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의 가을

                              글/노랑

가을의 햇빛이 요란하다.
포도덩쿨에 엉키어 소란하고 풀벌레 소리에 부산하다.
눈부시게 떨어지고 있다. 장독은 하품을 하고 붉은고추는 포복을 한다.
 어머니는 여름에 덮었던 이불을 햇빛에 말리시며 중얼거리셨다. 

미처 떠나지 못한 여름의 채비는
어머니의 음성에나 있을 뿐 이제 여름은 아무곳에도 없다.
여름은 그랬다. 짙은 녹음의 춤사위를 즐거워 했었다.

4시가 되면 영호는 읍내로 가서 차를 타야 한다. 산사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벌써 집에 머문지 몇날이 된지 모른다.

절에서 지내온 이태 동안 나아진거라곤
늦잠이 고쳐진 것 뿐이지만 영호의 산사행은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달포전에도 집에 들렸었다.

" 애, 어쩌자고 그렇게 산에만 들어 있는거냐. 결혼은 언제 하는거냐"
어머니는 항상 같은 걱정을 하신다.

"어머니 이번 가을만 지나면 나올겁니다. 겨울엔 완전히 돌아올거예요."

영호의 떠남에 익숙한 어머니는 이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짐을 챙겨 떠나는 영호의 음성에는 어머니의 음성보다
더 짙은 잿빛이 묻어있다.

정말 영호가 가을을 넘기고 산사를 떠나올지 아직은 모르는 일이다.

몇해전 영호는 우연히 선가귀감이란 책을 읽고 절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몸 조심하거라"
 "네, 어머니 가겠습니다."

가을의 구석구석은 영호의 산사길을 반기고 있다.
코스모스가 져버린지는 꽤 되었다.
햇빛의 번들거림으로 퉁겨져나간 먼지들이
저만치 서 있는 나뭇잎에 응겨 한나절을 붙잡고 있다.
가을바람은 영호의 목덜미를 스쳐 바지가랑이 사이로 지나간다.
길 따라 서있는 나무들이 영호를 따라 걷는다.

풀섶에는 들꽃이 피어있다.
들꽃이 모여 있는 것을 느낀건 처음 일이다.
산등성에 걸려 있던 산그림자는 애초부터 내려오지 않을 작정 이었으나
아까부터 영호의 잔등이를 쫓고 있다. 다리에 개울물이 비쳤다.

개울가의 시린 자갈들이 물살에 씻기어 투명하고
뿌리채 드러나 시낀 나무등걸은 서럽게 깨끗하다.
밭이랑을 두고 영호의 걸음은 걸어지고 있다.
걸음사이로 작은 먼지가 일구어진다.

찌르러미가 지나간다.

한꺼번에 두마리다.
작은 웅덩이로 풀벌레가 빠진다.
동그란 원이 비치는 웅덩이 물위로 어머니의 모습이
가.을.하.늘.에.실.려.뭉.글.뭉.글.흩.어.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