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pop star를 보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미국에서 온 샘 김 이라는 만 15세 소년을 보는데 말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였을 것이다. 하나는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자신의 꿈을 향해 정진하는 열정이 기특하고 감동적이어서 일테고 또 한가지는 그 아이의 피부톤과 말투와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7개월 전까지만해도 우리 딸들이 가졌던 피부톤과 말투와 분위기... 한국과는 자외선 세기가 다른 대지 위에서 뛰고 수영하고 바이시클링을 즐겼던 딸들은 황인종이지만 갈색인종이라 불리울만한 피부색을 가졌었다. 그건 내 딸들과 샘 김 뿐 아니라 그 땅에 사는 많은 아시안 청소년들에게 해당되는 그림이기도 하다. 딸들은 내 어렸을 때처럼 여름 한 철 그을려도 겨울이면 다시 뽀얘지는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자라면서 속살마저 까매졌다. 나는 이 아이들이 바로 교포라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왜 교포들은 유난히 갈색의 살빛을 가지지 않는가. 생김새가 달라도 교포 아이들은 그들만의 공통된 분위기를 풍긴다. 대부분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서양 청소년들이 입는, 어찌 보면 동양인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를 하고 있다. 약간 촌스러우면서 건강해 보이면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만 한국말을 할 때면 하나같이 어리숙해 보이는… 그 모습이 순박하면서도 꽤 매력적인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딸들의 피부는 점점 하얘지고 그래서 조금씩 예뻐지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왠지 그 매력이 사라지고 있는 듯 해 아쉽다. 게다가 이러다 약골이 되진 않을까란 염려가 간헐천처럼 분출하니 내가 미국에서 오래 살긴 살았나 보다. 딸들의 하얘진 피부에 익숙치 않아 별 걱정을 다 하니 말이다. 그 건강하고 활동적이고 주체적이었던 내 딸들의 옛 모습이 샘 김이라는 소년 위로 투영되었고 그래서 나는 마음이 싸해졌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생활한 지 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 6개월간은 달라져도 무지막지하게 달라진 금수강산에 적응하기위해 하 세월을 보냈고 나머지 2개월여는 이렇게 사는가 보다란 마음가짐으로 지내고 있다. 우리 막내는 미국에서 얼마동안 살았어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10년이요,하고 답한다. 어? 우리 14년 살았는데… 처음 막내의 대답을 들은 나는 멋모르고 딴지를 걸었다. 하지만 막내는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세월이 고작 10년 이었던 것이다. 전 생애동안 미국서 살았던 막내와 두 살 때 도미해서 14년동안 미국 교육만 받아온 큰 딸은 8개월 전부터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전형적인 한국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미국학교 시스템과 한국학교 시스템은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엉덩이가 납작해 진 것 같다고 뒷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는 큰 아이와 엄마 너무 힘들어, 학교에서 공부만 했어요,라고 푸념하는 작은 아이의 어록처럼 말이다. 미국은 대다수의 학교에서 오케스트라나 밴드 등의 음악활동도 정규 교과에 포함되고 중학교부터 교실을 옮겨 다니며 대학 캠퍼스처럼 수업을 받는다. 고등학교에서는 자신만의 시간표가 따로 있어서 수업이 비는 공강시간도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게임이나 활동을 통한 수업이 많아 공부를 했으되 공부만 한 느낌이 안 드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의 차이는 미국에서 한국으로의 이동을 기껍지 않게 한다. 반면 한국에서 미국으로의 시스템 전환을 매우 용이하게 한다. 인간의 본능은 힘든 쪽에서 그렇지 않은 쪽으로 기울어지면 여유와 행복을 느끼도록 구조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도전을 사랑하는 예외적인 기인들은 있지만 말이다. 때문에 주위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힘든 환경에 투하된 딸들의 소식이 궁금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존하기 힘든 시츄에이션인 것이다.

짧게 답하자면 딸들은 비교적 잘 살고 있다. 한번도 학교에 안 가겠다는 투정을 하지 않았고 미국에서처럼 준비물이나 과제물은 스스로 알아서 챙기고 있으며 베스트 프렌드라 말 할 수 있는 친구들도 생겼다. 하교 때면 나는 딸들에게 오늘 학교 어땠어?라고 묻는데 대체적으로 괜찮았다, 좋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그 대답을 믿는 편인데, 왜냐하면 내 딸들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경우엔 하소연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두 아이 모두 일단 현재의 삶에 settle down이 되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허나 길게 말하자면 아이들은 행 lucky 불행 unlucky을 동시에 겪는 중이다. 피부가 하얘지는 현상처럼 말이다. 예뻐 보이는 장점과 운동부족으로 몸이 허약해 질 수 있는 단점처럼 양면성을 동시에 함유하는 것이다.

행의 예를 들면 첫째, 한국과 미국의 양 문화를 겉핥기 식이 아니라 깊숙이 체험하고 느끼고 비교할 수 있다는 점, 그로써 보다 너른 세상을 사는 효과를 누린다는 점. 둘째, 전혀 모르던 것을 알아가며,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접목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체득한다는 점, 셋째, 각 나라에는 분명 비교우위에 놓인 사항이 있을 테고 그 나은 쪽을 배울 기회를 가진다는 점 넷째, 미래를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비축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허나 행은 비교적 주관적인 관점일 수 있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그 행이 행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양 문화 사이에서 오히려 갈등과 반목과 부적응만 겪는다면 앞에 열거한 이점들을 흡수할 기회는 오지 않는다. 이 행들은 먼저 적응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도래하는 장점이고 그 적응력이란 아이마다 환경마다 다르기 때문에 극히 주관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반면 불행은 보다 객관적이다. 내 딸들처럼 미국에서 건너온 학생은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은 학생에비해 불행의 충분조건을 가진다. 한마디로 아는 것이 병이 된다. 자신에게 맞는 학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high school) 보다 활동적이며 다양한 activity가 주어졌던 세계에서 편협하고 강제되고 수동쪽인 방향으로 이동했을 때 갈등과 고통은 수반될 수 밖에 없다. 딸들은 공부만이 아니라 음악, 체육, 취미, 봉사나 동아리 활동 등을 겸하는 교육환경에 길들여져 있었고 그런 다양함 속에서 재미와 활력을 느끼며 다이나믹하게 살았던 과거가 그리울 수 밖에 없게 된다. 미국에서는 공부만 하는 학생을 nerd라 하여 공부벌레라는 의미보다 나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nerd가 아니면서 한 순간에 그 nerd의 세계로 투입되었으니 기꺼울 리가 없겠다. 나는 딸들에게 던져진 이 불행의 충분조건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위의 행을 얻는다면 오히려 작은 댓가를 치루어 큰 것을 취하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두 딸은 6개월간의 정착기를 보내고 이제 도약기로 접어들었다. 그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처음 6개월간은 정착기, 다음은 6개월 단위로 1차 도약기, 2차 도약기… 순으로 학업과 생활의 강도를 높여가다 아이의 진척에 맞추어 본 궤도로 진입하는 장기 계획을 나는 세워 두었다.

정착기 동안 딸들은 그저 학교에 가기만 하면 되었다. 

-2부에 계속-