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내용을 보니 " 자신은 임신 8개월이 되었고, 의사가 2월말까지만 일할 것을
허락했기 때문에 그 때가서는 그만 두어야 할 것 같고,
자기 출산일은 4월 초순이며, 다시 5월이되면 돌아와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 는 마음을

깔끔하게 소상하게 적어 두었다.




갑자기, 내가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속이 가스가 찬 듯 거북해졌다.
저녁 밥맛까지 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놀란 탓인지, 그냥 가만히 앉아 멍해진 내 맘을 추스리기만 했다.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2월 말까지 갈 것도 없이
이번주 토요일까지만 일하게 하고 열쇠랑 모든 서류를 받고,
그만두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 밤 TV를 보는 동안, 한국 연속극, 비디오를 보는 동안,
내내, 그녀의 생각이 내 마음에 가득 남아 떠나질 않았다.
이토록 이국 소녀에게 내 마음이 자꾸만 가는 이유는 무얼까?

언제나 공손한 그녀의 태도, 깔끔한 일처리, 가끔 전화를 통하여 기억나는
그녀의 어머니의 자애로운 목소리,
메모에서 보듯,그녀를 사랑으로 살펴주는 의사의 헌신적인 모습,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오늘 이 메모에서 보여지는 긍정적이고 솔직한 그녀의 꾸밈없는 순수한 태도였다.

어느틈인가 와르르~ 나의 선입견이 무너지면서,
가슴 안에선 알수없는 찬 이슬이 내리는 것 같았다.
드디어 그런 감정들은 어느새 어린 소녀에 대한 연민으로
내 마음 한켠을 따스히 물들이고 있었다.



" 10대 소녀의 임신"  뉴스 지면을 통하여 들려오는 기분 좋지않은 소식, 어린 핏덩이를  낳아서
쓰레기통에 버려 죽게하고,
또 화장실에서 몰래 아이를 낳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어버린 어느 여대생...
여자이기에 치르는 댓가는 이것 뿐이겠는가?

부모나 주위 사람들 몰래 음지에서 해결하려다가
불행을 자초하는 소식을 접합때
가슴이 절절히 아프면서도 딸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남의 일로만 여겼지 않았는가?

그런데 Tara는 이 모든 것을 부모와 상의하여 양지로 끌어내어
참으로 다행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다.
과연 이 일이 십대 소녀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인가?




남의 일에 쓸데 없이 간섭 한다든가, 상대방이 듣기에 거북한 얘기는
좀처럼 꺼내지 않는 미국 사람들의 에티켓을 조금은 터득한 걸까?

나는 그녀에게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지,
어느것 하나 알지 못한다.
다만 그녀의 싹싹하고 밝은 품성, 교양있는 말씨. 이런 걸로 미루어
분명, 충분한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랐음에 틀림없다고, 짐작만 할 뿐이다.

삶에 있어 자녀들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놓여질때, 부모의 충족된 사랑이 함께 있는 한,

이 사회와 부모의 따스한 배려로 그들을 감싸 안아주는 한, 그들은 새로운 길을 찾게 될 것이며,

밝은 미래를 보장 받들 수 있다고 확신하고 싶다.

지금, 이 시간 Tara, 그녀의 삶은 밝게 빛날 것이라 믿고 싶다.

이제 4월말쯤 아기 엄마가 될 Tara의 삶에 행운이 있길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이다.

물론 5월 어느날, 튜립이 아름답게 피는 날,

Tara가 다시 일하러 온다면 대 환영이다.


~ Tara 이름은 {가명}으로 했음.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