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모녀

(1)작은 아이

길을 가는데 앞에 있는 모가 녀에게 말을 한다.

‘세상에… 땀 좀 봐, 얘, 왜 이렇게 땀을 흘려? 땀 좀 그만 흘려…’

엄마는 휴지로 딸의 땀을 닦아주면서 놀란 듯 말했다. 아침에 흐렸던 하늘이 쨍하니 맑아졌고 쌀쌀한 아침기운에 맞춰 옷을 입은 아이는 땀이 나는 걸 어쩌지 못하여 삐질삐질 번뜩이는 얼굴을 엄마 손길에 맡기고 있었다. 나는 순간 땀을 어떻게 그만 흘릴 수 있지? 란 생각을 하고 말았는데 이어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엄마는 안쓰러워서 한 말일테고, 이것은 사랑으로부터 생겨난 안쓰러움일테지만… 옷 한 겹을 벗겨주거나, 옷을 못 벗길 상황이면 이렇게 땀을 흘리다니 얼마나 덥냐고 위로를 하거나, 시원한 곳에 들어가서 시원한 거 사줄까, 물어보거나, 너무 더운 옷을 골라줘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거나…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이다.

딸아이는 예닐곱 살 정도 되는 작은 아이

착한 아이는 엄마의 말을 듣고 어찌 하면 땀을 안 흘릴 수 있을까… 어리둥절 할 지 모르겠다. 땀이 나서 힘든데 엄마 말 대로 땀을 안 흘리는 방법을 몰라 속이 상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엔 아직 어린아이, 엄마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을 수도…

나는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봤다. 햇볕이 우리 몸을 깊숙이 찔러 누구든 얼굴에 불그레한 윤기를 내고 있었지만 유난히 벌건 아이는 환하게 드러난 천지 아래 해맑게 웃는 얼굴이었다. 아! 아이는 얼굴과 목덜미를 근질이던 땀방울을 시원하게 거두어 주는 엄마의 손길에서 사랑만 느끼는구나… 물론 개운해서 기분이 좋을 수도 있지만 아이의 눈동자는 울 엄마가 나를 이만큼 사랑해준다는 자부심 또는 만족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말을 해석하기 보다 엄마의 손길을 해석하는데 능한 아이. 그것은 이 모녀간의 사랑방식인 게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사랑방식일 수도… 말은 타인과 타인사이에서 생각과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이지만 친밀한 사이에서는 조금 다르게 사용되기도 한다. 웬수라거나 돼지라거나 몹쓸 것, 이라는 단어조차 사랑을 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말보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익숙하지 않은 타인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일을 우리는 늘 자제해야 한다.

하마터면 내 잣대로 어떤 엄마의 사랑을 재단할 뻔했다. 나는 눈이 마주친 아이에게 슬몃 미소를 지어주고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2)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아이는 크면서 생각의 깊이가 달라지고 출렁대는 호르몬으로 생의 갈피를 잡기 어려운 시기를 맞이한다. 이때는 똑같은 말을 듣고도 다르게 반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지금처럼 엄마의 말을 사랑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말대꾸를 하며 논리적으로 따지려 들지 모른다. 대체 더운데 땀을 어떻게 그만 흘릴 수 있죠? 엄마가 보여주세요… 엄마는 왜 모든 탓을 나한테 돌리죠? 울 엄마는 원래 저러지… 하고 시크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말이 안 되는 말에 질렸다고 고개를 저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엄마는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을 하고 말을 신중히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가 잠시 낯선 타인이 되는 때에는, 타인과 타인의 마음은 말을 통해서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관계형성에 있어서 결정적인 수단이 되므로 엄선해야 한다. 아이가 사춘기일 때 엄마는 귀한 사랑을 귀하게 전하는 방법을 속 깊게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잘 모를 땐 침묵이 답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