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봄에는 냉이국을 끓여야 겠다. 작년에 미국에서 뜬금없는 냉이타령을 했던 딸들에게 냉이 된장국, 냉이 무침, 냉이 튀김도 맛보게 해주리라. 향긋한 달래 넣은 양념장도 만들어 콩나물밥에 비벼 먹이면 그 옹골진 입으로 덥썩덥썩 숟가락이 들고나겠다. 진작부터 선을 보인 봄동으로 전골도 끓이고 겉저리도 무쳤다. 돈나물에 초고추장을 끼얹어 아삭아삭 씹는 맛도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두룹나물의 쌉쌀한 풍미, 고소하기가 들깨즙을 능가하는 고사리... 춘삼월은 살 갗에 닿는 온순한 공기 맛도 일미인데 새로 돋아나는 먹거리들때문에 식욕은 탱고를 춘다.

새삼스럽지만 시간이란 무대에서 봄이 선한 역할만 도맡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권리다. 꽃가루 알러지로 고생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서 봄을 싫어할까? 기왕에 태어난 생명으로 봄같이 살다 가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는 것도 춘삼월에 들이치는 바람이다. 하지만 살갗 트는 겨울도 겪고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도 치루어내야 봄 좋은 걸 알테지… 나이가 이만만 하니 삶의 이치가 깨달아지지만 그래도 춘삼월같은 나날이 길었으면 하는 바람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춘삼월에는 이제껏 살아온 인생중에서 봄 같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아도 좋으리라. 춘삼월에는 겨자빛 햇살을 맞으며 하릴 없이 부랑부랑 걸어다녀도 좋으리라. 춘삼월에는 굳게 닫혔던 빗장을 풀고 대청소하 듯 묵은 생각을 날려 보내도 좋으리라. 춘삼월에는 꽁꽁 언 마음을 녹여 누군가에게 사과를 해도 좋으리라. 그 사람도 매화마냥 살풋 웃으며 화답하리란 기대를 품는 것도 춘삼월이니 그러하리라.

춘삼월을 그리다가 맞이한 나의 봄타령… 만물의 이치가 그러하 듯 어떤 마음으로 맞느냐에 따라 꽃을 피울 수도 있고 가시만 무성할 수도 있으리. 이번 춘삼월에는 고향산천의 무수한 꽃님들하고만 해후하려 한다. 15년만에 만나는 한반도의 춘삼월, 눈물지게 이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