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3주살이 – 제주에서 놓치면 아쉬울 곳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는 사실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2년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OECD 38개국중 36위다(참고로 미국은 16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10중에 대략 6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1명이었다. 제주는 나를 그 10명중 한 명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호르몬이 급감하면서 눈에 띄게 생긴 변화 중 하나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밀려오는 공허함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부산 한달살이를 하려고 짐을 챙기는 중에도 나는 그런 무드 속에 있었다. 대체 삶에서 들뜸이라는 게 사라졌다. 그랬는데 아침에 눈을 뜨며 즐거움을 느끼니 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며칠 전 라디오에서 들은 내용인데(책 소개하는 코너?였으나 제목은 나답게 기억나지 않는다~~) MC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쉰다는 표현을 썼으나 이는 기계적으로 일하면서 받는 일상 생활의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것을 진정한 쉼으로 정의한다. 진정한 쉼으로 인해 하루, 이틀, 일주일, 한달, 두 달 동안 사람이 변해가는 모습을 언급했다. 진정한 쉼 두 달이 되면 원한을 가졌던 사람도 용서가 될 만큼 마음에 힐링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 그거야… 여행지 한달살이가 주는 의의는 그런 거였다. 특별한 이유 없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슴이 태풍의 눈처럼 빈곤 했던, 그 호르몬의 부재를 채워주는 힘, 나는 그 힘을 경험해 봤고 또 경험하는 중이다.

한 스무 번 즈음 왔을까, 그래도 저번에 보지 못한 것을 이번에 볼 수 있는 곳, 자연은 늘 그렇지만 시시때때로 다른 풍광의 소유지, 그런 곳이 제주다.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을 대했을 때, 특히 처음 보는 광경에 감동을 받으면 다이돌핀이 샘솟는다. 제주는 섬 전체가 보물이며 우리는 보물찾기를 하면서 이 호르몬 치료를 받는 것이다. 세월의 힘일까, 요즈음 나는 멋지다는 감상 속에 또 다른 감정이 끼어드는 것을 인지한다. 바로 감사다. 이 멋들어진 자연에 감사하고 조물주께 감사하고, 곁에 든든히 존재하는 가족에게 감사하고, 그런 순간의 맞닥뜨림에 감사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신학자이자 시인인 존 헨리 뉴먼이 말했듯이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 해독제, 방부제다. 제주살이 하면서 찍히는 사진 속 모습이 어떨 땐 회춘을 한다. 해독제와 방부제 때문이다.

돌, 바람, 해녀가 많은 제주에 또 하나 많은 것이 있다. 바로 오름이다. 오름은 산을 뜻하는 제주 방언인데 한라산이 폭발하면서 생긴 작은 화산으로서 360여개가 있다. 하루에 한 오름씩 오르면 일년 걸린다는 말은 그래서 생겨났다. 제주의 오름은 생김새, 고도, 특색, 서식환경이 달라서 제각각 색다른 멋을 품고 있다. 15분 내외면 오를 수 있는 곳도 있고(아부오름, 금오름, 용눈이오름, 문도지오름, 군산오름…), 등산화와 물을 준비해 갈 오름도 있다(노꼬메오름, 거친오름, 동검은이오름). 한반도 내륙에 있는 일반 산과 같은 느낌을 주는 곳도 있는 반면(새미오름) 들판이나 초원이 솟아오른 느낌을 주는 곳도 있다(새별오름, 용눈이오름). 정상에서 사방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광경에 취하기도 하고(대부분) 눈 앞에 분화구가 펼쳐져 있어서 백록담을 보는 착각이 들며 탄성이 절로 뿜어져 나오는 곳도 있다(다랑쉬오름, 금오름). 일몰이 훌륭한 곳도 있고(금오름, 따라비오름, 백약이오름, 군산오름) 일출이 아름다운 곳도 있다(말미오름, 영주산,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제주에는 바다도, 희귀한 나무와 꽃도, 돌도 있지만 오름이 있어 제주다.

제주에 매우 익숙한 편이 아니라면 레일 바이크를 타고 용눈이 오름을 한바퀴 돌아보길 권한다. 오름에 올라도 좋지만 오름을 관망하는 3,40분 동안, 그 매우 이국적인 풍경 때문에 몽골에라도 와 있는 황홀경에 빠진다. (레일바이크 표는 미리 웹사이트에서 구매하면 싸다)

오름을 자주 오르다 보면 다리의 근육과 심장의 힘이 길러지는 것을 느낀다. 오르면서 육체가, 내려오면서 정신이 건강해진다. 제주에는 바다와 희귀한 식물과 꽃과 돌이 있어서 아름답고 오름이 있어서 육체와 정신이 건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