

따뜻한 빵 냄새에 그는 클락 (Clark)과 웹스터 가 교차로에 있는 식품 가게로 들어 갔다. 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나자 카운터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주인인 루드빅 (Ludwig) 씨가 그를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가게 안의 물건들을 보며 그의 눈은 휘둥그레해졌다. 루드빅 씨의 부인이 울퉁불퉁한 빵덩어리를 들고 와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녀는 라자러스를 보고 인사를 했는데, 머뭇거리며 남편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를 주의깊게 살펴보라는 무언의 교환이었다. 라자러스는 미소를 지으며 마치 뭔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루드빅 씨가 뭘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한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가고난 후 루드빅 씨가 그에게 이번에는 좀 더 차가운 목소리로 뭘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었다. 그가 보기에 라자러스가 자신의 가게에서 너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편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라자러스는 카운터 쪽을 향해 몸을 돌리며 선반에 있는 사탕통을 가리켰다. 루드빅 씨가 여러 종류의 맛이 있다며 어떤 걸 즐기겠느냐고 물었다. 라자러스는 손가락으로 그중 제일 싼 니켈 사이즈의 흰색 사탕이 들어 있는 통을 가리키며 10센트짜리 동전을 건넸다. 라자러스는 자신에게도 즐기기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루드빅 씨가 건네 준 사탕을 하나 입에 넣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더 크게 났다. 라자러스는 사탕을 입에 물고 아까 손님이 나가면서 읽었던 보드에 붙어 있는 인쇄물들을 읽고, 하지정맥 등을 치료한다는 의사에 대한 글을 보면서 잠깐 하지정맥으로 고생하는 누이 올가와의 일을 떠올리다가 루드빅 부부에게 작별 인사를 했지만 그들은 그를 쳐다 보지도 않았다.

가게 밖으로 나온 그는 거리를 걷다가 얼마 후 다시 쉬피 서장의 집을 향해 걸었다. 그는 입 속에 있던 사탕이 다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벨을 눌렀다. 커튼 뒤에서 그림자가 움직이는 걸 보았다. 그것을 보니 어린시절 했던 숨바꼭질 생각이 났다. 칼모양의 고드름이 높은 처마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그는 다시 벨을 눌렀다. 쉬피 서장이 문을 열었고, 라자러스는 어두컴컴한 복도로 들어섰다.

나중에 보도된 신문 기사에 따르면, 정확히 9시에 쉬피 서장은 문을 열고 검은 코트를 입고 챙이 축 늘어진 검은 모자를 쓴, 노동자 같은 모습을 한 이방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깐보는 것으로 모든 걸 알아차렸다는 듯 그의 방문객을 흘끗 보았다. 쉬피 서장은 그 청년이 잔인하게 보이는 일자형의 입과 두꺼운 입술을 가졌으며, 그의 회색 눈 역시 차갑고 험악하게 보였다고 했다. 마르고 거무스름한 그 청년은 '시실리인'이거나 '유태인'으로 보였고,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불신을 줄 수 있을 만한 외모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추호도 악의가 없었던' 쉬피 서장은 그 낯선 청년을 안락한 자신의 거실로 초대했다고 『시카고 트리뷴』 (Chicago Tribune)의 윌리엄 밀러 (William Miller)라는 기자가 보도했다.

그들은 잠시 거실에 서 있었다. 그러다가 청년이 서장의 이름과 주소가 적힌 봉투 하나를 건넸다. 쉬피 선장은 봉투를 열어보지 않았다. 그 청년이 좋은 일로 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그 청년은 무정부주의자처럼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는 청년의 팔을 등 뒤쪽에서 붙잡고 큰소리로 부인을 불렀다. 그의 부인이 다급히 내려와 보니 남편이 '시실리인' 아니면 '유태인' 처럼 보이는 청년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남편은 그녀에게 청년의 호주머니를 뒤져보라고 말했다. 청년은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마치 살찐 짐승 같은 소리를 냈다. 청년의 호주머니를 뒤지던 쉬피 서장 부인이 큰소리로 그가 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외쳤다. 그리고 그녀는 벽걸이 융단 뒤로 얼른 몸을 숨겼다. 쉬피 서장은 재빨리 청년의 팔을 놓고 자신의 권총을 겨눴다.

쉬피 서장의 운전사인 폴리 (Foley)가 서장을 출근시키기 위해 도착해서 계단을 올라오다가 소리를 듣고 자신의 권총을 꺼냈고, 사관학교에 다니다 잠시 쉬고 있던 쉬피 서장의 아들 헨리 (Henry)가 위층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자신의 기마도를 들고 내려왔다. 그것을 본 서장의 부인이 그를 향해 달려 들었다. 그 순간 쉬피 서장이 청년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 피가 현관에 서 있던 폴리의 눈을 가렸고, 그 바람에 현관문이 꽝하고 닫혔는데, 그 소리에 놀란 쉬피 서장이 역시 폴리를 향해 총을 쐈다. 또한 그를 향해 달려드는 사람이 있어서 그를 향해 또 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자신의 아들 헨리였다. 험악한 이방인이 폴리를 향해 총을 쐈고, 그런 다음 헨리를 향해 총을 쐈으며, 그 결과 쉬피 서장과 폴리가 더 총을 난사하게 되어, 일곱발의 총알이 청년의 피와 뇌를 벽에 흩뿌렸다.

이상이 밀러 기자가 쓴 기사였고, 그는 전투가 벌어진 동안 그 무정부주의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썼다. 그는 잔인한 입으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억세게 싸웠으며, 그는 어떤 저주의 말이나 기도 한 마디 없이 죽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 후...

그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보스니아 계 미국인인 브릭 (Brik)이라는 작가였다. 그는 미국으로 오기 전 사라예보 대학 (U of Sarajevo)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미국에서 제2외국어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리더』 (The Reader) 지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이민자의 경험에 관해 얘기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고 있었고, 브릭의 보스가 브릭을 추천해서 그 칼럼을 쓰게 되었다. 이후 그는 학교에서 잘리고 계속 칼럼 쓰는 일만 하고 있었다. 그의 미국인 아내는 노스웨스턴 병원 (Northwestern Hospital)에서 신경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돈도 얼마 되지 않은 칼럼 쓰는 일을 하는 그 대신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직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브릭은 키시네프 (Kishinev)의 집단 학살로 부터 도망쳐 시카고로 이민왔지만 시카고 경찰 서장의 총에 맞아 숨진 라자러스라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었다. 그는 1908년의 당시의 세상에 발을 푹 담그고 당시의 이민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상상해 보고자 했다. 그는 옛날 신문과 책들, 그리고 사진들을 찾아 보고, 즉흥적으로 궁금한 사실들을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조사를 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무엇이 당시의 세상을 지배했는지, 그 안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쓰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그는 메리에게 자신의 책에 관해 얘기를 했고, 그녀는 항상 그렇듯 그를 지지해주었지만, 이성적이고 구체적인 그녀는 그녀를 위해 브릭이 그려낸 라자러스 캔버스에 커다란 구멍들을 내고 말았다. 그녀는 미국에서 부활하려고 애를 쓴 청년이었다는 라자러스에 대한 그의 생각이 조금 가식적이라고 했다. 특히 그 자신의 미국에서의 삶이 불평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 말이다. 역사에 관해서 쓸려면 그것에 대해 많이 알아야만 하고, 본인이 유태인이 아니면서 어떻게 그들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이냐고 했다. 그는 자신의 책이 실패하고 메리가 그를 떠나 다른 유능한 의사에게 달려 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그는 빈번히 자신의 라자러스 프로젝트에 관해 생각하는 걸 회피했다. 마치 그의 결혼생활이 그것에 달려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을 회피하려고 하면 할 수록 더욱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더욱 그럴 필요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2004년 3월 3일, 브릭 (Brik)은 보스니아의 독립을 축하하는 댄스 파티에 참석했다. 댄스 파티 주최측에서 그에게 보스니아계 이민자들을 돕는 글로리 파운데이션 (Glory Foundation)의 보드 멤버이며 자금을 운용하는 빌 슈틀러 (Bill Schuettler)와 그의 아내 수지 (Susie)에게 그의 작가로서의 성공과 개인적인 매력을 이용해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참석을 요구했다. 은퇴한 은행가인 빌은 브릭이 쓴 칼럼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고, 그저 그의 얼굴을 『시카고 트리뷴』에서 두번 본 것으로 그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적당히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아내 수지는 브릭에게 그의 칼럼을 여러 편 읽었는데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일들이 이방인의 눈에는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 놀랍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독서를 좋아한다고 했다.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으므로 책을 많이 읽는다고 했다. 그녀는 그에게 대학 신입생처럼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칼럼을 영어로 쓰느냐는 둥 아주 많은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이것 저것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다가 그는 그녀에게 100년 전 시카고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은 동유렵 유태인 이민자에 관해 쓰고 싶다고 말하며, 그것을 위해 그랜트를 신청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유태인이 아니며, 그의 아내 메리 역시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보스니아인은 인종이 아니며 그저 시민을 의미하는 것이며, 거기에는 복잡하게 얽힌 역사가 있었다는 것, 자신의 증조부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를 집어 삼킨 이후 보스니아로 갔다는 것, 그것은 1세기 전쯤 일어난 일이며 그 제국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는 것, 그래서 자신이 기획하고 있는 책을 꼭 쓰고 싶다는 것 등을 말했다.

그는 수지와 춤을 추면서 글로리 파운데이션에서 그랜트를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받고 싶다는 맘이 간절해졌다. 그 재단에 개인이 그랜트를 신청해도 된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그는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는 메리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돈을 잘 벌었기 때문에, 그는 상대적으로 자신이 별볼일 없고 무능한 보스니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글로리 파운데이션에서 그랜트를 받아 보란듯이 메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수지와 춤을 추는 걸 사진사가 여러 차례 사진을 찍어댔다. 그는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잠시 후 그녀에게 다가온 다른 보스니아 청년에게 수지를 넘기고 돌아나오며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그랜트를 위해 수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시 그녀에게로 다가가다가 다른 가족들의 사진을 찍고 있던 사진사를 보았다. 그리고 그를 본 순간 놀라움에 소리를 질렀다. 그는 로라 (Rora)라는 보스니아 친구였다.

브릭은 사라예보 시절 알았던 친구들이나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서로 반가움에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입을 맞추거나 등을 때리곤 하였다. 서로 잘 알고 있는 지인들의 소식이나 소문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곧 다시 만나거나 연락하자고 굳은 약속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직후에는 곧바로 슬픔이 온몸을 덮쳤다. 왜냐하면 그들과 연결되어 있던 것이 무엇이었던지 간에 그것이 지금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는 걸 금방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만나서 반가움에 했던 몸짓들,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 하는 의식, 그것은 그들이 서로 헤어져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척 하는 것밖엔 되지 않았다. 서로 공유했던 과거의 오래된 영상은 새로운 삶의 빛에 노출되자 쓸모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로라를 알아보고 브릭은 반가워 소리를 치며 그에게로 다가가 키스를 하거나 등을 때리려 했다. 그런데 로라는 옆으로 비키며 그가 다가오는 걸 모른 척했다. 그리고 마치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인양 요즘 어때? 하고 말았다. 브릭은 당황했지만 자신이 브릭이라고 소개했다. 둘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로라가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과거를 껴안을 생각도, 진심으로 브릭의 등을 때릴 맘도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무딘 무기처럼 플래쉬를 밑으로 가게 그의 캐논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것은 디지털 카메라가 아니었다. 브릭이 디지털 카메라가 아니라고 말하자 로라는 그렇다며, 별 걸 다 아는군, 하고 말했다.

브릭은 쓸 데 없는 이 대화에 진지하게 임했다. 왜냐하면 그냥 가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보스니아의 독립과 문화 사업, 낯선 사람들에게 구현된 과거, 이방인들 사이에서의 현재, 수지 슈틀러와의 한담, 도망가고자 했던 계획 등 이 모든 것들을 그냥 두고 떠나 버릴 수가 없었다. 우습게도 한번 연극을 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가 로라에게 사진을 포기하지 않았군, 하고 말하자 그는 전쟁 중에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전쟁이 시작하자 마자 떠나와서 하나도 아는 게 없는 그가 보스니아 사람에게 전쟁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 질문은 상대방의 장시간의 전쟁 공포에 대한 독백으로 이어졌고, 그는 진정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자신을 훈련해 왔지만, 로라에게는 물어보기로 했다. 그가 사라예보가 함락됐을 때 그곳에 있었느냐고 묻자, 로라는 아니라고 했다. 브릭이 자신은 1992년 봄에 미국으로 왔다고 하자 로라는 운이 좋았군, 이라고 말했다. 브릭이 아니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한 가족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로라에게 다가왔다.

수십년 전 사라예보에서 그의 삶에 들어왔던 사람들은 이제는 아주 많은 사소한 기억을 가지고 그의 인생에 다시 들어왔다. 로라 역시 마찬가지 였다. 고등학교 시절, 둘은 쉬는 시간에 3층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웠고, 꽁초는 불꺼진 히터 통풍구에 버렸다. 때론 누가 그것을 맞추는 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로라는 딱딱한 팩으로 된 말보로 레즈 (Marlboro Reds)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보통 그들이 피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유고슬라비아 (Yugoslav)의 강 이름을 붙인 맛이 좋지 못한 담배에 비하면 아주 우수했다. 그들이 피웠던 담배는 노동 시간이 끝난 후 공장 바닥에서 줏은 부스러기들로 만들어진 것인 반면, 딱딱한 팩의 말보로 레즈는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라고 믿었다. 그것들은 맛이 풍부했고, 우유와 꿀을 만들어내는 땅에서 수확한 것 같았다. 로라는 언제든지 자신의 담배를 나누었고, 그것은 그가 관대해서라기 보다는 최근에 다녀온 외국 여행에 대해 자랑하거나 사진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무딘 해안 도시에서 부모님과 함께 휴가를 보낼 수 있을 뿐, 혼자 외국 여행을 다니는 건 고사하고, 학교를 빼먹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로라는 꾸준히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종종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그것을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으로 야단을 맞거나 벌을 받지도 않았다. 소문에 그의 부모님은 차사고로 돌아가셨고, 그는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은 누이와 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역시 여러 가지 소문이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군사 정보부의 스파이였고, 아버지의 옛친구가 그를 돌보아주고 있다고도 했다. 또한 그는 중앙위원회 소속 위원의 혼외 자식이라는 둥, 그 자신이 스파이라는 둥의 소문 역시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지만, 또 모든 게 로라에게 다 맞아 떨어지기도 했다.

로라는 아이들에게 런던이나 스웨덴, 밀라노 등에서 있었던 거의 상상에 가까운 일들을 아이들에게 말했고, 그 증거로 그곳의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그를 믿었고, 혹시 그의 이야기를 비웃을 때에도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브릭은 로라가 혹시 거짓말을 했더라도, 그가 얘기한 것을 항상 믿을 수는 없을 지라도, 그는 그런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들의 꿈을 실행한 사람이었고, 그들 모두는 그와 같이 되고 싶어 했다. 왜냐하면 그들 주변엔 그와 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브릭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로라를 자주 보지 못했다. 그는 항상 어디론가 떠나 있었고, 브릭은 대학에서 계속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길에서 마주치면 악수를 하고, 별 변화 없는 일상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그는 가장 최근에 다녀왔던 여행에 대해서 대략 얘기를 하는 식이었다. 브릭은 그저 상상으로 그와 함께 세계 여기 저기를 따라 다녔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1992년 3월이었다. 로라는 막 베를린 여행에서 돌아온 후였고, 브릭은 미국으로 떠나려든 참이었다. 이상한 초여름 눈폭풍이 와 모든 것이 부서졌다. 둘은 눈이 세차게 몰아치는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길고 우아한 카멜 코트를 입고 있었고, 목에는 모헤어 스카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브릭과 악수를 하기 위해 양가죽 장갑을 벗었다. 브릭의 손은 꽁꽁 얼어 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두 사람 다 잘 지낸다고 했고, 날씨도 나쁘고, 미래는 불확실했으며, 전쟁이 일어날 것은 분명했지만, 그런 것들만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모든 것이 양호한 편이었다. 그는 베를린에서 장벽 조각을 인디애나에서 온 미국인 관광객 커플에게 팔았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그는 경찰에 잡혔는데, 경찰에게 자신은 진짜가 아닌 복제품을 팔았다고 말했고, 그건 경찰이나 그 미국인들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에서는 어느 것이나 진짜가 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로라가 브릭에게 한 미국에 대한 충고였다.

한편, 쉬피 서장의 집에서 총 난사 사건이 있은 후 부서장인 슈틀러가 즉시 그 사건의 담당자가 되었다. 그는 서둘러 부하들에게 단서와 증인들을 찾아보게 하고, 쉬피 서장의 집으로 향했다. 트리뷴 지에 맨 처음 보도 했던 밀러 기자도 이미 거실에 와 있었다. 슈틀러는 그와 쉬피 서장에게 인사를 하고, 피웅덩이를 조심히 지나 청년이 누워 있는 카펫 위로 갔다. 마루 바닥에서 그는 청년이 쉬피 서장에게 건네줬던 봉투를 집어 열어 보고 안에 든 쪽지를 읽은 다음 자신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밀러가 그것을 보았지만 그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슈틀러 부서장은 청년의 외투 주머니에서 전차표 두장을 발견했는데, 그는 하나는 그 청년이 '남쪽 유태인 게토에 사는 암살자'라는 걸,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북쪽으로 왔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했다. 또한 청년의 호주머니에서 발견된 또 다른 쪽지에 적힌 알 수 없는 숫자를 보고 부서장은 그 숫자들이 암살자가 그린 무정부주의자의 로또 번호로, 그들 중 누가 범죄를 저지를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이라고 추측했으며, 그의 추측을 확실하게 한 것은 청년의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흰색 사탕이었다. 그는 그것을 흰색 알약으로, 독약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그 청년이 임무에 실패했을 시 먹고 자살할 때 사용하려는 약으로 추측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청년의 모자 안쪽에 적힌 글 귀들, 즉 영어로 쓴 '내 신발은 크다 (My shoes are big.)', '내 방은 작다 (My room is small.)' 등등의 문장들을 암살 음모를 수행하는 장소에 대한 암호화된 묘사라고 생각했다.

부서장은 그 청년이 깨끗하게 수염을 깎고, 머리 역시 단정하게 정리를 하고 있다는 것과, 그의 복장이 퀴퀴한 냄새가 날 정도로 낡았지만, 악취가 풍기지 않는다는 것, 말하자면 그가 아주 최근에 목욕을 한 게 틀림없다는 걸 사소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나중에 밀러 기자에게 '관례적으로 그쪽 부류의 이방인들은 자신의 사람들을 그렇게 돌보지 않는다고, 수염을 깎고 목욕을 했다는 것은 마치 그가 분명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브릭은 추억 때문에 로라를 다시 만나고픈 생각은 없었지만, 수지와 찍은 사진을 받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녀와의 사진이 그랜트를 받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로라는 사진을 그에게 준다고 했고, 브릭은 돈을 지불하겠다고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로라가 무슨 말이냐며 공짜로 주겠노라고 말하기를 바랬다. 하지만 로라는 그것을 $100불에 주겠노라고 말하며, 사진이 완성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브릭은 그가 아마도 돈이 필요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몇주 후, 5월이 다 되어 갈 무렵, 브릭은 사진을 받기 위해 메리가 자주 가는 한 식당에서 로라와 아침 약속을 했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로라가 오지 않자 브릭은 어린시절 숨바꼭질 할 때 친구들이 말도 없이 자신만을 남겨둔 채 집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혼자서 어두울 때까지 친구들을 찾아 다녔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 일로, 그는 누군가를 기다릴 때면 그 사람이 영영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때로 그는 자신이 돈을 못벌어 오는 것을 메리가 더 이상 참아줄 수가 없어서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한참이 지난 후 저쪽에서 로라가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새것처럼 보이며 반짝반짝 윤이 나는 가죽 자켓을 입고 흠잡을 데 없는 검은 곱슬머리를 날리며 멋진 선글래스를 쓰고 걸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음식을 주문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마치 고등학교 시절 화장실에서의 일을 떠올리게 했다. 주문한 버거를 먹으면서 브릭은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이 어색해 어떻게 칼럼을 쓰게 됐는지, 3년 전 지금의 아내 메리와 결혼한 것 등등 자신에 관한 얘기를 늘어 놓았다. 메리가 아이리쉬계 미국인이라고 하자 로라는 자신이 사라예보에서 만났던 코맥 (Cormac)이라는 아이리쉬 사람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는 교황의 방문을 추진하기 위해 사라예보에 왔다고 했다. 교황은 그곳을 방문하는 데 찬성을 했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브릭은 자신이 한 얘기와 교황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자신이 무슨 얘기를 했는 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교황이 제시한 한 가지 조건은 그들이 전쟁을 끝내면 방문하겠다는 것이었고, 코맥이라는 사람은 바로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사라예보에 왔다는 것이었다.

로라가 커피를 더 원해 둘은 커피숍으로 갔다. 그가 보여준 브릭과 수지의 사진은 흑백으로, 브릭은 마치 서투른 기사처럼 나이든 여자 앞에서 무릎을 끓고 있었으며, 왼손은 그녀의 쭈글쭈글한 무릎을 만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곤경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그럴싸했다. 감히 고결하기까지 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수지가 그 사진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 흑백의 사진은 전통이 있고 지혜롭게 보였으며, 지금과는 다른, 사라지고 없어서 훨씬 더 나은 세상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브릭은 그 사진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그래서 네거티브 (음화)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로라는 그가 아직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브릭이 네거티브는 주지 않았다고 하자 로라는 그것을 주었고, 브릭은 돈을 지불했다. 로라는 마치 사진 속의 인물이 브릭이라는 걸 확인하듯, 몸을 앞으로 숙여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보더니 그의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보기 좋을 거라고 하면서. 브릭이 이유를 묻자, 로라는 모든 얼굴은 하나의 경관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그의 칼럼 옆에 사진이 있는 걸 좋아할 거라고 말했다. 또한 그의 책을 출판할 때 그게 필요할 거라고 했다.

다음 주, 브릭은 사진을 찍기 위해 시카고의 랜드마크들 앞에서 여행객들처럼 포즈를 취했다. 날씨가 몹시 추웠지만 호숫가에 가서도 찍었다. 그는 제방에 앉아 얼굴 근육에, 턱의 각도에, 그리고 적당히 입을 벌리는 것 등에 집중했다. 지나가다가 한마디씩 하는 사람들 때문에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는 도대체 왜 자신이 그러고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로라는 브릭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것은 보스니아 사람들의 기질이었다. 상대방에 대해서 아무 것도 묻지 않는 것. 그래서 이쪽에서 오히려 자신에 대한 얘기를 털어놔야 했다. 로라는 말을 할 때 특히 사라예보 식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는데, 모음은 삼키고 자음은 불분명하게 말했다. 브릭은 그게 듣기 좋았다. 그것은 항상 그에게 봄날 아침의 첫번째 기차가 내는 희미한 덜그렁소리를 생각나게 했다.

로라는 바슈카르지야 (Bas Carsiya) 거리에서 자란 아이로, 그의 가족은 예로부터 상업에 종사한 무슬림 가족이었다. 그들은 내내 사라예보에서 살았고, 몇 개의 가게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라예보 밖에서 태어난 사람과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아서 시골 출신의 친척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소와 양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에게는 둘 다 그저 야생 동물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열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그의 고모가 누이와 그를 돌보아 주었다. 그의 누이 아즈라 (Azra)는 착하고 순종적인 아이였다. 학교를 다니며 공부도 열심히 했고, 고모를 도와 집 안의 하드렛일을 했지만, 그는 그저 잠이나 자고 밥이나 먹는 아이였다고 말했다. 카르지야가 그를 키웠다고 했다. 그는 11살 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12살 때 카드 놀이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사춘기 때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가지후스레프베고바 (Gazihusrevbegova) 사원의 옆문으로 데리고 가, 이슬람을 모욕하지 않으려면 신발, 코트, 그리고 카메라 등을 모두 밖에다 놓고 들어가야 하며, 그것들을 자신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이 사원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그들의 소지품들을 들고 도망쳐 버렸다. 그는 부츠는 그의 아버지의 가장 친한 친구 아들인 12살 가량의 람보 (Rambo)라는 아이에게 팔았는데, 람보는 카르지야의 노련한 범죄자였다.

로라는 전쟁 초기 람보의 부대에 들어 갔는데, 그것이 무기를 가진 몇 안되는 부대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전쟁 전에 로라는 사라예보의 유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을 했다. 그는 그들을 여기저기 가이드 해주면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 가이드와 사진 경험이 로라로 하여금 94년에 포위됐을 때 터널을 통해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는 성모님이 발현하는 메주고리예 (Medjugoriye)에 오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취재하기 위해 온 한 『워싱턴 포스트』 (Washington Post) 지 기자의 차를 얻어 타고 메주고리예까지 가서, 신분을 숨기고 가톨릭 크로아티아 인으로 위장해 마리오 (Mario)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는 몇 개의 외국어를 할 수 있었고,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을 찾아 온 많은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로라는 예수에 대해서, 그가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결코 교회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고, 기독교에 대해서, 혹은 어떠한 신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로라가 안내문에 적혀 있는 사실들에다가 조금 더 보태어 열변을 토하면 사람들은 십자가 아래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모두 필리핀이나 아일랜드 혹은 멕시코에서 온 착한 사람들로 성령이 충만해져 팁도 많이 주었다.

어느 날, 그는 인디애나폴리스 (Indianapolis)에서 온 나이든 미국인 순례객 부대를 안내하게 되었다. 다른 순례객들과 똑같이 눈물을 흘리던 그들은 로라에게 자신의 고국의 언어로 함께 기도하기를 요구했고, 그것은 엄청난 액수의 팁을 내포하고 있었다. 로라는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영혼은 담겨 있지 않은 소리로 기도를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브릭은 여름이면 가서 지냈던 조부모님 댁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그는 그곳에서 오로지 책만 읽고 싶었지만, 소에게 물을 주는 일 등등 농장 일을 거들어야만 했다. 그중 무엇보다도 싫었던 것은 일요일 아침엔 항상 새벽에 일어나 긴 바지와 흰색 셔츠, 그리고 넥타이를 매고 교회에 가야하는 일이었다. 교회는 언덕을 네 개나 올라야 하는 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한번 이상 옷에다 오줌을 싸기도 했고, 코피를 흘리기도 했고, 토하기도, 기절을 하기도 했지만 자비란 없었다. 그 모든 고통이 십자가의 그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말이다. 그는 부모님께 전화를 해 제발 자기를 일요일의 예식에서 구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오히려 부모님은 조부모님이 교회가시고 브릭이 혼자 집에 있을 때, 혹시 닥치게 될 위험에 대해서 더 걱정을 하셨다. 그곳에는 칼이나 성냥 그리고 정원 손질용 도구 등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말하자면 그의 부모님은 그의 영혼 보다는 신체를 보존하는 걸 더 중요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책을 한권 갖고 교회에 가는 것으로 자신을 구원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깨닫고 세속적인 존재로서의 나약함을 생각할 때, 그는 상상 속에서 책 속의 주인공처럼 자유롭게 광대하고 밝은 공간을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당시 책이 신체의 불편함을 없애 준 것뿐만 아니라 무릎을 끓고 기도를 하는 다른 사람들 모르게 그것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 역시 굉장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아침 내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로라의 얘기를 들으면서 브릭은 한계에 부딪쳤던 자신의 책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 동안 누군가와 그것에 대해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어서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당시 쉬피 서장이 애버부크를 총으로 쏘고 난 후, 시카고는 히스테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곳 사람들은 아직 헤이마켓 대량 학살 사건 (the Haymarket Massacre: 1886년 남북전쟁 후 벌어진 시카고의 헤이마켓 거리에서 일어난 노사간 분쟁 사건으로, 그해 5월 1일 8시간의 노동제를 요구하는 미국 노동자들의 시위가 절정에 달했고, 오늘 날의 노동절의 시초가 되었다—마가렛 주)과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재판과 처형에 대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맥킨리 대통령을 암살한 헝가리인 역시 자신은 무정부주의자라고 말했다. 당시 미국은 무정부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무정부주의에 대한 전쟁은 오늘날의 테러와의 전쟁과 흡사했다. 이민법이 개정되어 의심스러운 무정부의자들은 핍박을 당하거나 강제 추방되었다. 특정 인종 그룹에 대한 성적 도착과 범죄성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많아졌다.

브릭은 로라가 자신의 얘기를 듣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인디애나에 있는 와와카 (Wawaka)라는 소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곳은 750불을 내놓지 않으면 도시 전체를 파괴하겠다는 위협 편지를 받은 곳으로, 그 편지는 브룩클린에서 보냈고, '무정부주의자들'이라는 사인이 있었다. 그래서 그 소도시는 무기를 들고 일어나 외국인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수상한 외국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곳을 지나는 기차를 멈추게 했다. 그 기차는 평소엔 그곳에 멈추지 않는 기차였다. 그들은 기차 안에서 운없는 멕시코 농부들을 발견하고 공격했다.

브릭이 거기까지 얘기를 하자 마침내 로라가 입을 열었다. 그는 최근 샌프란시스코 경찰에게 사살된 한 보스니아인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그에 따르면, 그 보스니아인은 흡연금지인 스타벅스의 야외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그곳에서 떠나달라는 항의에 담배를 다 피우기 전에는 그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경찰들이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방탄조끼를 입고 출동하자 그는 그들에게 자신이 피우고 있는 걸 끝마치면 조용히 그곳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의 말을 해석해줄 사람을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경찰이 그 일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그를 체포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목이 졸려 숨졌다. 그의 이름은 이스멧 (Ismet)이었고, 세르비안 캠프에 있었는데, 전쟁 후 사진을 찍은 적이 있으며, 로라는 그의 누이를 알고 있다고 했다.

라자러스는 망명자로, 대령학살에서의 생존자로 시카고에 왔다. 그는 아주 끔찍한 일을 목격했음에 틀림없었다. 사진을 찍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쉬피의 집에 갔을 때 화가 나 있었을까? 그에게 뭔가를 얘기하고 싶었을까? 대량학살이 있었던 1903년 그는 14살이었다. 그는 시카고에서 그것을 상기했을까? 그는 미국에서 다시 일어난 생존자였을까? 그는 그것에 대해 악몽을 꾸고 있었을까? 등등, 브릭은 추측하고 장황하게 얘기했다. 로라는 잠자코 그의 다섯 번째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브릭은 둘이 같이 멕스웰 가 (Maxwell St.)로 가서 라자러스가 한때 살았던 곳들을 가보자고,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제안했다. 로라는 아무런 주저 없이 재빨리 그러지뭐, 하고 대답했다.

그곳은 무시무시한 창고들이 거대한 아파트로 바뀐, 시카고의 새로운 대단한 동네로 재탄생되어 있었다. 라자러스가 살았던 때의 모습은 어느 것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둘은 아무 곳에서도 차를 멈추지 않았고, 사진도 찍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쉬피 서장이 살았던 링컨 파크로 갔지만 그가 살았던 집도 없었고, 라자러스가 캔디를 샀던 루드빅 상점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라자러스 이야기를 위해 사진을 찍을 만한 건 어느 것 하나 남아 있지 않았고, 로라 역시 사진을 찍으려는 의지도 없었다. 너무나 많은 것이 사라져 버려서 뭐가 잘못됐는 지 알아 보려는 건 불가능했다. 한 고등학교 운동장이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로라는 라자러스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항상 전과 후가 있다고 하면서.

그의 말이 맞았다. 브릭은 키쉬네프에서 있었던 대량학살부터, 말하자면 미국에 오기 전의 라자러스의 행적을 쭉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검색할 수 없었던 것을 재상상할 필요가 있었고,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을 직접 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시카고에서의 자신의 삶 밖으로 한발짝 물러나 낯선 황야 깊은 곳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글쓰기 방식은 수지의 그랜트가 있건 없건, 메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방식일 것이고, 또한 그가 하고자 했던 계획과도 아주 다른 방식이었다. 그는 메리에게 다시 돈을 달라고 하기도 싫었고, 다시 또 그의 계획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설명하는 비생산적인 과정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음 한 구석에 수지의 그랜트를 갈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이 잘 될 거라고 믿을 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었음에도 갑자기 모든 것이 그것에 달려 있는 듯했다. 그는 수지에게 연락하는 대신 몇 차례 글로리 재단에 문의를 해서 결정이 언제 되는 지 물었고, 전화를 할 때 마다 기회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음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로라에게 말한 건 지금은 그곳에 갈 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곳까지 가는 데 경비가 너무 많이 들고, 메리가 함께 갔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시간을 낼 수가 없으며, 꼭 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서관에서 자료를 더 찾아보고 라자러스와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책도 더 읽어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2,3 년 정도는 그렇게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의 책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그의 책이 출판되든 그렇지 않든 세상은 똑같을 것이기 때문에.

로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브릭은 그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로라는 특이한 침묵, 즉 무겁지도, 비난하지도, 뭔가를 요구하지도 않는 그런 침묵을 지켰다. 브릭은 그것이 필름을 유화액 속에 넣고 형상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침묵하는 그것과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로라의 그런 침묵이 좋았다. 그것은 그들의 어렸을 적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실재적인 것이 비실재가 되어 버렸고, 비실재적인 것이 오히려 더 손에 잡힐 듯해진 모든 것이 뒤집힌 지금의 상황이 느껴지게 했다.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가능하면 빨리 키쉬노프로 가야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로라와 함께 가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그가 함께 가지 않으면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가 주위에 있어야 했다. 그의 침묵이, 그의 이야기들이, 그의 카메라가 필요했다.

그날 밤 그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다음 날 아침 메리에게 자신의 책 때문에 동유럽엘 가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도중 메리는 병원에서 총알 박힌 환자가 있다는 응급 전화를 받고 나갔고, 그는 수지의 집에 전화를 해 그녀의 남편에게서 재단에서 그에게 그랜트를 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땀에 젖은 손바닥을 파자마에 문지르며 생각했다. 이젠 되돌릴 수도, 책을 쓰지 못한다는 변명도, 도피도 가능하지 않았다. 앞으로 뭘 할 건지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없었고, 철저히 혼자였다. 메리에게는 두려움이 조금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기쁜 소식을 전하자고 맘 먹었다. 하지만 그 대신, 그는 로라에게 전화를 해 라자러스에 대한 연구를 위해 자신이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Moldova)에 가려고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막 라자러스 프로젝트에 대한 그랜트를 받게 되었고, 그의 비용을 자신이 다 지불하겠으니 그와 함께 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말했다.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이용할 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책에 그 사진들을 삽입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함께 사라예보에도 가서 고향이 어떻게 변했는 지도 보자고 말했다. 잠자코 그의 말을 듣던 로라는 아무런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은 채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라자러스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그의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