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둥이가 생기다

지금 차가운 내 발을 따땃하게 덥혀주고 있는 난로는 Rosie다.

우리집 강아지는 복슬 강아지,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꼬리치며 반갑다고 멍멍멍

이 가사는 분명 예쁜 강아지를 키워본 사람이 썼을 거란 생각에 새삼 미친 것도 Rosie때문이다. Rosie는 사람이 앉아있는 발치 옆에 엎드리거나 무릎 위에 올라앉기를 좋아한다.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좋다고 난리를 치는 Rosie를 보면 상냥하고 붙임성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처럼 마음이 푸근해진다. Rosie는 대문 버튼 소리가 나거나 인기척이 들리면 하던 일을 딱 멈추고 현관 앞으로 달려간다. 유리문을 통해 사람이 보이기도 전부터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그러다가 현관문이 열리면 요동치는 꼬리는 정신이 없다. 까맣고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동그랗게 치켜뜨고 뒷발로 점프하는 강아지와 인사하느라 우리집 식구들은 어느덧 사람과의 인사가 뒷전이 돼 버렸다.

Rosie가 우리집에 오기 전까지 남편과 나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키우는 건 물론이요 아무리 작고 귀여운 강아지라도 만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dog fearer?였다. 사실 남편은 지금도 Rosie가 이빨로 물려 하거나 왕왕, 짖어댈 때면 슬그머니 손발을 숨기거나 도망을 간다. 하지만 두 달된 꼬맹이 적에 우리집에 와서 엄마가 그리워 입을 꾹 다문 채 목울대에서 긴 소리를 뽑으며 우는 모습을 지켜본 내게 Rosie는 모성애를 자극하는 아가일 뿐이다. 제 엄마 옆에 나란히 누웠던 시절의 그리움때문인지 안아주는 것보다 사람의 신체 어딘가에 붙어 엎드리는 것을 좋아한다. Rosie는 막 젖을 뗀 후 우리집에 와서 한동안 사료를 안 먹어서 애를 태웠는데 모유 먹다가 우유로 바꾸었을 때 젖투정하는 아기와 다를바 없어서 생명의 신비마저 느껴졌다. 밤에 일어나 낑낑댈 때면 엄마를 찾는 것이 확연해 가슴이 짠했지만 엄마 있는 집으로 돌아가면 천덕꾸러기가 될까봐 감히 돌려 보낼 엄두를 못낸 채 밤이면 더욱 누군가의 곁으로 오고싶어하는 녀석과 씨름하느라 나는 하루하루 힘이 들었다. 마음도 아팠고 잠을 푹 못 자니 몸이 지쳤다.

그러고보면 애완견들은 대부분 이산가족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 한번에 여러마리를 출산하는 개들의 번식력 탓에 새끼들은 하나, 둘씩 다른 집으로 입양되기 마련이다. 힘들게 출산을 하고 젖을 먹이고 혀로 핥아 몸을 닦아주던 자식이 하루아침에 보이지 않게 되면 그 어미의 심정은 어떨까… 혹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덩컹 내려 앉는다. 인간과 동물이라는 차는 있을지언정 같은 어미란 입장으로 생각하니 힘들더라도 Rosie를 따스히 품어주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였다.

이후부터는 힘들다고 투덜대기보단 기본적인 훈련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우선했다. 사람 무는 버릇이 들면 안 되겠기에 슬쩍슬쩍 이빨로 장난칠 적이면 엄히 꾸짖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걸 못하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인형도 사주고 양말짝도 던져주고 공도 주고 개껌도 주었건만 손에 넣은 것에 금방 시들해지는 건 사람이나 개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Rosie는 제 집에 갖춰진 장난감보다 세상에 널린 각종 사물을 탐험하는 정신을 투철히 발휘했다. 특히나 못하게 하는 것을 몰래하는 쾌락은 못말릴 재미인가 보다. 나는 화장을 코코넛 오일로 지우는데 안방 휴지통을 뒤져 코코넛 오일이 묻은 휴지를 물어뜯는 것을 어찌나 즐거워하는지… 휴지뿐 아니라 화장품에 들어있는 화학성분을 먹으면 탈이 날까봐 이놈, 하고 큰소리를 치면 잽싸게 도망가면서도 입에 물은 휴지는 결코 놓지 않는다. 어찌나 영리한지 우리집에 온 지 하루 반 만에 응가를 가렸는데도 심술이 나거나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구역이 뚫렸을 때는 어김없이 가서 실례를 저지른다. 제 구역으로 확보하고 싶은 욕망때문인지 무조건 싸고 본다. 못 말릴 악취미다. 응가냄새가 나면 그곳을 화장실로 상용한다기에 매번 식초로 닦는데 그래서 우리집 사과식초는 응가냄새 지우는 용으로 전락해 버렸다. 나는 때때로 심술이 나 식초 묻은 휴지를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코에 들이댄다. 그러면 녀석은 화들짝 놀라 뒤로 줄행랑을 친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깔깔거리며 스트레스를 푸니 이쪽도 악취미이기는 마찬가지다.

Rosie는 딸들 없을 때만 내 책임이 되기로 했지만 함께 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영, 속은 느낌이 든다. 나갔다가도 밥 줄 시간이 되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허기진 배로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여기저기 똥오줌이 널려 있으면 화장실에서 밥을 먹을 순 없으니 그것부터 치우느라 짜증이 불뚝거리며 솟는다. 그럴때 녀석은 내 주위를 배회하며 미안해요. 하지만 나는 아가잖아요,라고 머루같은 눈동자로 말을 한다. 그러면 백발백중 싸늘했던 내 눈빛이 슬그머니 녹아내리지…

생후 넉 달이 된 녀석은 이제 온갖 말썽을 도맡아 부린다. 문이 열려도 빼꼼히 쳐다만 보고 따라나올 생각을 못하던 베란다나 화장실, 현관문밖까지 행차해서는 바닥을 핥아대고 화분의 흙을 파먹고 전선줄이나 싱크대문을 이빨로 갉으며 앞발 돋움을 즐겨해서 발톱자국이 집안 곳곳에 산재하기 시작했다. 그 중 최악은 제 화장실에 제법 잘 누던 응가를 바닥은 물론이요 특히 발깔개나 부엌 매트 위에 마구 실례를 해서 빨래를 덤으로 선사해 주는 일이다. 안 보이면 무언가 말썽을 피우는 중이란 공식을 세워놓은 Rosie는 겁 많은 두 딸을 키우면서 겪어보지 못한 육견(育犬)의 노고를 톡톡히 경험하게 한다. 이쪽에서 응가를 치우고 있는중에 저쪽에다 또 실례를 저지르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럴 때면 그야말로 뚜껑이 열려 나는 구름속 천둥처럼 울어댄다. 이 가을, 우리집에 국화가 많이 피게 된 이유다^^

Rosie는 두 달동안 무섭게 쑥쑥 자라 몸피도 커지고 배설물 양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성견이 되면 꽤 커질거라는 말을 들으면 아파트 안에서 몸집 큰 개를 키우는 일이 은근히 염려되면서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드니 그건 내게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무렵 우리집에 두 마리 개가 입양되어왔는데 한 마리는 아랫방에 살던 친구네가 키우고 한 마리는 우리가 키우기로 했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개를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걸 좋아해서 문을 열어놓고 오가는 사람들이 강아지를 볼 수 있게 그 앞에서 놀았다. 그러면 사람들은 가만히 쳐다보기도 하고 직접 만지거나 심지어는 강아지랑 한참 놀다 가기도 했다. 그때만해도 예방접종을 한다거나 피부약을 발라주는 일이 없었으므로 강아지는 모든 병균에 무방비상태로 놓여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어른들은 손을 탔다,는 표현으로 강아지의 상태를 우려하기 시작했는데 왜냐하면 친구네 개는 부쩍부쩍 크는데 반해 우리개는 계속 작은 사이즈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순간 나도 위기감을 느꼈고 이후부터 사람들이 만지지 못하도록 대문 안에만 넣어두었지만 개는 곧 시름시름 앓더니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하늘나라로 갔다. 강아지는 친구들과 함께 뒷산 어딘가에 잘 묻어주었지만 그 일에 충격을 받고 이후로는 개를 키우겠다는 생각을 못할 뿐더러 dog fearer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더이상 dog fearer가 아니다. Rosie 덕분이다. 세월을 보내면서 하나,둘씩 제 힘으로 자립할 수 있는 인간과는 다르게 한없이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애완견. 인간을 좋아하는 피조물로서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라고 태어난 생명체. 말썽을 부리고 기운 없는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지만 Rosie는 우리집 늦둥이로서 우리 가족의 사랑 없이는 의미없는 생명이 되어 버렸다. 내가 늙어가는 동안 나의 찬 발목을 따뜻하게 덥혀주며 함께 늙어갈 Rosie… 아마도 내 생애 (애완견으로서) 마지막이 될 인연이지 싶다…… 더 더 잘 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