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이 있을 때

남편이 거듭 말했다. 2월에 제주도 한달살이 갑시다! 이번 해엔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는 남편이 진심인지 아닌지 갸우뚱 했다. 2월에 설날 들었는데요?? 남편도 갸우뚱 한다. 작년엔 1월 아니었어?? 정부의 R&D 예산이 깎이고 이런저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던 남편은 달력에 태음력, 태양력, 태음태양력이 있음을 잠시 잊은 모양이다.

우리가 셈하는 1년 365(정확히는 365.24)일은 태양력이다. 태음력의 1년은 354(.36)일이다. 즉 음력은 약 11일 차이가 난다. 3년이면 33일 차이, 9년이면 99일 차이, 이대로 가면 음력 1월은 겨울이다가 가을이 되고 여름이 된다. 이 혼란을 없애기 위해 윤달을 넣어 보완한 것이 태음태양력이다. 19년에 7번 윤달을 넣어 월과 계절을 일치시킨다. 이런 연유로 음력설은 양력 1월과 2월을 오가는 것이다.

요즈음은 설날이 음력 1월 1일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양력설과 음력설이 병존했다. 그때 누구네는 양력설을 쇠고 누구네는 음력설을 쇠었다. 이 혼재에는 깊은 역사가 있다.

태양력(그레고리력)이 한국에 도입된 것은 조선말기 고종황제 때였고, 양력설의 시작은 황제의 칙령이 내려진 1896년부터였다. 양력설과 음력설의 양립은 이 때부터 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압적으로 양력설만 휴일로 지정하고 음력설을 탄압했다. 대다수의 선조들은 양력설을 왜놈설로 부르며 음력설을 고집했다. 이후 1989년까지 국가가 정한 휴일은 양력설이었다. 

1985년에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 아래 음력설이 하루 공휴일이 되고 

1989년(2월1일) 대통령령을 개정해 ‘설날’로 명칭을 바꾸고 연휴를 사흘로 지정해서 

1990년에는 음력설과 양력설을 모두 사흘씩 쉬었다. 

허나 1991년에는 양력설에 이틀을 쉬었고 

1999년부터 신정이라는 표현을 없애고 하루만 쉬었다. 

이리하여 한국은 1990년부터 명실공히 음력설을 쇠는 나라가 된 것이다.

한편 우리집 제주행의 역사는 3년 전부터 생겨났다. 나처럼 남편도 제주에서 보낸 시간을 지극한 힐링으로 추억하면서 다음 해에도 제주의 자연을 걷고 오르고 바라보며 한 해 버틸 힘을 모을 꿈을 꾸었다. 하지만 설에 양가를 찾아 뵙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가느냐 마느냐, 이것은 문제였다. 명절 챙기기는 한국살이와 함께 시작된 당연지사였지만 미국에서 오랫동안 자유롭게 지내다가 한국에서 맞이한 첫 명절에 나는 몸살을 앓았다. 그만큼 버거운 것이 또 명절인 것이다.

가느냐 마느냐로 갈등하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남편 직장에서 새로운 스트레스가 발발했다. 그것이 촉발제가 되어 생각이 정리됐다. 지혜롭고 자유롭게!! 우리는 보다 실용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서둘러 양가와 울 아버지를 찾아 뵌 후 짐을 쌌다. 잘 쉬고오라는 격려가 손놀림을 가볍게 했다. 미적대던 마음으로 인해 한달이 반으로 줄었지만 이도 감지덕지다.

지혜롭고 자유롭게!! 이것은 특히 문화와 개인간 갈등이 있을 때 참 좋은 기준이란 생각이 든다. 한번 사는 인생, 후회와 아쉬움을 없애는 것도 생을 잘 버티는 한가지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