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4개월을 살면서 느낀 점
온 세상이 미끄럽다. 이번주 내내 그랬다. 한국에서는 지구 온난화로인한 이상기후때문에 삼한사온이 사라졌다더니 빈말이 아닌 듯 싶다. 눈이 와도 녹기를 고대하는 마음은 향수처럼 그리움을 담고 있다. 겨울이면 호되게 춥고 허여멀건한 MA에서 살면서 3일동안 눈이 와도 4일 째엔 녹아내리는 한국의 겨울을 동경했는데...
처음 매사추세츠로 이사갔을 때 맞이한 겨울은 강렬한 기억이 화인처럼 박혀 눈 이야기만 나오면 자꾸 되새김질하게 된다. 첫 눈은 끝 눈까지 남아 정작 봄이 되어도 여기저기 얼음동상으로 건재하며 꽃가루를 덧입고 색깔도 곱게 반짝거렸다. 눈길 속을 운전하다가 다른 차량이 와 부딪기도, 내가 앞 차를 박기도 했던 경험때문에 눈만 오면 ‘내가 목숨을 내놓고 다니지…’라고 중얼대며 운전대를 잡곤 했다. 보스톤 다운타운에 살지 않는한 운전 없이는 생활도 없는 곳… 적어도 겨울의 4개월여동안은 시시때때로 내리는 눈을 신속하게 치우는 작업이야말로 사회를 돌아가게하는 원동력이다. 지금 생각하면 매사추세츠의 제설작업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제설기에서 뿜어올려지는 눈은 공중을 휘감고 떨어지며 밀키웨이처럼 반짝인다. 러인브스토리의 두 주인공이 눈밭에서 뒹굴며 뱉어내는 그 하얀 입김처럼 세상은 로맨틱해지는 것이다. 또 Highway 출구로 줄지어 나온 너댓대의 제설차가 차선별로 나란히나란히 늘어서서는 마칭밴드의 보폭 맞춘 행진처럼 앞으로 전진하며 눈을 걷어내고 뒤꽁무니로는 염화칼슘을 뿌린다. 그러면 그 너른 4,5차선의 고속도로가 말끔하게 눈세수를 한 후 맨얼굴로 반짝인다. 주택에서는 너무 높게 쌓이면 한꺼번에 치우는 일이 버거우므로 눈이 내리는 중간이라도 주인장들은 내키면 제설기를 돌리거나 삽질을 시작한다. 가만 두면 무릎까지는 우습지도 않게 차오르는 적설량이다. 업체에 맡기는 주인들은 제설차가 방문할 때마다 경비를 지급(일반적인 계약형태) 하므로 웬만하면 알뜰살림을 꿈꾸지만 업체는 나름대로 찬스가 기회이므로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조금 더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공동주택단지에서는 필요하다면 한밤중이나 꼭두새벽이라도 신속하게 미끄덩거리는 눈비늘을 싹싹 걷어낸다. 많은 거주민중에 누군가 외출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스노우 스톰에대한 대응체제가 탁월한 매사추세츠는 인간이 얼마만큼 환경에 적응해 잘 살아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반면 조지아에서는 눈만 내리면 그 너른 땅의 모든 일이 정지되었다. 학교와 회사 심지어는 마켓까지 문을 닫았다. 일년에 고작해야 한두번 내리는 눈을 치우기위해 장비와 대책을 마련하는 비용을 따지면 그 편이 남는 장사가 되리라. 약 15년 전, 처음 한국에서 조지아로 건너갔을 때, 스톰으로 전기가 나가 이틀동안 냉골에서 세 식구가 껴안고 체온에 의지해 버티다가 도저히 더 견딜 수 없어 1시간여를 헤맨 끝에 비어있는 호텔을 찾아 들어간 적이 있었다. 난방 온도를 있는대로 올리고 감기는 눈을 주체치 못하고 쓰러져 자고 일어났더니 온 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혹시나 해서 들고 간 어항에서도 물이 녹자 죽은 줄 알았던 물고기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한참동안 넋놓고 바라보다가 나는 무언가 속았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억제치 못했다. 대체 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며 부국이란 말인가. 한국보다 못한 나라이지 않던가. 세상에 눈이 온다고 사회가 마비되질 않나, 한겨울에 전기가 나갔는데 이틀이 지나도 복구가 안 되질 않나… 아무튼 그땐 지구상의 최대 강국에대한 불신감때문에 퉁퉁 부운 몰골에다 머리마저 어지러웠었다.
내가 만약 조지아에서만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면 그런 의구심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을 지 모른다. 부자지만 눈에는 약한 나라, 뭐 그런 정도의 정의를 내렸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 매사추세츠에서 그 의혹을 전부 풀어버렸기에 미국이란 나라는 현명하면서 합리적인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대한 땅덩어리때문에 제설정책조차 다양성이 필요한 나라… 거대한 땅덩이 덕에 세계 각국 사람들이 모이고 인종의 다양함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나라… 거대한 땅덩이 덕에 옆집 사람과 내가 한참 떨어져 사니 서로 달라도 이상할 것 없는 나라… 다양한 샐러드로 비유되는만큼 개성과 독특함과 상이함이 존중되고 빛나는 나라… 이것이 바로 거대한 땅덩이를 소유해서 가지는 미국의 혜택이라면 과연 작은 땅덩이를 가진 한국에서는 그 장점이 발현될까? 그것이 궁금해졌다.
최근 다양성에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때문에 다양성이 많이 부족한 나라라는 말도 되씹어보게 되었다. 한번 유행이 퍼지면 그것만이 진리인듯 만연되는 나라… 다른 사고를 가진 타인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나라… 그래서 한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찰지게 비벼지지 않는 자스민쌀같은 나라… 공익보다는 사익에 선뜻 마음이 기우는 나라… 똑똑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지만 현명함이 부족한 나라… 좋은 매너가 몸에 베어있지 않은 나라…
나는 한국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보다 나은 사회가 되기위한 단점이 개선되었으면 좋겠고 나도 모르게 그 해결책을 자꾸 궁리하게 된다. 단점을 알면서도 인정하려들지 않고 정당화시키기에 급급하다면 미래는 없다. 그만큼 쪼잔한 짓도 없다는 생각이다. 먼저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첫번째 단계이다. 그러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선명히 구분된다. 그러려면 너른 시야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경험을 많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 다양한 경험이 안목과 지혜를 키워주기 때문이다. 일단 안 좋다고 결론이 내려진 상황은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 찾아야 개선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말 할 것도 없이 실천이다!!
어느 하루는 막내가 학교에서 놀랐던 일에대해 이야기했다. 한 친구가 필통을 떨어뜨렸는데 도와주는 친구가 자신 뿐이었다고 했다. 한 친구가 시험지를 걷을 때 시간이 모자르다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식당에서 길게 늘어선 줄 사이를 누군가 통과할 수 있도록 다른 아이들이 자리를 내주지 않아서 자기가 앞을 터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태어나 10여년간을 살다가 현재 한국에서 4개월여를 살고 있는 막내는 왜 그런 시답잖은 일로 놀라는가? 그때 나는 서로 연관된 단어 잇기 문제를 풀 듯 다른 한 편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뒤의 너른 공간을 놔두고 타인 앞의 좁은 공간을 양해도 없이 왔다갔다하는 엄마, 공공장소에서 아이의 적절치 않은 행동에 주의를 주지않는 부모, 대중 목욕탕에서 물이 낭비되는 것이 아무렇지 않던 처자, 도덕의 기준이 자신의 성향에 맞추어진 그 여인, 자신의 아들에게 병원비를 물어줄테니 불리하면 때리라 했다는 학부모(직접 내 귀로 들었다)… 내가 겪으면서 놀랬던 그 어른들과 막내가 놀랬던 그 아이들의 연결은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성이 결여될 뿐 아니라 이와같은 악의 매듭이 이어지는 현상은 대체 무엇때문일까? 이것이 정녕 자원이 부족한 작은 나라에서 불가피하게 파생될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란 말인가? 작은 땅덩이기에 가지는 혜택이란 결단코 없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좁은 세계이므로 선한 유행을 만들면 그 의식과 풍토가 정착되는데 용이할 수 있다. 방향만 잘 잡으면 된다. 그 방향의 해답은 여러가지겠지만 그 중에서도 최선급은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남을 위해 내 것을 다 퍼주라는 말이 아니다. 타인에대해 좋은 매너를 취하면 된다. 좋은 매너가 바람둥이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은가^^ 그저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타인의 상황을 배려하고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고… 나와는 다르지만 그 사람은 그럴 수 있겠다는 이해만으로도 이 사회는 달라질 것이다. 다양해지고 여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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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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