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메뉴는 안 되세요

나는 한동안 한가지 의문을 머리 속에 담고 있었다. 그 의문은 몇 개월 전에 생겨난 것이다. 전화로 세일즈 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 제품이 요번에 행사를 하세요. 두 개를 사시면 한 개 더 드리세요. 좋은 기회시니까 이럴 때 하나 장만하세요….’ 그때 나는 그 아주머니의 ‘세’자 와 ‘시’자가 섞인 재공략(再攻略)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문득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 미국에서 오래 사시다보니 한국어가 많이 헛갈리는 모양이구나. 또 하나, 아! 고객을 최대한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이 그런 어법을 구사하게 했을지도… 그때는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일까. 한국에 오니 온통 ‘시’자와 ‘세’자 어법의 천국이 되어 있었다. 주로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분들이 사용하는데 ‘너도나도’이고보니 다수의 횡포라고 나는 내 상식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한글어법에서는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고, 사람에게는 높임을 쓰지만 사물과 일반 명사 등에는 존대어를 쓸 수 없는데… 아, 미국에 살 때는 영어를 모르겠더니 한국에 오니 한글마저 미궁이구나… 그렇게 나는 씀바귀를 씹은 심정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차에 한글날을 맞이해 요즈음 몸살을 앓고 있는 높임말 인플레에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기사들덕에 내 의문은 풀렸고 내 한국어가 미궁에 빠지지 않은 사실을 알고 쾌변을 본 듯 심신이 가벼워졌다.

대체 그런 풍토는 왜 생긴 걸까?

높임말 실수 1위를 보니 ‘그 메뉴는 안 되세요’라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을 제대로 고치면 주어가 ‘메뉴’이므로 서술어는 ‘안 되요’가 되는데 그렇게 말하면 어감상 낮춤말처럼 들린다. 그러다보니 혹가다 왜 반말을 하느냐는 고객의 항의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종업원들에게 열심히 존대어를 사용하라고 교육을 시키는 업소주가 생겼고 그것이 존대말이라면 무조건 ‘시’와 ‘세’를 붙이는 유형으로 남발되어 퍼진 모양이다. 그래서 이 색상 예쁘시죠?, 환자분 주사 맞으실게요 (주체 높임형 선어말어미 '-시'와 약속형 종결어미 '-ㄹ게'가 함께 쓰인 잘못된 표현으로, 〈~할게요/~하겠습니다〉가 바른 표현). 현금으로 결제하시면 할인이 되세요… 등등의 오류가 상용되고 있는 것이다.

과유불급, 넘치는 것은 모자란만 못하다. 존대말 역시 마찬가지다. 존중의 마음을 담아 어법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 마치 설탕 범벅 데코레이션만 요란한 케이크보다는 적당한 크림에 섞인 빵 맛이 살살 녹는 케이크가 상등품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