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라네~ 중간 날까지

길고 소박하고 천장이 낮은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다짜고짜 내 딸들이 하와이에 살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었다. 이 정도면 한국서 어렵지 않게 오갈만한 거리인데다 사람들의 두둥실 흥과 여유로움… 새파란 하늘로 뻗어 오른 야자수, 불순물 적은 들숨의 쾌적함에 왠지 모르게 제주도 같다는 친근함까지… 하와이의 첫인상은 그런 바람을 갖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하와이로 쏟아져 들어온 여행객들이 휘영청 많았다. 우리는 와이키키까지 가는 시내 버스를 탔는데 공항을 도는 동안 두대를 이은 긴 버스는 승객들로 가득 찼다. 버스비는 3불이고 거스름돈을 주는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나는 버릇대로 차창밖에 있는 광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창문에 얼굴을 박다시피 시선을 고정시켰다. 차라면 20분 정도 걸릴 거리가 시내를 훑으면서 정체로 거의 한 시간 가량이 소요되고, 삭막한 도시풍의 창고 닮은 건물들, 간간이 인도에 세워진 홈리스들의 텐트가 두번째 인상을 만들었다. 아! 이것은 하와이의 속살인가…

두 남자의 말이 한꺼번에 들어있는 내 머리속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는 어느 순간, 인도를 점유한 홈리스 텐트들이 나타나서 신기하게 바라봤는데 나무 판자로 듬성듬성 이어 만든 좁은 이등변 삼각형 상자속에 낑겨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을 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사람은 벽에 낙서를 하듯 나무판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새장이라는 표현은 과분했다. 아니, 대체, 왜 그런 곳에서? 순간적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모습이지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아니, 대체, 왜? 몸에 꽉 맞는 나무상자가 그 사람에게 주는 위로가 무얼까? 나는 연민과 안쓰러움, 측은함으로 무거워진 가슴때문에 한동안 거리의 풍경을 눈에 새기지 못했다. 허나 그곳은 감옥이 아니니 그는 분명 좋아서 그렇게 하고 있을 터이고 적어도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내가 함부로 내 감정을 들이댈 필요는 없을 듯 했다. 그래, 그는 하와이에서 그럴 자유가 있는 거다! 나는 극심히 부풀어 오른 동정심을 애써 뭉게 버렸다.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그러는 동안 나는 두번째 인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창고 같은 낮은 건물이 이어지다가 소박해 보이는 차이나 타운으로 들어서자 근거리에 높은 건물이 등장했다. 몇 개만 높은가? 했는데 연속적으로 고층의 화려한 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내리는 지점에 이르자 사방은 삐까번쩍,하고 밝고 흥으로 넘실댔다. 사방은 화사하고 예쁜 꽃과 나무가 흐드러지고 야자수는 하와이의 정체성을 한껏 드러냈으며 사람들은 마음껏 웃고 떠들면서 열심히 걸어 다녔다.   

우리는 일정 중 절반을 차 없이 와이키키에 머물렀다(주차가 녹록치 않은 와이키키에서는 대중교통이나 트롤리를 이용하면 좋다). 그 유명한 와이키키 비치는 해운대나 대천해수욕장처럼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와이키키라는 지역에 있는 모든 해변을 통칭하는 일반명사였다. 멋진 해변이 지천에 널렸지만 ‘와이키키 해변’이 유명한 이유는 호텔과 쇼핑센터, 레스토랑 등이 밀집해 있어서 관광의 도가니 같기 때문인 듯 했다. 나로서는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성수기 한국의 바닷가처럼 상업용 비치파라솔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사람이 바글바글 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새벽에 나가 자리를 깔고 누웠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니 앞에서는 보드강습 자리가 펼쳐졌고 주변은 상업용 파라솔로 가득했다. 미리 자리를 잡고 앉은 개인에게 비키라는 월권은 행사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일까, 한국과는 그 점이 달랐다. 돈을 내면 파라솔과 선베드를 든 직원이 따라와 원하는 자리에 삽으로 모래를 신나게 파서 파라솔을 꽂아주는 시스템이었다.

와이키키는 화려하고 세련되고 낭만이 넘치고 럭셔리 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인파를 보듬은 그곳은 맑고 깨끗했다. 비취색 바다는 오염과는 거리가 멀었고 수많은 인파에도 불구하고 쓰레기가 나뒹구는 거슬림은 극히 적었다. 화려한 리조트의 한 귀퉁이에 낡은 홈리스 텐트가 쳐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조차 피서객의 변형으로 보일 뿐이었다. 우리 숙소 앞에는 일정 시간에 출근하듯 진을 치고 소리도 지르는 홈리스 한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다 합쳐도 거기에 우글거리는 집을 가진 사람들에 비하면 티끌 정도였다. 아, 한국 아자씨의 말이 맞았네…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흡사 바다 정원에 세워진 도시 같은... 와이키키에만 머물다 왔다면 나는 분명 그런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