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ngel’s Game

By

 

Carlos Ruiz Zafon

English Translation from the Spanish by Lucia Graves

 

주인공 데이비드 마틴(David Martin)은 작가이다. 그는 어렸을 적The Voice of Industry라는 신문사 편집실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곳은 한때는 몹시 유명하고 번창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겨우 명목을 유지하고 있는 그런 곳이다.

마틴이 그곳에서 일하게 된 건 전쟁 베테랑인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필리핀 전쟁 참여 후 마약 중독에 거의 폐인이 된 채 바르셀로나 (Barcelona)로 돌아왔지만,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웠고, 아내도 마틴을 남겨둔 채 떠나버린다. 전쟁에서 배운 건 오로지 상대방이 그를 죽이기 전 자신이 먼저 죽여야 한다는 것밖엔 없었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랐다. 그는 여기 저기 공장을 전전하며 겨우 며칠씩 일을 하다가 운좋게 이 신문사의 야간 경비 일을 맡아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새로 짓고 있는 공연장 빌딩 위에 달려있는 작은 다락방에 살았다. 그곳에서 마틴은  항상 죽음을 목전에 둘 정도로 병에 시달렸지만, 다른 아이들 보다 훨씬 빨리 읽고 쓰는 걸 습득했다. 다른 아이들이 페이지 위에 잉크로 쓰여있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 그는 거기에서 빛과 거리, 사람들을 보았고, 단어들과 거기에 숨겨진 과학이 그를 매혹시켰다. 그것들 안에 경계없는 세상을 풀어나갈 수 있을 열쇠가 있음을 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집에 책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마틴이 그것들을 읽는 걸 몹시 싫어했다. 아버지는 그가 열살이 되면 바로 일터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고, 마틴이 책 읽은 걸 알면 전기를 낭비한다고 불같이 화를 내고 때렸다. 마틴의 재주를 알아본 선생님이 마틴을 좀 더 나은 학교로 진학시키자고  제안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애한테 괜한 바람만 넣는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책을 좋아하는 마틴이 이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칼 산타 아나(Calle Santa Ana)에 있는 The Sempere & Sons 라는 서점이었다. 오래된 종이와 먼지 냄새가 나는 그곳이 그의 보호구역이었고, 피난처였다. 서점주인 셈페레는 그에게 의자를 마련해주고, 읽고 싶은 책은 뭐든 읽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책을 쥐어주면서도 돈을 받지 않았지만, 마틴은 나오면서 꼭 동전 몇개라도 카운터에 놓고 나왔다. 물론 액수는 담배마는 종이 한장 살 정도밖엔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느 크리스마스 때, 셈페레는 마틴에게 책을 한권 선물하는데, 그것은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가 쓴『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이었고, 셈페레는 디킨스가 그의 오랜 친구라고 말했다. 그것을 집으로 가져온 마틴은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도록 침대 밑에 숨겨놓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에만 읽지만, 결국 아버지에게 들켜 거의 죽을 지경이 되도록 맞게되고, 아버지가 그 책을 태워버릴까봐,  오직 그것을 구해야한다는 일념으로 성치않은 몸을 이끌고,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음 날 이른 아침 그 서점으로 간다.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모습을 본 셈페레는 이웃에 사는 의사를 불러 치료를 받게 해주고, 의사가 떠나자 마틴에게 다음엔 책을 구하고 싶으면 네 목숨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 아닌 적절한 방법으로 구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 번엔 말만하면 책이 절대로 소멸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책을 파괴하지 못하는 비밀스런 곳으로 데려다 주겠노라고 말한다. 마틴이 그곳이 어딘가 묻자, 셈페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모든 건 때가 있는 법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느 날, 마틴이 아버지를 따라 그가 일하는 빌딩에 간 날, 아버지가 빌딩에 침입한 세명의 총든 괴한에 의해 살해되고, 마틴은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다. 아버지는 죽기 며칠 전, 엄마에 대해서 묻는 마틴을 데리고 어느 직물 가게로 가서, 먼 발치에서 옷감을 파는 여인을 가리키며 바로 마틴의 엄마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몹시 슬퍼하는 마틴의 이야기가 편집장의 친구이며, 이 신문사의 스타 작가인 페드로 비달(Pedro Vidal) 이라는 사람에게 전해졌고, 그의 부탁으로 마틴에게 그 신문사 에서의 심부름 일이 주어졌으며, 그는 지하에 있는 관리인의 좀 더 괜찮은 방에서 지낼 수 있게 된다.

당시에는 피비린내나는 폭력적인 일이 매일 바르셀로나를 뒤덮고 있었고, 라발 (Raval) 지구의 거리에는 시체들과 연기가 넘쳐났다. 검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밤에 거리로 나와 사람을 죽였고, 죽음과 기만의 악취를 풍기는 성인들과 장군들의 퍼레이드가 계속되었다. 수년간 계속된 분노와 증오로 인해, 사람들은 이미 독으로 물든 공기 속에서 풍겨져 나오는 거대한 슬로건과 색색의 천조가리들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였다. 이런 암흑의 바르셀로나에서 가족이 없던 마틴에게 신문사는 은신처였고 우주였다.

그의 나이 열네살 때 드디어 그는 칼 프린세사(Calle Princesa) 근처의 좁은 거리에 있는 한 펜션에서 살 수 있을 정도로 급여를 받게 되자 독립한다. 그곳에서 지낸 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누군가가 그에게 소포를 하나 배달해주는데, 거기에는 아버지가 남긴 권총과 총알이 들어 있었다. 처음에 마틴은 그것을 버리려고 했지만, 아버지에 관한 것은 오직 그것밖에 없다는 생각에 갖고 있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 마틴은 전에 돌려 주었던 『위대한 유산』을 사기 위해 셈페레 서점으로 가지만, 셈페레는 그것이 그날 아침에 팔렸다고 말한다. 

한편, 아버지가 죽은 후 홀로 남겨진 마틴이 신문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페드로 비달은 이 신문에 일주일에 한번씩 범죄와 충격적인 사건들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신문 전체 내용 중에서 유일하게 읽을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상류 사회 여자들과 침실에서 꾸민 음모를 실행에 옮기는 라발 지구의 갱단들에 대한 스릴러를 써서 그럭저럭 성공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머리는 항상 단정하게 빗어넘기고, 가느다랗게 손질된 콧수염, 그리고 누구나 편안하게 느낄 수 있고, 또 세상을 참 편하게 사는 듯한 관대한 미소를 가진, 여자들에게 인기있는 배우같은 외모와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설탕 사업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부를 쌓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그곳의 전기시설망을 독점하게 된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이 신문사의 최대 주주인 그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사람이었고, 페드로는 일할 필요가 없는 자신의 매일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놀이터 삼아 신문사에 나오고 있었다. 

마틴이 더 어렸을 적, 회의실에 커피와 담배 심부름을 할 때, 다듬어지지 않은 자신의 원고를 처음으로 읽어준 사람이 바로 비달이었다. 그는 마틴을 위해서 항상 시간을 내주었고, 그의 글을 읽고 좋은 충고를 많이 해주었다. 점차 그는 마틴을 자신의 보조원으로 승진시켜 자신의 원고를 타자로 치게 했다. 마틴에게 문학이라는 도박에 목숨을 걸어보고 싶다면, 자신이 기꺼이 그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런데, 어느 날 마틴에게 기적같은 일이 생긴다. 1917년, 그의 나이 17살 때, 자신이 쓴 소설을 신문에 출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해 겨울, 어느 날,  부편집장인 바실리오 모라가스(Basilio Moragas)가 퇴근하기 바로 직전 그를 호출한다. 바실리오는 보통 단편 소설이나 여행기를 싣는 일요일판 신문 뒷쪽 페이지에 들어갈 글이 마지막 순간에 엎어졌으니, 마틴에게 그곳에 채울 글을 써오라고 한다. 비달의 추천이라며. 마감시간까지는 여섯 시간밖에 남지 않았지만, 마틴은 자신이 하겠다고 말한다. 분량은 한줄씩 여백을 두고 다섯장이었다. 바실리오는 연설이 아닌 ‘이야기’를, 자신이 전에 읽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써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약 잘 써오면 10 페세타를 줄 것이며, 독자들이 좋아하면, 앞으로도 더 많이 그의 이야기를 출판하겠다고 말한다.           

마틴은 간간히 들르는 비달을 위해 마련해놓은, 편집실 중앙에 놓여있는 책상에 앉아, 무아지경 속에서, 여섯 시간 동안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쥐어 짜내며 마침내  두손에 핏자국이 흥건하고, 눈에는 비밀을 간직한 남자 주인공 발타사 (Baltasar) 와 클로이(Chloe)라는 여 주인공이 등장하는 The Mysteries of Barcelona  를 창조해 낸다. 그는 모든 단어, 문구와 표현, 그리고 모든 이미지와 글자들이 마지막인 것처럼, 문장 하나 하나를 자신의 삶이 그것에 달려있는 양 쓰고 고치고, 또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다음 날 아침, 바실리오에게서 오케이 사인을 받고 그의 원고를 식자실로 넘기라는 말을 들은 마틴은 ‘설마 이게 농담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고, 바실리오는 상황을 믿지 못하는 마틴에게 약속대로 10 페세타를 주면서, 4년 동안 입었던 그 옷을 벗고, 새 옷을 한벌 사 입으라고 말한다. 또한 다음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하라며, 1주일의 시간을 주겠다고 말한다.

이후, 바실리오는 비슷한 스타일의 몇 편의 이야기를 출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곧 운영진은 마틴이 일약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같은 급여로 편집실에서의 일을 계속하는 한, 일주일에 한번씩 그의 글을 출판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낮에는 신문사 일을 하면서 밤에는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자신의 소설에 몰두한다.

사실 The Mysteries  는 복잡한 멜로드라마로, 뒤마(Dumas)와 스토커(Stoker)의 영향을 받고, 수(Sue)와 페발(Feval)의 글을 차용해 이리저리 뒤섞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의 글을 읽은 바실리오는 점차 마틴의 성실성에 전혀 감동을 받지도 않으며, 출판하기를 주저하고, 이상한 취향의 플롯과 이야기들을 제공하는 데 그의 재주를 소비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황금기의 스페인의 운문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적 취향을 가진 바실리오에게 마틴의 소설은 도저히 말도 안되는 미친 짓처럼 보였겠지만, 그의 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의 애정어린 평 때문에 그는 마틴의 과도함을 참아주고 그것들을 젊은이의 열정으로 여겨 주었다.

그는 마틴에게,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그랑 기뇰 (Grand Guignol: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전율적인 연극으로, 조명이나 무대 장치를 이용해 망령이나 기괴하고 끔찍한 등장인물이나, 폭력, 잔인한 강간이나 살인, 폭동, 자실 등을 다룬 연극. 당시 잘 알려진 주인공 꼭두각시 기뇰을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부르게 됐다는 설도 있고, 어른을 위한 구경거리라는 뜻이라는 설도 있다) 이라는 병이라고 충고하며, 그것에 맛들이면 처음엔 재미있지만, 다음부터는 내리막길로 치닫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문학적 영감을 위해서 고전 작품들을 더 많이 읽으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마틴은 독자들은 자신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반박하며, 그랑기뇰이라는 금지된 단어를 마음 속에 새긴다.  그리고 모든 원인은 경망스러운 것이라고 해도, 그것의 명예를 지킬만한 방어책이 필요하다고  혼잣말을 한다.

마틴의 성공으로 점차 편집실의 다른 동료들은 그를 견제하며, 적대적으로 변한다. 그들은 그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으며,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리고 그가 쓴 글들에 대해 빈정대면서 악의를 들어내고, 그의 뒤에서 욕을 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비달은 마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려고 애를 썼지만, 마틴은 신문사를 그만둬야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걸 느낀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비달이 마틴이 사는 곳으로 그를 찾아와, 자신이 신문사에서 오는 길인데, 마틴에게 편지가 왔다며 양피지 봉투 하나를 가슴에서 꺼낸다. 봉투는 밀랍 봉인이 되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희미하게 날개달린 천사가 새겨져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고, 붉은 잉크로 정갈하게 그의 이름만이 쓰여 있을 뿐이었다. 그 편지에는 마틴의 성공을 축하하고, 마틴의 글이 자신을 즐겁게 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마틴을 즐겁게 해주려고 한다며, 밤 12시 엘 엔시노 (El Ensueno del Raval) 에서 만나자고 쓰여있었다.  A.C.라는 사인과 함께.

엘 엔시노가 어디인지 묻는 마틴에게 비달은 그곳이 특별한 사람들만이 드나들던 매춘 장소였으며, 오래 전에 없어진 걸로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라고 대답한다. 그런 곳으로 오라는 편지를 받은 것이 기분이 나쁜 마틴은 혹시 그것이 비달의 아이디어냐고 묻지만, 비달은 아니라고 말한다.

얘기 도중 비달이 창밖을 바라보자 마틴 역시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데, 비달의 자동차와 그것을 열심히 닦고 있는 기사 마뉴엘 (Manuel)이 보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마뉴엘은 무슨 일로 오랫동안 옥살이를 했고, 그것 때문에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부두 노동자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심하게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목숨을 걸고 전차에 치일 뻔한 비달을 구했고,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비달이 그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고 했다. 그래서 마뉴엘은  아내와 딸과 함께 비달의 집 별채에서 살게 되었고, 그의 아내는 비달의 집에서 재봉사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뉴엘의 가족은 비달에게 목숨을 바쳐서 충성을 한다고.

마틴은 이 소문이 사실인지, 아니면 비달이 지어낸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 본 듯이 비달은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마뉴엘에게 인사나 하라고 말하고, 마틴이 창밖을 바라보자 마뉴엘이 손을 흔드는데, 차 안에는 전에도 한번 본 적이 있는 마뉴엘의 딸 크리스티나 (Christina)가 앉아 있었다. 편지에 적힌 곳으로 갈지말지 결정을 못한 마틴에게 비달은 약속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으니 준비를 하라고 얘기한다. 그가 차를 타려고 할 때, 크리스티나가  눈을 들고 마틴의 창문을 바라보자, 마틴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짓지만, 곧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그녀가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다.

엘 엔쉬노는 라발 지구의 좁은 골목에 늘어선 창녀촌의 한 건물 꼭대기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자 나이가 든 온통 흰머리의 여인이 문을 열고 마틴에게 세뇨르 (senor)라고 부르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한다. 안으로 그를 데려간 그 여인은 클로이 (Chloe)가 곧 들어올 거라고 말하는데, 잠시 후 나타난 클로이라는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눈을 바라볼 수는 없었지만, 한쪽 손이  인간의 것이 아닌 마네킹의 그것이었다. 그녀는 마틴을 데리고 더 깊숙한 방으로 열쇠를 열고 들어간 다음 그를 두고 사라져 버리는데, 밖에서 나는 딸깍 소리를 들은 마틴은 자신이 감금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일분 정도를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가 어둠에 익숙해지자 주위를 둘러보던 마틴은 그 방이 자신의 소설 The Mysteries  에 묘사했던 것과 완전히 똑같은 방이라는 걸 발견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또한 그가 책에 묘사한대로 격자 벽 구멍을 통해 자신을 보고 있는 반짝거리는 두개의 눈과 손톱을 검게 칠한 손을 가진 누군가가 더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 인물은 바로 그가 소설 속에서 창조한 클로이였다.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 그를 침대로 이끈다. 

그곳에서 잠이 들었다 깬 마틴은 클로이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앞서 자신을 그곳으로 초대한 것과 같은 봉투의 흰색 양피지로 된 명함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에는 안드레아스 코렐리 (Andreas Corelli) 라는 프랑스인 편집인이 인생은 예기치 못한 유산으로 가득차 있다며, 마틴에게 그의 유산을 이루고 싶은 준비가 되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쓰여있었다.

그곳을 다녀온 후, 클로이의 부드러운 피부 감촉을 잊지 못하고 있던 마틴은 며칠 후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인출해 다시 엘 엔시노로 가는데, 그곳에 도착해서 문 두드리는 고리쇠를 잡는 순간 문이 열려있음을 알게 된다. 안으로 들어간 마틴은, 하지만, 그곳엔 전에 와서 봤던 집안의 가구들이 하나도 없고, 먼지가 가득 쌓인 걸 보게된다. 그가 클로이와 섹스를 나눴던 방 역시 벽은 불에 그을리고, 천장은 무너져 있었다. 여기저기 살펴보고 있는데, 그때 그의 등뒤에서 마루 바닥이 삐걱하고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는 그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가 그에게 다가가려 하자, 그 사람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그를 쫓아 거실로 나갔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맞은 편 거리에서 잠깐 비친 불빛을 통해 벽에 기대어 쌓여져 있는 돌무더기를 발견한 마틴은 그곳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남아있는 잔해를 살펴보다 삐죽이 나와 있는 손가락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덮고 있는 재를 털자 사람의 손 모양이 보였다. 그것을 잡아 당기자 손목에서부터 잘린 것같은 손이 딸려 나왔다. 그는 그것이 그 소녀의 손이라는 걸 즉각 알아보았고, 그것이 나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도자기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마틴은 그곳을 나와 맞은 편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서 맥주를 시키고 바텐더에게 엘 엔시노가  언제 문을 닫았는지 묻는다. 바텐더는 그곳이 15년 전에 불이 나 문을 닫았으며, 그 이후에는 한번도 문을 열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다음 날 신문사 자료실에 가서 그 일을 찾아보던 마틴은 바텐더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한다.

마틴이 신문에 그의 글을 연재한지 일년 후, 그는 바실리오에게서 신문사에서 더 이상 그의 글을 출판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을 듣는다. 그 소식을 들은 마틴은 비달을 만나러 그의 집으로 가는데, 비달은  이제 막 문을 연 출판사 몇 개와 마틴의 The Mysteries 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는데, 그들은 마틴이 그 자신의 이전 소설을 능가하는, 가장 바로크적이며, 유혈이 낭자하고,  혼미한 그랑 기뇰의 전통을 지닌 시리즈를 계속 쓰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후 마틴은 본명이 아닌 이그네이셔스 샘손(Ignatius B. Samson)이라는 이름으로 삼류 통속소설, City of  The Damned시리즈를 쓰게된다. 매달 화려하게 채색된 하드 커버 책으로 출판하는 조건으로, 그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게 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허영은 미뤄둬야 했다.

그를 고용한 출판업자들은 바리도(Barrido)와 에스코비야스 (Escobillas)라는 사람들이었는데,  바리도는 소시지 가공업자 출신으로 일생에 책을 세권도 읽지 않은 사람 같았고, 에스코비야스는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충실히하는 사람으로, 사악한 행동대원이며, 모든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과 함께 완벽한 트리오를 이루는 사람이 그들의 비서인 허미니아(Herminia)라는 여자로, 충실한 개처럼 그들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 다녔다. 사람들은 그녀를 ‘Lady Venom’이라고 불렀는데, 생긴 건 버터도 그녀 입 안에선 안녹게 생겼지만, 흥분 상태의 방울뱀처럼 정확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마틴은 그들과 계약한 돈으로 사람살 곳이 못되는 지금의 펜션에서 나와 좀 더 나은 집을 찾아보기로 하는데, 그 동안 매일 오고가며 봐 둔, 수년간 사람이 살지 않고 거의 버려지다시피한 한 탑처럼 생긴 저택을 보기로 한다. 그곳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었지만, 꼭대기에서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바르셀로나의 전경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왔다. 그곳에 있으면, 밤마다 거리들이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고,  그들의 비밀을 그의 귀에 속삭일 것 같았다. 그러면 그는 그것들을 종이 위에 적고,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달이 언덕과 나무 그리고 동화 속에서나 나옴직한 하늘로 덮혀있는, 가장 우아하고 가장 높은 페드라브즈에 있는, 생동감 넘치고 위풍당당한 그의 아이보리 타워에 앉아 글을 쓰듯이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를 사로잡은 건 서재 가운데 놓여있는 육중한 책상이었다. 처음 집을 살펴본 그날 오후 그는 바로 렌트 계약을 한다.

그곳에서 1903년에 있었던 엘 엔시노의 화재 사건을 상상으로 재구성한 City 를 쓰면서 마틴은 자신이 산소 보다 더 많이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걸 느낀다. 거의 잠도 자지 않고 꼬박 밤을 새우고, 새벽에 지쳐 떨어지는데, 그럴 때면 이상한 꿈, 즉 타자기에 걸쳐져 있는 종이 위의 글자들이 잉크로 만들어진 거미처럼 그의 손과 얼굴 위로 기어나와 피부를 따라 계속 번져 심장이 검은 색으로 덮히고 눈동자가 어둠으로 가득차 가려질 때까지 혈관에 머물러 있는 꿈에 사로잡혔다.

그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고, 그저 오래된 저택 안을 어슬렁 거렸고, 며칠인지, 무슨 달인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두통이 찾아왔다. 그것은 마치 날카로운 금속으로 그의 뇌에 구멍을 뚫는 듯한 고통과 함께 눈이 환한 빛으로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귀에서 바람소리 같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데 익숙해졌고, 때론 식은 땀이 얼굴을 뒤덮었으며,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그럴 때면 내일은 꼭 의사에게 가봐야지 맘 먹지만, 다음 날이 되면 또 다른 장면, 또 다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그네이셔스 삼손으로 살아온 지 일년이 되는 날,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일을 하루 쉬면서, 산책을 하러 나가기로 작심하고 집밖으로 막 나갔는데, 우편함 맨 밑바닥에 커다란 봉투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안에는 천사 무늬로 봉해진 양피지 한장과 책이 들어있었는데, 거기엔 익숙한 글씨체로, 자신이 마틴의 새 경력을 축하하는 첫번째 사람이 되고 싶으며, 자신이 City 의 첫번째 시리즈를 아주 즐겁게 읽었노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주는 이 선물을 기쁘게 받아줬으면 좋겠고, 언젠가 그들 두 사람은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안드레아스 코렐리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가 준 선물은 바로, 어린시절 셈페레가 마틴에게 선물로 주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셈페레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했었고, 그 후 몇년이 지나 값이 얼마든 자신이 다시 사고싶었지만, 사러간 그날 몇시간 전에 다른 사람에게 팔려버렸던, 표지에 아직 피뭍은 그의 손자국이 남아 있는 디킨스의 바로 그 『위대한 유산』이었다.

마틴은 그것을 셈페레에게 갖고 가고, 셈페레는 정밀한 조사 끝에 그것이 자신이 판 그 책이 맞다고 확인한다. 샘페레는 그것을 어디서 다시 구했는지 묻지만 마틴은 대답할 수 없다고 말하고, 대신 셈페레에게 파리에 있는 안드레아스  코렐리의 출판사와 그에 대해서 묻지만, 셈페레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중고서적을 취급하는 다른 동료에게 물어보려고 하는 찰나, 셈페레의 아들이 누군가 주문한 책을 찾으러 왔다고 말한다. 뒷방에 혼자 남겨진 마틴은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듣던 중 페드로 비달이라는 이름이 나와 밖으로 나와 보니 뜻밖에도 거기엔 크리스티나가 서 있었다. 셈페레는 크리스티나가 비달이 주문한 책을 가지러 왔다고 말한다. 크리스티나를 돕기 위해 무거운 책을 차까지 옮긴 마틴을 보고 셈페레는 농담을 건네고, 자신이 『위대한 유산』을 며칠 보관하겠다고 말한다.   

그후 몇달 후 마틴은 한 식당에서, 비달과 함께 있는 크리스티나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처럼 그와 크리스티나의 만남은 항상 우연히 이루어졌다. 가끔 그녀가 비달이 주문한 책을 가질러 셈페레의 서점으로 올 때 가끔 부딪치기도 하고, 그럴 때면 셈페레가 일부러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크리스티나가 그것을 눈치챈 후 다른 심부름하는 아이를 보냈다. 그것을 본 셈페레는 이제 그만 그녀를 잊으라고 말한다.

그후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흘렀다. 그는 여전히 밤부터 새벽까지 일하고 낮엔 하루종일 자는 생활을 계속했다. 바리도와 에스코비야스는 City 의 성공에 고무되어, 쓰러지기 직전의 그를 보며 두권만 더 성공하면, 마틴의 본명이 박혀있는 그만의 책을 출판해주겠다고 꼬셨다. 언제나 ‘두권만 더’ 였다. 찌르는듯한 고통을 동반하는 두통과 어지럼증이 좀 더 자주 그리고 강하게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좀 더 강한 카페인과 담배, 그리고 거리에서 파는 화약 냄새가 나는 성분모를 약으로 다스렸다. 이주에 한번 목요일마다 함께 점심을 먹는 그의 옛 보스 바실리오는 그런 그에게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바실리오와 셈페레 외에, 마틴이 꾸준히 만나는 사람은 비달이었다. 그는 어느 날 그의 소설이 진전이 없다며, 은퇴를 얘기했고, 마틴에게 크리스티나를 좋아하냐면서, 하지만 크리스티나가 마틴이 바리도와 에스코비야스 같은 도둑들을 위해 그런 삼류소설을 쓰면서 자신을 팔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 얘기를 들은 마틴은 비달이 차가운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른 듯한 통증을 느낀다.

그후 그는 크리스티나와 비슷한 모습을 한 여자들과 하루밤을 지내는 등, 자신이 데이비드 마틴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낀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크리스티나를 본 이틀 후, 비달의 초대로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갔다가 크리스티나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마틴을 쌀쌀맞게 대하고, 마틴은 다시는 그녀를 생각하지 않고, 친절한 말도 건네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런데, 다음 날 오후, 성당 앞에서 또 마주친 크리스티나는 이번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잠깐만 시간을 내달라고 말한다.

마틴은 주저하면서 크리스티나를 따라 커피숍에 들어가는데, 크리스티나는 비달이 그녀가 했다고 마틴에게 전한 얘기를 자신은 한 적이 없으며, 왜 비달이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가 전한 말은 자신이 했던 말과 너무나 다르다고. 마틴이 그러는 그녀에게 애정 표현을 했고, 가만히 있던 그녀는 주문한 코코아가 나오기 전 자리를 뜬다. 그 만남 이후 그녀의 이름을 다시 듣기까지 또 몇달이 흘렀다.

다음에 마틴이 크리스티나를 다시 본 건, 9월 말경, 어느 날이었다.  City 의 다음 시리즈를 마치고, 몰려오는 두통과 구토로 하룻 밤 쉬자고 마음먹고 있는데, 비달이 찾아왔다. 그는 마틴의 모습을 보며 공동묘지에 있는 시체들 얼굴 같다고 말하며, 밖으로 나가 잠시 산책을 하자고 했다.  비달은 어디로 가는거냐고 묻는 마틴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는데,  가보니 그곳에는 돈 바실리오에서부터 크리스티나, 셈페레, 그리고 마틴이 아는 다른 작가들과 마뉴엘까지, 마틴이 아는 사람들이 전부 다 모여있었다. 그리고 모두 샴페인 잔을 들고 마틴에게 28번째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한다.

그날 밤 마틴이 베란다로 나가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그토록 보고싶었던 크리스티나가 마틴에게 다가온다. 그녀는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이 마틴을 만나러 온 걸 비달이 모르며, 할말이 있는데, 지금은 할 수가 없으니 내일 둘만 조용히 만나자고 말한다. 그리고 둘이 만나는 걸 다른 사람이 보면 안되니 장소는 마틴의 집이 좋겠다고 했다. 다시 거실로 돌아가자 한쪽 구석에서 비달이 서늘한 눈으로 마틴을 째려보고 있었다.

다음 날 마틴을 찾아온 크리스티나는 마틴과 얘기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비달이 걱정되어서라고 말한다. 비달의 비서로 일해온 크리스티나는 비달이 그 동안 자신이 써놓은 수천장의 글을 찢어버렸다고 했다. 자신은 재주가 없고, 사기꾼이라면서. 그러면서 술을 들이붓는다고. 그는 마틴을 부러워하고, 그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짓말하고, 찬양하는 이유는 돈이나 도움이 필요해서일 뿐, 자신의 책은 별로 가치있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겉으로는 말짱하지만, 그는 희망을 잃었고, 어느 순간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크리스티나의 얘기를 들은 마틴은 평생 자신을 아버지처럼 돌봐줬던 사람이 절망의 상황에 빠진 걸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비달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를 돕기로 한다. 그것은 매일 오후 크리스티나가 비달이 쓴 원고를 들고오면 마틴이 읽고 고치는 거였다.

비달의 소설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바르셀로나에 살았던 한 가족의 3대에 걸친 대하소설이었다.  그런데, 마틴은 비달의 원고를 읽고 놀라는데, 첫째, 그것은 몇년 전 마틴이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될 거라고, 언젠가는 꼭 쓰겠다고 비달에게 여러번 말했던 이야기들 중의 하나였고, 둘째, 비달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차용해 그것을 쓰겠다는 말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는 것, 셋째, 비달이 쓴 원고는 놀랍게도 구성이나 등장인물들, 플롯 등이 시간이 남아도는 아마추어의 그것들처럼 허세적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크리스티나에게 이 모든 걸 얘기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날이 어두워지면 두 사람은 작업을 시작한다. 마틴이 비달의 글을 자세히 다시 쓰면 크리스티나는 그것을 타이핑했다.  비달의 줄거리가 아주 모호해서, 마틴은 그것을 자신이 처음 구상해서 비달에게 제안했던 것으로 바꾸기로 결정한다.

크리스티나와의 은밀한 작업은 걱정대로 마틴이 원래 하고 있던 City의 작업을 지연시켰다. 하루에 세시간밖에 못자며 작업을 했지만, 그의 글은 이전의 것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바르도와 에스코비야스는 그의 글을 읽지 않았지만, 허미니아는 그것들을 읽었고, 뭔가가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마틴은 크리스티나와의 비밀스러운 접촉이 둘 사이를 공범이 되게 하였고, 크리스티나 역시 올 때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지만, 절대로 그 사실에 어떤 반응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미래도 없고, 위대한 유산도 없는, 아무 것도 바랄 수 없는 그런 경주였고, 두 사람 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밤새 내내 글을 쓰고 난 후, 마틴은 잠이 오지 않아 산책을 나가 새벽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주변을 둘러보다 길을 건너기 위해 건널목을 건너려는데, 저쪽에서 희미한 새벽 안개를 뚫고 달려오는 전차를 보게 된다. 그런데, 마틴은 달려오는 전차를 보고서도 한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죽음이 1미터 앞까지 다가왔지만, 근육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정신을 잃는다.

그가 깨어났을 때, 누군가가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고 말한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은 리베라 (Rivera) 장군이 스페인을 장악했다는 기사가 실린 5년전 신문을 들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마틴이 그곳으로 올 때 반은 죽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마틴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네개층 정도를 계단으로 올라가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나가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는 1888년 만국 박람회 때 지은, 극빈자 혹은 밤이나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대피소로 쓰이고 있는, 저수장 옥상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마틴은 눈앞에 펼쳐진 바르셀로나를 바라보다가 지붕 한쪽 끝에 어떤 사람이 서 있는 걸 보게된다. 마틴을 발견한 그는 거의 날으는듯한 빠른 속도로 마틴에게 다가오고, 놀란 마틴은 그를 피하려다 뒤에 있는 물웅덩이에 빠질 뻔 한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마틴의 팔을 잡았다. 마틴에게 괜찮냐고 물으며 옆에 앉는다. 그 사람은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양복 깃에 날개를 활짝 편 천사 브로치를 꼽고 있었다. 어떻게 이곳으로 왔느냐는 마틴의 질문에 그는 당신과 같은 이유이라며, 위대한 유산을 찾기 위해, 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은 마틴은 즉시 그가 누구인지 깨닫는다. 그 사람이 바로 안드레아스 코렐리였던 것이다.

코렐리는 마틴에게 마침내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서 몹시 기쁘다고  말한다. 마틴은 그 자리를 뜨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코렐리의 눈을 본 후 마음이 바꼈다. 그의 눈은 고요했고 신뢰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틴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 자신 조차도 알지 못할 때, 그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그곳에 있는 걸 알았는지 묻지 않기로 작정한다.

마틴이 코렐리에게 그 동안 자신에게 보여준 호의에 감사하다고 말하자, 코렐리는 자신이 더 감사하다며, 자신을 위해 일해달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자신을 위해서 글을 써달라는 것. 그러면서 자신이 바로 마틴을 불멸의 인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마틴이 일생동안 기다려온 출판인이라고 말하며 명함을 건네주는데, 그것은 바로 마틴이 전에 클로이를 만난 다음 날 발견했던 그것과 같은 거였다.

마틴이 코렐리의 제안이 고맙기는 하지만, 아직 바리도와 에스코비야스와의 계약이 6년 더 남았다고 말하며 거절하자, 코렐리는 그 문제는 자신의 변호사가 알아서 처리할 거라고 말한다. 마틴이 그의 제안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묻자, 코렐리는 자신을 위해 1년 동안 책을 쓰는 것이고, 내용은 계약시 자세하게 말하기로 하자며, 10만 프랑을 선불로 지급하겠고, 혹시 액수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더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은 마틴과 돈문제로 옥신각신하고 싶지 않으며, 만약 코렐리 자신이 원하는 책이 어떤 것인지 마틴이 알게 된다면, 그가 액수는 정말 중요치 않다고 생각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코렐리는 몇년 동안 마틴을 보아온 결과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판단을 했다고 말하며 주저하는 마틴에게 다음 번에 만날 때엔 그가 좀 더 상황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이 있느냐고 묻는 마틴에게 다음은 항상 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는 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사라진다. 그런데, 코렐리가 떠나고 난 뒤, 마틴은 그와 얘기하는 동안 코렐리가 한번도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이후 마틴은 병원에서 살 날이 1년이나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암 진단을 받게되고,  바리도와 에스코비야스를 만나 더 이상 City 시리즈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바리도와 에스코비야스는 마틴에게 본명으로 책을 출판해줄테니 한권만 더 쓰라고 제안한다. 마틴은 비달의 원고를 고치는 일과 자신의 소설 쓰는 걸 병행하게 되는데, 어느 날, 크리스티나는 동맥류 이상으로 마비가 와 피레네에 있는 한 요양원으로 옮겨간 아버지 마뉴엘을 간호하기 위해 떠나고, 비달의 원고를 새 기사가 갖다 준다. 그런데, 며칠 후 예고없이 비달이 마틴을 찾아온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비달이 마틴에게 지금까지 숨겨온 사실이 한 가지 있다고 말하지만, 마틴은 두 사람의 책이 출판된 후 그 얘기를 듣겠다고 말한다.  

그후, 마틴은 비달과 동시에 새로운 소설을 발표하지만, 자신의 아이디어이고, 자신이 고쳐준 비달의 책은 즉각적인 호응을 얻으며 날개돋힌 듯이 팔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책은 혹평과 함께 모든 서점에서 외면을 받게 된다. 그리고 식당에서 만난 비달은 지금까지 숨겨왔던 비밀 두 가지, 즉 마틴의 아버지는 비달을 죽이러 온 사람들이 그를 비달로 착각해서 죽였는데, 그것은 자신이 불륜관계를 맺은 여자의 남편이 시킨 일이라는 것과, 크리스티나와 결혼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마틴에게 그 말을 한 후, 비달이 마틴의 책을 내밀며 사인을 해달라고 하고, 마틴은 그 책을 들고 식당을 나와버린다. 그리고 심부름하는 아이를 시켜 그 책을 엄마에게 갖다 주는데, 엄마는 그것이 아들이 쓴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쓰레기통에 버린다. 마틴은 책을 쓰레기통에서 다시 찾아 들고 셈페레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에게 전에 말했던 책이 사라지지 않는 곳으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셈페레는 그곳으로 마틴을 데리고 가면서 조금 후에 마틴이 보게되는 걸 어느 누구에게도, 비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를 아이삭(Issac) 이라는 사람에게로 데려가고, 아이삭은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되다는 말을 다시 하며, 수많은 책이 보관되어 있는 크고 장대한 지하 보관실, 이름하여 ‘Cemetery of Forgotten Books’ 라는 곳으로 데려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