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지 한달

새 집(new & brand new)으로 이사하는 일이 신나지만은 않았다. 외려 한숨이 나왔다. 연일 섭씨 35도 찜통속이라는 계절적 부적절성과, 19층에 살 때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한정 없이 기다리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27층에 살게 되다니, 가슴이 무거웠다. 새집증후군은 두통을 일으킬 것이다. 또 대로 옆 전면동이라 창문을 열면 차바퀴가 노면에 마찰되는 소리가 적나라하다. 중소형 평수대만 있어서인지 인생의 파릇파릇한 주민들만 보였고 사방이 공터에 새로 지은 단지라 편의시설도 없었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걸어서 마트나 식당, KTX역사, 전철역, 백화점을 드나들 수 있었기에 여러모로 비교가 됐다. 그러면 굳이 이사를?... 역전세가 된 금액만큼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주인의 제안까지 뿌리치고 왜 이사를…? 그건 당연한? 이유지만 훨씬 싼 전세금 때문이었다. 대단위 단지에 막 입주가 시작된 곳이라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보증금이 혹독하게 저렴했다.

이 기회를 놓는 건 그간에 두배로 뛴 은행 이자가 비웃을 일이다. 내가 만만해? 라면서 말이다. 한동안 마음이 스산했지만 가성비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나의 갈 길은 뻔했다. 세상에 다 좋은 게 어디 있겠어… 라면서 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 중 해결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찾아보니 딱 한가지였다. 여러 건자재에서 화학품 냄새가 스며나와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새집증후군을 줄이는 것. 새 집이나 새로 인테리어를 한 경우도 입주 전 베이크 아웃을 충분히 하라는 환경부 권고가 있다.

72시간 동안 가구의 모든 서랍과 문을 열어놓고 섭씨 40도로 보일러를 가동한 후 창문을 꼭 닫아 둔다. 한낮 기온이 35도인지라 보일러를 조금만 틀면 40도가 될 것이다. 폴리싱 타일이 깔린 거실은 그냥 찜질방이었다.  이후엔 창문을 7,8시간동안 열어 충분히 환기를 시켜야 해서 문이란 문을 전부 열어 제치고 약간의 정리를 하는 동안 몸뚱이가 푹 젖었다. 기왕 뜨끈한 바닥에 누워 제대로 찜질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그러다간 질식사 할 수도 있으니… 나만의 찜질방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간다. 순간, 나는 완벽한 어리둥절에 부딪친다. 세상에, 온 세상에 에어컨이 켜졌을까?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졌는가 했지만 정확히 35도였다. 순간 나는 원효대사의 해골물이 떠올랐다, 일체유심조라… 게다가 ‘느낌이란 상대적’이라는 사실과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선인의 말씀이 머리속에서 가지치기 한다. 더 뜨거운 것 앞에서 덜 뜨거운 것은 오히려 시원한 법이라. 즉 뜨거움은 절대성이 아닌 상대적인 느낌이며, 이를 결정하는 것은 마음이다. 그래서 춥다춥다 생각하면 **대사?처럼(존함이??ㅠ) 펄펄 끓는 구들방에서도 수염에 서리가 내려앉는 것이다!!

젊어 고생을 하면 훗날 닥치는 고생은 한결 덜 힘겹게 느껴질 것이다. 처음에 40도를 경험하면 이후 35도를 시원하게 여길 수 있는 원리처럼...

아무튼, 나는 섭씨 35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계기로 마법에 걸린 듯 새 집을 새롭게 조명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때까지 집에 대해 단점만을 보려 노력했을 지 모른다. 굳이 이사 안 갈 이유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청소를 하고 이사를 하고 한달을 살면서 발견한 새 집의 장점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문을 닫고 바라보면 뻥뷰가 환상이고, 엘리베이터는 2배속으로 움직이는데다 집안에서 미리 콜을 하고 알람이 울릴 때 나가면 맞춤 맞게 엘리베이터문이 열린다. 집 안 전체 환기정화시스템은 CO2와 미세먼지 레벨과 연동되어 게이지가 올라가면 자동으로 공기청정을 실시한다. 또 옷방 천장의 가습기는 물먹는 하마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옷의 뽀송함을 유지해준다. 주차장 간격이 넓고 마스터키를 대면 출입문 열림과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대령한다. 지상엔 Japanese garden처럼 못도 있고 조각작품, 테이블과 나무그네 등등 휴식공간이 가득하다.

그런데 특히 공동주택에서는 집의 내부나 외적인 구조물도 중요하지만 이웃에 따라 행불행이 좌우된다. 아기용품으로 가득했던 윗집 복도를 보면서 층간소음을 각오했건만 우리집 천장은 고요하다 못해 정적이 흐른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인사했던 옆집 신혼부부는 맛있는 포도를 건네며 우리집 문을 먼저 두드렸다. 젊은이들의 세상에 소수로 존재하는 구혼부부를 친근한 이웃으로 받아주는 인생의 파릇파릇한 사람들… 작은 아이들의 부모를 보면서 나는 즐거웠던 추억을 소환하여 미소 짓고…

기대치가 낮았던 새 집이라서 더 그럴라나? 한달동안 나는 가성비 끝판왕의 행복을 소복이 누리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