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소설 같은 영화일까? 문학과 영화는 아주 가깝지만 무척 다르다. 전직이 소설가 였던 이창동은 소설을 썻던 작가로써 영화를 만들지만 그에게 영화란 미완성된 문학을 설명하고 싶어할지 모른다. 최근 문학의 정체성을 보여준 ‘시’는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단골매뉴의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도 문학의 힘을 보여준 신선한 영화였다.영상이 주는 멧세지가 아니라 ‘시’를 알고자 할때 인생은 어떠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을까 라고 내용을 직접 전달하며 윤리가 상실된 현대인의 설자리란 과연 어디인가 라는 멧세지를 강하게 전달하였다.

 한 소녀(아네스)의 죽음에 연루된 손자아이 그리고 ‘시’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미자(윤정희)의 순수는 손자의 죄를 죽음으로 대신 참회하는 구도자적인 모습과 그 길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담담히 그려냈다.

 영화는 아네스 사체가 물위로 떠 오르며 시작된다.그리고 병원의 대기실에서 미자는 다른사람 핸드폰을 자기 것으로 잘못 알고 받는 모습에서부터 영화는 무엇인가 어긋남을 암시하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매일매일 간병을 해서 벌어 먹고사는 미자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사치일수도 있겠으나 삶의 원동력이었고 어쩌면 이창동의 과거모습일지도 모른다. 간병환자(김희라)와 짧막한 정사도 보기 훙하지 않은 것은 500만원의 용도가 가치있게 쓰였음일 것이고 자신의 손자의 성폭행으로 자살한 아네스의 영혼을 위한 미자의 참회와 시를 쓰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은 진지하였다. 미자는 그토록 원하는 시를 마침내 완성하여 <아네스>에게 시를 받힌다.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한가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영화는 아네스 나레이션을 통해

"나는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교실을 나와 버스를 타고 시내가 흐르는 다리에 도착합니다."

이렇게 마치며 미자는 자신이 이 세상에 서야 할 곳을 찾지 못한 또 하나의 아네스를 임을 발견하여 강물로 몸을 던진다. 

이 영화 속에서 몇몇 휼륭한 연출이 돋보인다. 미자가 병원에 검진을 받고 나오는데 소녀의 어머니가 길거리에 앉아 실신 직전의 장면,

손자가 밥을 먹으며 TV를 보는 장면, 미자가 소녀 엄마를 만나러 가서 말 한마디 못하고 돌아오는 장면, 미자가 시를 적으며 시골에서 비를 흠뻑 맞고 버스를 타는 장면,

미자가 시 모임에서 나와 웅크리고 우는 장면, 미자가 마지막 시 모임에서 알게된 경찰에게 손자를 양도하는 장면, 등은 참 잘 만들어진 신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아네스가 다리에서 뒤를 돌아 얼굴을 보여주는 장면은 차라리 넣치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시’는 단 한번의 영화음악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중간중간 일부러 만든 듯 흔들거리는 카메라 이동장면이 그대로 느껴지게 편집되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분담하는 배우의 분량은 주인공이라 할지라도 역할에 따라 분량의 대소가 있겠지만 미자 역할 만큼 많은 분량과 대사를 담은 영화도 드물 것 같다. 탄탄하고 구성이 잘 짜여진 그야말로 문학가였기에 그릴 수 있었던 이창동의 숨은 실력이 보여주는 시나리였다. 현 정부에 의해 빵점을 평가 되었던 ‘시’가 칸느영화제에서 그것도 시나리오 각본상을 받았다는 것은 더욱 이 영화를 귀 기우리게 만들었다.오랫만에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가진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