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미국, 다른 삶(7)-선입견의 반전이 행운이 되다

나기홍은 주말에 함께 모스크(이슬람 예배당)에 갈 수 있냐고 물었다. 자신들의 종교를 바르게 알리고자 하는 세미나와 전시회가 있다고 했다. 일파만파 퍼지는 이슬람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루머를 잘 설명해 줄 거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갈 수 있었다. 당시의 분위기가 이슬람교에 대해 더욱 험악해지기도 했지만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다섯 차례나 신에게 절을 하고 식생활과 의생활에 심한 제약이 있기까지 한 그 종교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게다가 무종교인이던 내게 미지의 종교는 하나의 문화처럼 새로운 세계이자 신비였다.

대학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일본어 회화에 관심이 많던 나는 학교 게시판에 붙은 원어민 무료강습이란 광고를 보고 친구와 함께 주소지로 찾아갔다. 대학 주변의 한가로운 주택가였다. 3층짜리 빨간 벽돌건물의 현관이 빼꼼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니 벗어 놓은 신발이 가득했고 심상치 않게 큰 액자가 걸려있었다. 분위기가 묘했다. 어쨌거나 마루로 올라서려는데 친구가 소매를 잡아 끌었다. “저 사진 문선명 같애” 친구는 성당에 다니고 있었고 나보다는 종교를 아는 듯 했다. “일본어 배우려다 귀 얇은 내가 전도를 당하면 어떻해?” 무섭다는 친구의 소매를 이번엔 내가 잡아 끌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막아주겠다고 큰소리를 땅땅 치고 안으로 진격했다. 엄마 따라 절에, 친구 따라 교회에 다녀봤지만 나는 종교에 무심했다. 무지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이 사이비종교 앞에서 겁나 용감했다.

그곳은 근처 학교를 다니는 통일교인들의 기숙사였다. 친구 말대로 무료언어교습을 빌미?로 포교를 꾀하는 목적인 듯 했다. 하지만 2년여간 우리의 선생님이 되어준 일본인 언니는 정말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통일교를 믿으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고 함께 공부하는 시간은 매우 즐거웠으며 궁금해하면 일본문화를 잘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꼬박꼬박 약속을 잘 지켜 만났고 끝나면 때때로 기숙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함께하면서 다른 기숙생들과도 교제를 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통일교에 관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커플 탄생 절차를 비디오로 목격했을 땐 레알 충격이었다(아마도 컴퓨터가 발달한 지금은 달라졌을까??). 벽면에 남자들(혹은 여자?)의 사진이 죽 나열되어 있고 사제복을 입고 그 앞을 지나는 교주는 손에 들고 있던 사진을 한 장씩 빼서 거침없이 각각의 옆에 붙였다. 결혼상대가 정해지는 순간이라고 했다. 그렇게 매칭이 끝나면 곧 커플들의 단체 첫상봉이 진행되고 일정 기간 개별적으로 교제를 한 후 최종 결정을 하는데 자신과 잘 맞지 않으면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으나 교주가 잘 정해 주었을 거란 믿음이 크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결혼을 결정한 커플들은 또 단체결혼식을 올린다. 내 눈엔 문선명 교주가 아무 사진이나 막 붙이는 것 같았으나 사실 신청서에 신청자의 이력과 원하는 배우자상을 기록하게 되어있으니 그것을 참조해 매칭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학생들이라 정확한 속사정은 모르는 것 같았다. 기숙사엔 결혼한 학생커플과 갓난아기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교주에 의해 매칭되어 잘 살아가고 있는 산 증인이었다.

당시는 너무 이상해서 역시 사이비야, 했는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단체라는 점이 색다르지만, 결혼소개소나 뚜쟁이가 낀 중매결혼과 같은 맥락이었다.

또 인상 깊게 본 비디오장면이 있다. 특별한 행사인지 산등성이 같은 곳에 신자들이 잔뜩 모여 있고 사람들은 모두 흰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산에서 온통 하얀 옷을 입고 있어서인지 분위기가 엄청 신성하고 신비로워 보였다. 문교주가 설교를 하는 동안 신자들은 모두 눈을 감고 양팔을 뻗어 ‘앞으로 나란히’ 자세를 취했다. 설교는 길게 이어졌고 아픈 팔들은 서서히 내려가 흔들리곤 했다. 곱게 화장한 중년여인이 처지는 팔을 어쩌지 못하면서 안타깝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 비쳐졌을 땐 기숙생들이 키득거렸다. 교주의 사모라고 했다.

다수의 기숙생들과 함께 밥도 먹고 때론 소풍이나 그들의 행사에도 참석했지만 친구도 나도 통일교로 전도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편 사이비라 불리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다른 면으로는 극히 정상이고 종교에 의지하여 삶을 발전시키고 평안을 얻고 싶어하는 마음이 매한가지라는 감상이 남았다.

가끔 종교이야기가 화제에 오를 때 나는 유타에 갔던 순간을 떠올리곤 한다. 관광지의 한 곳으로서 찾아갔을 뿐인데 그토록 푸근하고 친절해 보이는 사람들이 뭉텅이로 와글와글한 곳은 처음이었고 주위는 평안이 그득했다. 사람들의 말하는 태도와 미소, 몸가짐이 공손하고 푸근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몰몬교인이라고 했다. 몰몬교 템플에 들렀을 때 남편이 크리스찬임을 말하자 아, 우리는 같은 신을 믿는 형제자매네요, 라며 맑게 웃던 젊은 처자로부터 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사실 지금 기억하는 것은 그저 그들의 온화한 모습 뿐이다. 그래서인지 몰몬교에 대한 인상은 참 좋다.

나기홍의 세가족과 함께 모스크에 간 날은 햇살이 포근하고 푸른빛이 예쁘게 반들대던 가을이었다. 조지아는 9월까지도 여름날씨라 가을의 정취가 그닥 서늘하지 않은데 그날은 유난히 세상이 밝았다. 가장 오랜 시간동안 나기홍의 세가족과 함께했던 그 시간을 나는 훗날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으면서 불현듯 떠올렸다. 부르카를 쓰고 남자에게 종속되고 남자와 함께가 아니라면 외출조차 할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여인들의 삶을 놀란 눈으로 읽다가 터키에서 온 나기홍네 가족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나기홍네 집에 있을 때 잠시 들른 그녀의 남편을 본 적은 있지만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지는 잘 알지 못했다. 항간에서 회자되는 대로 혹은 특히 여성에게 제약이 많아 보이는 무슬림 가정은 조선시대처럼 매우 가부장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기홍네 부부는 놀랍게도 미국의 여느 가정과 다를 게 없었다. 나기홍은 능숙하게 남편에게 지시를 했고 남편은 아기의 유모차를 끌며 부인의 말을 따랐다. 모스크에 들어가서 나기홍은 아예 아기를 남편에게 맡겼다. 그리고 세가족이 다시 만날 때까지 수십분의 공백이 있었다. 모스크에는 남자와 여자의 예배당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왜 함께 기도를 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그녀의 대답은 경쾌했다. “우리는 절을 하거든. 그런데 남녀가 섞여 있으면 어쩔수 없이 앞사람 엉덩이를 볼 수 밖에 없으니까 곤란해서…” 나기홍은 가볍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나기홍의 말대로 그들은 나란히 열을 맞춰서서 많은 절을 했다. 그들이 예배당에 있는 동안 나는 야외에 마련된 전시회를 돌아봤다. 나기홍이 나를 인계한 무슬림 여인은 이슬람 남성과 결혼해 개종한 전 크리스찬인 미국인이었다. 그녀는 열정적으로 이슬람에 대해 소개했다. 기독교인이었었기에 비교도 쉽게 했다. 어차피 모르는 것은 매한가지라 두 종교의 비교도 흥미로웠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기홍의 부부와 그 모스크에서 본 많은 커플들이 떠오른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그들 덕에 깨졌는데 그 선입견이 다시 부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입견이 아니라 기정사실로서 말이다. 9.11 발발 후에 나기홍이 그랬고 모스크에서도 알게 된 사실이지지만 테러를 일삼는 극이슬람주의는 일반 정상의 무슬림이 아니고 그들의 행동은 코란의 가르침을 벗어났다고 했다. 기독교에도 정통 기독교와 사이비가 있듯이 이슬람에도 정통 이슬람이 있고 테러리스트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선입견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생각의 틀이 깨어지고 더불어 넓은 세상을 알아가는 건 지극한 행운이다. 이것만큼 경험하고 이것만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아집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