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한달 살기 2

결론부터 말하자면, 포기했다. 부산 한달살이는.

그 숙소를 계약하지 않기로 한 후, 가성비 엄청 나쁜 애견호텔에서 하루동안 머물며 폭풍검색을 했다. 해운대고 광안리고 너무 비싸거나 평이 안 좋은 곳을 뺀 후, 애견동반불가란 문구가 있어도, 어른 둘에 강아지 한 마리 있는데요, 얌전하고 배변훈련 잘 됐어요. 구차한 설명에 비루?하게 목소리에 힘을 빼고 묻지만 집주인들은 완강했다. 디파짓을 내고 강아지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겠다고 제의해도 노우,소리는 번복되지 않았다. 로우지랑 같이 살아도 우리집은 깨끗하답니다. 애견을 가축즈음으로 인식하는 거야요? 따지고도 싶고 빈정도 상했지만 역지사지하면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어쩌랴, 안 가본 세상에 대한 불신이 강하거나 부정적인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안되요, 소리의 억양만으로도 그 강경함이 느껴질 땐 바로 예 알겠습니다,로 대답했다.

맥도 빠지고 이 무슨 마음 고생인가란 생각에 마지막으로 딱 한 곳만 문의해 보자, 했는데 글쎄 거기서 승낙이 떨어졌다. 이상하게 나는 포기하는 순간 일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어쨌거나 최선을 다 해 보지만 어느 시점에서 마음을 비우는 건 만사가 내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경험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늘 겸손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사는 중이다^^, 예산은 꽤 오버됐으나 기분 좋은 성과였다. 예산 초과 문제로 우리 세식구는 통창 밖으로 광안대교가 시원하게 펼쳐진데다 발코니에서 차를 마시며 파도소리와 함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숙소에서 단 며칠만 행복하자고 합의했다.

그리고 해변 앞에서 사는 호사를 마음껏 누렸다. 침대에 누워 비몽사몽 수평선에서 탄생하는 일출을 맞이하고 저녁엔 거실 창으로 일몰멍을 했다. 발코니에서 바다에서 펼쳐지는 드론쇼를 감상하고 원하면 아무 때나 광안리 해변을 거닐면서 파도소리를 원껏 들이켰다. 파도가 맨발목을 적시다가 옷에 튀어도 거리낄 것 없었다. 로우지는 어느새 아파트 정원을 산책할 때처럼 모래밭을 뛰어다녔다. 근처를 어슬렁거리면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음식점을 눈여겨 두었다가 맛집 체험을 했다. 돌아보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맛집은 음식맛 뿐 아니라 가성비가 훌륭했다. 싸고 맛있는데 손님이 몰라줄 리 없다. 블로그에 올리고 평점을 후하게 주니 사람들은 줄을 서서라도 그 집 문턱을 넘으려 애쓴다. 나는 주인도 아니면서 가게에 손님이 많으면 행복하다. 반대로 파리 날리는 집을 보면 입술에서 한숨이 샌다. 맛집 투어는 근사한 여행이고 여행지에서는 행복한 사람들이 많아서도 행복해진다. 행복은 전염력이 강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해운대, 광안리, 송도, 송정, 다대포 해수욕장, 달맞이길, 이기대 수변공원, 동백섬, 감천마을, 해동 용궁사, 태종대,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해운대 유람선, 광안리 야경투어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아찔한 바다 위 강화유리다리), 청사포와 미포 간 산책길, 흰여울 문화마을, 을숙도 공원, 블루인라인파크 해변열차(스카이 캡슐)…  (전부 추천합니다^^)

를 경험한 바 있는 우리는 미국인들 휴가의 컨셉처럼 한 곳에서 된장된장?? 겨울바다 뿐 아니라 비교적 푸른 하늘, 흰구름을 감사히 즐겼다(내륙 전체가 미세먼지로 몸살이었다ㅠ). 그리고 약속된 날짜가 되어 일단 후퇴?를 했다. 왜 후퇴냐 하면 우리는 차를 가지고 제주로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혹 숙박소가 좀 구리더라도 매일 나갈 곳이 천지잖아? 아쉬움을 제주행으로 녹이려는 우리 부부는 이럴 땐 참 꿍짝이 잘 맞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