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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이야기

미국에서 온 원목식탁 Yunah Kim (kyeonah) 2021-11-15  03:00:00



미국에서 온 원목식탁

 

 


미국에서 보낸 짐이 도착한 날, 우리집에는 나프탈렌 냄새가 진동했다. 우리 사정과 코로나 사정으로 이삿짐을 3개월여만에 받게 되었는데 보관중에 좀이 쓸지 말라고 방충제를 넣어둔 모양이고 그 냄새가 가구에 깊숙이 스며들었나 보다. 횡단여행을 할 때 중부의 황무지 한가운데에서 컨테이너 박스들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봤다. 각 컨테이너에는 아마존이나 타겟, 코울스, 현대해운 등등의 간판이 걸려있었다. 동부와 서부를 오가는 짐들이 보관되기에 적당한 위치이면서 황무지라 비용이 부담 없겠다는 생각과 저 뜨거운 햇볕을 견딜 수 있도록 실내 냉각장치는 되어 있는지, 전기는 어떻게 보급되는지, 냉각장치가 없다면 대체 그 안에 무엇을 어떻게 보관할 수 있는지, 어쨌든 누군가 쓸모없는 땅을 참 유용하게 활용한다는 상념 등이 떠올랐다. 보관창고가 어디든 장기간 보관시에는 좀약을 넣어두는 게 당연할 것이다.

 

미국에서 부친 이삿짐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원목식탁이 있다. 아끼고 싶고 오랫동안 사용하고 싶어서 나답지 않게 부산을 떨며 가구용 왁스로 서너 번 닦기도 했다. 나는 원래 물건에 정성을 쏟는 편이 아니다. 비싸거나 좋아하는 물건일수록 평시에 자주 사용한다. 그것은 가성비를 중시하는 내가 가성비를 높이는 방식이고 물건의 주인은 사람이며 사람이 물건을 숭배하는 물심사상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식탁은 반듯하게 잘라내지 않고 나무의 기골을 유지해서 아마도 자연의 일부 같다는 인상 때문에 더 정이 갔다. 이삿짐을 부치기 전에는 조금 남은 왁스 스프레이통을 버릴 겸 흔들어 마지막까지 분사시키느라 기체가 픽픽 새도록 뿌려서 닦았다. 과유불급(과함은 모자라느니 못하다), 그것이 문제였다(기체때문인 것 같다). 짐을 부치기 며칠 전에 상판 전반에 작은 벌레나 흡사 기미처럼 보이는 얼룩이 퍼져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차 싶어서 웹사이트를 뒤져보고 물수건, 알코올 수건, 마른 수건 등으로 닦아냈으나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상태로 포장을 했고 식탁은 오랜 시간 뜨거운 햇빛을 견디고 나프탈렌과 바다의 짠내를 흡입하고 출렁대는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왔다.

 

원목식탁은 늘 우리 식구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함께하는 귀한 동지라 자주 눈으로 살피게되는데 이번에는 오랜 기간 외지에서 보관되는 과정 중 생긴 실금이 건조하고 햇빛이 깊게 들어오는 아파트에서 더 굵은 금으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햇살이 식탁 위로 쏟아지지 않게 블라인드를 조절하고 커버로 덮기도 했지만 금이 간 틈은 점점 도드라졌다. 그리하여 또 웹사이트를 뒤져 정보를 찾고적당한 조치로 목공용 풀을 사이에 넣어 틈새를 막아야 겠다고 생각했고 그 풀을 사러 길을 나섰다. 감색빛 바람이 달콤하게 불고 세상의 나무는 울긋불긋 몹시도 고왔다. 그 나무들, 내가 세심하게 들여다 보면서 가지에 금이 갔는지 잎새가 제 색을 띄는지 목이 말라 바스러지지는 않는지그런 신경 없이 그냥 어여쁘다 감탄하니 마냥 그 어여쁨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번민 없는 정신, 이것이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무소유일텐데나는 법정스님의 난처럼 원목식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정스님은 친구로부터 난을 선물 받아 정성껏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에 존경하는 스승을 찾아 노사에 갔다가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찬란하게 내리쬐자 뜰에 내놓은 난이 생각나서 더 지체를 못 하고 허겁지겁 돌아왔다. 난은 예상대로 잎이 축 늘어져 있었고, 스님은 심히 안타까워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고 정성껏 돌보아 겨우 살려 놓았지만 생기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생각을 놓지 못했다. 그때 스님은 깨달았다. 그간 자신이 난 때문에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스님은 나그네 길도 못 떠난 채 난 곁에서 꼼싹을 못하고 살았고 잠시 방을 비울 때면 환기를 위해 들창을 열었고, 외출시 난을 들여놓지 않았다는 깨달음에 허겁지겁 되돌아오기를 거듭했던 것이다. 이는 바로 지독한 집착이었다. 집착을 깨닫고 스님은 3년간 유정으로 키웠던 난을 친구에게 주고 마음에 홀가분을 얻었으며 이로써 무소유라는 선지식을 깨닫게 되신 것이다.

 

나는 목공 풀을 사와 나무의 틈새에 공을 들여 발랐다. 바르면서 무소유를 생각했다. 내가 마음에 두고 사는 것, 물건, 사람, 이런 것 저런 것내게 소중한 것은 덜 소중한 것보다 더 신경을 쓰며 살고 있을 것이다. 소중하다는 이유로 속박을 느끼고 집착을 하고 안타까워 발을 구르며 정신을 산란하게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으로서 스님도 아닌데 모든 것(세속적인 모든 것)을 어찌 버리고 살까. 예를 들면 식탁 같은 거라도 말이다. 식탁이 없다면 상이라도 사용해야 하고 원목이 아니라면 플라스틱으로라도 만들것이다. 그럼 덜 소중하게, 늘 어찌되든 상관없는 것을 지니며 살아야 할까. 그건 아니겠지스님이 말씀하시는 무소유란, 단순한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소중함을 느끼되 그에 구속 받는 마음을 없애는 정신일 것이다. 그냥 세상사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게 놔두는 것, 원목은 세월 따라 흠도 생기고 틈도 생기고, 난은 볕에 늘어지기도 하고 서늘한 공기와 물로 되살아 나기도 하고, 젊음은 나이에 맞는 젊음이면 충분하고, 돈은 제 원하는 바대로 먹고 살 수 있으면 되고마음을 돌보며 사는데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 만큼 편하면 되고, 사람과 사람 간에도 내가 사랑한다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구속해서는 안 되고, 내가 소중하게 여긴다고 남을 상처내면서까지 목적을 추구하지 않는 것, 그 정도가 일반인인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무소유가 아닐까

 

때로는 공을 들여 닦고 풀칠을 하되, 금이 가고 얼룩이 생기는 모습을 원목의 순리로 받아들이는 것, 함부로가 아니라 마침맞게 정도껏 마음 쓰는 것, 사람에게든 사물에게든집착을 없애고마음을 볶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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