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ldfinch

By

Donna Tartt

뉴요커이며 27살인 테오 데커 (Theo Decker)는 암스테르담 (Amsterdam)에 있었을 때 일주일 넘게 호텔 방에 쳐박혀서 다른 사람에게 전화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암스테르담은 처음이었다. 호텔 방 외에 그 도시에 관한 건 거의 본 것이 없었다. 으스스하고, 외풍이 있으며, 해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진 그 방은 북유럽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제공했다. 그것은 네덜런드의 축소판이었다. 흰색으로 표현된 프로테스탄트의 정서가 동양으로부터 오는 상선이 가져온 뼛속 깊이 박혀 있는 호화로움과 혼합되어 있었다.

매일 이른 아침, 아직 밖은 어둡고, 추가 직원이 일하러 오고 로비가 사람들로 붐비기 전, 그는 신문을 가질러 아랫층으로 걸어 내려갔다. 호텔 직원들은 낮 시간 동안엔 내려오지 않는 젊은 미국인인 그를 보지 못했다는듯 냉랭하게 훑어보았다. 『해롤드 트리뷴』(Herold Tribune)에는 궁지에 몰린 그에 관한 기사가 없었지만 모든 네덜런드 신문에는 그 이야기가 쫙 깔려 있었다. 그는 윗층으로 올라가 옷을 다 입은 채 침대로 들어가서 침대보 위에 신문을 펼쳤다. 경찰차와 범죄 현장을 표시하는 테입 등의 사진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설명하는 자막 조차도 해독이 불가능했다. 그의 이름이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에 대한 묘사를 하고 있다고 해도, 혹은 대중들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해도 그것을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춥고 아팠기 때문에, 그리고 많은 시간 어찌할 바를 몰랐기 때문에, 그저 하루종일 침대에 있었다. 떠나올 때 따뜻한 옷과 마찬가지로 책도 가져올 수가 없었다. 한낮에도 밤인 것 같았다. 열 때문에 그는 기묘하기도 하고 굉장히 선명하기도 한 많은 꿈들을 꾸었고,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몸부림치느라 많은 땀을 흘렸다. 하지만 그런 날들 중 마지막이면서 가장 나빴던 날, 그는 엄마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것은 잠깐 스쳐 지나간 것 같은 빠르고 설명하기 힘든 꿈이었다. 그가 한 가게에 있었는데, 불현듯 엄마가 그의 뒤에 서 있었고, 그는 거울에 비친 그녀를 보았다. 엄마를 보자 그는 행복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더 아름다웠고, 아직 늙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방안을 가득 채우는 존재 그 자체였다. 그가 원하는 만큼 뒤로 돌아 그녀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똑바로 쳐다 본다는 것은 그녀의 세계와 그의 세계의 규칙을 어기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오직 그녀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에게 왔고, 둘은 긴 정적이 흐르는 잠깐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막 놀라움, 애정 등이 섞인 표정으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순간 공기처럼 사라졌고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살아 있다면 상황은 훨씬 더 나았을텐데. 사실, 엄마는 그가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다. 그때 이후로 그에게 벌어진 모든 일은 완전히 그의 잘못이긴 하지만, 그녀를 잃었을 때, 그는 그를 좀 더 행복한 곳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성미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랜드마크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의 생은 엄마의 죽음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엄마는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을 활기차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떤 것이라도 원래의 색상 보다 훨씬 더 밝은 색으로 보았다. 또한 그녀는 아름다웠다.

처음 뉴욕으로 갓 왔을 때, 그의 엄마는 파트 타임으로 모델일을 했지만,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너무 불편해 그 일을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완전히 자신만의 특징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보기 드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살아오면서 엄마와 비슷한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검은색 머리카락과 여름에는 주근깨가 보이는 흰 피부, 엄청 반짝거렸던 밝은 녹청색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광대뼈를 보면 인디언과 켈틱 (Celtic) 족의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섞여 있어서 사람들은 그녀를 아일랜드 사람 같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사실 그녀는 반은 아일랜드, 반은 체로키 (Cherokee) 인디언 피가 섞여 있는, 오클라호마 (Oklahoma) 경계 근처 캔사스 (Kansas)의 한 시골 도시 출신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진상에서는 그런 이국적인 특성이 너무나 삭막하고 거부감을 갖게 표현되었다. 주근깨는 메이컵으로 가려졌고, 머리는 목부분에서 하나로 묶어 마치 옛 일본 고전에 나오는 귀족같았다. 그래서 그녀의 따뜻함과 활기 등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으며,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가늠할 수 없는 우수함도 표현되지 못했다. 또한 그녀의 웃음소리는 당신이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즉시 그만두고 그녀를 따라가고 싶게 할 정도였다.

그는 그녀의 죽음이 그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도 빨리 그렇지 않다고 그를 안심시켰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치 않았다. 그일은 14년전 4월 10일 뉴욕에서 발생했다. 그날은 그냥 보통의 날이었지만, 지금은 녹쓴 못처럼 그의 달력에 붙박혀 있게 되었다. 그날이 예정대로 흘러갔으면, 그의 8학년의 남은 날들과 함께 아무런 흔적없이 아무런 표시도 남기지 않은 채 그저 공중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날은 비가 많이 왔다. 지난 밤 폭우로 가게들은 물이 넘쳤으며 두어개의 지하철 역도 운행이 중단되었다. 그는 엄마와 함께 아파트 건물 밖에서 도어맨이 택시를 잡아주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때엔 엄마의 옷차림에 대해서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테오였지만, 그날 아침의 엄마의 차림새, 즉 트렌치코트와 얇은 핑크 스카프, 그리고 검은색과 흰색의 두가지 색으로 된 단화는 뇌리에 단단히 박혀 오늘날 그에게 엄마의 다른 모습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당시 그는 13살이었다. 그는 그날 아침 엄마와 뻣뻣하게 서서 택시를 기다렸던 일을 기억하기 싫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도어맨이 분명 눈치챘을 것이었다. 다른 날 같으면 다정하게 둘이 얘기를 주고받으며 기다렸겠지만, 그날 아침엔 서로 얘기할 마음이 없었다. 그가 학교에서 정학처분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전날 학교에서 엄마의 직장으로 연락을 했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화가 많이 난 채 퇴근했다. 그런데 정말 끔찍한 것은 테오 자신이 그가 왜 정학처분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추측하건데, 미스터 비먼 (Mr. Beeman)이 그의 사무실에서 교사들 라운지로 가는 도중 2층 층계참의 창문으로 테오가 학교 안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것이거나, 혹은, 더 가능성이 있는 건, 담배를 피우고 있던 탐 케이블 (Tom Cable) 주위에 서있던 그를 보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학교에서는 두 경우 모두 같은 선상에서 벌을 주었다. 그의 엄마는 담배피우는 것을 몹시 싫어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엄마가 담배 때문에 피가 섞인 기침을 했고, 그녀의 십대 시절 내내 할머니는 산소 마스크에 의존해야 했으며, 침실 창은 언제나 가려져 있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하지만, 믿고 싶진 않았지만, 담배 문제는 그의 정학 처분에 대한 빙산의 일각이라고 생각됐다. 왜냐하면 그즈음 테오는 학교에서 꽤 말썽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몇달 전 별로 성공하지 못한 배우였던 그의 아버지가 엄마와 그를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사실, 엄마와 그는 아버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버지가 없을 때 더 행복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가 그들을 버린 방식, 즉 위자료나 양육비, 또는 이사한 주소 같은 것도 하나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버린 것에 대해 많은 쇼크를 받은 것 같았다. 어퍼 웨스트 사이드 (Upper West Side)에 있는 그의 학교 선생님들은 그를 몹시 안되게 생각했고, 상황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서 그에게 모든 종류의 특별 장학금을 주었고, 과제의 마감일을 연기시켜 주며 두번째 세번째 기회를 주었다. 그들은 그가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 넣을 때까지 몇달 동안 붙잡을 수 있는 밧줄을 제공해 주었다.

그일로 그와 엄마는 학교 컨퍼런스에 참석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미팅 시간은 11시 30분이었지만, 엄마는 여자들 엑세서리 전문 광고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날은 오전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일찍 웨스트 사이드 (West Side)로 가서 아침을 먹고 생일을 맞은 그녀의 직장동료의 선물을 사기로 했다.

택시를 기다리며, 불안한 마음에 손톱을 물어 뜯으며 테오는 11시 30분의 컨퍼런스 때까지 고통스러운 기다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 도착하면, 그들이 그와 엄마에게 갑자기 무엇을 꺼내 보일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컨퍼런스'라는 단어에는 권위, 비난 그리고 제압, 퇴학의 가능성, 이 모든 것들이 집합되어 있었다. 만약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커다란 참사가 아닐 수 없었다. 아버지가 떠난 이래 그들은 파산 지경이었고, 렌트비도 간신히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도 그가 정말로 걱정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전에 햄턴에 있는 탐의 집에서 며칠 지낼 때 그와 탐이 빈집에 침입했다는 걸 미스터 비먼이 알아낸 것이 아닌가 하는 거였다. 물론 '침입했다'는 것이 자물쇠나 그런 것을 억지로 파손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부동산 에이전트인 탐의 엄마의 사무실에서 여분의 열쇠를 몰래 가져다 빈집들의 문을 따고 들어갔다. 주로 옷장을 기웃거렸고 서랍장을 뒤졌다. 물론 물건들을 훔쳤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그리고 Xbox 게임기와 DVD, 부엌의 통에서 구겨진 5불짜리와 10불짜리 지폐, 세탁실에 있는 빨래더미 호주머니에서 잔돈들 해서 총 92불 정도의 돈 등이었다.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구역질이 났다. 그것은 몇달 전의 일이었고, 테오는 스스로에게 미스터 비먼이 그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말했지만 그의 상상력은 이런저런 방향으로 날라다녔다. 자신이 어떻게 그렇게 어리석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의 집을 몰래 침입한다는 것은 범죄였고, 그걸로 감옥에도 갈 수 있었다. 그 문제로 탐에게 연락을 했을 때 그는 별로 크게 놀란 것 같지 않았다. 도중에 테오의 말을 자르더니 멍청한 짓 하지 말라고, 그 일을 도대체 누가 알겠느냐고 말하며 그저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테오가 다시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가봐야 한다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잠시 후 마침내 택시가 와서 탔는데, 뒷좌석에서 똥기저귀를 갈았거나 아니면 진짜로 누군가 그곳에서 똥을 싼 것같은 냄새가 났다. 결국 엄마는 험악한 운전과 냄새로 토할 지경에 이르러 도중에 내렸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냄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하자 그는 그럼 앞자리에 앉겠다고 하지 그랬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그를 쳐다 보며 꼭 그의 아버지처럼 얘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창피해서 눈길을 피했다. 그도 그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어조의 말투말이다.

얼른 엄마에게 앉아서 쉴 곳을 찾아 보자고 말하자 그녀는 아니라고,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배가 고파 얼른 아침을 먹었으면 싶었다. 엄마가 그의 말투에서 뭔가를 느꼈다는 듯이 가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아니라고 말했다. 배가 고팠지만 자신은 지금 그걸 주장할 만한 위치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공원에서 잠깐 앉아서 쉬기로 하고 횡단보도를 향해 걸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엄마는 가방에서 작은 우산을 꺼냈고, 두 사람은 서둘러 길을 건넜다. 거리와 공원에 있던 사람들이 신문과 들고 있던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며 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뮤지엄 현관 지붕 밑으로 피했다. 잠시 후 엄마는 들고 있던 우산을 접어 빗물을 털면서 잠시 안으로 들어가 살짝 한번 둘러 보고 나오자고 했다. 엄마가 그러는 것은 놀랍지도 않았다.

엄마가 처음 캔사스에서 뉴욕으로 왔을 때 세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다. 첫번째는 빌리지의 한 커피숍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잡지사의 한 출연 계약 담당자가 화보 촬영을 하려던 여자애가 약속을 어겼다며 그녀에게 모델일을 제안했는데, 그 일은 패션 잡지나 유명 디자이너 제품에 대한 일이 아닌 그저 메일로 보내는 화보를 찍는 일이었다. 그가 제시한 임금도 당시 그녀에게는 커피숍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 일은 때론 재미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았다. 1월에 수영복을 입어야 해서 감기로 온몸을 떨어야 했고, 더운 여름에 모직 옷이나 양모 옷을 입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그녀는 그일을 하며 학비를 모아 대학에 진학해 뉴욕 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했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18살이 되어 뉴욕에 오기 전까지 한번도 위대한 작가들의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 잃어버린 시간들을 메꾸고 싶었다. 그래서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그림과 슬라이드를 보았다. 엄마는 그때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대학은 그녀에게 일어난 뉴욕에서의 일중 두번째로, 아니 그녀에게는 첫번째로 중요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만약 세번째 일, 즉 그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그녀는 석사를 끝내고 박사까지 했을 것이다. 그녀는 언제든지 자신에게 두세 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지면 곧바로 프릭 (Frick) 이나 모마 (MoMA), 혹은 멧 (Met)으로 향했다. 그래서 그날 비를 피하기 위해 간 뮤지엄 현관 앞에서 우산을 접는 엄마를 봤을 때 테오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뮤지엄 안으로 들어간 엄마는 포스터를 가리키며 엄청나게 큰 전시회인 것 같으니 자신이 시간을 명심하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 포스터에는 [초상화와 정물화: 황금기의 북유럽 걸작전]이라고 쓰여 있었다. 엄마는 경기하듯 속전속결로 전시회를 관람해야 하는 게 별로 맘에 안들지만, 이 전시회는 규모가 방대해서 두세번은 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날은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진짜로 보고 싶은 것은 베르메르 (Vermeer)의 스승이었던 사람의 작고 희귀한 작품이라고 말하면서 그 사람은 알려지지 않은 가장 위대한 옛 대가라고 했다. 또한 그녀는 프랜스 할스 (Frans Hals)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림들을 보기 위해 윗층으로 올라갔는데, 사실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여기저기 서있는 네덜런드 사람들에 대한 많은 그림들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했고, 별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그는 홀을 잘못 찾아온줄 알았다. 벽에는 어떤 것은 작고, 어떤 것은 몹시 커다란 사이즈의 초상화, 집안 풍경, 정물화 등이 걸려 있었는데, 남편들과 있는 여인들, 애완용 개를 데리고 있는 여인들, 수놓은 가운을 걸친 외로워 보이는 미녀들 그리고 보석과 모피를 입은 화려하고 고독한 상인들의 그림이 있었다. 낡은 연회 테이블에는 껍질을 벗긴 사과와 호두 껍질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으며, 양탄자가 드리워져 있고, 은식기가 있었다. 또한 기어가는 벌레와 줄무늬가 있는 꽃을 그린 트롱프 뢰유 (trompe l'oeils: 실물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그린 그림-마가렛 주)도 있었다. 점점 더 깊숙히 들어갈 수록 그림들은 점점 더 낯설고 더 아름다웠다. 칼 끝에서 껍질이 약간 더 단단해지고, 곰팡이를 표현한 초록빛의 그림자를 가진 껍질 벗긴 레몬이 있었으며, 빛이 반쯤 남은 와인잔의 테두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의 엄마는 테오의 곁으로 다가오면서 네덜런드 화가들이 '원숙'(ripeness)이 '부식'(rot)으로 가는 그 미세한 이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참으로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과일은 완벽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므로 이제 막 썩을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보고있던 그림의 나비를 가리키며 시간의 흐름을 보라고 말했다. 그것의 뒷날개는 아주 가루가 많고 섬세하게 표현이 되어서 만약 그녀가 그것을 만지기라도 한다면 색채가 지워질 것만 같았다.

엄마는 네덜런드에서 현미경을 고안해냈는데, 그 사람들은 보석 세공인들과 렌즈 연마공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가능하면 아주 상세하게 표현해 내고자 했는데, 아주 작은 것이라도 특별한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정물화에서 보여지는 파리나 곤충들을 볼 때면, 쪼그라든 꽃잎, 사과 위의 검은 점 등도 그렇고, 화가는 관객에게 은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그것은 살아있는 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 말하자면 일시적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고 말했다. 삶 속의 죽음. 그것이 바로 그들을 '정물' (still life)이라고 부르는 이유라고 말했다. 아마 처음 볼 땐 그것들의 아름다움이나 만개함 등등으로 인해 부식의 작은 점을 볼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좀 더 가까이 들여다 보면 그것이 거기에 있음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들은 전시회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할스 (Hals)의 작품이 있는 곳으로 갔다. 두 사람은 그의 여러 작품 중 해골을 들고 있는 한 소년의 초상화 앞에서 꽤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또한 연회를 즐기고 있는 장교들을 그린 할스의 두 작품들을 보고 엄마는 그것들이 매우 유명한 작품으로, 렘브란트 (Rembrandt)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반 고호 (Van Gogh)에게도.

테오는 시간의 개념이 멍해진 채 엄마를 쫓아갔다. 그들에게 주어진 30분이라는 시간이 거의 다 된 것 같았지만, 그는 여전히 꾸물거려서 엄마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게 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가버려 학교 미 팅에 참석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유치한 희망을 가지고.

다음으로 그의 엄마는 램브란트의 그림 앞으로 가 이것저것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시안들 여행객 그룹 뒤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 소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도 그를 보았다.

그 여자아이와는 갤러리 안에서 내내 눈이 마주쳤다. 그는 그녀의 무엇이 그의 관심을 끌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보다 훨씬 더 어렸고, 그가 좋아하는 타입의 여자애, 즉 업신여기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마무시하게 덩치가 큰 남자아이와 데이트하는 예쁜 얼굴의 여자애도 아니었다. 그 소녀는 밝은 빨강 머리를 하고, 움직임은 재빨랐으며, 얼굴은 뾰족하고 짖궂고 낯설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은 특이한 황갈색이었다. 너무 마르고, 아주 평범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그의 위장을 촉촉하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녀는 낡아보이는 플룻 케이스를 들고 다녔는데, 그것은 흔들리거나 그녀와 부딪치기도 했다. 도시 소녀인가? 음악 과외를 받으러 가는 길? 아닐 수도 있고, 라고 생각하며 그는 다음 갤러리로 이동하는 그의 엄마를 따라 갔다. 관광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범한 복장의

그 소녀는 그가 아는 대부분의 여자아이들 보다 훨씬 더 자신감있게 움직였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그를 미끄러지듯 슬쩍 바라보는 응큼하고 차분한 시선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는 그의 엄마의 뒤를 따라 가며 그녀가 하는 말의 반밖엔 듣고 있지 않았다. 엄마는 살짝 앞서 가다가 갑자기 어떤 그림 앞에 멈추더니 자신이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은 사람처럼 환했다. 엄마에 따르면, 그것은 그녀가 그림을 좋아하게 된 첫 그림이었다. 그녀가 그것을 처음 본 것은 어렸을 적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서였다고 했다. 침대 옆 마루바닥에 앉아서 몇 시간 동안 그것을, 그 작은 녀석을 들여다 보다가 그것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그 그림 속의 대상을 애완동물처럼 사랑하기 사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아주 작은 그림이었는데, 아마 그 전시회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그림인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간단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없는 창백한 배경에 '골드핀치' (goldfinch) 한 마리를 그린 그림이었는데, 그것의 가느다란 나뭇가지 같은 발목 하나가 횃대에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엄마는 그것을 그린 카렐 파브리티우스 (Carel Fabritius)가 램브란트의 제자였고, 베르미르의 스승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작은 그림은 그 두 사람 사이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잃어버린 고리라고 말했다.

물론 테오에게 그것은 엄마가 느낀 것만큼의 감성적인 것을 느낄만한 것은 없었다. 파브리티우스는 1600년대 네덜런드 역사상 너무나 유명했던 델프트 (Delft) 화약 공장의 폭발 사고로 죽었다. 그 재해로 그의 화실이 파괴되는 바람에 이 작은 새 그림을 제외하고 그의 다른 그림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는 그 시대의, 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기였던 당시의 위대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본래 매우 유명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의 모든 작품 중 대여섯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분실되었다.

그런데, 그 소녀와 노인이 그들 곁에 서서 엄마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테오는 그게 약간 창피했다. 그는 힐끗 쳐다보다가 다시 또 힐끗 돌아보았다. 그들은 아주 가까이 서 있어서 그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소녀는 노인의 팔을 툭툭치다가 잡아 당기더니 그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그녀는 저 새는 저렇게 일생을 살아야 하는 거냐고 묻는 소리가 테오에게 들렸다. 그것은 그에게도 역시 신경이 쓰이는 문제였다. 쇠고랑에 묶인 발, 쇠사슬은 끔찍해 보였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뭐라고 그녀에게 대답을 해주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의 엄마는 바로 가까이에 있는 그들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듯 뒤로 물러서더니 너무나 신비로운 그림이라고, 아주 단순하고, 정말로 부드러워서 사람으로 하여금 가까이 가도록 초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오는 다시 소녀가 있는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러다 테오는 자신이 왜 이렇게 그녀같은 사람에게 사로잡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는 평소에도 낯선 사람들에게 매료되곤 했는데, 그 소녀와 그녀의 할아버지도 오랫동안 그의 뇌리에 남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녀와 노인에 대해서 그렇게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느냐고 물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마지막 전시장에 들어와 있었는데, 불행히도 엄마는 시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밖에 비가 오는지 봐야겠다고 말하며, 아직 시간이 조금 있지만 마틸다의 선물을 보러 아래층 기념품 가게로 내려가야겠다고 말하며 출구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엄마는 떠나기 전 다시 되돌아 달려가 『해부학 강의』(The Anatomy Lesson)를 속결로 둘러보고 와야겠다며 되돌아갔다.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그는 잠깐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래층 기념품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알겠다고 하면서, 카드를 두어장 사달라고, 금방 오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엄마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잠시 후 그가 갤러리를 반쯤 가로질러 가고 있을 때, 어마어마하고 귀를 ��는듯한 폭발이 그곳을 흔들었다. 무표정한 노인이 옆으로 넘어졌고, 그와 거의 동시에 검은 섬광이 있었으며, 그를 휩쓸고 주변을 뱅뱅도는 검은 잔해들과 함께, 으르렁거리는 열풍이 그의 몸을 세게 밀어 반대편으로 내동이쳤다. 그리고 그는 얼마 동안인지는 모르지만 정신을 잃고 누워 있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그의 입에는 모래가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온몸이 아팠다. 갈비뼈는 욱신거렸고, 머리는 쇠파이프로 맞은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이 그의 귀 안에서 들리는 건지 밖에서 들리는 건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주변을 한참 둘러보다가 물병을 발견하고 눈밭을 걷듯이 천천히 그것을 향해 걸어가다가 테오는 심하게 다친 소녀의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흉칙한 모습의 노인이 태오의 손을 잡았다. 테오는 그에게 그 소녀는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노인은 그를 바라보려고 애를 썼다.

테오는 몸을 숙여 그를 돕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물병이 생각났다. 그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노인이 그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지만, 테오는 다시 오겠다며 일어서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여기저기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지그재그로 지나 물병이 있는 곳으로 갔다. 물은 3/4정도 남아 있었고 만지기에 뜨거웠다. 하지만 첫 모금을 마시자 목구멍이 더 이상을 원했고 그는 거의 반 정도를 마셨다. 그런 다음 정신을 차리고 물 뚜껑을 닫고 다시 노인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그것을 가방에 넣었다.

테오는 노인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가 거의 죽은듯이 쓰러지려 하자 테오는 노인을 일으켜 물을 마시게 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뒤로 쓰러졌다. 그를 통해 소녀의 이름이 피파 (Pippa)라는 걸 알게 된 테오는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 잠시 후 테오는 아무도 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잠이 들었는데, 노인이 그를 깨웠다. 그는 태오에게 끼고 있던 반지를 빼주었는데, 태오가 필요없다고 하자 가지라고 했다. 노인은 또 '호바트와 블랙웰' (Hobart and Blackwell)이라고 하며, 그린벨을 울리라고 말했다. 그는 일관성없는 문장들을 나열했으며, 이곳저곳의 도시들의 이름을 말했고, 테오가 생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언급했다. 그는 그런 노인의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그냥 헛소리로 넘겼다.

그런데, 노인이 뭔가를 가리키며 테오에게 그것을 그곳에 두지 말라며 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테오가 그가 가리키는 데를 보니 벽에 사각의 액자가 튀어 나와 있었고, 테오가 그걸 원하냐고 묻자 노인은 제발이라고 말했다. 테오가 팔을 뻗어 그것의 가장자리를 잡고 떼어내려 하자 그것은 크기에 비해 놀라우리만치 무거웠다. 테오는 그것을 내려 소매로 표면을 닦았다. 그것은 흰 먼지가 내려앉은 바로 작은 골드핀치 그림이었다. 그것을 보니 불현듯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것을 들고 엄마에게 보여주려고 뒤를 돌았다가 엄마가 그곳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림을 노인에게 전해 주고 그가 엄마를 찾기 위해 일어서려는데 노인이 테오를 붙잡았다. 그리고 그 그림을 그에게 주었다. 테오가 거절하며 다시 엄마를 찾으러 가려고 하는데 한쪽 귀가 없어진 머리에서 피를 많이 흘리고 있던 노인이 테오에게 그것을 갖고 가라고 말했다. 그의 눈빛은 밝고 거칠었다. 그의 강력한 어투가 두려울 정도였다. 테오는 노인에게 제발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계속 뭔가를 말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축축하고 비참한 소리로만 들려올 뿐이었다. 테오는 노인의 눈에 안띄도록 그 그림을 백에 넣었다. 잠시 후 노인이 조용해졌다. 테오는 자신이 해야할 것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건 곧 좋아질테지.

그후, 테오는 천신만고 끝에 그곳에서 탈출을 하게 되고, 그를 찾아온 소셜 워커들을 통해 엄마는 그곳에서 날아오는 파편에 맞아 즉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테오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테오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친했다가 중학교 가면서부터 연락이 끊긴 앤디 바버 (Andy Barbour)의 이름을 대었고, 그들의 주선으로 차크 애비뉴 (Park Avenue)에 있는 앤디의 집에서 얼마 동안 지내게 된다.

그곳에서 지낸 날들 동안 그는 항상 악몽을 꾸었다. 그날의 일들이 그를 그렇게 괴롭혔다. 그런데 어느 날 눈을 떳는데, 노인이 말했던 '호바트와 블랙웰'이라는 이름이 갑자기 떠오르고, 그는 화이트 페이지에서 그곳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진짜 그 이름이 있었다. 망설이다가 테오는 앤디에게만 그곳에 대해, 노인에 대해서 고백하게 되고, 앤디는 테오에게 그곳을 찾아가 보라고 권했다. 그는 그곳에서 호바트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호바트는 블랙웰이라는 노인의 동업자였고, 옛 가구들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며, 피파는 블랙웰의 손녀였다.

또한, 테오는 놀랍게도 뮤지엄 사고에서 살아돌아 온 피파를 그곳에서 보게 되지만, 피파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를 따라 텍사스로 떠나게 된다. 그녀는 가고싶지 않다고, 호바트와 함께 지내고 싶다고 했지만, 호바트는 혈육이 아니었고, 고모는 그녀의 유일한 혈육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앤디의 아버지가 보던 신문이 거실에 펼쳐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뮤지엄 사고로 잃어보리거나 파손된 그림들의 목록이 적혀 있었고, 테오가 갖고 나온 파브리티우스의 『골든핀치』도 있었다. 그는 순간 그것을 뮤지엄에 되돌려 주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를 찾아온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문객이 있었다. 그는 바로 테오의 아버지였고, 그의 곁에는 산드라 (Xandra)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아버지는 테오를 데려가려고 왔다고 했는데, 그는 예전의 테오가 알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테오는 뉴욕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온 이상 함께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테오에게 현재 라스베가스 (Las Vegas)에 살고 있다며,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함께 엄마랑 살던 아파트로 가 짐을 싸면서 숨겨놓았던 그림을 어떻게 가지고 가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뒤에서 불러 테오는 그것을 얼른 수건으로 덮었다. 그리고 테이프로 잘 포장한 그림을 아버지 몰래 짐가방에 넣어 가져 가기로 했다. 그는 혹시 그것이 공항검색대에서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별탈 없이 통과되었다. 라스 베가스에 도착한 그는 혹시 아버지나 산드라가 발견할까봐 그림을 그의 침대 헤드보드 뒷쪽에 테입으로 붙여 놓는다.

라스베가스에서의 삶은 뉴욕에서의 그것과는 180도 달랐다. 우선, 그의 아버지와 산드라는 그를 거의 방치했다. 아버지는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거나 운동경기에 베팅을 하는 등 도박 인생을 살고 있었고, 산드라는 호텔에서 일했는데, 둘은 이것저것 약을 팔기도 하고 자신들이 직접 흡입하기도 했다. 그들의 집은 인적이 거의 없는 동네로, 주위의 다른 집들은 거의 다 포클로져 사인이 붙어 있었다. 테오는 학교에서 러시아 출신의 보리스 (Boris)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는 테오의 집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둘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보리스를 따라 그가 도둑질하는 걸 돕기도 했고, 약과 술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둥 온갖 비행을 다 저질렀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들을 저지하는 어른은 없었다. 광부였던 보리스의 아버지는 수시로 그를 폭행했고, 또 집을 자주 비워 보리스는 아예 테오의 집에서 함께 지냈다. 둘은 약에 취해 지내기도 했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셔 다음 날 학교도 못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기분이 몹시 좋아 모두 저녁 외식을 하러 나갔는데, 아버지는 동그랗게 말아진 돈을 보여주면서 얼마간의 돈을 테오의 이름으로 어카운트를 열어 그곳에 넣어두겠다고 했고, 테오는 알았다고 했다. 그날 아버지는 보리스와 테오에게 동그렇게 말린 500불의 지폐를 각각 주었다. 산드라는 아버지에게 바카라 테이블에서 조심하라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믿지 못하느냐며 웃었다. 하지만 얼마 후 아버지는 며칠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보보 (Bobo)라는 남자가 덩치가 크고 팔에 문신을 한 남자를 대동하고 집으로 아버지를 찾으러 왔다. 그는 테오에게 아버지에게 게임은 여행객에게나 하는 것이지 같은 지역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전하라고 말했다.

보리스는 테오에게 그의 아버지가 도박판에서 베팅을 잘못해 많은 돈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알려주었다. 테오는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아버지에게 물었지만, 아버지는 다 괜찮다고만 했다. 하지만,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가만히 못있고 안절부절 하면서 테오에게 엄마의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서 엄마가 테오에게 남긴 유산을 아버지가 적어준 은행 어카운트로 옮겨달라는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돈은 테오가 상급학교를 진학할 때에만 꺼낼 수가 있으니 사립 보딩스쿨을 가기 위한 학비라고, $65,000이라는 거금을 빨리 옮기라고 하라고 재촉했다. 엄마가 자신에게 남긴 돈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테오가 어리둥절해하며 머뭇거리자 아버지는 급기야 테오의 뺨을 때리며 지금 당장 시키는 대로 하라고 다그쳤다.

테오가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 아버지가 시킨 대로 말을 했지만, 이미 이전에도 누군가 그 돈을 인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과, 테오가 갑자기 보딩 스쿨 운운하는 것이 필시 테오의 아버지의 입김이 있었다는 걸 눈치챈 변호사는 그 돈은 지금 당장 옮길 수도 없으며, 테오의 엄마가 간곡히 바랬던 것은 테오의 아버지가 절대로 그 돈에 손을 못대게 하라고 했다고 말했고, 아버지도 그 얘길 다 들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테오는 이층 자기방으로 올라갔는데, 층계참에서 아버지의 짐승같은 울부짖음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는 보보를 피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은행에 있는 돈을 모두 정리해 혼자 도망을 치다가 교통사로로 사망하게 되고, 장례식을 치룬 날, 테오는 보리스에게 라스베가스를 지금 당장 떠나야겠다고 말하며, 같이 가자고 했지만, 보리스는 망설였다. 보리스 역시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게 되어 곧 미국을 떠나야 할 형편이었지만, 그는 아버지를 따라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보리스는 테오가 지금 당장 그곳을 꼭 떠나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한동안 위탁가정을 전전해야 한다고 말하자, 자신은 그곳을 떠나지 않겠으며, 테오에게 한 가지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다고, 지금 꼭 말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오직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찬 테오에게 보리스의 그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별 의미없는 말로 생각되어 무시하고 말았다. 그것이 어떤 비밀인지도 모른채. 나중에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테오 앞에 나타난 보리스에게서 들은 그 비밀이 그의 삶을 송두리채 바꿔버릴 것이라는 것을 그때 테오는 알지 못했다.

결국, 둘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다 낯선 곳에서 사고를 당한 아버지의 배신과 죽음에 힘들어 하며 약에 취해있는 산드라의 가방을 털어 지갑에서 돈과 팔다 남은 약을 훔쳐 둘이 반씩 나누었으며, 다른 소지품에서 엄마가 잃어버린 보석 귀걸이가 그곳에 있는 걸 발견하고 그것들을 챙겼다. 그리고 테오는 숨겨두었던 그림을 자신의 백팩에 넣고 다시 뉴욕으로 향하고, 보리스는 라스베가스에 남기로 했다. 테오는 숨겨서 데려온 산드라의 강아지와 함께 뉴욕에 도착해 노숙자같은 몰골로 공원 벤치를 전전하다 우연히 길에서 앤디의 아버지를 마주치는데, 놀랍게도 그는 테오를 혐오스럽게 쳐다보며 그의 팔을 잡는 테오를 내치고 만다. 테오는 며칠을 그렇게 길에서 서성이다가 호바트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지내게 된다.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테오는 호바트가 복구한 가구나 골동품들을 파는 딜러가 되는데, 그는 돈많은 부인들에게 그것들을 비싼 것인양 파는 일에 제법 실력을 발휘한다. 또한 그는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산 다음 그것을 비싼 값에 되파는 일을 했는데, 그때 그는 그것들이 아주 오래 전에 팔린 것이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가짜 영수증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그것들이 그만큼의 값어치 있는 것들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는 사람들이 있으면 돈을 다시 되돌려 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곤 했다.

하지만, 루시어스 리브 (Lucius Reeve)라는 사람에게는 그 방법이 안 통했다. 그는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않은 채 테오에게 압박을 가했다. 얼마 후 테오는 앤디의 형 플랫 (Platt)이 그의 엄마가 모아놓았던 골동품들을 처분하겠다고 하자 루시어스 리브와 연결시켜 주려고 계획을 세운다.

이제 테오는 라스베가스에서부터 시작된 약에 중독이 되었고, 자신의 수입의 수천 달러를 그것을 사는 데 소비했다. 자신에게 약을 파는 딜러 조차도 경고를 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호바트의 집에서도 역시 파브리티우스의 그림을 베게 커버에 싸서 침대 아래 붙여 놓았지만, 혹시 호바트가 발견하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호바트의 가구들이나 골동품들을 보관소에 운반하는 작업을 하는데 도와주러 갔다가 그런 그림이나 물품들을 보관해주는 곳이 있다는 것을 보고 연락해 한 보관소에 그 그림을 보관하게 되지만, 그것은 언제나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러다 어느 날, 테오는 우연히 신문에서, 뮤지엄 폭발이 있었던 날, 그림을 훔쳤던 범인이 잡혔는데, 범인은 앰블런스 긴급의료원으로서 2차 폭발 위험 때문에 잠깐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라고 할 때 나가지 않고 그림들을 훔쳤으며, 그것들을 그의 남자 형제에게 말했고, 장모의 집에 숨겨 놨다가 팔려고 시도하던 중 붙잡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그는 밤낮으로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약에 취해 여러 날을 침대에서 보내고 난 뒤, 호바트는 테오에게 여러 통의 전화가 왔다며 전해주는데, 그중에는 루시어스 리브도 있었다. 테오는 플랫과의 거래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루시어스 리브를 만났다. 그런데, 루시어스 리브는 갑자기 뮤지엄 폭발 사고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은 왜 제임스 호바트가 테오가 블랙웰이 준 반지를 가지고 그의 집으로 찾아 왔었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사람들에게 말했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만약 그가 그냥 입 닫고 있었다면 아무도 관련시킬 수 없었을 텐데. 테오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자, 루시어스는 자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거라고 말했다. 다시 테오가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루시어스는 사고가 있던 날, 갤러리 32에 블랙웰과 테오, 그리고 블랙웰의 손녀가 함께 있었고, 거기서 유일하게 살아 걸어나온 사람은 테오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한 그날 갤러리 32에서 걸어나온 게 무엇인지 자신들은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