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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아의 이야기

제주도 한달살기 - 안 해본 것 해보기 Yunah Kim (kyeonah) 2022-3-31  05:14:53


제주도 한달살기 - 안 해본 것 해보기


 


일찌감치 호텔을 나섰다. 식구들과 함께였다면 몇 번은 깨워야 일어나는 막내와, 서로 번갈아 가며 써야 하는 화장실과, 오랫동안 볼 일을 보는 남편 등등의 사정으로 출발이 더뎠을 것이다. 그러노라면 나올 때 지쳐 있기도 했는데이런 가벼움에 살포시 놀란다. 혼자 여행하는 맛이란 이런 것인가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동네 맛집을 묻자 늘 있던 일이라는 듯 친절하게 알려 주신다. 국밥집이었다. 제주도 토속음식이라는 몸국을 시켰다. 돼지 사골국에 모자반을 넣은 음식이다. 맛있었다. 값은 7천원, 반찬은 여섯가지, 뭐든 싹싹 비운 나는 몸보신을, 갑가성비 덕분에 마음보신까지 했다. 혼자 먹을 때는 미리 반찬의 양을 조금만 주십사 부탁한다. 지구환경과 만든 이의 정성을 생각해 웬만하면 안 남기는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다. 맛있게 잘 먹었다고 진심을 담아 인사한 후엔 배도 부르고 몸도 따땃해져서 발걸음이 더더 가벼워졌다.

 

국밥집 옆에는 복권방이 있었다. 처음엔 복덕방이라고 쓴 줄 알았는데 사람들 출입이 많아 호기심에 들여다 보니 복권을 파는 가게였다. 그제서야 복권방이라 읽힌다. 이 무슨 조화냐?? 하지만 자주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사고의 한계에 의한 착시현상이랄까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과도 맞닿는 이치다. 오늘의 주제는 안 해본 것 해보기이므로 들어가서 한 장 주세요, 했다. 주인장께서 무슨 복권으로 얼마짜리를 줄 거냐고 묻는다. 뭐가 있냐고 되물으니 즉석복권, 연금복권, 로또가 있다고 했다. 연금복권은 당첨되면 연금식으로 돈이 나오는 상품이고 로또는 일주일에 한 번 번호를 추첨하는데 일시불로 받는다고 했다. 좋은 일이 생기면 로또 맞았다,는 표현에 익숙하므로 로또를 2천원어치 주문했다. 그리고 역시나 다 꽝인 결과를 맞이한다.

 

처음 제주도 시내버스를 탔다. 정거장 이름 하나하나에 제주의 멋이 느껴졌다. 버스를 타서인지 익숙한 길이 나왔을 때도 기분이 새로웠다. 새롭게 이름을 알아서일지도그렇게 해서 나는 점 찍어 두었던 생활형숙박업소에 당도한다. 영어로는 스튜디오에 해당하는 7평짜리 공간이다. 세탁기도 욕실도 조리대도 있어서 한 달을 지내기에 알맞을 것 같았다. 인터넷 사진만 보고 계약하기엔 한 달이란 기간이 길어서 직접 보고 정하기로 했다.

 

막상 보니 방도 좁았지만 버스에서 걸어오는 동안 본 주변 환경이 썩 내키지 않았다. 앞에 바닷가와 오름도 있다는데 장대한 흰색 철판 담벼락이 떡하니 가리고 있었다. 담장 안은 한 기업에서 기초작업을 하다가 오랫동안 방치된 상태라 했다. 이건 아니지 싶었지만 조금만 더 주변을 살피기로 한다. 저 위에 가면 담장이 끝나고 멋진 경관도 나오나요? 지나는 사람에게 묻자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언덕을 오르니 오솔길 샛길이 나오고 난데없이 ***씨 문중 묘산이란 간판이 보인다. 절로 발길이 향한다. 고즈넉한 삼림공원 곳곳에 낮은 돌담으로 네모나게 둘러쳐진 각자의 영역 안에 봉분들이 솟아 있다. , 고요하고 평안해라울 아버지를 모신 납골당 공원주변도 들어서면 한없이 마음이 푸근해 진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난다. 굳이 모역이 아니더라도 늘 아버지 생각이 난다. 어머님을 여읜 한 후배의 말처럼 까딱하면 울컥대서 곳곳에서 울고 다닌다. 눈물이 나면 그냥 운다. 그렇게 3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곳은 누구라도 안식을 얻을 만한 장소였다. 묘역의 가장자리엔 올레길도 있었다. 올레 8길이라고 했다. 올레길을 따라 계단을 오르니 사방이 뻥 뚫렸다. 남으로는 태평양이 보이고 북으로는 한라산이 보였다. 새들이 지저귀고 햇볕이 그득했다. 이거면 됐지내 한달간 제주살이 숙소는 그렇게 확정됐다. 결혼해서 처음으로 내 단독의 이름으로 렌트 계약이 이루어졌다.

 

호텔로 돌아오기 전에 팥죽집이 보이기에 혼자서 단팥죽을 먹었다. 우리 식구들은 팥죽집이 보이면 들어가서 먹곤 했다. 호텔로 돌아와 리모컨으로 채널을 하나하나 올려봤다. 집에 TV 없이 산 지 20여년, 이것도 처음 해보는 일이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제주도 방송에서 제주도 방언 뉴스를 했다. 한국말 반, 외국어 반이 섞인 듯 백프로 이해는 불가했다. 오늘의 결론은 결국 이런 식으로 모든 걸 경험하면서 살 이유는 없지만, 왜냐하면 쓸데없는 일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니까. 단지 한 번 경험해본다는 의의는 크다. 싫다는 느낌을 받으면 두 번은 안 하며 살 수 있으니까. 좋아하는 걸 발견하면 그 길로 걸으면 되니까.

 

 

 

별첨)


처음 생리를 시작했을 때와 처음 섹스를 했을 때 처음 아기를 낳을 때의 경험은 참 신비로웠다. 처음 겪는 신체의 느낌과 반향과 충격은 뭉쳐지자 신비로 승화됐다. 반복되면서 첫 경험의 신비는 상쇄되고 그렇게 인간은 적응을 한다. 아버지를 잃는 일은 내 신체와는 전혀 무관하게 벌어지지만 가슴이 에이고 쥐어 틀리고 송곳으로 긁히면서 상실감이 말뚝처럼 박히므로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다. 다행히 한 번만 겪으면 되고 반복되면서 익숙해질 일은 없지만 그래서 어쩌면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지도 모르는 슬픔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3일 가슴이 아프고 자식이 죽으면 영원히 가슴에 묻는다지만 나는 조금 다를 것 같다. 왜냐하면 울 아버지를 나는 가슴에 묻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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