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갑자기 뒷목언저리가 참을수 없이 따금 거렸다.

오늘 벌써 몇번째 이렇게 따끔 거리는지 모른다.

손이 닿지 않아 글을 쓰고 있던 볼펜으로 목 언저리를 긁었다.

아주 시원했다.볼펜 끝을 보니 때가 한웅큼 묻어 있었다.

 

입고 있던 바지에 슬쩍 닦았다.

이 더러운 때가 벗겨져 나온

그 자리는  내몸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곳이 되어있다.

그곳은 나의 많은 몸의 부분중 운이 좋아 깨끗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내몸은 이렇게  때로 가득 하다.

아니 때가 내 몸에서 살고 있다.

 

유리창을 넘어 들어온 정오의 햇빛이 테이블앞의

내가 있는 곳 까지 부드럽게 비추었다.

흰 팔뚝에서 생선비늘 같은 하얀 살갗비늘이 반사 되었다.

순간 이 하얀 살갗 비늘을 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팔뚝을 테이블 밑에 비비자 하얀 살갗비늘이 순식간에 일어섰고

그들은 건들었다는 노여움을 보내듯 요동을 치며 다음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손으로 팔뚝을  비볐다. 흰 살갗비늘은 

아래로 떨어져며 바지위에 편안히 묻혔다.

 

시간이 지나 오후의 햇빛이 더 깊이 비추니 흰 살갗비늘은 더욱 선명히 보였다.

갑자기 흰 살갗비늘을 없애고 싶은 생각이 났다.

손으로 바지를 톡툭 터니 흰 살갗비늘은 빛 줄기를 타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지금 내 몸 구석구석의 머리,귀,얼굴,가슴,허벅지,배는

이렇게 살갗비늘이 덮여 있다.

목욕을 한날이 정확히 4월 18일이었고

오늘이 7월30-일이니 3달 이상을 목욕을 못한 셈이다.

 

나 스스로는 목욕을 못 하므로 누군가 목욕을

시켜주지 않으면 평생이라도 목욕을 못하는 나의 모습은

그리 이상한 모습도 아니다.

다른사람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나의 일상의 모습이다.

 

그러니깐 3개월 동안 목욕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목욕을 해줄 남편이 발을 다쳤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를 목욕해주기는 커녕 발이 퉁퉁 부워 걸음 조차 걸을 수 없었다.

 

한달이 지났을때 " 아무리 불편해도 나 목욕좀 시켜 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힘을 가장 많이 주어야할 발은 좀처럼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아 조금만 기다리면 될거라며

오늘만 견디자 라고 다독거린 것이 이렇게 여러날이 지났다.

 

간신히 세수와 머리감기로 3개월을 지낸 셈이다.

 

오늘은 12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을 힘들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났다.

나를 목욕 시키기 위하여 땀을 흘리며

씻껴주던 그의 지난 날의 모습들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내가 목욕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모처럼 남편이

편하게 지낸다는 생각이 들자 이왕 이렇게 된 것

남편이라도  편하게 지내도록 더 견디어 볼까 라는 마음이 생겼다. 

 

예전과 다른 생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자 목욕을 하지 못해 괴로워하던 괴로운 마음이

사라져 버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편안함을 생각하니 3개월이 아니라

더 이상도 견딜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욕을 못해 괴로워하는 마음에 끌려가지 않고 

마치 다른사람이 이런일을 당하는 것 처럼 한편의 영화를 보듯

객관적 상황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며

나의 팔뚝에 일어나는 일을 재미있다는 듯 툭툭 치며

오후 내내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효는 깨달음을 얻고자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해가 저물어 머문 곳은 묘지 안이었다.

심한 갈중을 이기지 못하고 깜깜한 밤중에 더듬 거리자

물을 담긴 바가지를 발견하고 아주 맛있게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 보니 간밤에 마신 물은

벌레가 있는 해골에 담긴 물이었다.

이 사실을 알자 원효는 갑자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꿀맛같던 간밤에 마신물이 오늘 아침에는 구토나는 물이었다.

원효는 순간 모든 것을 알았다.

 

이 모든 것이 마음에서 일어남을 알았고

깨달음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당나라 유학길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수행하여 우리나라 제일의 고승이 되었다.

 

괴로움은 시작할 때가 힘들다.

정작 괴로움이 진행되고 마무리 되어갈 즈음이면

그때는 편안한 마음이 찾아온다.

그것은 환경에 익숙해져서 일 것이다.

 

환경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과거 마음과 현재 마음이 달라져 있다는 증거 이다.

달라진다는 것은 처음 마음이 변했다는 이야기이고

잊혀진다는 것은 결국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괴로운 생각이 일어날 때와

일어나지 않을 때의 차이란 이렇게 다르다.

 

결국 괴롭고 안 괴롭고는 외부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마음을 조절하기에 따라 지옥도

천국이 되고 천국도 지옥이 되는 마음이란 이렇게 허망하기 짝이 없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변하는 마음에 이끌리지 말고

순간순간 변하는 마음을 잘 볼수 있다면 괴로운 일도 슬기롭게 지나갈 수 있다.

 

 

8월 1일

다음 날 목욕을 하였다.

목욕을 못하던 한 여자가 드디어 목욕을 했다.

나는 웃음이 픽픽 터졌다.

그리고 3개월동안 목욕을 못해 짜증을 얼마나 내었나

생각해보니 

다행히 커다란 불평은 하지 않고 지내온 것 같다.

 

지금 나는 깨끗한 몸이 되었다.

더러운 몸이 흔적없이 사라져 있다.

만약 내가 지난 목욕을 못했을때 남편에게 불평을 하고

괴로워하며 힘들어 했다면 분명히 그곳에 따른

남편과 언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좋지않은 결과물도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스럽게 넘어간 것 같다.

 

깨긋한 몸으로 지난 시간을 생각보니 

더러웠던 몸이 언제 있었느냐듯 생각나질 않는다.

그리고 이 깨긋한 몸도 다시 더러워질 것라고 생각을 하니

삶이란 순간순간 변하는 과정일 뿐 

깨끗한 지금의 모습에도 마음을 들 필요가 없다는 걸 느낀다.

 

더러움에도 깨끗함에도 한 순간 머무를 곳이 없다는 걸 체험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추신) 너무 더러운 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할수 없이 자세히 썼네요.

이해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