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아니라서 잘은 모른다. 김연아의 은메달이 테이블 밑에서 만들어진 하잘것 없는 가짜라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전 세계 2위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위대하다. 단지  금메달을 거머쥐었으나 소트니코바에게도 마냥 기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만약 러시안 그녀에게 금이 아니라 은이 주어졌다면 상황은 어떠 했을까? 과연 그녀는 올림픽 2위라는 결과에 통탄해 하고 분노를 느꼈을까? 세상이 이다지도 시끌벅적했을까? 그녀가 차라리 은메달을 받았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남은 생애 내내 자랑스러워 하며 그 탱탱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더 나은 성장을 위해 정진할 수 있진 않을까? 아직 어린 그녀는 모를 지 모른다(그녀는 여드름장이 내 딸아이 또래다). 그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만찬식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제 밥그릇에 올려놓은 기쁨에 취해서 말이다. 그건 네 것이니 마음껏 먹어라,는 말에 현혹되어 그 음식을 덥썩덥썩 접시에 담은 채 말이다. 이 역사가 훗날 어떤 불명예와 비판으로 그녀의 꼬리에 달랑달랑 매달릴 지를... 상상도 못 한 채… 그녀는 웃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카타리나 비트처럼 그녀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 진정 스토니코바의 기술은 훌륭했다. 젊은 패기와 열정으로 제가 할 수 있는 한 돌고 미끄러지는 재주를 성공리에 마쳤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닌 스포츠가 바로 피겨였던 것이다. 예술이고 하트고 영혼이라는 빙상의 꽃을 수학의 잣대로만 재고 비추면서, 추레해질 지도 모르는 꽃의 앞 날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심판들이 꽃에 물을 주게 한 것이 오류였다. 심판의 구성을 보고 점수를 얻지 못할 상황이라는 예감을 가진다면 이것이 진정한 스포츠의 세계이런가? 어떤 국적의 심판들로 구성되어 있었냐를 분석하는 사후의 분란이 내게는 더 혼란이었다. 심판에게 국적이 왜 필요한가? 대체 심판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사실 소트니코바에게 현재 국제사회가 웅성대고 있는 이 비판의 여론은 가혹한 돌이다. 그녀의 찬란한 노력과 재능은 안중에도 없이 그녀의 메달을 거저 얻은 금이라 눙친다. 알고보니 그녀는 자국에서도 1인자의 그늘에 가려 아픔의 상처를 달래야 했던 과거사가 있었다. 통상 큰 국제 대회인 경우 여러 명의 선수에게 나누어 기회를 주건만 러시아는 15세의 유망주 리프니츠카야만 밀어주었다. 스토니코바는 얼음판 대신 TV 앞에 끌려와 홀로 승부욕을 갈아야 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질투나 슬픔의 원천으로 삼기보다는 성공을 위한 큰 동기부여로 삼고 악착같이 돌고 미끄러지는 연습을 했다. 17세 소녀의 이 극기와 경이로움을 지금 세상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한 쪽의 어른들이 독극물이 든 음식을 내밀어 권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날카로운 돌을 투척하고 있다. 그녀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지 않을 수 없다.

연아 선수는 말했다. 자신의 눈물이 점수때문이라 오해받을까 우려된다고…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커다란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멋진 피날레를 장식했다는 사실이라고... 지난 우여곡절이 파노라마치면서 회한의 눈물이 솟구치는 건 인간으로서 가지는 당연한 감정일진대... 그것을 보고 오해할 수많은 말들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것은 짐작컨대 그녀가 세상을 조금 안다는 소리일 것이다. 경험이란 그래서 중요하다. 그 한마디로 그녀는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키며 삶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가를 아는 사람이었다. 성숙한 사람이라는 느낌과 함께 연아선수의 그 말은 내 가슴을 건드렸었다. 그런데 아직 세상을 모를 소트니코바(같은 또래의 딸아이를 보면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는 아무 것도 모르고 폴짝폴짝 뛰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듣기에 소름이 끼치는 말을 내뱉는 어른들이 있다. 악이 악을 부르는 악순환은 고리를 끊는 단호함이 중요하다. 우리가 왜 피겨의 여신 김연아를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가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그녀가 세계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을 받는 이유가 단지 잘 돌고 잘 미끄러지기 때문일까? 혹 은메달을 받고도 진심으로 맑고 어여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진 않을까? 안이 훌륭해야 겉도 빛나는 원리를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김연아 선수에대한 판정을 재심해달라는 청원에 참여도 했고 여러 루트를 통해 동참의 호소도 갈구했다. 하지만 그건 금메달이 은메달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당한 스포츠정신을 살리고 바른 피겨를 세우고자 하는 의도였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이기를 원하는 마음때문이었다. 2백만이 넘는 세계인이 한 마음이었다. 썩 괜찮은 세상을 대할 수 있어서 가슴이 촉촉하다. 대한민국은 기술뿐 아니라 예술성도 훌륭하고 인성도 성숙한 김연아라는 선수를 배출했다. 그런 대한민국의 일인으로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우리가 되어야한다는 다짐이 이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