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이 되던 날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하던 폭우가 밤이 되자 더욱 쏟아지기 시작했다.

번개가 급살을 떤다. "꽈당 쿵 " 어느 변압기가 벼락을 맞은 모양이다.

어느 인연 일까 생각할 틈도 없이 불이 나갔다.

갑자기 불이 나가자 집안은 온통 흑막이다.

빛과소리 없는 별이다.

냉장고, 티비, 컴퓨터, 오븐, 라듸오,에어콘, 형광등이 사라진 것이다.

문명은 순식간에 고요로 둔갑을 했다.

그러나 문명은 고요로 둔갑한 것이 아니다.

문명은 그들의 소음에 가리어 있었을 뿐이다.

이런 날 촛불을 찾으러 야단법석을 할 것이 아니라

어둠속의 묵상의 시간을 가져본다.

갖가지 소리에 대한 고백의 여유를 가져본다.

소리는 문명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더욱 더 많은 소리로 가득한 곳이 발견된다.

나의 내면이다.

그리고 이 내면은 여러소리들이 합하여 요란한 하모니를 만들고 있다.

방석을 가지고 와서 앉아본다.

그리고 향을 켠다.

향내는 고요속에 스며들어 어둠속으로 전해온다.

" 우리의 근원은 가려진 오염된 식으로 보지 못할뿐이다."

비가 멈추었다. 밖을 나갔다.

온 동네는 어둠에 싸여 보이질 않는다.

밤 풀벌레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불꺼진 창을 두드린다.

이렇게 가끔 정전이 되는 날 나는 아이들 마냥 좋아한다.

그것은 다른 세계에 있는거 같은 경이감 때문이지만

더 큰 이유는 고요가 주는 성찰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요를 즐기는 이유를 알 수없는 근원으로 돌아가고픈 귀향길 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것을 '우리의 본래 모습' 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